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0화
300화
경상도와 전라도를 넘어가는 지역 곳곳에 뮤턴트들의 쉼터가 만들어졌다.
뮤턴트들뿐만 아니라 갈 곳 잃은 인간들도 이 쉼터에서 겨울을 보냈다.
봄이 찾아오고 날씨가 따뜻해졌지만 뮤턴트들뿐만 아니라 인간들도 산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자! 다들 일광 소독시킬 거니까. 안에 있던 거 가지고 나와!”
군복을 입은 뮤턴트의 외침에 따라 터널 안의 뮤턴트와 인간들은 주섬주섬 터널 안에 있는 이불과 옷가지들을 터널 앞 도로가로 가져왔다.
관리되지 않은 아스팔트들이 이곳저곳 파이고 갈라져 있었지만 제법 넓은 공터를 만들어 주었다.
햇빛이 따뜻한 것이 겨울 동안 먼지와 피부 각질로 오염된 이불과 옷을 조금이나마 소독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몇 년 전이라면 깔끔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환경이었지만 인간이나 뮤턴트나 지금의 환경에 적응을 하고 있었다.
“이불 조심해서 털어! 잘못하면 찢어진다!”
팡! 팡!
생활은 군대식이었다.
쉼터를 만든 이들이 군인 출신들이었으니 군대 방식으로 통제하고 있었다.
물론 군인처럼 대하진 않았지만 쉼터에 따라 아침 구보와 저녁 점호를 하는 곳도 있었다.
그렇게 이불과 옷가지를 햇빛에 소독을 하고 인간과 뮤턴트들이 함께 도로가를 따라 아침 구보를 하고 나면 자유 시간이었다.
자유 시간이라지만 인간과 뮤턴트들은 각자 자신들이 할 일을 알아서 찾아 했다.
대부분은 식량을 찾거나 터널 청소를 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산 아래의 버려진 인간 마을이나 도시로 가서는 쓸 만한 생필품들을 가지고 오기도 했다.
다른 곳보다 안전하게 보낸 겨울이었다.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해서 이만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으니 다들 머무르기를 선택한 것이다.
“저기 보이는 곳에서 농사라도 지어야 하려나?”
“농사? 농사 어떻게 짓는지 모른다.”
“걱정 마. 땅 파고 씨앗 심고 풀 뽑아 주면 돼. 그리 어렵지 않아. 뭐, 쉬운 건 아니지만 살아남는 것보다 농사짓는 것이 어렵진 않지.”
고속도로 아래로 폐허가 된 산골 마을이 있고 그 산골 마을의 앞으로 그다지 넓지는 않았지만 한때는 논이나 밭이었던 풀밭이 있었다.
고블린이나 다른 뮤턴트들은 농사를 짓는 방법을 알진 못했다.
물론 인간들이라고 해서 농사짓는 방법을 잘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뮤턴트 사태 후 도시 사람들도 간단한 농사법을 배워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버려진 농지 주위에는 작물의 씨앗이 떨어져서 이렇게 싹이 나는 경우가 있어. 그다지 작물의 품질이 좋은 건 아니지만 먹는 것에는 지장이 없지. 조심스럽게 싹을 퍼서는 밭 정리를 해 놓은 곳에 하나씩 옮기는 거야. 참, 물이 있어야 하는데.”
“저기 계곡물 있다.”
“그럼 계곡물을 좀 떠서 큰 통에 담아 둬. 계곡물이 너무 차가워서 바로 주면 싹에게 좋지 않으니까.”
고블린들은 인간들의 말을 잘 들었다.
지능이 인간보다는 떨어지는지 창의적으로 일을 하지는 못했지만 시범을 보여 주고 시키는 일을 제법 잘했다.
하지만 힘이 약해서 풀을 뽑는 일은 잘했지만 밭을 갈거나 하는 일은 힘겨워했다.
그렇게 인간들과 고블린 그리고 몇몇 다른 종의 뮤턴트들이 밭을 갈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하루 종일 해도 한계가 있었다.
군인 뮤턴트가 멍하니 구경을 하다가 며칠 뒤에 한 뮤턴트를 데리고 왔다.
처음에는 다들 혼비백산을 했지만 군복을 입은 뮤턴트가 데리고 온 커다란 뮤턴트는 생각보다 순박했다.
덩치는 무척이나 컸다.
그리고 그런 덩치만큼이나 힘도 세서 오랜 시간 방치되어 땅이 굳어 있는 밭을 쉽게 갈아 주었다.
3~4일 만에 상당한 넓이의 밭을 갈아 준 덩치는 군복을 입은 뮤턴트와 함께 사라졌다.
“완전히 포클레인이네. 포클레인!”
“저 커다란 뮤턴트 이름이 포클레인이야?”
