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7화
317화
빛줄기를 쏟아낸 빅은 유유히 동쪽을 향해 날아갔다.
바다를 건너 오랜만에 건너오는 고향땅이었다.
점점 멀어져 가는 창수의 냄새는 남쪽에 있었지만 먼저 들를 곳이 있다는 듯 중부 지방 쪽으로 날아가는 빅이었다.
그런 빅의 거대한 몸체가 한반도로 다가가자 한반도에서도 아끼고 아껴 왔던 전투기들이 출격했다.
이미 몇 번이고 빅을 가로막아 왔던 전투기들이었다.
“아직도 있네. 고장도 안 나는 건가? 저쪽 애들 건 다 망가졌던데.”
중국 공군의 전투기들은 대부분 고철이 되었음에도 한국의 전투기들은 솜씨도 좋은지 아직도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렇게 처음에는 빅조차 엄청난 괴물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속도로 날아와 강력한 공격을 가해 오는 전투기들이 부담스러웠다.
죽지는 않는다지만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기분이 아니었다.
더욱이 흡수한 힘을 전부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했던 빅이었기에 인간들을 다치지 않게 하면서 도망을 칠 자신이 없었다.
여전히 인간들에게는 호의적인 빅이었고 자신의 주인인 창수의 당부를 잊지 않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쪽 땅의 인간들이 꽤나 죽었을 것 같은데?”
빅은 서해를 넘어가면서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악마인지 뭔지 모를 뮤턴트가 죽지 않았기에 브레스로 완전히 소멸시켜 버린 빅이었다.
그러면서 악마가 있던 마을까지 휩쓸려 소멸해 버렸으니 인간들도 꽤나 죽었을 터였다.
“깜박한다니까. 주인님한테 혼나겠네.”
그렇게 중국 쪽의 서해에서는 핵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버섯구름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인간들에게 있어서는 뮤턴트도 재앙이었지만 빅은 재앙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미사일이 날아들었다.
그전에는 서해의 절반쯤 넘어오기 전에 빅이 되돌아갔기에 미사일 공격까지는 받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서해를 절반을 넘어오면서 결국 한국 공군의 전투기에서 미사일이 날아든 것이다.
한국 공군으로서는 이대로 빅이 몸을 돌려 돌아가길 바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빅도 되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빅은 이대로 계속 가면 미사일이 더 날아들 것임을 알기에 날아가는 방향을 달리했다.
빅은 하늘 위로 방향을 돌렸다.
대류권을 지나 성층권을 향해 치솟아 오른 것이다.
갑자기 하늘 위로 올라가는 빅의 모습에 한국 공군의 전투기들도 따라 올라왔다.
중국 쪽이 아닌 여전히 한국 쪽으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구름을 뚫고 하늘 위로 올라온 빅은 푸르던 하늘이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밤인가? 왜 어둡지?”
아직 이 정도까지 올라와 본 적은 없었다.
“음! 춥네.”
북극의 혹한에서도 추위에 영향을 받지 않는 빅이었다.
그렇게 상당히 추워졌지만 빅에게는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공기 또한 점차 희박해졌지만 그 또한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빅을 따라 성층권을 향해 날아오르던 한국군 전투기들은 열심히 따라 올라오다가 더 이상은 무리였는지 지상으로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상당히 많이 올라왔는데. 더 올라갈 수 있는 건가?”
빅은 좀 더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점점 올라갈수록 검은 하늘밖에 보이지 않자 빅은 신기해했다.
“여기가 우주인가 보군.”
우주에 대한 지식은 가지고 있었지만 아는 것과 직접 확인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큰 차이가 있었다.
그렇게 검은 하늘 위로 셀 수 없이 많은 불빛들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수많은 불빛들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도 들었지만 빅은 아직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려가 볼까?”
더 이상 한국 공군의 전투기들도 쫓아오지 못하자 빅은 다시 지구 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한국이었다.
하늘 위에서 본 지구는 꽤나 아름다웠다.
“인간들은 멸망하지만 지구는 별 이상 없군.”
인간들이 망한 것이지 지구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빅이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한국 땅으로 날아드는 빅을 보고 한국 공군이 다시 날아들었다.
하지만 엄청난 속도로 날아드는 빅을 쫓는 데는 너무 늦어 버렸다.
한국 땅에 도착을 한 빅의 거대한 몸은 사라지고 강아지 한 마리로 변해 버렸다.
