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1화
291화
“여보?”
이역만리.
아무리 몸이 강해졌다고 한들 쉽사리 올 수 없는 멀고 먼 곳에 와 있는 그녀는 서쪽을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답답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혜은 씨?”
“아! 가요.”
수많은 위험을 넘어 마침내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 지역까지 도달했다.
과거 뮤턴트 사태가 일어나기도 전부터 만들어 두었던 장벽이 국경을 막고 있었다.
수많은 시체들이 즐비했다.
그게 뮤턴트 때문인지 아니면 인간에 의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당연하게도 미국 국경을 넘으려고 시도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 중에 성공을 한 이들도 있을 터였고 실패를 한 이들도 있을 터였다.
그리고 실패는 죽음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했다.
“일단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미국의 국경 수비대에게 들키면 위험하다는 말을 하는 특수부대 소속의 남자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였다면 붙잡혀 수용소로 옮겨졌다가 추방을 당하는 선에서 끝났을 터였다.
운이 좋으면 난민으로 인정을 받아 추방을 당하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국경 수비대에게 걸리면, 아니 이제는 국경 수비대도 아니겠군요. 군인들에게 걸리면 사살입니다.”
“이제는 무조건 사살인가요?”
“예. 불법 엔젤을 들여온다고 보고 국경을 넘으면 사살을 해 버린다고 합니다.”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세계 최강국이라던 미국도 뮤턴트 사태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미국 군인들의 눈을 피해야 했기에 어두운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아직 국경을 넘지 않았다고 해서 위협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뮤턴트들이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특히나 변이된 들개들이 문제였다.
어떻게 변이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변이된 들개들은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종의 뮤턴트들이나 일반 동물들도 사냥을 하고 있었다.
혜은의 일행도 몇 번이고 위협을 받아야 했다.
그나마 변이가 되었지만 야생 동물의 특성은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인지 키나의 불덩어리에 매번 도망을 갈 뿐이었다.
키나의 불덩어리에 도망을 간 것을 보고 변이된 들개들에게도 지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여기만 넘어가면 그 빌어먹을 놈들과도 작별입니다.”
“다행이네요. 정말.”
낙원인 미국으로만 넘어가면 이제 더 이상 뮤턴트들로부터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오직 그것만을 기대하고 또 기원했던 이들이었다.
물론 혜은은 저 멀리 알래스카까지 넘어가 러시아를 거쳐 한국으로 되돌아갈 생각이었기에 미국에 남을 생각은 없었다.
달도 뜨지 않은 어두운 검은 밤이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장벽을 넘기엔 최적이었다.
“그런데 괜찮을까요? 미국군은 어두운 밤에도 대낮처럼 잘 볼 수 있다던데요.”
“걱정 마십시오. 그런 장비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제는 거의 남아 있지 않을 겁니다.”
군용 장비는 소모품이었다.
그것도 매우 민감한 소모품이어서 온 세상이 전쟁 상태인 지금 온전한 장비는 꽤나 부족해졌다.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국경 길이는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아무리 미국이라고 해도 감당을 하기 힘들 겁니다. 야간 투시경 장비도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는 뮤턴트들은? 미국이 그걸 지금도 잘 막아내고 있을까요?”
누구나 그 생각에 도달을 할 수 있을 터였지만 외면하고 있었던 생각이었다.
고작해야 일반인들인 자신들이 국경 장벽을 넘는데도 못 알아차릴 미국의 군대가 자신들보다 더한 뮤턴트들이 넘어오는데 알아차린다는 것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시간이 없습니다. 일단 넘어갑시다. 모든 것은 신께서 결정을 하실 겁니다.”
자신들의 계획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장벽을 넘었다.
9미터짜리 장벽이었다.
도저히 넘을 수 없을 만한 높이로 만들어졌지만 뮤턴트 사태 이후 9미터는 장벽으로써의 기능을 할 정도로 충분한 높이가 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장벽은 조금 변화되어야만 했다.
T자 형태로 장벽 구조물을 바꾸었다.
장벽 아래에서 올라가도 장벽 바깥쪽으로 뻗어 있는 구조물로 인해 반대편으로 넘어가기 어려웠다.
