제246화
246화
“만일 외계인이 있다면 말이야.”
뮤턴트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지구를 방문했었던 외계인이 있다면 다시 지구를 방문했을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엄청 놀라겠지요?”
“그러겠지. 오랜 시간 식물인간이었던 사람이 의식을 회복해서 깨어난다면 자신이 다른 세계에 환생을 했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그러겠네요.”
창수는 꽤나 재미있을 것 같지만 직접 경험을 하게 되면 끔찍할 것 같은 현실에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도 지구의 반대편에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펼쳐지고 있을 터였다.
“키메라 한 마리가 서너 마리의 개조체를 데리고 다니는 것 같습니다.”
“그래. 개조체라고 하니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사람의 몸에 다른 생명체의 몸이 붙어 있었다.
독침이나 마비침과 같은 것들이 붙어 있는 경우도 있었고 팔이 커다란 집게발인 것도 있었다.
인간 신체에 한두 개 정도의 개조 신체가 달려 있는 것이 많았지만 일부는 신체의 절반가량이 개조되어 있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그쯤 되면 뮤턴트나 다를 바 없었다.
문제는 인간을 잡아먹기보다는 어디론가로 끌고 가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인간을 개조하는 놈에게로 끌고 가는 듯한데. 그놈을 찾아 죽여야 해.”
“이번에는 샘플 확보 안 하십니까?”
“하긴 해야겠지만 아무래도 크기가 클 것 같아서 말이야.”
“최 원사님! 저기 좀 보세요! 아! 보면 안 되려나?”
창수가 아룬과 상의를 하고 있을 때 넬시아가 창수를 불렀다.
넬시아는 창수에게 보라고 해야 할지 보지 말라고 해야 할지 잠시 혼란스러웠다.
“뭔데?”
“어! 저거…… 그거 아닌가요?”
“메두사?”
“아! 예. 메두사요.”
아룬도 넬시아가 가리킨 곳을 보고서는 당황을 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의 저주를 받아 머리카락이 뱀이 된 여인이 메두사였다.
문제는 메두사를 본 이는 저주로 인해 몸이 돌이 된다고 알려져 있었다.
실제로는 괴물도 아니었고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싶어 하지도 않았던 그녀였지만 목이 잘려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그렇게 신화 속의 메두사는 아닐 터였지만 온통 머리카락이 뱀으로 뒤덮여 있는 여인을 볼 수 있었다.
“메두사처럼 본다고 돌로 변하진 않나 보네.”
“그건 다행이군요. 어떻게 할까요?”
“당장은 방법이 없으니 고통을 줄여 주는 수밖에는 없겠지.”
이미 몸 안에 시드(씨앗)가 박혀 있어서 정상으로 되돌리기에는 무리였다.
잠깐 동안 의식을 되찾아 준다고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괴물로 변해 버리는 것이다.
머리를 날려 버린다.
심장을 부숴도 된다.
개조체의 경우 머리를 날려도 그리고 심장을 부숴도 본체인 시드가 인간의 육체를 조종해 움직이지만, 창수는 인간의 육체가 죽고 두어 시간이 지나면 인간 육체에 기생을 하던 시드도 결국은 죽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게이트의 군인들은 머리와 심장이 날아간 개조체가 계속 움직이자 패닉이 왔는데 그냥 놔두면 결국 몇 시간 이후 사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결국 기생체도 숙주가 죽으면 따라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개조체라고 할 것이 아니라 기생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기생체라. 뭐 그럴 수도 있겠어.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개조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놈이 본체라면 기생체가 될 수 있을 테니까.”
창수는 메두사의 머리카락이 계속 꿈틀거리는 것을 보며 불을 붙였다.
얼마간 그냥 놔두면 알아서 죽는다는 것을 알지만 위험 부담을 줄여야 했다.
자신이 보낸 샘플로 연구 시설에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을 터였다.
창수는 남은 인간의 시체를 도로의 한쪽으로 옮겨 작은 돌무덤을 만들어 줬다.
그 정도가 지금으로서는 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였다.
“계속 수색을 하자고.”
“이쯤이면 발견을 할 때도 됐는데 말입니다.”
“그러게. 어딘가에 꽁꽁 숨어 있는 건지. 이거 내가 인질이 되어서 끌려가 줘야 하려나?”
