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0화
350화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물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적응을 해 나간다.
이제는 국경의 의미가 없어졌지만, 프랑스의 어디쯤일 터였다.
아직도 인간은 존재하고 있었다.
비록 일부는 인간의 모습을 한 다른 무언가로 변해 있었고, 인간이라고 해도 문명화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원시인적인 존재가 되어 있었다.
“할아버지. 옛날이야기 해 주세요.”
“옛날이야기 말이냐? 허허! 이 할아비가 너만 하던 시절에는 말이다.”
거대한 비행기가 하늘을 날아다녔고, 손바닥만 한 작은 통신 기기로 지구 반대편의 사람과도 대화를 나눌 수 있었으며, 온갖 소식들을 곧장 들을 수 있었다.
수억 명의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스포츠와 노래 그리고 각종 영화 및 드라마들이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오락을 즐길 수도 있었다.
하루에 세 끼뿐만 아니라 얼마든지 하루 종일 맛있는 음식들을 먹을 수도 있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할 것들이 넘쳐났고 하루 종일 식량을 구하러 다니는 일을 하지 않아도 식량을 살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었다.
“이 지폐 한 장으로 일주일 동안 먹을 식량을 구할 수 있었단다.”
“와! 엄청나다!”
노인은 해맑은 표정으로 감탄을 하는 자신의 손주를 보며 주름진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나오려고 했다.
지금에 와서는 너무나도 소중했던 과거의 추억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손주들은 그런 기억조차 체험해 볼 수 없을 터였다.
그것이 너무나도 안타깝기만 했다.
전쟁터 속에서도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울리는 법이었다.
오늘 죽을지 아니면 내일 죽을지 알 수 없는 세상임에도 아이들은 적응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노인은 자신이 알고 있는 기억과 지식들을 후세에 전하고자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그런 노인의 노력은 크게 효과가 없어 보였다.
“마녀를 잡았다! 마녀다!”
노인은 사람들의 거친 목소리에 한숨을 내쉬었다.
노인이라고 해서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젊은 시절에는 그도 꽤나 거칠고 난폭하게 살았다.
대학도 나오지 않았고 무식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그런 자신이 마을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젊은이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마을 주민들은 불안함과 공포를 외부로 돌리기 위해서인지 마녀 사냥을 했다.
학교 다니던 때에 교과서에서나 보던 마녀 사냥이, 자신이 살아 있는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옮지 않는 것이라고 아무리 설득을 해 봐도 소용이 없었다.
지켜 줄 남편이나 가족들이 없는 힘없는 여인이 목표가 되었다.
중세 시대의 마녀 사냥 때와 다를 바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뮤턴트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있어야 하건만 스스로 자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마녀가 아니에요! 나는 마녀가 아니야!”
“시끄럽다! 마녀! 우리 마을에서 안 좋은 일이 벌어지는 것은 다 저 마녀 때문이야!”
“맞아! 저 마녀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아파! 저 마녀가 물에 독을 풀어서 그래!”
불쌍하다고 여기는 이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이 마녀 사냥에 끼지 않으면 자신이 마녀로 몰리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기도 했다.
사실 부족한 식량으로 인해 입을 줄이기 위함도 있었다.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나이 든 여인들이 목표가 된 것도 그런 이유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그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지만, 자신들의 행동이 당연한 것이라고 굳게 믿는 이들은 결국 마녀를 죽이기로 했다.
“마녀를 죽여라!”
중세 시대 때는 나무 장작 더미 위에 올려놓고 불에 태워 죽인다거나 했지만, 지금은 그것도 사치였다.
“살려 주세요! 제발! 저는 마녀가 아니에요!”
나무에 묶어 놓고 돌을 들어 여인을 향해 던져 대었다.
“마녀야! 죽어라! 죽어!”
“아악! 악!”
여인은 쉴 새 없이 던져진 돌에 맞고 혼절을 했다.
차라리 죽어가는 순간까지 고통이나마 줄어들도록 기절을 하는 것이 다행일지도 몰랐다.
의식을 잃고 나무에 묶인 채로 늘어진 여인의 몸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마녀가 죽었다.”
