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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 의술의 신 (2) (3/210)


3화 : 의술의 신 (2)
2021.07.07.


‘헛것이 늘었어?’

진천우가 고개를 내렸다.

몇 번이나 확인했지만, 가슴을 가득 메운 붉은 격자무늬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 무늬도 나만 보이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면, 장 의원이 이게 뭐냐고 하지 않을 리 없었다.

그는 지금 무척 진지한 눈으로 손에 든 침을 노려보았다.

시술 전, 반드시 하는 정신통일.

지난 반년간 하루도 거르지 않는 행동에, 진천우는 과연 장 의원이라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는데.

[사기꾼이 불안하니까 정신을 집중합니다.]

[사기꾼의 사기 침술 성공도가 25%에서 30%로 증가합니다.]

“…….”

가슴 속 소중한 뭔가가 와장창 무너지는 느낌.

게다가 문제는 또 있었다.

‘성공 확률이 이 할 오 푼에서 삼 할로?’

풀이하면, 열 번 중 일곱 번은 실패한다는 뜻.

심지어 그게 정신통일로 늘어난 수치였다.

‘그럼 지금껏 내가 멀쩡한 건 뭔데?’

믿을 수 없었다.

이제 진천우도 조금씩 장 의원을 달리 보기 시작했지만, 믿음이 완전히 깨진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멀지 않았다.

균열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그 존재감을 키웠다.

“흠!”

그 순간, 장 의원이 정신통일을 마쳤다.

침을 든 손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처음은 기해혈(氣海穴)이다.”

기해혈은 기(氣)를 받아들이는 바다(海).

자칫 잘못 건드렸다간 큰 낭패를 볼지 몰랐다.

“기해혈은 몸의 정 중앙을 지나는 선에서 배꼽 아래로 일 촌 반 되는 곳에 있다.”

정신통일과 마찬가지로, 장 의원은 항상 침을 놓기 전 어디에 침을 놓을지 알려주었다.

진천우는 이것도 그가 다른 의원과 다른 대단한 점이라 여겼다.

그간 본 의원들은 딱히 어떤 말도 없이 침부터 놓기 일쑤였으니까.

[사기꾼이 소리 내 자기 최면을 겁니다.]

[사기 침술 성공도가 30%에서 50%로 증가합니다.]

“…….”

정말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믿던 게 생각지도 못한 이유로 박살 나는 경험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장 의원이 진천우의 배꼽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몸에 그려진 붉은 격자무늬가 크게 일렁거렸다.

그것들은 마치 폭풍을 만난 바다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더니, 잠시 뒤 못 보던 점들을 만들었다.

그중 유독 커다란 점 위에 작은 글자가 보였다.

-기해혈(氣海穴).

‘설마 이 무늬가 내게 혈 자리를 알려주는 건가?’

슥.

단침이 정확히 기해혈에 박혔다.

“아!”

갑자기 탄성이 튀어나왔다.

머리가 뻥 뚫린 듯, 엄청난 청량감이 밀려왔다.

‘겨우 침 한 번에?’

[‘의술의 신’ 발동 중에는 모든 치료 행위의 효과가 배가 됩니다.]

‘그게 말이 돼?’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 제 몸에서 벌어지는 일.

“다음은 거궐(巨闕). 거궐은 배꼽을 중심으로 위로 육 촌이다.”

처음부터 성공하자 기세가 오른 걸까?

장 의원이 곧장 두 번째 침을 놓았다.

그런데 그 위치가 격자무늬에 떠오른 거궐혈에서 한 치 정도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침이 반쯤 들어가자, 느닷없이 붉은 격자무늬가 검게 변했다.

“컥!”

그와 동시에 끔찍한 격통이 배를 강타했다.

장이 배배 꼬이는 고통에, 진천우가 몸을 들썩였다.

“아니, 왜 그러느냐?!”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침을 놓은 당사자도 기겁했다.

[‘의술의 신’ 발동 중에 치료 행위가 잘못되면, 고통도 배가 됩니다.]

‘누구 맘대로!’

한편,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장 의원은 오늘따라 진천우가 유난 떤다고 여겼다.

“쯧, 엄살이 심하구나.”

‘엄살?!’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나올 뻔했지만, 참았다.

아직 장 의원에 대한 믿음이 남아있었다.

대신 그는 머릿속으로 이 상황을 분석했다.

‘지금 반응을 봐서는, 장 의원은 방금 침을 잘못 놓은 걸 모른다는 건데? 설마 평소 시술 중 몇 번이나 아팠던 게 전부?’

그러고 보니 시술을 받을 때마다, 침 맞은 반대편이 이유 없이 쿡쿡 쑤시거나 느닷없이 몸에 한기가 돌았다.

하지만 장 의원은 침술의 효과가 돌면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부작용이라 설명했다.

진천우가 바보가 아닌 이상, 다른 의원이 시술할 때는 없던 부작용이 유독 장 의원이 시술할 때마다 나타나는 걸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리 없었다.

“거궐혈은 심장의 기운을 배에 나타내는 혈이다.”

“네?”

“조금 전 내 침이 거궐을 자극해, 막혀 있던 기운을 억지로 풀었단다.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고통이 뒤따르는데, 그게 이렇게 심한 줄은 몰랐구나. 아무래도 내 예상보다 훨씬 더 네 심장에 부담이 갔던 모양이다. 시술이 끝나면 바로 심장에 좋은 약을 새로 지어주마.”