T자 구조물의 끝에 갈고리 같은 것을 걸고 올라갈 것에 대비해 끝부분은 둥글게 구부러져 있어서 갈고리를 걸어도 미끄러지게 만들었다.
천문학적인 돈이 들었을 터였지만 뮤턴트들로부터 미국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그렇게 만들어도 결국 뮤턴트나 인간을 완전히 막지는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 이후에도 국경을 넘어온 인간이나 뮤턴트는 국경 수비대, 아니 이제는 미군이 상대한다.
무차별 사살이었다.
건물이고 나무고 모든 것을 치워 버렸다.
그 길이가 수십 킬로미터였다.
누군가 넘어오면 알아볼 수 있도록 텅 빈 공간이었고 미군은 그 공간 안에 움직이는 모든 것을 죽였다.
인간이든 뮤턴트든 가리지 않았다.
“다들 조심해서 올라오세요.”
“고마워요. 부인.”
혜은의 도움으로 장벽 위로 올라갔고 다시 장벽 아래로 내려갈 수 있었다.
혜은이나 키나의 능력이라면 장벽을 부수고 쉽게 넘어갈 수 있었지만 그들은 낙원을 부수려는 것이 아니었다.
낙원의 울타리에 상처를 낼 수는 없었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십 미터에 가까운 높은 곳을 직접 넘는 수고로움을 거치는 것이다.
그렇게 해가 지고 난 뒤에 시작한 장벽 넘기는 모든 사람이 다 넘어왔을 때 거의 다섯 시간이 지나 있을 정도였다.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축복의 땅에 발을 내딛자 땅바닥에 입을 맞추며 신의 은혜에 감사를 올렸다.
아직 긴장의 끈을 풀 때가 아니었지만 누구 하나 감격에 겨워하는 이들을 막진 않았다.
자신들 또한 똑같이 행동을 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혜은이 땅에 내려오고 난 뒤에 모두 길 안내를 맡은 남자를 따라 이동을 계속했다.
“최대한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힘들겠지만 끝까지 따라오셔야 합니다.”
강행군이었다.
낮에 충분히 쉬어 두었지만 밤새도록 멈추지 않고 계속 걷고 뛰어야 했다.
나무 하나 남겨두지 않고 전부 베어 버린 황무지였다.
더욱이 언제 국경 수비대와 미군들이 나타나 자신들에게 총을 쏘아댈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동쪽 하늘에서 동이 뜨려고 할 때쯤 황량한 계곡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다.
계곡 틈 사이로 그다지 깊지는 않지만 몸을 숨길 동굴이 있었다.
계곡 아래에는 많지는 않았지만 약간이나마 흐르고 있는 물도 있었다.
“일단 오늘은 여기서 쉬도록 하겠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한 발짝도 못 걸을 만큼 체력을 소진한 사람들은 쉰다는 말에 안도를 했다.
해가 뜨고 낮 시간 동안은 땅이 달구어질 것이었다.
그렇게 달구어진 땅과 하늘은 피난민들에게 또 다른 위협이었다.
“언제까지 밤에 이동을 해야 하지요?”
“적어도 3일 정도는 계속 이동을 해야 안심을 할 수 있을 겁니다.”
3일 동안 미국의 국경 수비대의 눈을 피해야 한다는 말에 다들 한숨이 나왔지만 적어도 뮤턴트는 보이지 않는 것에 안도를 했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푹 잠이 들 수 있었다.
혹시라도 있을 먹을 것을 찾아 나선 혜은은 빈손으로 되돌아왔다.
“없지?”
“전부 황무지예요. 짐승의 뼈만 있을 뿐 너무 멀리 갈 수는 없어서 돌아왔는데 아무것도 없네요.”
아들을 먹일 만한 사냥감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딱딱하게 굳은 고기 육편 조각으로 버텨야 했다.
계곡 바닥의 물을 떠 와서는 키나의 힘으로 물을 끓여 마시며 갈증을 해결한 이들은 다시 밤이 되자 계곡에서 나와 황무지를 걸었다.
다음 날에도 미리 확인해 놓았던 곳으로 숨어들었다.
