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2화
312화
북한 지역은 해방되었다.
전혀 예상도 하지 못했던 해방이었지만 북한 정권은 무너졌고 북한 주민들은 남한에 의해 해방되었다.
자유 한국이라는 국가의 탄생은 북한 주민들에게 걱정과 함께 기대감을 안겨 줬다.
전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라는 북한이었지만 북한 주민들도 한국이라는 국가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중에 하나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아무리 북한 공산당에서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해방과 함께 북한 주민들은 이제 하얀 쌀밥과 고깃국을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
21세기에 하얀 쌀밥과 고깃국이 뭐 얼마나 대단할까 싶었지만,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은 눈처럼 하얀 쌀밥과 고기가 잔뜩 들어 있는 고깃국을 배가 터지도록 먹어 보는 것이 소원이라 할 정도였다.
그렇게 한국 정부도 북한을 해방시키고 난 뒤, 북한 주민들에게 다소 묵은 쌀이기는 하지만 정부미와 정부 창고에 가득 차 있던 냉동 고기를 나누어 주어 배불리 먹였다.
남북한의 화합까지는 갈 길이 멀다지만 적어도 북한 주민들의 폭동은 방지해야 했다.
그렇게 한동안은 북한 주민들에게 식량을 공급했지만 해방된 북한 주민들의 숫자가 이천만 명이 넘었다.
아무리 한국 정부가 선진국 중에 하나였다지만 이천만 명의 난민들을 먹여 살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더욱이 뮤턴트 사태로 전 세계가 망하다시피 한 상황이었다.
남한의 인구만 해도 자급자족이 힘든데 북한 주민들까지 챙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초기에는 그나마 어떻게든 할 수 있었지만 점차 한국 정부도 역부족이었다.
수많은 북한 주민들은 개성과 평양 등으로 모았고 공산주의 국가처럼 정부의 배급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에는 한계에 도달했다.
식량이 떨어지고 배급의 질은 과거 북한 때와 다를 바 없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남한 정부도 북한 정부하고 다를 바가 없구만!”
“다 똑같은 도둑놈들이란 거지!”
“이제 어떻게 해야 한대?”
“뭘 어떻게 해! 우리라도 살길을 찾아 봐야지!”
“그런데 살길이 어디에 있다는 거야? 온 사방이 괴물들인데.”
“압록강을 넘어 중국 땅으로 갈까 싶은데.”
“압록강을? 왜? 중국 땅에 가면 먹고 살길이 있나?”
“여기보단 낫지 않겠어?”
“내 들으니 압록강에 커다란 장벽이 세워져 있어서 못 지나간다던데.”
“걱정 말라고. 백두산 쪽에는 장벽을 못 세웠다고 하더라고. 그쪽 통해서 넘어가면 된다고 했어.”
“정말이야?”
“그럼! 속고만 살았나?”
“그럼! 평생 속고만 살고 있지! 김씨 일가한테 속고! 남한 놈들한테도 속고!”
그렇게 속아 온 결과가 이런 지옥 같은 삶이었다.
그리고 또다시 지옥 같은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한 놈들이 못 가게 막지 않으려나?”
“걱정 말라고! 얼마 전까지는 막더니 이제는 막지도 않는 것 같더라.”
한반도의 남부 지방에 대한 통제권을 잃은 것처럼 북한 지역 북부도 통제권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나마 두만강과 압록강변에 화염 골렘을 잔뜩 만들어 두어서는 대륙에서 밀려오는 뮤턴트들을 막는 것은 문제가 없어졌다.
물론 화염 골렘은 원해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사고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지만 화염 골렘에 의해 대륙의 뮤턴트들은 한반도로 넘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한반도에서도 대륙으로 넘어갈 수 없다는 의미였다.
혹독한 추위에도 화염 골렘들은 열기를 잃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구에서처럼 지옥불이 타오르는 화염의 띠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완전히 길이 막힌 건 아니었다.
몇몇 지역에는 사람과 동물들이 지나다닐 수 있는 통로가 있었다.
물론 백두산과 같이 험난한 산지는 장벽을 만들기 힘든 장소였다.
그 몇몇 통로에 대한 소문은 북한 주민들 사이에 알려졌다.
그리고 북한 주민들은 그곳을 통해 한반도를 빠져나갔다.
