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6화
316화
인간의 기준으로 뮤턴트는 그 자체만으로도 최악의 생명체였지만 뮤턴트들 중에서도 수많은 최악의 괴물들이 존재했다.
스스로 천사나 악마라 칭하며 인간뿐만 아니라 뮤턴트들 위에 군림을 하기도 했고 오직 살육밖에는 모르는 괴물들까지 온갖 기상천외한 것들이 지구 곳곳에 즐비했다.
그런 가운데 최악의 생명체을 뽑으라고 한다면 쉽사리 선택을 할 수 없겠지만 최강의 생명체를 뽑으라면 드레곤이라는 별칭을 가진 뮤턴트를 뽑을 수 있을 터였다.
드래곤은 자신의 몸을 자유자재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과 인간 및 뮤턴트들의 능력을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이나 뮤턴트의 능력뿐만 아니라 지식까지도 흡수를 하는 것인지 처음 태어났을 때는 강아지의 지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진화를 거듭하고 난 뒤에는 마치 신적 존재라 칭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지능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거듭된 진화는 생명체가 소화하기 어려울 만큼 급격했다.
마치 소화 불량에 걸린 것처럼 자신이 흡수한 능력을 소화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했다.
“꺼억! 크윽! 너무 급하게 먹어서 체한 것 같네.”
“배 주물러 드려요?”
“그러든가?”
“그럼 배 돌리고 누우세요.”
인간들로부터 신녀라 칭해지며 떠받들어지고 있는 밍밍은 빅의 불룩한 배를 하얀 손으로 쓰다듬었다.
빅의 배는 지금 가장 약한 부위일 터였다.
만일 빅을 죽이려고 한다면 지금이 기회일 것이었지만 밍밍은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과거에는 길거리에서 흔하게 보던 강아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 자란 성견이었으나 그다지 크지 않은 중형견 중에서도 다소 작은 체구였다.
하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수십 미터가 넘는 거대한 몸으로 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언제쯤 소화가 될 것 같으세요.”
“몰라. 꽤 오래 걸릴 것 같단 말이지. 뭐, 이대로 안 먹으면 되긴 할 것 같은데. 입맛이 돌아서 말이야.”
“주인님한테는 안 가고 뭘 그리 싸돌아다니시는지.”
“끄응! 그러게 말이야. 나는 아무래도 탐욕인가 싶다.”
빅은 씁쓸하게 웃었다.
수많은 뮤턴트들을 먹어 치워 가면서 이제는 멈춰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계속 식탐이 돌았다.
마지막에 가서는 지구 전체를 집어삼켜 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빅이었다.
“지구의 멸망은 빅 님에 의해 일어나겠네요.”
“그래. 그럴지도 몰라. 그래서 꾸욱 참고 있는 거야. 내가 이성을 잃으면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를 것 같아서 말이지.”
“아직도 주인님을 드시고 싶은 건가요?”
“킁! 킁!”
빅은 밍밍의 말에 냄새라도 맡으려는지 킁킁거렸다.
“점점 멀어지고 있네. 어디 가나?”
“주인님이요?”
“그래. 점점 멀어지는 것이 또 어디 가나 본데.”
빅에게 있어서는 그다지 넓은 바다도 아닌 황해만 건너면 자신의 주인인 창수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참을 수 없는 식욕을 느끼면서 자신도 모르게 맛있는 냄새가 나고 있는 창수를 먹어 버릴까 걱정인 빅이었다.
만에 하나 창수를 먹어 버리고 나면 그때는 의식의 끈을 놓고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먹어 버릴 것만 같았다.
“내가 집어삼킨 것들을 완전히 소화시키지 못해서 그래. 한 백 년? 아니면 한 천 년? 그 정도면 완전히 소화를 시키고 내 몸 안의 탐욕을 완전히 제어할 수 있을 것도 같단 말이지.”
“그럼 주인님을 천 년 뒤에나 보러 가시려구요?”
“아니! 그건 아니지. 조금만 기다려 봐. 대충 자제력이 생길 만큼 소화를 시킬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말이야. 잠깐 얼굴은 보러 갔다 와야지. 내가 폭주를 했을 때 나를 막을 수 있는 것도 주인님 같으니까.”
다시 맡게 된 창수의 냄새는 빅이 견디기 어려울 만큼 맛있어져 있었다.
과거였다면 그냥 좋은 냄새로 끝났을 것인데 창수가 자신처럼 꽤나 많은 능력들을 흡수하고 나자 입에서 군침이 도는 것이다.
“꺼억!”
“소화 좀 되셨어요?”
“그래! 한결 낫네.”
