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1화
331화
“아담에서 파생된 존재들이 인간이란 말이지?”
“그래. 그리고 현재의 다양한 뮤턴트들처럼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종족들도 존재했을 거야.”
모닥불이 타고 있는 불길을 나뭇가지로 쑤시며 창수의 일행은 노숙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 혹시라도 인간들 사이에 다른 종족들도 섞여서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그건 모르지. 계속 존재하고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이미 인간들에게 흡수가 되었을지도 모르고.”
언제 아담에게서 뮤턴트 사태가 발생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수만 년 이상은 지났을 것이 분명했다.
물론 창수는 페루에서 발견했던 고대의 유적지를 떠올렸다.
그 안에 있던 기괴한 괴물은 현대의 뮤턴트가 아니었다.
아담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거나 아니면 그보다 더 오래전 고대에 존재했을지 모를 것들이었다.
인간이 만든 구조물들은 지구의 시간으로 따진다면 한순간에 불과할 정도로밖에는 유지 존속되지 못한다.
수만 년은 버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수백만 년이라는 시간이 지난다면 그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아질 터였다.
설령 고대의 뮤턴트가 살아 있다고 해도 그 멀고 먼 과거의 기억은 존재할 리가 없었다.
그렇게 멧돼지 한 마리를 잡아 모닥불에 굽고 있을 때였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냄새에 이끌린 것인지 아니면 불빛에 이끌린 것인지 조심스럽게 접근을 해 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들의 영역과 뮤턴트들의 영역이 구분되어 갔다.
물론 그 영역이라는 것은 암묵적인 것이어서 영역만 믿고 있다가는 목숨을 잃게 될 수 있었다.
1세대 뮤턴트들이야 영역의 구분이 없이 그냥 인간이고 동물이고 가리지 않았지만, 지능이 있는 2세대나 3세대의 뮤턴트들은 무작정 인간들이 있는 곳을 공격해 오진 않았다.
물론 인간들도 뮤턴트들의 영역에 되도록 접근을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인간들은 뮤턴트들의 영역 사이에 둘러싸여 천천히 고사가 되어 가는 듯했지만, 인간들은 그 어떤 종족과 동물들보다 활발하게 움직이는 동물이었다.
그렇게 인간들은 뮤턴트들의 영역 사이를 통로 삼아 오갔다.
몇몇 인간들의 마을이나 도시들을 오가며 교류를 하는 것이다.
물론 상대가 약해 보인다면 언제든 약탈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험한 일이었다.
그 때문에 마을과 마을 사이를 오가는 이들은 웬만한 담력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무력을 가지고 있었다.
“모험가들이시오?”
수풀 사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자신의 이름을 나타샤라고 소개했던 여인이 창수를 바라보았다.
창수가 자신의 기운을 받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타샤는 창수를 따라다녔다.
창수가 어떤 존재이고 무슨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인지는 그녀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창수의 옆에 있으면서 가득 차오르는 답답함을 풀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창수라고 해서 모든 언어를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전 세계가 지구촌이어서 수많은 영어 사용자들이 있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외국어를 배워야 한다는 개념이 별로 없어졌다.
창수도 제법 여러 개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지구상의 모든 언어를 다 알 수는 없었다.
그렇게 언어의 장벽은 인간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였다.
그나마 나타샤는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의 언어를 아는 듯했다.
어린 나이 때부터 다친 사람들을 찾아다니던 그녀였으니 여러 언어를 습득할 수 있었다.
“다치신 분이 계신가요?”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창수의 손짓에 나타샤는 목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외쳤다.
그러자 조잡한 석궁과 무기를 든 채로 천천히 다가오는 남자들이 보였다.
흡사 야만인 같은 외모였다.
인종은 슬라브인인 것 같았지만 동물의 가죽으로 된 옷을 몸에 걸치고 있었고 며칠은 씻지 못했는지 몸에서 냄새가 나고 있었다.
남자 한 명과 여자 하나 그리고 강아지가 있었다.
그리고 신기한 날개 달린 요정 같은 무언가가 있었다.
