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3화
283화
미국으로 향하기로 한 혜은은 모든 준비를 마치고 출발을 했다.
중부 멕시코에서 미국 땅까지는 꽤나 먼 거리였다.
그 먼 거리를 여자들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들까지 데리고 가야만 했다.
뮤턴트라는 괴물들이 없을 때도 걸어서 가기에는 무척이나 험난한 길이었다.
하지만 그대로 있기에도 좋은 것은 아니었기에 다들 희망과 꿈이 있는 땅으로 떠나기로 한 것이다.
“준비 단단히 해 둬요.”
“준비는 다 했어요. 그런데 정말 괜찮겠지요?”
“괜찮을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지만 혜은은 모두를 안도시켰다.
사실 괜찮을 것이라는 말은 그녀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이었다.
자신이야 어찌 되든 상관없었지만 어린 아들까지 함께 있었기에 어떻게든 살아남아야만 했다.
그렇게 수십 명의 사람들은 건장한 남자들의 보호 아래 정든 마을을 떠났다.
건장한 남자들이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가장 큰 전력은 혜은과 키나였다.
엔젤의 부작용인지 괴력을 가진 혜은이었다.
그리고 불의 마녀라고 불리는 키나는 없어서는 안 되는 전력이었다.
그 어떤 뮤턴트들도 단번에 온몸을 녹여 버리는 강력한 불덩어리를 날릴 수 있었다.
과거였다면 인간이 아닌 괴물이라고 했겠지만 점점 인간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었다.
불완전 뮤턴트까지 완전히 받아들이기에는 무리일지 몰랐지만 신체의 일부만 변이되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얼굴과 같이 외부로 완전히 드러나는 변이가 아닌 신체의 일부에만 드러난 변이 같은 경우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 주고는 했다.
물론 이런 일부 신체 변이가 집단의 유지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엘!”
“예! 키나 님!”
“부탁 좀 할게.”
“걱정 마세요!”
일행들을 인솔하는 책임자인 키나의 말에 엘이라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엘의 눈은 다른 사람들의 눈과는 조금 달랐다.
오른쪽 눈은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었지만 왼쪽 눈은 동물의 눈처럼 눈동자가 이질적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곳까지 멀리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엘이었다.
그렇게 위기가 찾아오는 것을 미리 파악하기 위해 엘은 평소에는 가리고 있던 눈의 안대를 풀고서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오직 한쪽 눈만 변이가 되어 버렸다.
그 외에는 아무런 변이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신체는 눈을 제외하고서는 일반인이나 다를 바 없었다.
엘은 묵직한 짐을 짊어지는 혜은을 바라보았다.
가냘픈 여인의 몸이었지만 그 어떤 남자들보다 강한 육체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도 이왕 변이할 거라면 저렇게 힘이 세졌다면 좋았을걸.’
혜은의 외모는 인간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신체는 부러울 만큼 강인했다.
뮤턴트를 단번에 죽이는 힘에 엘은 자신도 한쪽 눈이 아니라 온몸의 근육이 강화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고는 했다.
물론 또다시 엔젤을 먹을 자신은 없었다.
운 좋게 눈 하나만으로 변이가 끝났다.
두 번째에도 그런 운이 따라 줄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혜은이나 키나를 부러워했지만 쉽게 도전을 하진 못했다.
“출발!”
키나의 출발 외침에 따라 사람들은 북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걷고 또 걷고 계속해서 걸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쉬어야겠어요.”
“후우! 그래요. 첫날부터 무리를 하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제가 사냥을 좀 해 올게요.”
“부탁드릴게요. 혜은 님.”
“예.”
이제는 익숙한 상황이었기에 키나는 혜은이 사냥을 해 오겠다는 말에 부탁을 한다는 말을 했다.
혜은은 힐끔 자신의 아들을 보고 있는 민정을 보고서는 숲속으로 향했다.
“엄마! 다녀와!”
“그래!”
아들은 걱정도 하지 않는지 해맑은 미소를 지어 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혜은은 자신의 아들에게 손을 마주 흔들어 주고서는 어두워지는 숲속으로 들어갔다.
바퀴벌레만 봐도 겁을 먹던 그녀는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숲의 어둠에 들어가는 순간 혜은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어졌다.
지금 그녀는 노련한 사냥꾼이자 암살자였다.
창수한테 받은 대검을 움켜쥐고서는 어둠 속으로 스며들어 간 혜은은 온몸의 피부로 전해져 오는 떨림을 찾았다.