“정말 괴물이시네요. 더 강해지셨어요. 이제는 그냥 신이라고 해도 될 정도예요.”
“신은 무슨. 신이 존재했다면 이런 끔찍한 세상은 오지 않았을 거야. 나도 그냥 한 마리의 강아지로. 강아지의 기쁨을 느끼며 살다가 죽었을 테지.”
“강아지의 기쁨은 뭐죠?”
“주인님과 산책하는 기쁨?”
“꽤나 소박하시네요.”
“그래. 그나저나 또 맛있는 냄새가 나네.”
“또 드시려고요? 아직 완전히 소화를 못 시키셨으면서.”
“그렇긴 한데. 처음 맡는 냄새야. 먹을 필요는 없지만. 흐음! 한번 구경이나 가 볼까?”
“가까운가요?”
“왜? 따라오게?”
빅은 요즘 뭐가 그리 바쁜지 자신이 있는 곳에는 잘 오지 않다가 찾아온 밍밍에게 같이 갈 거냐고 물었다.
“그리 멀지 않다면.”
“그렇게 멀진 않은데. 이번 건 냄새가 고약해.”
“고약하다고요? 빅 님께서 고약하다고 할 정도면 오물인가 보네요. 그런 거라면 별로 보고 싶진 않아요.”
고아에 지저분한 밑바닥의 삶을 살았던 밍밍은 더러운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빅이 강아지로 변해 있을 때 날리는 털들도 그다지 유쾌하진 않았다.
그나마 빅이 절대적인 존재이기에 빅을 불쾌하게 할 수는 없었다.
빅이 소화 불량에 걸린 이유는 밍밍이 있는 지역으로 몰려오는 뮤턴트들을 빅이 전부 집어삼켰기 때문이기도 했다.
빅은 미식가였지 대식가는 아니었다.
뮤턴트도 한 종에 하나 정도나 먹으면 그만이었지만 밍밍의 부탁에 의해 수천수만 마리의 뮤턴트들을 먹어 치우다 보니 소화 불량에 걸린 것이다.
물론 그것도 오래지 않아 소화를 시킬 것 같았으니 빅은 고약한 냄새가 나는 곳으로 운동 삼아 가 보기로 했다.
다행히도 처음 맡아 보는 냄새였지만 고약해서 딱히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냄새는 고약하지만 그래도 제법 능력은 있는 것 같으니 운동은 되지 않으려나?”
빅은 자신을 모시는 사원을 나와 길거리를 걸었다.
몇몇 인간들이 자신을 향해 군침을 흘리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지만 입에 단내가 나도록 같이 뛰어 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인간의 몸을 조종하는 것 정도는 그다지 어려울 것이 없었다.
“하여간 인간하고 같이 산책을 하는 것은 꽤나 유쾌하다니까.”
괴물이 되었음에도 강아지 때의 기억이 남아 있는 빅이었다.
그렇게 자신에게 군침을 흘리는 인간들을 조종해 지쳐 쓰러질 때까지 뛰게 만든 빅은 적당히 즐기다가 고약한 냄새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 * *
한 여인이 칼을 쥔 채로 몸을 떨고 있었다.
그녀의 앞에는 피를 흘리고 있는 남자가 있었고 그녀에게 살려 달라고 빌고 있었다.
“살려 줘.”
살려 달라고 하는 남자의 말에 여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것은 남자의 행동 때문이었다.
물론 평범한 인간 여자인 그녀가 엔젤까지 먹은 남자를 제압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녀를 도와준 존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그녀를 도와준 존재는 지금 그녀의 뒤에서 속삭이고 있었다.
-죽여. 죽이라고. 끔찍한 고통을 느끼게 해 줘.-
그녀의 뒤에서 속삭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그녀도 알지 못했다.
만일 부른다면…….
‘악마.’
그건 분명 악마였다.
일반인인 자신에게 엔젤을 먹은 남자를 제압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준 그것은 분명 악마 외에는 없을 터였다.
격렬한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감정의 소용돌이에 악마는 기분이 좋은지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악마는 좀 더 고통을 받기를 원하는 듯했다.
그 고통을 받는 존재가 남자가 아닌 자신이 힘을 빌려 준 여자이길 바라는 것 같았다. 여자의 영혼이 완전히 타락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여자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칼로 남자를 찌르려고 했다.
그리고 그때 문이 열렸다.
끼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에 여자와 여자의 뒤에 서 있는 악마는 뒤를 돌아보았다.
문의 입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신기한 녀석이네.”
아니, 아무것도 없진 않았다.
“강아지?”
입구 앞에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가 여자를 보고 있었다.