창수는 인간을 개조하는 놈을 찾기 위해 대구 시내를 돌아다녔다.
그러는 와중에 보이는 키메라와 개조체인지 기생체인지 하는 것을 전부 처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대구 시내의 가로수들의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했다.
완연한 봄이 오고 있는 것이다.
* * *
봄바람은 남쪽에서부터 북쪽으로 밀며 올라왔다.
아직 계곡의 그늘진 곳에서는 얼음이 단단히 얼어 있었지만 양지바른 곳에서는 푸릇푸릇한 잡초들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땅속에서 추위를 피하고 있던 각종 동식물들이 하나둘씩 땅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정신 바짝 차려라! 괴물들이 나타날 때가 되었으니까!”
겨우내 대비를 단단히 했다고 했지만 겨울 전의 막대한 피해로 인해 다들 잔뜩 긴장을 하고 있었다.
“제길! 휴전선을 지키던 것은 애들 장난이네.”
“그러게, 국경선이 엄청나게 길어서 수십만 명을 흩어지게 했는데도 구멍투성이야!”
“하아! 우리 쪽으로는 안 왔으면 좋겠네.”
“아예 안 왔으면 좋겠다! 저기 중국 쪽으로나 갔으면 좋겠어!”
“그러면야 좋겠지만.”
몇몇 거미 뮤턴트의 시체가 교보재처럼 장벽 아래에 놓여 있었다.
고참들이야 거미 뮤턴트를 보았다지만 신병들은 자신들이 뭐와 싸워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렇게 시체였지만 흉측한 거미 뮤턴트를 본 신병들은 공포에 질려 탈영까지 할 정도였다.
물론 탈영을 한다고 해서 도망을 갈 만한 곳은 없었다.
이미 중국 국경 지역의 마을이나 도시는 전부 소개령에 의해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다.
그렇게 봄이 되면서 거미 뮤턴트에 대비하고 있었고 마침내 거미 뮤턴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쏴!”
“발사!”
쾅!
거미 뮤턴트가 일단 한반도로 진입을 하기 시작하면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은 군에서도 알고 있었다.
수도인 서울과 광역시인 대구가 뮤턴트로 인해 엉망이 되어 버렸다.
거기에 더해 국경 장벽마저 뚫려 버린다면 한반도는 지옥이 되어 버릴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땅에서 솟아 올라오는 거미 뮤턴트를 보는 족족 포격으로 불태워 버렸다.
신형 기화 포탄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야! 잘 탄다!”
“엄청나네요!”
“그러게 말이야! 신형 포탄의 위력이 장난 아니네! 이거 하루 종일 타는 것 같은데.”
“이 정도면 땅속의 거미 놈들도 완전히 다 타 버리겠습니다.”
신형 기화 폭탄의 위력에 장벽 위의 경계병들은 환하게 웃었다.
안 그래도 추운데 중국 쪽의 땅이 온통 시뻘겋게 타면서 따뜻한 온기까지 전해 주는 것이다.
그렇게 불의 장벽을 뚫고 국경 장벽으로 거미 뮤턴트들이 넘어오기는 힘들 것 같았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 기화 폭탄의 부작용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국경 장벽 너머에서 거미 뮤턴트들이 발견되는 즉시 신형 기화 폭탄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중국 정부와의 협상으로 중국 땅에 기화 폭탄을 쏟아내는 것을 꺼릴 필요가 없어졌다.
“잘 탄다! 전부 타 죽어라!”
자작자작 잘 타는 모습에 통쾌해하는 장벽의 군인들이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땅이 불탔다.
“이거 너무 오래 타는 거 아닙니까?”
“그래야 이쪽으로는 얼씬도 안 하지!”
“그러긴 하겠네요.”
너무 오래 타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뮤턴트에게 잡아먹히지 않는 것이 더 이득이었다.
불길이 날아든다고 해도 국경 장벽은 생각보다 높아서 불길이 장벽 너머로 넘어오기는 힘들 터였다.
더욱이 장벽 앞으로는 압록강과 두만강도 있었다.
군인들의 입장에서는 강 너머 불구경이나 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틀이 지나고 삼 일이 지나도록 불길이 꺼지지 않고 기이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어! 어! 어! 김 병장님! 저기 좀 보십시오!”