그 요정 같은 무언가에 살짝 놀라기는 했지만, 인간들과 함께 있는 것으로 봐서 그다지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인간들에게 있어서 가장 위험할지도 모를 존재가 이 요정같이 생긴 것이었지만 외모적으로는 무해해 보였다.
“여행객이시오?”
이런 세상에 여행객이 있을 리 없었다.
젊은 부부가 이리저리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것일 터였다.
힐끔 창수를 본 남자는 창수의 옆에 놓인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검을 발견했다.
커다란 멧돼지를 모닥불로 굽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사냥 실력이 제법인 듯했다.
물론 남자는 위화감을 느꼈다.
‘외모가 너무 깨끗해.’
뮤턴트 사태 전이야 수도꼭지만 틀면 차가운 물이든 뜨거운 물이든 쏟아져 나왔으니 매일같이 씻을 수 있을 터였지만 지금은 쉽지 않았다.
목욕도 쉽지 않으니 빨래는 더욱 힘들었다.
더욱이 떠돌아다니고 있었으니 입고 있는 옷이나 몸이 지저분해야 했다.
하지만 몸이 깨끗했다.
“능력자시오?”
“저는 아리안의 성녀라고 불립니다.”
“아리안의 성녀?”
여전히 석궁을 들고 있는 남자는 놀란 눈으로 미소를 띠고 있는 나타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도 아리안의 성녀가 어떤 존재인지 들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신비로운 기적의 힘을 사용해 다치고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 주는 성녀라고 했다.
물론 정말 신에게 힘을 받았다기보다는 엔젤의 부작용으로 인한 능력 변이일 터였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자신들의 동료 중에 다친 이를 도와줄 수 있는 능력자인 것이다.
“성녀님. 저희 동료 중에 다친 이가.”
“모두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나타샤는 지금도 계속 차오르고 있는 기운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남자들의 일행을 전부 치료해 주기로 했다.
물론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모든 사람들을 치료해 주고 나면 자기 자신이 되었든 자신의 몸이 되었든 원하게 되면서 덤벼들 것이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이다.
그때는 죄책감 따위는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커다란 살덩어리로 만들어 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죽지도 못하는 살덩어리들은 들판의 짐승들이나 뮤턴트들이 처리해 줄 터였다.
그렇게 나타샤는 어느덧 다가와 있는 남자의 팔 위에 자신의 손바닥을 대었다.
천천히 남자의 상태를 확인했다.
모험가들이 아무리 강인하다 한들 위험한 일을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이곳저곳이 아픈 법이었다.
그렇게 제대로 먹지 못하고 먹을 수 있을 때 폭식을 하는 이들은 자연히 위와 장이 좋지 않았고 나타샤는 장이 좋지 않은 사람의 장기에 기운을 불어넣어 주었다.
웬만한 불치병도 다 치료해 냈기에 그녀를 다들 성녀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몸에 난 상처조차 깨끗하게 치료해 버리는 그녀의 모습에 모험가들은 무척이나 놀랐다.
상당히 큰 부상을 입은 사내도 제때 치료를 하지 못해 상처가 덧이 나 있었지만 깨끗하게 치료가 되었다.
비틀린 뼈도 비만 오면 저리던 관절들도 마치 7살 먹은 어린아이 때의 것처럼 좋아졌다.
그런 나타샤의 능력이 탐이 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
“크윽! 이 개X끼가!”
한 사내의 팔을 작은 강아지가 물었다.
피가 흘러나올 만큼의 상처에 사내는 강아지를 죽이려고 했지만, 나타샤가 황급히 사내의 팔을 잡아 주었다.
상처는 오래지 않아 아물었다.
누가 보더라도 성녀의 애완동물이었기에 팔을 물린 사내는 화를 내기 힘들었다.
상처 또한 치료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내 더욱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 좋아. 이제 언어는 습득했군. 주인, 이 작자들이 사용하는 언어 알려 줄까?”
“어떻게?”
“아! 내가 흡수한 놈들 중에 신기한 능력을 가진 놈들도 있어서 말이지. 잠시만 기다려 봐!”
