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7화
247화
아무리 좋아도 군대는 군대였다.
더욱이 일이 년 복무하고 전역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일단 입대를 하고 나면 언제 전역을 할지도 알 수 없었다.
거기에 더해 평화 시기도 아니었으니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 없었다.
대부분의 군인들은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 그것도 아니라면 별생각 없이 자신의 운명에 수긍하며 복무를 할 터였지만 일부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했다.
물론 괴물들과의 싸움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었지만 집단으로서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야! 이 새끼야! 정신 차려! 정신 차리라고!”
죽음이 너무나도 가까웠다.
자기 혼자만 죽는다면 모르겠지만 제 옆의 동료가 그리고 그 자리가 뚫리게 되면 장벽 너머의 가족들이 죽게 되기에 군인들 대부분은 잔뜩 독기가 올라 있었다.
아주 오랜 시간 한국군 내에 퍼져 있던 폭행도 부조리도 많이 줄어들었다.
그 폭행과 부조리가 줄어들기까지 수많은 희생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부조리는 모르겠지만 폭행은 되살아나 있었다.
퍼억!
“으윽!”
“이 새끼야! 정신 못 차리지! 낮에 니 새끼 때문에 구멍 뚫린 거 어떻게 할 거야! 니 새끼 때문에 장 병장 손모가지 날아간 거 어떻게 할 거냐고!”
열 사람이 할 일을 다섯 명이서 하기도 하는 법이었다.
그중에 한 명이 제 일을 하지 못하면 열 사람이 할 일을 넷이서 해야만 한다.
다섯 사람이 하게 된 일도 큰 문제겠지만 현실은 그보다 더한 일이 수시로 벌어지고는 했다.
악감정은 없었다.
한 군인을 폭행하는 군인들도 원해서 이런 곳에서 괴물들과 싸우고 있는 건 아니었다.
특전사들과 같이 최강의 군인이라는 이들도 있었지만 태반이 일반 보병이었다.
전차병이나 장갑차병 그리고 포병 등 여러 병과의 군인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점차 장비가 소모되는 만큼 그 수도 줄어들고 있었다.
사실 보병들도 점차 장비의 유실로 인해 그 숫자가 줄어 가고 있었다.
보충되기 힘든 첨단 보병 장비들이 소모될수록 군인들의 전력은 약화되어 가는 것이다.
그건 정부와 군이 비난받을 일이었지만 이미 경제적으로 쥐어짤 만큼 짜고 있는 중이었으니 그 누구도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새끼야! 다음에는 내가 죽든! 니가 죽든! 둘 중에 하나는 죽을 거니까! 똑바로 해라! 너만 겁나는 거 아니니까!”
뮤턴트.
좀처럼 죽지도 않는 괴물이었다.
탄약도 부족하기에 마음껏 쏴댈 수도 없었다.
하나하나 빠르게 움직이는 작디작은 머리통을 정확하게 조준해서 쏴야만 했다.
공포에 질려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상황에서 정확하게 조준 사격을 하는 것이 쉬울 리 없었다.
“그리고 탈영할 생각 마라. 탈영해 봐야 갈 곳도 없으니까.”
그 말은 진심이었다.
북한 땅을 통합하기 전 휴전선 일대에서도 사람이 사는 인가까지 가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물론 도시와 가까운 곳이라면 금방 갈 터였지만 GOP라 불리는 곳이라면 걸어서도 꽤나 걸리는 오지에 있었다.
휴전선도 그러했는데 중국과의 국경 장벽에서 중국 쪽은 물론이고 한반도 남쪽으로도 인가까지 가는 데엔 한참이 걸렸다.
더욱이 길다운 길에는 경계 초소들이 있어서 탈영을 해 봐야 아무 소용도 없었다.
그렇기에 탈영을 하면 결국 길이 없는 산이나 숲 그리고 계곡을 통해 가야 하는데 그냥도 위험했는데 지금은 뮤턴트까지 있을 정도이니 죽을 위험이 컸다.
그렇게 진심으로 한 충고였지만 탈영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계속 머물렀다.
“괴물들에게 먹혀 죽든 고참한테 맞아 죽든 어차피 죽을 거면 차라리 도망가는 게 낫다.”
