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8화
328화
진화는 결국 환경에 적응을 하도록 이루어진다.
환경에 적응을 하지 못한다면 결국 도태되어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이때의 환경은 주변의 자연뿐만 아니라 자연 외적인 외부의 적이나 갑작스러운 변화까지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육체적으로 진화의 방향을 잡더라도 무조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아니었다.
인간이 진화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육체적인 힘 덕분만은 아니었다.
그렇게 그동안 뮤턴트들은 인간보다 우월한 육체적인 능력을 가지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창수는 육체적인 능력이 강화된 뮤턴트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고블린.
한국에서 본 고블린은 인간보다 육체적인 능력이 떨어졌다.
그 고블린도 인간을 베이스로 해서 진화를 한 것인지 의아스러웠지만 고블린은 인간만큼이나 지적 능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물론 이미 오랜 시대를 거쳐 학습된 인간의 지식을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고블린들이 뛰어넘기는 어려웠다.
과거의 기술과 과학이 잃어버린 로스트 테크놀로지가 되어 갔지만, 아직 인간들은 뛰어난 지식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렇게 당장은 뮤턴트들이 인간보다 지식의 총량을 뛰어넘기란 불가능했다.
하지만 변이된 뮤턴트들 중에 육체가 아닌 지능에 모든 스탯을 찍은 듯한 뮤턴트도 있었다.
도서관이었다.
인간들에게도 버려진 거대한 유적지 같은 도시 한복판에 있는 커다란 도서관.
각종 언어로 쓰여 있는 거대한 서적들의 무덤 한가운데 기이하게 생긴 뮤턴트가 있었다.
흔히들 인간을 제외하고 가장 지능이 뛰어난 동물로 문어를 뽑는다.
인류가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난 뒤에 다음 세기의 지적 생명체가 나온다면 문어와 같은 두족류가 될 것이라 추정하고 있었다.
물론 두족류의 신체 특성상 지상이 아닌 바다에서 새로운 문명이 탄생하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변이로 인해 지상에 문어와 같은 생명체가 있었다.
“징그럽게 생겼네.”
창수는 빅의 말에 동의를 했다.
하체는 인간의 것과 같았다.
다만 상체는 영락없는 문어였다.
상체에 팔은 없었지만, 문어의 팔이 다리 아래까지 늘어져 있었다.
문어인지 인간인지 모를 형태는 누가 보더라도 뮤턴트였다.
형태가 어떻든지 간에 뮤턴트인 이상 없애야 했지만, 창수와 빅은 이 문어 뮤턴트의 행태에 조금은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이봐 주인. 저놈들 뭔가 다른 뮤턴트들하고는 다르지 않아?”
“그래. 마치 문명인 같은 행동을 하고 있네.”
문어 뮤턴트들은 파괴된 도시를 복구하고 있었다.
도시를 복구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장사도 하고 있었고 무언가를 만들고 작물을 기르는 등 문명화된 행동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어 뮤턴트들 사이로 인간들도 있었다.
뮤턴트가 인간에 대한 증오심을 가진다는 것을 아는 창수로서는 꽤나 의아한 일이었다.
인간들과는 무언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아 보였다.
그 대화가 말로 하는 대화는 아닌 듯했지만 말이다. 창수는 그들에게 다가가 보기로 했다.
혹시라도 불완전 변이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창수와 빅, 그리고 창수의 어깨에 앉아 있는 세라핌이 도시로 다가오자 문어 뮤턴트들은 셋뿐임을 보고서는 꽤나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며 다가왔다.
그러면서 문어 뮤턴트들과 같이 있던 인간들도 창수에게 다가왔다.
인간들은 창수에게 무언가 말을 했지만 그들의 말은 영어도 아니었고 한국어도 아니었으며 몇몇 창수가 알고 있는 언어가 아니었다.
그래도 대충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인 것 같아 창수는 한국인이라고 말을 했다.
인간들은 간단한 영어는 알아듣는 듯했다. 창수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서로 수군거리다가 누군가를 불러오는 듯했다.
“한국인이시라구요?”
“그렇습니다. 한국어를 할 줄 아시나 보군요.”