빅은 창수에게 다가와서는 혓바닥으로 창수의 뺨을 핥았다.
“…….”
마치 주인에게 애교를 부리는 강아지 같았지만, 창수는 알 수 없는 지식 같은 것이 머릿속으로 스며들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꽤나 신기한 능력이네. 흡사 마법 같군.”
“뭐, 절대적인 힘은 마법과 구분하기 어려운 법이니까.”
사내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알게 된 창수와 빅이었다.
“가…… 강아지가 말을?”
나타샤에게 치료를 받은 사람들은 경악을 했다.
“그런 능력이 있었으면 차라리 나타샤를 한 번 물면 되지 않나?”
“아직 다 흡수 못 했어. 그리고 쟤 능력은 그다지 얻고 싶지 않네.”
빅의 말에 창수도 동의를 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들에게는 축복으로 보였지만 저주에 가까웠다.
아니, 저주였다.
창수도 가득 찬 기운에 갑갑함을 느끼고서는 조용히 잘 살고 있는 뮤턴트를 하나 찾아서는 맨손으로 드잡이질을 하며 기운을 빼야 했다.
그렇게 성녀가 사람 말을 하는 강아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 신기하기는 했지만, 이해할 만한 일이기에 다들 억지로 납득을 하기로 했다.
“성녀님. 혹시 향하는 목적지가 있으십니까?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저희가 보호를 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창수가 있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조금의 예의가 남아 있어서인지 나타샤에게 물어왔다.
그런 사내들의 말에 나타샤는 창수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결정할 순 없었다.
창수가 가는 곳으로 따라갈 뿐이었기에 창수를 보는 것이었고 사내들도 그걸 알았는지 창수를 바라보았다.
“혹시 근처에서 엔젤을 파는 사람이 있소?”
창수가 엔젤에 대해서 묻자, 사내들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다가 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런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한 군데 의심이 가는 곳은 있소.”
“의심이 가는 곳?”
“그렇소. 웬 괴력을 가진 사람이 있는 곳인데 뮤턴트도 아닌 것이 인간인 듯한데, 괴력을 내는 걸 보면 아무래도 엔젤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데.”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전부 다 말해 주지도 않는 것 같았다.
다른 이들도 말을 꺼낸 남자가 어디를 말하는 것인지를 알아차리고서는 미소를 지었다.
창수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성녀가 창수를 의지하고 따라가는 것으로 봐서는 성녀의 남자였다.
창수를 이대로 죽여 봐야 성녀가 자신들을 원망하고 따르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에 창수를 자신들이 아닌 다른 괴물에 의해 죽게 만들려는 속셈이었다.
그런 속셈 따위는 창수도 알 수 있었고 성녀라 불리는 나타샤도 알아차렸지만, 창수가 죽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거대한 힘을 전부 받아낸 존재였다.
물론 일부는 덜어내었다지만 나타샤는 창수의 몸 안의 거대한 기운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이야 그런 힘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지만, 창수는 훨씬 거대한 힘을 사용할 줄 알았다.
이미 강력한 뮤턴트를 맨손으로 가지고 노는 창수를 보았던 그녀였다.
눈앞의 잔머리를 굴리고 있는 인간들 정도는 간단히 처리할 수 있을 터였다.
창수는 사내들이 이야기하는 괴력을 내는 인간에 대해서 호기심을 보였다.
“그에게 안내를 해 주시겠소.”
“그러지요. 그런데 조금 위험할 수도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상관없소.”
창수가 무엇 때문에 엔젤을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엔젤은 그 자체만으로도 꽤나 귀한 것이었다.
그렇게 창수는 모험가들이자 용병이며 상인이기도 한 이들의 안내를 받아 반쯤 허물어져 가는 성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다.
“주인.”
“그래. 뭔가가 있네.”
창수는 성 안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 도망가는데?”
아무래도 지능뿐만 아니라 능력도 있는 듯했다.
“간만에 기운 좀 빼겠네.”
창수는 도망가고 있는 무언가를 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