“응? 그래. 포클레인이라고 부르자! 포클레인!”
뭐라 부르든 편하면 그만이었다.
물론 다른 곳에서는 다르게 불렸지만 포클레인의 도움으로 밭을 만들었으니 인간과 고블린들은 밭에 야생화되어 가는 싹을 심었다.
처음에는 보잘것없었지만 점차 모양을 잡아 갔다.
“호박인 줄 알았는데 오이였구만.”
“오이?”
“그래. 오이 농사를 짓던 곳인가 본데. 흐음!”
근처의 농가와 밭에서 찾은 종자는 오이 종자였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농작물이 자라는 와중에 들판에서 쑥과 냉이 그리고 머위와 취나물들이 나왔다.
고블린 여인과 아이들은 인간 여자들에게서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배웠다.
산나물들을 뜯어서는 뜨거운 물에 데쳐 먹기 시작했다.
허기를 채우기에는 부족했지만 그래도 굶지는 않을 수 있었다.
“고사리네. 고사리도 먹을 수 있어! 어머! 그렇게 먹으면 안 돼!”
“퇫! 퇫! 혀가 아프다!”
“호호호! 고사리는 뜨거운 물에 데쳐서 독을 빼 줘야 먹을 수 있는 거야.”
고블린들과 뮤턴트들은 인간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산속에서 작은 동물이나 곤충들을 잡아먹었다.
그러고서는 이름 모를 풀들을 뜯어먹기도 했다.
여름과 가을에는 상관이 없었지만 겨울과 봄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굶는 것이 일상이었다.
하지만 인간들은 먹을 것이 많지 않은 봄에도 먹을 것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인간과 뮤턴트들은 공존을 하는 듯했다.
농사를 지어 수확을 한 농작물들은 다른 곳과 물물교환을 하기도 했다.
오이만 산더미처럼 수확을 한 쉼터는 다른 쉼터의 농작물과 교환을 했다.
걱정을 했던 것이 해결된 것이다.
물론 물물교환을 위해 이삼 일을 걸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나마 가까운 곳은 한나절 정도의 거리여서 가까운 쉼터로 가서는 남는 물건들과 필요로 하는 물건들을 교환하고는 했다.
자연스럽게 시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게 뮤턴트들은 쉼터를 부지런히 오갔다.
그러고서는 이것저것 새로운 기술들을 배워 갔다.
“꿀벌을 키우면 꿀을 만들 수 있다고요?”
“그래요. 봄부터 꿀벌들이 꿀을 모을 겁니다.”
벌을 키우는 방법을 아는 인간에 의해 꿀벌을 키우게 되었다.
창수에게 구해진 인충 여인은 자신의 종족들의 주식이 될 수 있는 꿀을 만드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벌통을 만들고 여왕벌과 꿀벌들을 벌통에서 키우면 꽃향기가 나는 꿀을 얻을 수 있었다.
산수유꽃을 좋아해서 자신의 이름을 산수유로 정한 인충 여인은 야생화 꽃들을 입 안에 넣으면서 꿀벌들을 관리했다.
설탕이 없기에 키우는 꿀벌의 꿀을 전부 빼앗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가을까지 꿀을 수확해 자신뿐만 아니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산수유였다.
그런 산수유의 모습을 지켜보던 창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어디선가 인충의 알을 가져다주었다.
“이걸 어떻게?”
“남쪽에 돌아다니다가 한 지하 창고에서 찾았던 겁니다. 키울 수 있겠어요?”
인충은 인간이나 다른 뮤턴트들을 공격한다.
그렇기에 인충으로 부화를 해서 공격을 한다면 죽여야만 했다.
인충의 알은 겨울을 보낼 수 있었다.
안에서 애벌레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 조만간 부화를 할 것처럼 보였다.
작은 동물들이나 벌레들을 잡아먹고 인충으로 성장을 하면 사람처럼 흉내를 내며 다시 인간들을 사냥하게 될 터였다.
산수유는 창수가 무슨 의미로 하는 말인지 알아들었다.
자신과 같은 종족을 키우겠다면 공격적이지 않도록 주문하는 것이다.
인충으로 태어나면 입 안의 대롱침을 잘라내든 해야 할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번식을 할 수 없게 될 수도 있었으니 고민이 되는 일이었지만 산수유는 한번 맡겨 봐 달라고 창수에게 부탁을 했다.
인충을 전부 죽여 대던 창수로서는 큰 결심을 한 것이었다.
공격적이지 않은 뮤턴트들을 대하면서 인충이라는 뮤턴트 종족에게도 기회를 한 번 주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산수유는 꿀벌뿐만 아니라 인충의 애벌레도 함께 키우게 되었다.