여자의 눈동자는 강아지에게 닿아 있었지만, 강아지의 눈동자는 여자가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나를 보고 있는 거냐?-
악마는 강아지가 자신을 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지금의 자신의 신체는 인간뿐만 아니라 뮤턴트들에게도 보일 리 없었다.
일반 강아지가 아니라는 사실은 자신이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시선을 옮기는 것에서 알 수 있었다.
-죽여! 저 강아지를 죽여!-
악마의 속삭임을 들은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강아지에게로 달려들었다.
칼로 찔러 죽이려는 것이었지만 강아지, 아니 빅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당장 여자의 몸은 움직이지도 않고 있었고 여자의 몸 안에서 검은 안개 같은 것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이걸로 인간을 조종하는 건가? 꽤나 지저분하네.”
빅은 여자의 몸에서 강제로 악마의 연기를 뽑아내었다.
-말도 안 돼!-
악마는 말도 안 된다며 경악을 했다.
지금까지 자신의 힘을 알아보고 무력화시키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있다고 한다면 자신과 상극의 존재로 보이는 천사라는 놈들이겠지만, 그놈들도 이토록 쉽게는 하지 못했다.
물론 천사라는 존재로 불리지만 그것들이 자신과 다를 바 없는 역겨운 괴물이라는 것은 악마로 불리는 존재도 알고 있었다.
천사들도 악마인 자신처럼 인간을 가지고 노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변태 같은 괴물일 뿐이었다.
눈앞의 강아지도 그런 존재들 중에 하나로 생각했다.
다만 악마의 생각과 달리 빅은 그보다 더 괴물이었다.
풀썩!
여자는 빅에 의해 검은 연기가 다 뽑혀 나가자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이제 그만 모습을 보이지? 뭐, 안 보여도 상관은 없다만.”
빅은 악마의 몸을 의지로 움켜쥐었다.
악마처럼 검은 연기 같은 것으로 조종할 필요 따위는 없었다.
무형의 기운을 유형의 힘으로 움켜잡고서는 존재 자체를 으깨 버리려는 듯이 힘을 주었다.
무형의 상태일 때는 그 어떤 물리적인 공격으로도 타격을 받지 않았었다.
마치 고스트처럼 기체 상태와 비슷한 형태를 가질 수 있는 악마였다.
아니, 기체라기보다는 영체라고 하는, 알 수 없는 형태였다.
과학자들이 연구를 했다면 일종의 플라스마 형태라며 놀라워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물리적인 힘으로는 타격을 받지 않는 상태였음에도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제길!”
형체화를 하는 악마였다.
“이제야 제대로 보이는군. 꽤나 역겹게 생겼구나.”
“네놈! 네놈의 정체가 뭐냐?”
“나 말인가? 음! 강아지인 비글이라는 종이네. 이름은 빅이라고 하지. 내 주인은 최창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고. 음! 이러면 설명이 될까?”
빅은 형체화를 한 악마의 몸을 자신의 혓바닥으로 핥았다.
냄새가 역겨워 먹지는 않을 생각이었지만 맛이나 보자며 핥는 것이다.
“우엑! 역겹네.”
“이익! 익!”
“주인님이라면 이런 역겨운 놈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것이 좋다고 하시겠지. 뭐, 네놈의 능력 따위는 필요 없다.”
빅은 그냥 이대로 소멸을 시켜 버리는 것이 낫겠다며 악마를 쥐어짰다.
형체화가 되었을 때는 물리 타격이 가능한 듯했지만, 형체화가 되지 않아도 상관없는 듯했다.
그렇게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한 채로 소멸을 해 버리는 악마였다.
“흐음! 설마 더 있진 않겠지?”
빅은 참 별의별 뮤턴트들이 다 있다는 생각을 하며 운동도 되지 않았다고 투덜거렸다.
“역시나 운동이 되려면 주인님하고 산책 정도는 해야 할 거 같네. 흐음! 그래도 조금 소화는 된 것 같으니 얼굴이나 보러 가 볼까?”
빅은 나온 김에 창수를 보러 가기로 하고서는 인간들이 드래곤이라 부르는 거대한 크기로 몸을 변화시켰다.
그렇게 거대한 드래곤의 모습으로 변한 빅은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올랐다.
그렇게 한국 쪽으로 날아가는 빅이었다.
-빌어먹을 저딴 괴물이 존재한다니!-
소멸된 줄 알았던 악마가 간신히 살아남아서는 빅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도망을 가려고 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괴물임을 깨달은 것이다.
물론 악마는 하늘 위에서 쏟아져 내리는 태양보다 더 밝은 빛줄기를 마주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