“큰 몸은 은근히 불편하단 말이지.”
본래의 몸이 가장 익숙한 빅이었다.
그렇게 그리 크지 않은 강아지의 모습으로 변한 빅은 유유히 자리를 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투기와 헬기들이 빅이 떨어진 땅 주위로 몰려왔지만 빅의 모습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생각보다 다양한 냄새가 나네.”
빅은 자신이 떠나 있던 동안 꽤나 많은 일이 벌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한반도 밖에도 꽤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기는 했다.
기상천외한 뮤턴트들이 가득 존재했고 빅도 그 모든 뮤턴트들을 다 먹어 보진 못했다.
지금까지 먹은 뮤턴트들을 다 소화도 못 시키고 있었으니 빅은 한동안 식욕을 참아야만 했다.
식욕을 참지 못하면 폭주해 버릴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빅은 싸돌아다니던 중 한 여자아이를 발견했다.
여자아이는 인간의 모습이었지만 인간은 아니었다.
“아주 위험한 냄새가 나는 인간 아닌 인간이네. 너는 정체가 뭐냐?”
“누구?”
삶의 의지를 잃은 것인지 절망 속에 홀로 남겨져 있는 여자아이였다.
무언가 사연이 있어 보였지만 세상에 사연 없는 존재는 없었으니 빅은 그녀에게 있었던 일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다만 그녀가 아주 위험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강아지?”
“그래. 강아지다. 정확하게는 비글이라는 종인데. 너 복어 인간이냐?”
“복어 인간?”
“그래. 복어 인간. 몸 안에 엄청난 독을 가지고 있구나. 왜? 뮤턴트들에게 안 잡아먹히려고 그런 거냐? 뭐, 안 잡아먹히긴 하겠지만 그런다고 죽지 않는다는 건 아닐 텐데.”
여자아이의 몸과 옷에 마른 보라색의 피들이 묻어 있었다.
그 보라색의 피에 청산가리보다 더 독한 독이 들어 있음을 빅은 냄새로 맡을 수 있었다.
그 외에는 그다지 대단할 것이 없어 보였다.
인간들보다 조금 육체적으로 강한 것 같기는 하지만 그게 크게 의미 있어 보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웬만한 병은 네 몸의 독 때문에 버텨내지도 못하겠군.”
“강아지야. 도와줘.”
“응? 도와 달라고? 미안하지만 나는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있거든. 그리고 내 주인을 보러 가야 한단 말이다.”
“도와줘. 제발.”
여자아이는 빅에게 도와 달라는 부탁을 하고서는 쓰러져 버렸다.
“이런, 별로 엮이고 싶지 않은데. 흐음!”
그냥 떠나고 싶었지만 도움을 요청하는 인간을 도와 주라는 창수의 당부가 떠올랐다.
“이봐! 주인! 하지만 이건 이제 인간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거라고! 흐음! 하긴, 뭐 나도 더 이상 강아지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긴 하지. 우리 잘난 주인이 날 도와줘서 이렇게 살아 있을 수 있는 거니 도와 달라면 도와줘야 할 것 같긴 하지만. 흐음!”
빅은 투덜거리며 의식을 잃고 쓰러진 여자아이를 허공에 띄우고서는 익숙한 냄새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깊은 숲속의 수많은 개와 고양이들이 사는 곳에 도착을 한 빅이었다.
“왜 숲 밖으로 나가면 안 되는 거예요?”
“숲 밖은 너무 위험하단다.”
“하지만 다른 삼촌들은 인간들이 있는 곳으로 갔잖아요! 저도 인간들하고 살고 싶어요!”
“나는 뮤턴트들 쪽도 괜찮은 것 같은데.”
“인간들이나 뮤턴트들이나 우리들을 이용해 먹으려고 생각한단다. 빅 님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우리는 이곳에 있어야만 해.”
동물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인간들의 언어를 사용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개와 고양이라고는 하지만 다들 하나같이 커서 대형견이나 대형 고양이 정도의 크기를 하고 있었다.
인간들이든 뮤턴트들이든 쉽게 볼 수 없는 맹수들이었다.
그들 중 일부는 인간들에게 협조를 하고 있었고 일부는 창수의 뮤턴트들과 함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깊은 숲속에서 자신들만의 사회를 구성해 지내고 있었다.