“예. 한국어를 조금 할 줄 압니다. 한국은 괜찮습니까?”
나이가 조금 있는 것으로 봐서 뮤턴트 사태 전에 한국에 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어디나 비슷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뮤턴트가 아닙니까?”
“아! 그게. 이들은 좋은 뮤턴트입니다.”
좋은 뮤턴트와 나쁜 뮤턴트로 나눈다는 것에 기가 찼지만, 인간들에게 그다지 위해를 끼치지는 않는 듯했다.
“이들과 대화를 나눠 보시겠습니까?”
“대화요?”
“예. 이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존재들입니다. 비록 언어로 대화를 나눌 수는 없지만 다른 방식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입이 있어도 성대가 있어야만 소리를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성대가 있다고 해도 성대를 아주 세밀하게 조절을 할 수 있어야만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아무리 봐도 문어 뮤턴트에게서 목소리가 나올 것 같지 않았다.
만일 낼 수 있었다면 인간이 아니라 문어 뮤턴트들이 말을 했을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되는 것이지요?”
“예! 두족인들의 다리에 살짝 신체를 대기만 하면 됩니다. 아! 오해하지 마십시오! 위험하진 않습니다. 그냥 이렇게 손가락 끝만 대면 됩니다.”
사람은 시범을 보이는지 조금 뒤에 서 있는 두족인이라 불리는 문어 뮤턴트의 다리 끝에 자신의 손가락을 대었다.
“두족인들은 당신에게 위해를 가하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창수는 천천히 자신을 향해 다리 하나를 뻗어 오는 것을 보았다.
고작 손가락을 끝에 대는 것 정도는 그다지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워낙에 기상천외한 뮤턴트들을 만나 보았기에 안심을 할 수는 없었다.
그나마 빅이나 세라핌이 있었기에 창수는 자신에게 내미는 두족인의 다리 끝에 자신의 손가락 끝을 대었다.
그러자 무언가가 손끝을 통해 흘러들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여행자여.-
뇌 속에 직접 말을 하는 듯해서 창수는 꽤나 놀란 눈빛으로 두족인을 바라보았다.
보는 것만으로는 상대의 감정을 알기 어려웠다.
그나마 매우 우호적인 느낌의 신호가 머릿속으로 흘러들어 오는 것 같아 두족인이 적의를 보이지는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텔레파시인가?”
-텔레파시라기보다는 그대와 우리가 하나로 이어져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신체를 떼어낸다면 우리의 연결 상태는 언제든 떨어지게 되니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두족인의 신경망이 창수의 신경망과 이어지면서 의지를 교환할 수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인간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여행자도 언제든 영원의 안식처에서 머무르다 떠나실 수 있습니다. 그대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두족인들은 전혀 공격적이지 않고 평화로워 보이는 모습과 함께 매우 뛰어난 지식까지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두족인들은 인간들의 문화와 지식을 깊게 이해하고 인간들을 존중합니다. 우리는 두족인들과 함께 파괴된 문명을 다시 건설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미소를 지으며 창수에게 말을 했다.
모든 세상이 엉망인 가운데 두족인들과 함께 있는 사람들은 꽤나 청결해 보이고 영양 상태도 좋아 보였다.
옷도 깨끗하게 입고 있었으며 전체적으로 활기가 느껴졌다.
-당신을 안내해 주고 싶습니다.-
도시의 인간과 두족인의 안내를 따라 도시 내부로 들어간 창수는 인간과 두족인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대는 귀여운 애완동물을 키우시는군요. 애완동물과 감정의 교류를 해도 되겠습니까?-
창수를 졸래졸래 따라오고 있는 빅과 세라핌을 본 두족인이 창수에게 허락을 구했다.
두 애완동물을 창수의 소유물로 여기는 것이다.
감정의 교류라는 것이 창수의 손가락 끝에 자신들의 신체를 댄 행위를 말하는 듯했다.
마치 다른 사람이 주인의 허락을 받고 애완동물의 몸을 쓰다듬는 행위 같았지만, 창수는 거부를 했다.
“별로 내키지 않는군요.”
창수는 아주 미세하게 떨리는 두족인들의 다리를 느꼈다.