조금이라도 살길이 있다면 그걸 찾아 해야 한다고 생각한 군인은 결국 그날 밤 탈영을 했다.
조금이라도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기적이라고 해도 좋아. 비겁하다고 해도 좋아! 난 그냥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다고!”
붙잡히면 다시 전방으로 끌려오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당장 내일 죽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렇게라도 끝까지 살아남겠다는 군인은 집으로 가기 위해 남쪽으로 향했다.
당연히 길다운 길에는 경계 초소가 있었기에 길이 없는 곳을 헤치고 지나가야만 했다.
결국 우거진 숲을 통해 가야 했다.
깊은 산속에도 뮤턴트들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기에 장벽이 쳐져 있거나 철장이 쳐져 있었다.
그런 철장을 억지로 넘어 인적이 없는 깊은 숲으로 들어갔다.
허기졌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잘만 하면 도망을 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탈영병의 행운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어…… 어째서? 여…… 여긴 남쪽인데.”
분명 한반도에는 없어야 할 뮤턴트였다.
장벽 위에서 싸웠던 대상이었다.
거미 뮤턴트.
한국군이 국경 장벽까지 세워 가며 막고 있는 뮤턴트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국경 장벽이 뚫렸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하지만 한반도의 남쪽 깊숙한 곳에서 거미 뮤턴트를 만난 것이다.
“아…… 알려야 해.”
탈영병은 이미 국경 장벽이 거미 뮤턴트들에게 뚫렸다는 사실을 고참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자신의 복부를 뚫고 들어오는 거미의 날카로운 발 때문에 더는 할 수 없었다.
“아…… 아파.”
배가 뚫린 채로 탈영병은 거미 뮤턴트들의 집으로 끌려갔다.
동굴 같은 곳이었다.
그곳까지 끌려가면 절대 살아서 나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탈영병은 사력을 다해 고함을 질렀다.
“사…… 살려 줘! 여기 거미 괴물이 있다! 쿨럭!”
자신의 외침 소리를 누군가가 들었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어느덧 동굴 안으로 끌려가야만 했다.
그러고서는 동굴 가득 있는 크고 작은 거미 뮤턴트들을 볼 수 있었다.
“하…… 한국은 끝났어.”
장벽이 완전히 뚫린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이미 동굴 안에는 수많은 인간들이 깊숙한 곳에서 거미 뮤턴트의 부화장 먹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탈영병도 몸 안에 거미의 알이 심어졌다.
오래지 않아 셀 수 없이 많은 새끼 거미들이 몸을 파먹고 난 뒤에 몸 밖으로 나올 것이었다.
그렇게 주변의 숲에 파릇파릇하게 새싹과 잡초들이 돋아나자 거미 뮤턴트들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생명체가 가진 가장 기본적인 본능인 생존과 번식을 위해 인간들을 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 * *
거미 뮤턴트의 시체뿐만 아니라 키메라의 시체를 연구 중인 뮤턴트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늘어나는 뮤턴트 샘플에 따라 늘어나는 일에 지쳐 가고 있었다.
“키메라의 개조체에 대해서 알아낸 것이 있나?”
“기생 생물 같습니다.”
“역시 기생 생물인가?”
“예. 그런데 키메라하고 기생체하고 뭔가 다릅니다.”
“뭐가 다른데?”
“그러니까 키메라는 진짜 어이가 없는 것이 부위별로 유전 정보가 다 다릅니다.”
“유전 정보가 다르다고?”
“예. 신체 하나에 온갖 유전 정보가 다 엉망으로 뒤섞여 있습니다. 그게 어떻게 살아 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팔엔 곤충의 유전자가 있었고 다리에는 곰의 유전자가 있었으며 머리에는 사자의 유전자가 있었다.
물론 기존의 생명체와 전혀 다른 유전자가 있기도 했기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생명체였다.
적어도 뮤턴트는 인간의 유전자가 변질이 되어 전혀 다른 생명체의 유전자로 변해 있었다.
그래도 유전적 일관성이라도 있었는데 키메라는 누군가 수많은 동물과 곤충들을 실과 바늘로 붙여만 놓은 듯한 상태였다.
당연히 살아 있는 것이 말이 안 되지만 키메라는 살아 있었다.
“정말이지 유전 공학의 승리 같습니다.”