죽음을 확인하지는 않았다.
확인을 할 필요가 없었다.
하늘을 올려다볼 수 없는 죄악을 저지른 이들은 누군가가 외친 죽었다는 말에 황급히 흩어졌다.
아직 옅은 숨을 내쉬고 있었지만 오래지 않아 죽을 것임을 다들 알고 있었다.
그렇게 살아 있다고 해도 굶주린 야생 동물에게 죽임을 당하게 될 터였다.
이내 피 냄새에 이끌린 무언가가 나타났다.
무언가는 죽어가고 있는 여인을 보게 되었다.
치료를 한다고 해도 살아남기는 어려워 보였다.
이미 전문적인 치료를 할 수 있는 병원도 의사들도 사라진 뒤였다.
“나타샤.”
“예.”
알 수 없는 기운이 몸 안으로 밀려들어 온다.
금이 가고 부서진 뼈가 다시 달라붙으며 몸 안에서 터진 핏줄로 인해 생긴 내부 출혈도 복구가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통이 가시자 여인은 신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나는 마녀가 아니에요. 나는 마녀가.”
그녀의 말에 어찌 된 일인지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세라핌.”
“알았어.”
치료가 된 여인의 몸에서 수백만 년 전에 스며들었던 엔젤이 뽑혀 나오기 시작했다.
상처투성이의 피부 상처는 사라졌지만 검붉은 피가 달라붙어 있었고 옷은 이곳저곳 다 찢어져 있어서 더 이상 옷의 기능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찢어진 옷 사이로 검은 털들이 자라났다.
오래지 않아 아담으로 변해 버린 여인은 의식을 회복했다.
하지만 더 이상 인간이었을 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자신의 앞에 있는 창수의 일행을 보고 여인은 화들짝 놀랐다.
그렇게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창수가 길을 열어 주자 여인은 숲 쪽으로 가면서 자신과 같은 동족을 보았다.
동족들은 나무나 바위 뒤에 숨어서는 창수의 일행을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동족들은 새로운 동족을 보고서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여인이었던 아담을 향해 손을 내저으며 빨리 자신들이 있는 곳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여인이었던 아담도 황급히 아담들에게 달려갔다.
이내 든든한 남자 아담들의 뒤에 숨어서는 창수의 일행을 바라보았다.
인간이었던 여인과는 달리 아담들은 뮤턴트에서 아담으로 변한 존재들이었다.
아담들은 자신들이 뮤턴트였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아담들은 한참 창수의 일행을 살펴보다가 숲속으로 사라졌다.
“인간들에게 버림을 받아 다시 받아들여지지 않을 바에는 아담으로 아담들과 함께 사는 것이 나을 거야.”
유럽만이 그런 것은 아닐 터였다.
지구 곳곳에서 마녀 사냥이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었다.
여인만이 아니었다.
노인들도 있었고 어린아이들도 있었다.
얼마 전에는 흑인이나 동양인도 마녀 사냥을 당하고 있었다.
이미 죽었다면 어쩔 수 없었지만 살아 있다면 살렸다.
하지만 살았다고 해서 본래의 사람들에게 다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젊은 남자였다면 그나마 생존을 위해 모험이라도 해 보겠지만 아이나 노인이나 약한 여자라면 그것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창수는 인간보다 아담이 자신들의 종족에 대한 포용력이 더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담들은 자신들의 집단이 아닌 떠돌이 아담도 자신들의 집단으로 받아들여 줬다.
다른 뮤턴트 종족이었지만 아담들은 서로의 집단을 만나자 큰 갈등 없이 하나의 집단으로 합쳐지는 것이다.
“저럴 때는 인간보다 낫군.”
“그러게 말이야. 오히려 저것이 더 행복할지도.”
여인의 뜻은 묻지도 않았다.
여인이 원치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원하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그녀의 뜻대로 도와줄 여력이 없었다.
최선은 아닐 터였지만 최악은 피할 수 있을 선택을 묻지도 않고 선택해 버린 것이다.
‘인간을 선택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때로는 역겹고 추악한 모습을 보이는 인간들이었다.