터널 쉼터 근처에 소를 키웠던 듯한 장소를 청소하고 인충의 알들을 따뜻하게 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인충의 애벌레들이 알을 뚫고 태어났다.
처음에는 그다지 크지 않은 애벌레들이었다.
고블린들의 도움을 받아 산속 곤충의 애벌레들을 잡아 와서는 먹였다.
때로는 꿀을 조금씩 먹이기도 하자 인충의 애벌레들은 빠르게 성장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사람만 한 크기로 성장을 했다.
하지만 그때 예상치 못한 것을 알게 되었다.
“애벌레의 피부에서 달콤한 냄새가 난다.”
“달콤한 냄새?”
“음! 맛도 있다!”
인충의 애벌레는 꽤나 난폭해서 고블린들도 조심을 해야 했다.
움직임은 느리지만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어서 물리면 잡아먹힐 수 있었다.
그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면 안 되지만 인충의 애벌레의 피부에서 달콤한 액체가 흐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블린들은 이 달콤한 액체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처음에는 군복을 입은 뮤턴트들이 하라고 해서 억지로 했지만 애벌레들의 피부에서 맛있는 액체가 나오자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에 대한 보고는 창수에게도 올라왔고 창수는 인충의 애벌레의 피부에서 흘러나오는 액체를 맛보았다.
“뮤턴트 밀크?”
맛이 조금 달랐지만 분명 뮤턴트 밀크였다.
인충의 애벌레의 몸에서 고영양가의 뮤턴트 밀크가 생산되고 있었다.
그런 뮤턴트 밀크를 먹기 위해 꼬이는 벌레들은 인충의 애벌레의 먹이가 되었다.
물론 애벌레를 돌보는 고블린들도 벌레들을 간식처럼 잡아먹으면서 만찬을 즐겼다.
창수는 뮤턴트 젖소가 원인이 되어 인충이 등장했던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엔젤과 뮤턴트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너무나도 적었다.
그리고 앞으로 다 알아내기도 힘들 것 같았다.
인충의 애벌레에게서 뮤턴트 밀크를 생산해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여름이 되기 전 애벌레들은 고치가 될 준비에 들어갔다.
뮤턴트 밀크를 생산할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고치를 만들고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 고치 안에서 성인 남성과 여성이 태어났다.
유아기가 애벌레였으니 고치에서 나온 것이 성체인 것은 당연했다.
이때는 모두가 긴장을 해서 창수와 뮤턴트 대원들도 전부 나와야 했다.
행여라도 공격적이라면 별수 없이 사살을 해야만 했다.
인충들은 자신을 바라보는 인간과 뮤턴트들을 보았다.
산수유는 그런 인충들에게 자신이 정성껏 딴 꽃과 벌꿀을 내밀었다.
그녀도 지금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배고프지? 이게 우리가 먹어야 하는 음식이야. 사람을 그리고 뮤턴트들을 공격해서는 안 돼.”
산수유의 간절함을 느낀 것인지 인충들 중에 하나가 산수유에게로 다가와 그녀가 내민 꽃과 꿀들에 코를 대며 냄새를 맡았다.
이내 꿀에 버무려진 꽃들을 입 안에 넣고서는 만족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인충들도 꽃과 꿀들을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다들 안도를 했다.
“다행입니다.”
“안심하진 마. 꽃과 꿀도 먹을 수 있는 거지 사람과 뮤턴트를 먹지 않는 건 아니니까.”
“그렇긴 하네요.”
“학습으로 인간과 뮤턴트를 먹지 않게 하는 것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성공한 것이 아니다. 정신 바짝 차려.”
“알겠습니다.”
산수유는 꽤나 정성스럽게 인충들을 가르쳤다.
인간을 먹지 않아서인지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듯했지만 지능은 꽤나 뛰어난 것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화가 통했다.
뮤턴트들과도 대화가 통하면서 인충들은 인간과 뮤턴트들을 동료로 인식하고 먹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번식을 위해서는 꽃과 꿀만으로 부족했다.
남성 인충들은 상관없었지만 여성 인충들은 동물성 단백질을 필요로 했다.
결국 멧돼지나 고라니를 잡아 왔고 여성 인충들은 멧돼지와 고라니를 잡아먹으면서 충분한 영양분을 흡수했다.
그렇게 임신을 한 여성 인충들은 알을 낳았다.
가을의 끝자락에 낳은 알들은 부화하지 않고 동면에 들어갔다.
그러지 않은 알들에게서 태어난 애벌레들은 다시 뮤턴트 밀크를 생산했고 고블린들은 애벌레들을 정성껏 키웠다.
인충들은 예상과 달리 자신들의 새끼를 잘 돌보진 않았다.
오히려 산과 들을 돌아다니며 꽃이나 따먹고 다니는 다소 한량 같은 모습을 보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