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3화
253화
뚝! 뚜뚝! 뚝!
시뻘건 용암지대에 빗방울이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용암 위에 내린 빗방울은 용암을 제대로 식히지도 못한 채로 수증기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비구름이 대구까지 제대로 들어오질 못하고 있습니다!”
“분지 지형이라 주변 산에 비구름이 막히고 있어!”
대구 외곽의 산자락 아래로만 쏟아지는 폭우들이었다.
일부 폭우가 분지 지형 안쪽으로 흘러들어 오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했다.
대구 분화구 위로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와 그나마 다가오는 비구름을 밀어내었다.
“제길! 이대로면 비로 저놈들을 어찌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믿었던 희망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아직 더 비가 올 수도 있었지만 그것만 믿기에는 무리였다.
“핵을 쓸 수밖에 없는 건가?”
누군가 핵이라는 꺼내서는 안 될 악마의 무기를 중얼거렸다.
확실하게 발록과 화염의 악마들을 쓰러트릴 수 있을지 장담을 할 수도 없었고 또 다른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었다.
재앙을 막기 위해 더 큰 재앙을 불러올지 몰랐다.
그렇게 더 큰 재앙이 찾아올 수도 있었지만 눈앞의 상황을 그냥 놔둘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때 창수는 대구 시내에 수증기가 생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최 원사?”
신체가 활성화되면 두뇌 또한 활성화가 되었다.
창수는 유심히 대구 시내를 찍고 있는 영상에서 무언가를 살펴보더니 물었다.
“대구 시내를 지나가는 강이 뭐지?”
“예?”
“대구 시내 지나가는 강.”
“낙동강 말하시는 겁니까?”
한 군인의 말에 대구 출신인 듯한 다른 간부 한 명이 정정을 해 주었다.
“낙동강이 아니라 금호강이야.”
“금호강이요?”
“그래. 대구 시내를 금호강이 흐르고 있어. 물론 이제는 사라져 버린 것 같지만.”
강물이 흘렀던 금호강이 있던 자리에는 용암이 흐르고 있었다.
제법 수량이 풍부했지만 지금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대구에서의 금호강의 물줄기는 사라져 있었지만 대구 밖에서 흘러들어 가는 금호강의 물줄기는 아직 그대로였다.
더욱이 폭우까지 쏟아지고 있었으니 대구를 가로질러 흐르는 금호강의 물길로 물은 계속 흘러들어 가고 있었다.
물론 그 정도로 충분하지는 않아 용암 때문에 빠르게 증발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금호강 위에 혹시 댐 있습니까?”
“댐?”
“예! 여기! 이쪽으로 물줄기가 흘러들어 가는데. 혹시 저수지나 댐이 있으면…….”
“물을 방류해서 대구를 물바다로 만들자는 계획이군!”
“예. 비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니 막대한 양의 물을 쏟아부어 버려서 용암들을 굳혀 버리는 겁니다! 아직 용암이 충분히 만들어지기 전에 해야 할 것입니다.”
대구 시내의 건물은 거의 사라져 있었다.
대구 분지 안에 용암이 얼마나 찼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여전히 발록과 화염의 악마들은 땅바닥을 두들기며 용암을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금호강 위에 댐이나 저수지가 있나?”
“영천호! 영천댐이 있기는 합니다만!”
“있어?”
“예! 하지만 거리가 상당히 멉니다! 더욱이 영천시하고 경산시가 중간에 있습니다!”
댐을 방류하게 되면 그 아래에 있는 영천시와 경산시가 위험해질 수 있었다.
“대구를 그냥 놔둔다면 영천과 경산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적당히 물을 방류해서는 별 효과가 없을 터였다.
최대까지 댐을 방류해야 할 것이었고 당연히 영천과 경산은 물바다가 될 것이 분명했다.
사령관은 대구 시내를 비추는 영상을 바라보았다.
핵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홍수가 차라리 나은 선택일지도 몰랐다.
“영천과 경산시에 연락해. 긴급 대피하라고.”
결국 영천댐을 방류하기로 했다.
그렇게 경산시와 영천시에 비상 사이렌과 함께 긴급 대피 명령이 떨어졌다.
경산과 영천으로서는 날벼락 같은 일이었지만 대구의 화염의 악마들이 대구 밖으로 밀려 나온다면 가장 먼저 위험해지는 곳이 경산이었다.