물론 빠져나가지 못하고 죽은 경우가 더 많았지만 그럼에도 꽤나 많은 북한 주민들이 만주 지역으로 넘어갔다.
다행히도 무척이나 혹독한 겨울로 인해 거미 뮤턴트들의 알들도 꽤나 많이 얼어 죽었다.
남은 거미 뮤턴트들도 따뜻한 중국 대륙 남쪽으로 내려가 버렸으니 오히려 만주 지역은 뮤턴트로부터 평화로웠다.
“정 중위님. 북한 주민들이 또 빠져나가는데요.”
“그냥 놔둬. 위에서 그냥 놔두래.”
“알겠습니다.”
수용 시설은 아니었지만 북한 주민들을 통제하던 남한의 군인들도 북한 주민들이 도시나 마을을 떠나는 것을 묵인하기 시작했다.
이천만의 북한 주민들을 도무지 데리고 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북한 주민들은 북한 지역이나 만주 지역에 흩어져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괜찮을까요? 폭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하던데요.”
“안 일어나는 것이 비정상이지. 지금 우리도 배급이 점점 엉망인데. 이러다가 우리부터가 더 문제다.”
그냥 얌전히 떠나는 북한 주민들도 있었지만, 불만에 찬 북한 주민들은 서울로 들어와 정부를 공격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었다.
당연히 남한 주민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었으니 이대로 가면 내전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 * *
북한 문제 또한 심각했지만, 한국 정부는 통제권을 잃은 남부 지방 문제로 골치 아파하고 있었다.
“지리산에 뮤턴트들이 집단으로 발생을 했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결국 그런가? 우려했던 것처럼 뮤턴트들이 산간 지방으로 숨어들어 갔구만.”
“예. 산간 지방 아래로 뮤턴트들이 내려와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다고 합니다.”
“도울 방법은?”
정부에서 사실상 버리다시피 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한국 국민들이었다.
그들이 약탈자가 되어 주변의 사람들을 약탈하고 노예로 삼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뮤턴트들에게 학살당하는 것을 놔둘 수는 없었다.
“직접적으로 도울 방법은 없습니다. 충분한 전력이 부족합니다. 더욱이…….”
“최창수 원사가 개입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지?”
“예.”
“그러게, 왜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쓴 건가.”
“저희도 너무 늦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알고 난 뒤에는 너무 늦어 버렸다.
청와대의 결정도 아니었고 박충렬도 알기 전에 군부에서 직접 일을 벌였다.
청와대의 군 지배력이 약화되었음을 의미했다.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었다.
뮤턴트 사태는 필연적으로 무력 집단의 권력 강화를 야기한다.
이미 오랜 시간 국민들의 선택에 의해 대통령이 선출되지 못했다.
비상시국이었으니 그럴 수 있다고 여겼지만 꽤나 지나칠 정도로 시간이 늘어지자 김석호 대통령에 대한 레임덕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남부 지방과 북부 지방의 통제적 상실은 군의 통제 거부가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경상도는 사실상 독립 국가가 된 뒤였고 제주도 또한 마찬가지였으며 강원도도 군에 의해 연락이 끊겼다.
지리산의 뮤턴트들을 토벌하라는 지시를 내린다고 해도 군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었다.
오히려 지리산 뮤턴트 토벌 명령을 내렸다가 그나마 통제를 따르고 있던 군에서 거부를 하게 된다면 감당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강화 군인 일부를 보내는 것은 어떤가?”
“쉽지 않을 겁니다. 최 원사뿐만 아니라 그의 뮤턴트 대원들 중에 일부는 강화 군인들로서도 쉽지 않습니다. 괜히 문제만 일으킬 뿐입니다.”
“결국 우리가 할 일은 그것뿐인가?”
“죄송합니다.”
“아닐세. 나도 더 이상 뭘 할 생각은 없어. 어차피 망해 가는 세상이니 조금이나마 한국인이 살아남기만 하면 내 역할로는 충분하지. 효과는 어떤가?”
“제법 좋습니다. 눈에 띄는 부작용도 없구요. 아! 있긴 있더군요. 수명이 늘고 노화가 줄어들었으며 피부도 좋아지더군요.”
“그건 좋은 부작용이군.”
뮤턴트들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한 변이를 유발시켰다.
그리고 그 효과는 확실하게 보고 있었다.