“왜? 거미 놈들이 몰려오냐?”
“아니! 그게 아니고! 저…… 저거!”
“뭔데! 하! 답답해 죽겠……. 저거 뭐냐?”
김 병장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보았다.
그건 진흙인지 돌인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온몸에 불길을 휘감은 채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불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화염 골렘?”
“예?”
“어! 아니! 골렘 아니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십니까!”
“아니! 저거 골렘이잖아! 골렘! 그런데 몸에 불이 붙어 있으니까 화염 골렘!”
김 병장은 자신이 이야기를 하고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불에 타는 골렘처럼 보였다.
물론 정말로 그것이 골렘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신종 뮤턴트의 발생에 신형 기화 폭탄의 사용이 중단되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이 사용된 뒤였다.
상당한 숫자의 화염 골렘들이 국경 장벽 가까운 곳에 생겨나 있었다.
다행이라면 거미 뮤턴트들과는 달리 압록강이나 두만강을 넘어 국경 장벽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가끔 거미 뮤턴트가 장벽 쪽으로 다가오면 화염 골렘들은 거미 뮤턴트를 연료 삼아 태워 버릴 뿐이었다.
그렇게 평소에는 불타는 바위나 진흙같이 가만히 있다가 인간이나 뮤턴트가 가까이 가면 그때 움직이며 공격을 해대었다.
“경계병이네. 경계병이야.”
“그러게요. 괜히 걱정을 했습니다.”
“맞아. 저놈들이 몰려오면 어쩌나 싶었는데. 차라리 다행이었어.”
모든 것을 다 태워 버릴 불과 같이 공격적일 것이라 생각을 했는데 생각보다 공격적이지 않은 모습에서 다들 안도를 할 수 있었다.
굳이 건들지만 않는다면 불이 꺼질 때까지 한반도를 뮤턴트들로부터 지켜 줄 수 있어 보였다.
“저놈들 언제까지 탈까?”
“겨울이 되면 꺼지지 않겠습니까?”
“겨울?”
“예. 제깟 것들이 한반도의 혹독한 추위를 버티겠습니까?”
“호오! 그럴듯하긴 하다. 그럼 봄부터 겨울 전까지 국경을 지켜 주는 경호원을 고용한 셈인가?”
“그런 것이라면 좋네요.”
어차피 장벽 너머로 넘어갈 생각은 없었으니 화염 골렘이 얼마나 있든 상관없었다.
그렇게 거의 이 주일이 넘도록 화염 골렘 뮤턴트가 그대로 국경 너머에서 가만히 있는 것이 목격되었다.
연구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한참 화염 골렘들을 지켜보았다.
아마 연구실에서는 기화 폭탄을 연구한다고 난리일 터였다.
연구원들도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쯤에서 중국 쪽에서 화염체라는 것이 발생을 한다는 통보가 왔다.
대체 뭘 만들었냐는 연락에 엔젤에 대해서 자신들이 아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했다.
물론 중국에서 발견된 화염체와 국경에서 나타난 화염 골렘은 속성은 불이었지만 형태는 다른 개체였다.
그 때문에 연구원들은 또다시 머리를 쥐어뜯어야만 했다.
차마 사용하지 않기에는 또 너무 효과가 뛰어난 신형 기화 폭탄이었다.
“거미 뮤턴트다!”
“사…… 살려 줘! 커억!”
신형 기화 폭탄을 사용하지 않은 국경 장벽으로 수십 마리의 거미 뮤턴트가 넘어와 군인들을 학살하고 시체를 가지고 가 버리면서 결국 사용 승인이 떨어졌다.
국경이 뚫리는 것보다 그냥 사용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었다.
더욱이 불은 불이어서인지 비가 쏟아지면 결국 죽기는 죽는다는 것이 알려졌다.
여차하면 물대포라도 쏴서 없애 버리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물대포로 화염 골렘의 불을 꺼 버리는 것에 성공을 하기도 했다.
“하! 새끼들 별것 아니네!”
통제할 수 있는 위협이 통제할 수 없는 위협보다는 나은 법이었다.
그렇게 두만강과 압록강 지역 전역에 신형 기화 폭탄이 투하되었고, 불의 장벽으로 대륙과 한반도 사이가 완전히 격리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 해에는 참 지독한 가뭄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