마치 그런 대답을 들을 줄은 몰랐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물론 일반 인간이었다면 그 미세한 떨림을 알아차리지는 못했을 터였다.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창수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억지로 하지는 않겠다는 두족인이었다.
그렇게 두족인은 창수의 손가락에서 자신의 촉수 다리를 떼었다.
그러자 두족인과의 연결이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뭐래? 주인.”
“너를 만지고 싶다고 하더군.”
“나를? 그냥 귀찮지 않게 내가 저놈들을 먹을까?”
빅은 상대의 능력을 흡수할 수 있었기에 두족인 하나를 잡아먹으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며 먹어 버릴까 하는 질문을 했다.
도시의 길거리에는 인간과 두족인들이 섞여서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잠시 기다려 봐.”
“알았어.”
두족인들은 각자 인간들과 촉수 다리를 상대방에게 대고서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화의 도구이자 수단인 촉수 다리는 대화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작업에도 사용되고 있었다.
특히나 카페로 보이는 곳에서 인간이 만든 책을 읽고 있는 두족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두족인은 시원한 과일 주스를 창수에게 내밀었다.
과일 주스와 함께 촉수 다리 끝을 창수의 앞에 내미는 행동에 창수는 자신의 손가락 끝을 대었다.
-과일 주스입니다. 혹시라도 허기가 지신다면 말씀을 해 주십시오.-
과일 주스는 달았다.
웬만한 독이나 약물에는 거의 면역이 되어 있는 창수였기에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자신에게 준 과일 주스에 딱히 뭔가가 들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도 마시고 싶어!”
반쯤 마신 과일 주스를 세라핌에게 넘겨주었다.
“으! 창수 피보다 맛있진 않다.”
“…….”
세라핌의 입맛에는 그다지 맞지 않는 듯했다.
“어이! 주인, 나도 입이 있다고.”
“너 인간으로도 모습 변할 수 있지 않았냐?”
“할 수는 있지만 그러면 빨리 허기져서 말이야. 그리고 이 모습이 더 익숙하기도 하고.”
인간이나 수인족의 모습으로도 변할 수 있는 빅이었지만 어지간하면 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창수는 도시를 안내해 주는 인간과 두족인들을 따라 상당히 큰 도시를 구경할 수 있었고 하루 머무를 수 있는 숙소로도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과거에는 호텔이었던 곳에서 하룻밤을 숙박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한 것인지 뜨거운 물까지 나와서 창수는 간만에 문명화된 목욕과 식사 대접, 그리고 푹신한 침대에서 양질의 수면까지 즐길 수 있었다.
호텔 방 밖의 기괴한 뮤턴트만 아니라면 과거의 문명사회로 되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주인. 이제 말해 봐. 지금 이거 즐기려고 가만 놔둔 거지?”
“그래. 간만에 대접 잘 받고 있잖아.”
“저놈들 정체가 뭐야?”
“정신을 지배하는 놈들 같아.”
“정신 지배?”
“정확하게는 자신들에게 우호적으로 유도를 하는 것 같네.”
창수는 두족인들의 촉수 다리에 손가락이 닿았을 때 두족인들의 의지가 자신의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다른 이들이라면 목소리만 느껴졌겠지만, 창수는 목소리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우호적으로 느끼게 하는 어떤 감정을 심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창수였기에 별다른 소용이 없는 듯했지만 결국 두족인들은 인간들의 정신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 어떻게 할 거야? 전부 아담으로 만들어 버려?”
적이 아닌 아군으로 느끼게 만드는 꽤나 까다로운 능력이었다.
창수는 점점 어두워져 가는 도시에 인간과 두족인들이 도로의 가로등에 불을 밝히고 다니는 것을 창밖으로 볼 수 있었다.
“가로등인가? 오랜만에 보네.”
“기름으로 불을 지피나 보군. 전기등이 나오기 전에 있었던 가스등이나 석유등일 거야.”
“호오! 꽤나 문명화되었잖아.”
어디서 기름을 얻는지는 모르겠지만 완전히 어둠에 뒤덮여야 할 도시가 과거처럼은 아니었지만 제법 밝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