사람들의 숨소리가 아닌 사냥감의 움직임과 숨소리를 찾아야만 했다.
과거였다면 스스로도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을 했겠지만 혜은은 느낄 수 있었다.
“저건 조금 작아서 많이 부족할 것 같은데.”
눈에 보이진 않았지만 사냥감을 찾아내었다.
하지만 먹여야 할 사람들의 숫자가 많았기에 좀 더 큰 사냥감이 필요했다.
그렇게 온몸의 감각을 열어서는 적합한 사냥감을 찾았다.
그리고 찾아내었다.
“좀 큰가?”
문제는 이번에는 너무 컸다.
“후우! 부족한 것보다 남는 것이 낫겠지.”
혜은은 남는 것이 낫겠다며 숲속을 빠르게 달렸다.
“하필이면 노린내 많이 나는 녀석이네.”
야생 동물치고 고기 맛이 좋은 녀석은 그다지 없었다.
하지만 맛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혜은은 숲을 어슬렁거리고 있는 야생 곰을 발견했다.
숲의 지배자인 야생 곰이었다.
뮤턴트라고 해도 온몸을 갈기갈기 찢어 버릴 수 있을 만큼 강한 맹수였다.
재생이 된다고 해도 우악스러운 힘으로 몸을 뜯어내고 위장 속으로 먹어 치워 버리면 불사의 생명체라고 해도 별수 없었다.
물론 모든 뮤턴트를 다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야생의 맹수가 뮤턴트에게 반드시 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어지간한 뮤턴트들 정도는 혼자 충분히 찢어 죽일 수 있는 맹수였지만 자신이 노려지고 있다는 사실은 눈치채지 못했다.
“미안해.”
혜은은 야생 곰에게 사과를 했다.
그런 혜은의 목소리를 들은 것인지 야생곰의 귀가 움직였다.
혜은은 최대한 야생곰에게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창수가 준 예리한 대검을 이용해 야생곰의 목을 베어 버렸다.
무척이나 질긴 가죽과 두꺼운 근육 그리고 강철같이 단단한 뼈가 있었지만 혜은의 대검에 잘려 나갔다.
쿵!
커다랗고 육중한 몸이 땅바닥에 쓰러졌다.
가장 덩치가 크고 무게가 많이 나간다는 북극곰이나 불곰 정도는 아니었지만 300kg은 족히 나갈 크기였다.
혜은은 야생곰을 들쳐 메고서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 사냥은 미국에 도착하기까지 매일 계속 되어야 할 일이었다.
혜은이 사냥을 해 오면 사람들이 사냥감에 달려들어서는 가죽을 벗기고 내장을 제거하며 고깃덩이를 썰어서는 식사 준비에 들어갔다.
마을이었다면 일부는 훈연을 해서 육포로 만들었을 터였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고기가 꽤나 남을 것 같은데. 조금 아깝네.”
“어쩔 수 없죠.”
“내장은 땅 깊숙이 묻어. 혹시라도 야생 동물들이나 뮤턴트들이 냄새를 맡고 찾아올 수도 있으니까!”
“저쪽 멀리에 묻을게요.”
“그래. 너무 멀리 가진 말고. 위험하니까!”
혜은이 사냥을 하러 간 사이에 음식을 만들 준비는 해 놓았다.
혜은이라면 절대 사냥에 실패하지는 않을 것이라 다들 믿고 있었고 이번에도 혜은은 그런 사람들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렇게 식사를 끝내고 난 뒤에 다들 내일을 위해 잠에 빠져들었다.
운이 좋았던 것인지 뮤턴트도 야생 동물도 찾아오진 않았다.
물론 다들 편한 휴식을 취하진 못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제대로 피로를 풀지 못했지만 아침이 되자 어제저녁 사냥을 했던 야생곰의 남은 고기를 억지로 입 안에 넣고서는 오물거렸다.
“빌어먹을, 더럽게 역하구만.”
“그래도 억지로라도 먹어. 기운 떨어지면 그때는 죽는 거니까.”
식은 곰고기는 먹기 고약했다.
차라리 생고기를 먹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나마 신선한 고기가 아니면 탈이 나던 인간들의 위장도 환경에 적응을 하게 되었는지 조금 상한 정도에도 탈이 나진 않았다.
그렇게 다시 걷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뮤턴트들의 습격에 대비를 하던 사람들도 체력이 점차 떨어지자 집중력이 떨어지며 산만해졌다.