다행히도 지금까지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점차 낙원과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내일 저녁 무렵에는 엘리튼이라고 하는 마을에 도착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곳까지만 가면 됩니다. 그곳에 협력자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숨을 돌리고 난 뒤에 도시 쪽으로 가면 안심을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아요.”
“당연하지요.”
마지막에 와서 모든 일을 망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다들 밤새도록 걸어야 했기에 낮에는 쉬어야 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이제 두려움은 기대로, 그리고 희망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 기대와 환호의 순간을 만끽하고 싶다는 생각만을 할 뿐이었다.
그렇게 다시 해가 지고 달이 떠올랐다.
칠흑과도 같던 어둠이었지만 달빛이 밝았고 별빛도 빛이 나서 세상을 대낮처럼 밝게 만들었다.
“괜찮을까?”
“국경에서 한참 걸어 올라왔잖아. 이제는 괜찮을 거야. 한참 올라왔다고.”
국경 수비대는 구경도 못 해 보았다.
그냥 운이 좋아서라고 하기에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다들 불길함은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그렇게 밝은 대낮 같은 밤길을 걸어서 엘리튼으로 향한 이들은 마침내 엘리튼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다.
그다지 크지 않은 전형적인 미국 남부의 마을이었다.
조잡한 삼류 공포 영화의 배경으로 나올 그런 마을의 풍경 앞에 도착을 한 이들은 이내 불길함을 느껴야만 했다.
“빌리! 빌리!”
협력자를 찾았지만 마을에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아니 인간만 없을 뿐 뮤턴트는 있었다.
그건 처음 보는 뮤턴트였지만 이제 뮤턴트의 형태는 중요하지 않았다.
먹이 사슬의 최정점에 있던 인간을 잡아먹는 존재가 등장을 했다는 것이고 인간들은 그들과 생존을 위한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한눈에 봐도 인간은 아니었기에 피아 식별은 중요하지 않았다.
“키나!”
“비켜요!”
화르르륵!
커다란 화염의 덩어리가 뮤턴트를 휩쓸었다.
강철도 녹일 화염의 덩어리였으니 유기질 신체 정도는 재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키나는 창수와 함께 있으면서 수많은 것을 배웠다.
“불사체일 가능성도 있으니까 도망칠 준비해요!”
불사체라면 키나의 능력으로도 어쩔 수 없으니 무조건 도망치라는 창수의 말을 떠올렸다.
물론 불사체가 아니라면 키나의 화염에 잿더미가 되리라는 것을 다들 알기에 기대 어린 눈으로 지켜보기만 했다.
키나의 옆에는 어느덧 혜은도 오싹한 느낌을 주는 칼날을 들고 있었다.
화염을 뚫고 뭐가 나오든 몸이 갈라져 버릴 것이었다.
하지만 다행인지 뮤턴트는 잿더미가 되었다.
불사체도 아니었고 그리 대단할 것도 없어 보이는 뮤턴트였다.
몇 마리 더 있었지만 몇 그람 되지 않는 납탄에도 죽어 버릴 정도로 약했다.
하지만 낙원을 찾아온 이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미국도 뮤턴트들에게 멸망을 한 건가?”
그동안 아무도 보지 못했던 것은 미국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아니! 그럴 리 없어! 그냥 엔젤에 의해 변이한 괴물일 뿐이야! 미국의 힘이 고작 이런 괴물들 따위에 흔들릴 리가 없어!”
“그…… 그래. 아직 국경에서 얼마 올라오지 못했잖아. 좀 더 올라가면 사람들은 다들 무사히 있을 거야.”
협력자는 없었다.
뮤턴트가 있었으니 당연히 도망을 갔을 것이 분명했다.
물론 뮤턴트의 배 속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협력자가 준비를 해 둔 물품들은 발견을 할 수 있었다.
식량과 물이 남아 있었고 총과 탄환도 제법 넉넉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더욱이 움직일 수 있는 차량도 있었다.
그렇게 다들 작동이 되는 차량들을 나눠 타고서는 마을을 벗어나 미국 내륙으로 향했다.
희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며 흔들리던 마음을 다잡던 이들은 몇 시간을 달려서 도착을 한 도시에서 절망을 느껴야만 했다.
인간은 보이지 않았고 뮤턴트들만 보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