빅으로부터 인간들을 지키며 뮤턴트들을 처리하라는 지시를 받았던 뮤턴트 동물들이었다.
물론 그런 빅의 지시는 인간들 편에 붙은 뮤턴트 동물들이 따르고 있었다.
그렇게 평화로운 뮤턴트 동물들의 보금자리에 꽤나 지독한 냄새가 다가오고 있었다.
다들 화들짝 놀라서는 위험한 냄새가 풍기고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고, 웬 인간 여자아이가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건 먹으면 몸에 매우 안 좋을 것 같은데!”
“안 좋은 정도가 아닌 것 같은데요. 저런 건 처음 보는데.”
다들 당황해하고 있을 때 여자아이를 허공에 띄운 채로 들고 온 빅이 외쳤다.
“이봐! 해피하고 메리 어디 있냐?”
빅은 자신이 생체 세포를 줘서 힘을 가지게 했던 개들을 찾았다.
“소…… 소형견이다.”
“아니야. 저 정도면 중형이야.”
“초기형 맞죠?”
“그런 것 같은데.”
뮤턴트 개와 고양이들은 세대가 가면서 점차 커졌다.
소형견이었던 뮤턴트 개도 새끼를 낳으면서 새끼 개들의 크기가 커졌다.
먼 옛날 늑대가 개로 변화한 것처럼 개들은 다시 늑대들처럼 크기가 커진 것이다.
수만 년 동안 인간들 사이에서 변해 왔던 개와 고양이의 진화가 단 몇 년 사이에 되돌려진 것이다.
엔젤에 의한 직접적인 변화는 아니었지만, 세계수와 인간들의 실험에 의해 만들어진 뮤턴트인 것은 분명했다.
그렇게 빅에 의해 생체 조직을 받은 개체를 초기형이라고 불렀다.
그 초기형 개체들은 무척이나 작은 소형견들부터 대형견들까지 존재했다.
그리고 수군거리고 있는 뮤턴트 개와 고양이들은 그 초기형 개체의 후손들인 것이다.
그렇게 초기형 뮤턴트 개가 찾아온 것이라 생각을 했지 자신들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빅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초기형 개체들은 아직 살아 있었고, 빅으로부터 직접 생체 조직을 받았기에 빅을 알고 있었다.
빅이 되돌아옴과 동시에 숲의 사육장에 있던 몇 마리의 초기형 뮤턴트 개들이 빅의 냄새를 맡고서는 달려왔다.
“빅 님!”
빅 앞에 나타난 것은 다른 대형 개체들이 아닌 최소형 개체인 포메라니안 종이었다.
“헐크냐!”
“예! 오랜만이네요. 돌아오신 건가요?”
귀여운 외모와는 달리 전 주인이 꽤나 터프한 이름을 지어 주었다.
물론 지금은 귀여운 외모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터프한 힘을 가진 헐크였다.
“다들 어디 갔냐?”
“이야기하자면 매우 긴데.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생각보다 수가 많이 늘었네.”
“할 일이 없다 보니 번식만 열심히 해서 그래요.”
번식의 결과라는 말에 빅은 신기하다는 듯이 늑대나 표범만 해진 뮤턴트 개와 고양이들을 보았다.
물론 일부는 작은 개체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건 뭔가요?”
“나도 몰라. 뮤턴트인가 봐. 그런데 먹으면 안 돼. 복어 인간인 것 같아.”
“복어요? 그거 제 주인이 엄청 좋아하던 건데.”
“전 주인?”
“예.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살아는 있는지 모르겠네요. 어떻게 요리하면 복어라는 물고기를 먹을 수 있대요. 그리고 그 물고기가 그렇게 맛있다고 주인이 말을 했었어요.”
“그때는 지능도 낮아서 기억도 못 할 텐데. 용케 기억을 하고 있네.”
“그러게요.”
헐크는 위험해 보이는 복어 인간도 어떻게 하면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딱히 그럴 생각은 없었다.
“일단 복어 인간에게 쉴 곳을 마련해 주고. 그동안 있었던 일이나 말해 봐.”
몸과 옷에 묻은 보라색 피는 빅의 힘으로 날려 버리고서 쉴 수 있을 만한 곳에 놔두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고서는 헐크로부터 자신이 없었던 동안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물론 헐크라고 해서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제법 많은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동안 잘 버텨 오기는 했지만 역시나 인간들은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