“기왕이면 잡아먹혀서 학습 효과를 보기 전에 알아차리게 하는 건 어떤가?”
“냄새 같은 걸로 말입니까?”
“그래. 그런 거.”
“아무래도 그건 좀 힘들 것 같습니다. 뮤턴트들이 워낙에 다양하고 한국인 유전자가 암내가 잘 나지 않는 유전자여서. 그리고 다른 변이 요소를 추가하다가 예기치 못한 현상을 일으킬 우려가 있습니다.”
“알겠네.”
이미 수십만 명의 사람들에게 변이 주사를 놨다.
전 국민들에게 전부 주사를 놓을 양은 되지 않았고 내부 독 변이는 유전자를 변이시켜 후손들에게 계속 이어질 터였다.
그렇게 일부의 한국인들은 생존의 무기를 하나 가지게 된 것이다.
그 생존의 무기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장담을 할 수 없었다.
한국 정부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해 보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박충렬은 창수처럼 강화 인간을 만들어 내었다.
물론 그건 한국만이 그런 건 아닐 터였다.
다른 각국들도 엔젤을 통해 영구적인 신체 강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인간이라는 종은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진화를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본래 인간이었던 육체를 완전히 버리는 것일지라도…….
그렇게 대한민국에 마지막 대통령이 될지도 모를 김석호는 이제 자신이 할 일은 끝나간다고 생각했다.
“나머지는 자네에게 맡기겠네.”
“알겠습니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김석호 대통령은 박충렬에게 다음 일을 맡기기로 했다.
그렇게 김석호 대통령의 집무실에서 나온 박충렬은 이제 사람들도 얼마 남지 않은 청와대를 나섰다.
오랜 시간 대한민국 권력의 중심에 있던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찾지 않을 곳이 되어 가고 있었다.
“뮤턴트다!”
청와대를 나서던 박충렬은 서울 한복판에서 들려오는 고함 소리를 들었다.
뮤턴트는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그리고 그 뮤턴트는 청와대를 나서는 박충렬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국장님! 위험합니다!”
박충렬의 경호원들이 박충렬에게 경고를 보냈지만, 박충렬은 감정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무심한 눈빛으로 달려드는 뮤턴트를 향해 자신의 한쪽 손을 뻗었다.
꽈득!
“1세대 뮤턴트인가? 아직도 엔젤이 돌아다니나 보군.”
이성 따위는 없고 오직 생명체에 대한 공격성만을 보이는 뮤턴트는 박충렬의 오른쪽 팔을 깨물었다.
본래라면 팔은 산산조각이 나며 잘려 나갔어야 했다.
하지만 박충렬의 오른팔은 구멍이 뚫린 것 외에는 이상이 없었다.
그리고 그 구멍 속에서 붉은색이라기보다는 보라색의 피가 새어 나왔다.
그 보라색의 피는 뮤턴트의 입 안으로 몇 방울 흘러 들어가고 이빨들에 묻어났다.
그러고서는 뮤턴트의 입을 녹여 버리기 시작했다.
크르! 크르륵!
“효과는 확실하네.”
자신의 몸에 독 변이를 주입한 박충렬이었다.
실험을 해 봐야겠다고 생각을 했지만, 그동안 하지 못하고 있다가 지금에야 확인을 해 본 것이다.
그렇게 아래턱과 위의 이빨들이 녹아 버린 뮤턴트는 고통스러운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리고 강화 인간인 박충렬의 경호원들이 뮤턴트의 숨통을 끊어 놓았다.
박충렬은 어느덧 회복되어 버린 팔을 힐끔 보고서는 차량에 탑승을 했다.
“최 원사하고 지금의 내가 붙으면 누가 이기려나?”
박충렬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한 군인이라던 창수와 자신이 붙으면 누가 이길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다소 모험을 했지만 강화 인간 변이와 신체 내 독 변이를 함께 보유하게 된 박충렬이었다.
강화 물약의 부작용으로 변이 우려 때문에 전투 일선에서 물러선 최창수였지만 최창수가 웬만한 강화 인간보다 더 강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니 강화 인간 박충렬보다 창수가 육체적인 능력으로는 더 강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독 변이를 가진 인간의 몸에 상처를 내면 독 변이 내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존재는 보라색 피에 닿는 즉시 녹아내린다.
데빌 탄처럼 강력한 것은 아니었지만 꽤나 효과적인 능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