물론 모든 이들이 그런 건 아니었다.
그렇기에 창수는 인간들을 마냥 포기할 수는 없었다.
가까운 곳에 인간 마을이 있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하지만 굳이 그곳으로 갈 필요는 없어 보였다.
“가지.”
영국으로 건너가기 위해 계속 서쪽으로 향했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을 하게 될 것이었다.
가는 동안 점점 추악한 인간들을 보게 되었다.
* * *
“신을 믿지 않는 자! 심판을 받으리라!”
뮤턴트 사태 이후, 이전의 신들은 사라졌다.
아무리 불러 보아도 신은 대답을 하지 않았으니 그 누구도 신을 믿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신이 나타났다.
물론 지극히 로컬적인 신이었다.
아직은 아주 적은 숫자의 인간들만 믿고 있는 신이었고, 그 신에게서 강대한 힘을 받은 성직자들은 신을 숭배하지 않는 자들을 이교도로 여기며 죽여 나갔다.
“익스퍼트로군.”
자애롭지도 않고 인자하지도 않았다.
오직 죽음과 폭력만을 행하는 성직자들인지 사람들을 맨손으로 찢어 죽였다.
아직 마법사의 땅이라고 불릴지도 모르는 영국에 도착하기 전이었지만, 창수는 성직자들이 전쟁의 가장 선두에서 인간들을 사냥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사도의 부하들임은 분명했다.
12명의 사도가 있고 그중에 가장 강한 사도가 세계수의 묘목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창수는 확인을 하기 위해, 아니, 의미 없는 살육을 막기 위해 성직자인가 살인귀인지 모를 자들 앞에 섰다.
“무엄하구나! 신의 사자의 앞을 가로막은 죄는 오직 죽음뿐이다.”
자신들을 신의 사자라 칭한 존재들은 창수를 죽이려고 했다.
자비는 없었고 오직 죽음으로써 구원을 이루게 해 주겠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상대가 좋지 않았다.
솥뚜껑만 한 커다란 성직자의 손은 창수의 검에 간단히 베였다.
뚝! 뚝!
“사도의 부하들이냐?”
“네…… 네…… 네놈! 감히! 그분을 더러운 입에 올려!”
자신의 손목이 잘렸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모시는 신을 모욕한 창수의 말에 더 큰 분노를 느낀 것인지 남은 손으로 창수의 머리를 향해 내려찍었다.
인간뿐만 아니라 웬만한 뮤턴트도 온몸의 뼈를 다 부숴 버릴 만한 강력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성직자는 자신의 남은 손이 사라지는 것을 보아야만 했다.
“네놈들의 신이라는 작자가 시킨 일이 고작 이딴 일이냐?”
“신을 능멸하다니! 죽어라!”
두 손을 잃고도 광기에 찬 모습을 보이는 성직자였다.
“세라핌.”
창수는 인간이 아닌 한 마리의 짐승에게 죽음은 너무 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성직자는 신에게서 받은 권능과 힘을 잃고 보잘것없는 짐승이 되어 버렸다.
성직자와 신을 따르는 신도들은 그 광경에 경악을 했다.
“네놈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들이다. 다시 네놈들에게 기회가 찾아올지는 알 수 없지만 시작점으로 되돌아가라.”
세라핌의 날개에서 빛가루들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무자비한 죽음을 내리던 이들은 하나둘씩 아담이 되어 갔다.
“시…… 싫어!”
“신이시여! 저희를 구원하소서!”
“악마다! 사탄이다! 신을 모욕하는 짐승이다!”
다들 절규를 하며 아담이 되어 갔다.
몸에서 빠져나온 엔젤과 함께 그들의 광기 또한 몸 밖으로 빠져나갔다.
창수는 그런 그들을 보며 아담에서 인간으로 변이시킨 금이 어쩌면 광기를 의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백 마리의 아담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도버 해협이군.”
유럽 대륙에서 영국까지는 30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게임 같은 것이었으면 모든 12 사도들의 목을 베어서 모아야 할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이니 이 미친 짓을 한 놈의 목만 있으면 되겠지.”
창수는 영국 땅에 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