“물길이 댐의 방류에 무너지지는 않겠지요?”
“그나마 하천 지류 공사들을 잘 해 둬서 물길이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물론 장담을 할 수는 없습니다. 최대 방류를 한 적은 없으니까요.”
“어설프게 방류해 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을 거야. 부실한 부분 점검하고 방류 시작해!”
군인들뿐만 아니라 민방위 병력과 공무원들 모두가.
아니 사실상 성인 남자들 모두가 동원이 되었다.
금호강의 강변 위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빨리 대피해요! 빨리! 댐을 방류한답니다!”
“아이고! 이게 무슨 난리야! 갑자기!”
“빨리 움직여요! 예정 시간 되면 대피 못 해도 바로 방류한답니다!”
“태풍이 분 것도 아닌데 무슨 댐 방류야!”
비가 많이 오고 있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댐이 무너질까 걱정을 해서 방류를 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자세한 사항을 알 리 없었기에 다들 허겁지겁 고지대로 대피를 해야만 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내 영천댐이 방류를 시작했다.
콸콸콸!
수문을 최대한 열자 엄청난 양의 물이 금호강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폭우로 모아진 강물의 수위가 조금 올라가기는 했지만 강둑까지 물이 찰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총 저수량 9,000만 톤의 영천호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에 의해 금호강의 수위는 빠르게 상승을 했다.
영천댐에서 대구까지는 대략 50km 정도의 거리가 있었다.
물론 굽이진 하천의 특성상 실제 거리는 좀 더 나왔다.
“물이 들어온다! 대피해! 빨리!”
쏟아지는 폭우와 함께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경찰들과 공무원 그리고 군인들은 밀고 들어오는 강물을 보며 목이 터져라 경고를 해대었다.
가만 먼저 영천을 덮쳤다.
영천 시내를 지나가는 금호강의 강둑 사이로 물이 가득 들어찼다.
일부 구간에서는 지류로 역류를 할 정도로 물이 타기 시작했고 얼마 간은 강둑 밖으로 넘치기까지 했다.
“지하 차도에서 나와요! 나와! 물 들어옵니다!”
금호강의 바로 옆에 있는 영천 지하 차도로 역류된 물이 쏟아져 들어갔다.
차라도 있었다면 위험했을 상황이었다.
그나마 뮤턴트 사태 이후 일반인들은 개인용 승용 차량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서 차로는 한산하기만 했다.
영천 시내를 물바다로 만들며 수십만 톤의 물들이 계속 강줄기를 따라 흘러갔다.
댐을 방류한 지 한 시간쯤 흘러 대구대학교와 대구가톨릭대학교의 일부를 침수시킨 물줄기는 그 아래의 호산대학교를 휩쓸었다.
속도는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빨라졌다.
“더 이상은 무리입니다! 이쯤에서 멈춰야 한다구요!”
영천댐에서 더 이상 수문을 방류해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용암으로 뒤덮인 대구를 식히고 화염의 뮤턴트들을 제압하려면 한 방울의 물도 쥐어짜야만 했다.
그렇게 영천댐을 관리하는 수자원공사의 직원들의 말을 무시한 채로 댐의 물은 수문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자칫 물줄기가 틀어져 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경산시의 북부를 지나는 금호강의 강물은 율하체육공원을 완전히 물로 채워 버렸다.
마침내 대구까지 도달을 한 것이다.
다소 불어난 강물로 계속 물이 들어오기는 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던 대구 시내는 엄청난 물폭탄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미 강둑도 다 망가져 버린 상태여서 완전한 평지나 다를 바 없는 대구 시내였다.
그 위로 강물이 엄청난 속도로 쏟아져 들어가는 것이다.
대구 전체를 물이 뒤덮기 시작했다.
지지지지지!
이내 불과 물의 싸움에 엄청난 수증기가 만들어졌다.
“강물 도착! 강물 도착! 엄청난 수증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수증기 때문에 현 위치에서 시내가 보이지 않는다!”
산등성이에서 대구 시내 쪽을 살피던 정찰병들은 엄청나게 생겨나는 수증기에 목이 터져라 무전기에 고함을 질러대었다.
“하아! 미치겠네! 완전히 한증막이야! 한증막!”