“유전 공학의 승리는 무슨! 그러면 키메라하고 기생체하고 다르다는 거지?”
“예. 전혀 다릅니다. 키메라가 사람의 몸을 개조해 기생체를 붙여 놓은 것이 아니라 어떤 기생 본체가 이 짓을 저지른 것 같습니다.”
“그럼…….”
“아마도 키메라도 기생체에 감염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 본체가 따로 있다는 거지?”
“확실하진 않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대구 안에 뭔가가 있었다.
그것이 뮤턴트뿐만 아니라 인간을 조종하는 것이었다.
“일본에서 뮤턴트들을 조종하는 개체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예.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개체는 같은 종족을 통제하는 것이었지 전혀 다른 개체를 조종하는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이건 다른 종족이고 뭐고 할 것 없이 전부 조종을 할 수 있다는 거고.”
“아마도요.”
연구 팀장은 상부에 보고를 해야만 한다고 여겼다.
자신들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나도 위험한 뮤턴트가 한반도에 있는 것이었다.
“기생체를 분리하는 건?”
“그게. 의사들의 도움을 받아 분리를 해 봤는데 시드라는 기생체의 본체 부분이 신체에 꽤나 깊숙하게 박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분리가 안 된다는 거야?”
“됩니다. 의외로 의학 기술이 엄청나더라구요. 신경망 가닥까지 전부 뽑아내 버리던데요.”
“정말이야?”
“예. 문제는 꽤나 힘든 과정이어서 하나 분리하는 것만으로도 의료진들이 기진맥진할 정도입니다. 혈액도 많이 필요하고 수술 이후에도 재활 기간이 상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모든 기생체들을 다 분리할 수는 없다는 소리구만.”
“아무래도 그렇죠. 의료 시스템이 정상일 때라고 해도 그 많은 사람들을 다 정상으로 되돌리기에는 무리일 테니까요.”
대구 시내 안에 기생체에 당한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수만이 될지 아니면 그보다 더 많을지 알 수 없었다.
기생체를 일일이 생포한다는 것도 힘들었다.
“키메라는 모르겠지만 기생체에 감염된 사람만은 구할 수 있으면 구해야 할 텐데. 분리만 하면 정상으로는 돌아오니까 말이야.”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닌 듯합니다.”
“어떻게?”
“불완전 기생체인 친구 말입니다.”
“아! 그 친구. 이름이 덕수였나? 기생체에 감염되었는데도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지. 그 친구가 왜?”
“그 친구의 몸에 가시가 있는데 그 가시에서 마비독이 나옵니다. 마비독이 꽤나 강력해서 뮤턴트들도 몸이 마비될 정도입니다.”
“2형은?”
“2형에도 효과가 있었습니다. 뭐 3형과 같이 금속체라면 효과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생명체형 뮤턴트라면 덕수의 마비침이 효과가 있다는 것이었다.
마비독을 이용해 인간과 기생체들을 마비시키면 된다는 것이었다.
“잘만 하면 그 마비독으로 무기 하나가 생길지도 모르겠군.”
“예, 뭐. 그런데 마비독이 그렇게 많이 나오진 않았습니다.”
“그 마비독 다른 기생체도 가지고 있지 않아?”
“예. 다른 기생체들도 마비독이 있더라구요.”
“하! 기생체가 필요할 수도 있다는 건가.”
기생체를 인간의 몸에서 분리하는 데 기생체가 필요하게 된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참! 불은?”
“그게 생명체가 맞기는 한 겁니까?”
“금속도 있고 멕시코에서 바위도 있었어.”
“골렘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 특이하게 인간의 지시를 잘 따르는 놈이라고 하더군. 공격성이 없다고.”
“그거 이미 3연구동에서 만들어 낸 놈입니다. 분명 공격성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몰라, 불완전 변이체인가 보지.”
석면은 한국 내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물질이었으니 연구소에서 쉽게 연구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여튼 불 뮤턴트는 어떻게 연구를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힙니다. 이러다가 얼음이나 물 뮤턴트도 나올까 두려울 정도입니다.”
“그래도 죽이는 건 간단하지 않나.”
“예. 물을 그냥 쏟아 버리면 뒤지니까요.”
그나마 불 뮤턴트들에 대한 대응법은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연구소에서 알아낸 방법들을 상부에 보고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