“계속 노숙을 하며 가기에는 어려울 것 같아요. 한 번씩 쉴 수 있을 만한 곳이 필요해요.”
“조금만 더 올라가다 보면 버려진 도시가 나옵니다. 도시를 관통해서 가기에는 위험하지만 도시 입구 쪽의 건물에서 쉬면 될 겁니다.”
“물을 구할 곳도 있어야 해요.”
“걱정 마십시오. 온난화가 사라지면서 물은 그나마 풍부해졌으니까요.”
지구에서 가장 물을 많이 사용하는 존재들은 인간이었다.
인간만 아니라면 지구에서 물은 꽤나 풍부한 자원이었다.
중간중간 하천이나 실개천에서 목을 축이고 물통에 물을 담을 수 있었다.
뮤턴트 사태 후 10년 정도 지나자 오염된 하천과 강은 무척이나 맑고 깨끗해졌다.
물론 조금 더럽더라도 인간의 위장은 조금 상한 고기도 감당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더러운 물에도 적응을 했다.
기술과 과학에 적응해 오히려 나약해진 인간들은 다시 야생으로 돌아가며 강인해지기 시작했다.
인간 또한 맹수였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끈질기고 집요한 지구력의 맹수였다.
물론 그 맹수가 이제는 멸종을 걱정해야 했다.
하루 종일 걸어서 마침내 버려진 도시의 입구에 도착을 했다.
도시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었다.
버려진 도시 안에는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가까운 곳은 미리 처리해 둘게요.”
“괜찮겠어요?”
“괜찮을 것 같아요.”
“도와줘요?”
“아니요. 키나 씨 마법은 너무 요란하고 시끄러워서 뮤턴트들만 불러들여요.”
도시의 입구라고 해서 안심을 할 수는 없었다.
적어도 수십 미터 거리의 뮤턴트들은 미리 처리해 두는 것이 안전했다.
그렇게 혜은은 숙소로 삼을 도시 외곽의 건물을 수색한 뒤에 근처를 둘러보기로 했다.
“현아. 민정 이모 말 잘 듣고 있어.”
“알았어! 엄마. 몸조심 하고.”
“그래.”
혜은은 주변을 둘러보며 뮤턴트들을 찾아 하나둘씩 사냥을 했다.
인간들에게는 무시무시한 괴물들이었지만 혜은에게는 귀찮은 것들일 뿐이었다.
그렇게 도시 입구의 건물들만을 수색했을 뿐인데도 수십 마리의 뮤턴트들을 처리해야만 했다.
“후우! 이제 대충 끝난 것 같은데. 돌아가 볼까?”
어느덧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돌아가려는 순간 혜은은 커다란 굉음을 들을 수 있었다.
쾅!
거대한 폭음 소리는 군대가 아니라면 단 한 명만이 낼 수 있었다.
“키나?”
혜은은 문제가 생겼음을 깨달았다.
도시 쪽으로는 자신이 모든 뮤턴트들을 제거하고 있었으니 도시 쪽이 아닌 도시 밖에서 온 뮤턴트일 터였다.
혜은은 황급히 돌아가려고 수색을 하던 건물에서 나왔다.
하지만 그때 폭음 소리를 들었던 것인지 도시 안쪽에서 지축을 울리는 소음과 진동이 느껴졌다.
“칫! 미노타우로스.”
신화 속에서 존재하는 거대한 소와 같은 형태의 뮤턴트였다.
그것이 미노타우로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고 알 필요도 없었다.
그냥 그렇게 부르면 그게 명칭이 되는 것이다.
혜은은 다른 뮤턴트에 비해 상대하기 무척이나 까다로운 뮤턴트가 화염의 불길이 피어오르는 방향으로 가는 것에 이를 악물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처리해야만 했다.
단지 여느 뮤턴트와는 달리 미노타우로스는 대검의 검날이 다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두꺼운 가죽을 가지고 있었기에 쉽게 죽이기 힘들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버텨 줘!”
두 번째 폭음이 터지자 혜은은 자신이 미노타우로스를 제거하기 전까지 무사히 버텨 주기를 빌었다.
다만 혜은이 조급했던지 평소보다 은밀하게 움직이지를 못하면서 미노타우로스는 혜은이 자신을 노리는 것을 눈치챘다.
그렇게 미노타우로스에게 치명타를 주기 위한 혜은의 일격은 실패를 해 버렸다.
“칫!”
“크르르르르! 강한 인간. 죽인다.”
결국 미노타우로스와 치열한 싸움을 하게 된 혜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