“그러게 말입니다! 후우! 숨도 제대로 안 쉬어집니다!”
엄청난 수증기는 산자락을 타고 올라왔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비 때문에 판초우의를 뒤집어쓰고 있던 경계병들은 온몸이 젖는 것에 더해 열기까지 판초우의 안쪽에 쌓이자 벗어던져야만 했다.
“이제 어떻게 하죠? 아무리 봐도 보이지 않습니다! 산 아래쪽으로 내려가야 하지 않을까요?”
“뭐? 아래로 내려가자고? 대구 시내 쪽으로? 미쳤어? 뒤지려고?”
“하지만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되지 않습니까!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보고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후임의 외침에 뭐라 할 수가 없었던 정찰병 선임은 결국 별수 없이 대구 시내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물론 수증기는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잠시 멈춰!”
“히익!”
콸콸콸!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사이엔가 도로가 부서져 있고 엄청난 물이 쏟아져 들어가고 있었다.
“여기 계곡물이 있었나?”
“하아! 하아! 지금 비 오고 있는 거 맞지?”
“예? 아! 예!”
어느덧 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폭우가 내린다고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정찰병들은 뭔가 이상함을 느껴야만 했다.
“비…… 비가 뜨겁습니다.”
“그래. 윽! 아니! 이거 검은색인데.”
“예?”
“비가 검은색이라고! 제길! 지금 대구 시내 볼 상황이 아냐! 여기서 피해야 해! 빨리! 지금 강물하고 용암이 만나서 생긴 수증기가 다시 비가 돼서 내리는 거라고! 이거 맞으면 우리 암 걸린다!”
몸에 안 좋다며 후임을 끌고서는 대구에서 벗어나려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선임이었다.
강물은 끊임없이 흘러들어 왔다.
대부분은 지표면의 용암에 의해 수증기가 되었지만 수백만 톤의 물은 용암들을 뒤덮어 갔다.
그렇게 대구 시내 안으로 밀고 들어가는 강물이었다.
안쪽으로 들어올수록 수증기가 되어 버렸지만 여전히 많은 양의 물이 계속 밀려들고 있었고 이렇게 생긴 엄청난 양의 수증기는 다시 비가 되어 대구 안으로 물을 쏟아부었다.
쏴아아아아아!
대구 안으로 강물이 들어온 지 한 시간여가 지나자 대구 분지 지역은 거대한 한증막이 되어 버렸다.
생명체라면 그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을 만큼의 고온과 습도로 가득 차 버린 것이다.
과르릉! 과륵!
대기 불안정으로 인해 거대한 구름 안으로 천둥 번개가 쳤다.
그리고 그 안에 갇힌 발록과 화염의 악마들은 현세의 지옥 안에 봉인되었다.
크오오오오오!
발록은 수증기를 태워 버리려는지 입에서 거대한 불을 토해 내었지만 그 거대한 불은 대구 전체를 뒤덮고 있는 수증기의 장막을 뚫고 나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천둥 번개 속에서 잠깐씩 화염이 비추는 듯했지만 그뿐이었다.
물은 계속 쏟아져 들어갔고 용암과 만난 수증기는 계속 만들어졌으며 그렇게 만들어진 수백만 톤의 수증기는 다시 비가 되어 지상을 후려쳤다.
콸콸콸콸!
그건 비가 아니었다.
하늘 위에서 거대한 양동이로 물을 뿌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폭포처럼 대구 시내에 쏟아지고 다시 뜨거운 용암과 만나 수증기가 되고 그렇게 다시 물을 지상으로 퍼부었다.
“대체 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그건 모르겠는데 효과는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게 보이네.”
대구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군인들은 꽤나 진귀한 구경을 하고 있었다.
내부에서는 화염의 뮤턴트들뿐만 아니라 인간들에게도 지옥이겠지만 지옥 밖에 있는 이들에게는 신기한 구경거리일 뿐이었다.
그렇게 영천댐의 수위가 한계까지 내려가도록 퍼부은 수천만 톤의 강물은 대구를 물의 도시로 만들어 버렸다.
물론 낙동강의 수위까지 올려서는 부산까지 타격을 입히게 되었다.
그렇게 세상을 다 무너트릴 것 같던 폭우도 결국에는 멈추었다.
그러고서는 충격적인 결과를 목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