“그렇……군요.”

“휴! 딱한 녀석.”

하지만 장 의원도 보통이 아니라서, 그때마다 어려운 말과 자상한 말로 위기를 넘겼다.

[사기꾼의 심도 있는 개소리를 경청했습니다.]

[스킬 ‘언변’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그러나 또다시 푸른 현판에 새 글귀가 나타났다.

마치 장 의원과 천하제일 타이쿤이 서로 옳다며 싸우는 것 같았다.

둘의 시시비비를 가릴 사람은 당연히 진천우였다.

“다음은 구미혈(鳩尾血)이다.”

변명을 끝낸 장 의원이 다음 침을 들었다.

이번에는 제 위치에 정확히 침이 박혔다.

“읏!”

조금 전의 격통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거기에 몸 전체가 기분 좋게 달아올랐다.

어찌나 편안한지 저절로 눈이 감기고, 마냥 이 기분을 음미하고 싶었다.

“다음은 기문혈(期門穴).”

“잠깐!”

진천우가 다급히 소리쳤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어느새 격자무늬가 검붉게 변했다.

장 의원이 막 단침을 넣으려는 곳은 ‘의술의 신’이 가리키는 기문혈에서 왼편으로 두 치나 치우쳐 있었다.

“왜 그러느냐?”

“제 기억으로는, 저번에 기문혈이라며 제 몸에 침을 놓으셨을 땐 거기가 아니라 오른쪽으로 두 치 더 깊게 들어갔습니다.”

“그랬나?”

“분명 그랬습니다. 전에 제가 시술 중 갑자기 재채기를 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때 옆구리가 너무 간지러워서라고 하자, 의원님께서 바로 여기가 기문혈이니 조금 간지러워도 참으라고 하셨습니다.”

“확실히 그랬던 것 같기도…….”

“틀림없습니다! 제가 시술 중에 웃었던 건 그날이 처음이라 똑똑히 기억합니다!”

사실 그런 기억은 없었다.

하지만 조금 전의 고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혀가 기름을 두른 듯 매끄럽게 움직였다.

스스로도 깜짝 놀랄 정도!

‘철들기 전부터 침상에 누워, 가족과 가솔들 말고는 제대로 대화도 해본 적 없는 내게 이런 말재간이?’

따로 짐작 가는 구석이 있었다.

[‘헛소리’를 시전했습니다.]

[스킬 ‘언변’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푸른 현판이 알려준 언변 능력.

이게 발동한 게 분명했다.

‘그럼 결국, 천하제일 타이쿤이 진짜라는 건가?’

이 상황까지 가고도 여전히 타이쿤을 의심하다니!

“잘 생각하니, 그때 일이 있고부터 내가 일부러 침을 다소 옆에 놓았었구나. 똑똑한 녀석! 그래, 이제는 안 가렵느냐?”

“물론입니다.”

장 의원이 대범하게 웃으며, 스리슬쩍 손을 오른쪽으로 옮겼다.

마치 다 알지만 널 위해 일부러 왼편에 치우쳐 놓았다는 듯이.

[사기꾼의 재빠른 개소리를 경청했습니다.]

[스킬 ‘언변’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아!”

제대로 된 혈도에 침이 들어가자, 또 탄성이 나왔다.

놀랍게도 몸이 다소 가벼워졌다.

겨우 그게 무슨 대수냐 싶겠지만, 평소 그가 손 하나 들기 버거웠다는 걸 생각하면 대단한 성과였다.

그때, 현판에 또 새 글이 떠올랐다.

[의선(醫仙)의 요상절초 십팔수(十八手)가 시전 중입니다.]

‘요상절초?’

자세히 보니, 현판 아래에 작은 글씨가 보였다.

[사기꾼이 화타의 청낭서를 얻었다는 말은 영 허무맹랑한 개소리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개소리는 개소리입니다.]

[그는 운 좋게 의선의 요상절초 십팔수의 전반부를 얻었습니다.]

[요상절초 십팔수는 급환, 큰 상처, 발작 등 다양한 응급상황 중 빠르게 육체를 진정시키는 특별한 침술입니다.]

그랬다.

진천우가 끝까지 장 의원을 믿고 타이쿤을 불신한 건, 어쨌든 그가 지난 반년간 확실히 성과를 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의원이 포기한 자신을, 장 의원은 놀라운 침술로 몇 번이나 구해주었다.

‘그렇다면 장 의원이 정말 나를 치료할 수 있을지도…….’

아직 포기하지 못한 실낱같은 희망.

그러나 곧바로 천하제일 타이쿤이 그 희망을 박살 냈다.

어설픈 희망은 절망보다 지독하기에.

[요상절초 십팔수는 어디까지나 응급조치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잠깐 병의 진도를 멈출 뿐, 병을 치료하지는 못합니다.]

[그마저도 이제는 병세가 너무 깊어, 사기꾼이 익힌 요상절초 십팔수의 전반부로는 이번을 끝으로 더는 효과를 볼 수 없습니다.]

‘그럼?!’

그런데 천하제일 타이쿤은 장난치기 좋아하는 성격인지, 병 준 다음 바로 약도 주었다.

[요상절초 십팔수가 제대로 시전되면 보상이 주어집니다. (4 / 18)]

[보상 : 요상절초 십팔수의 전반부와 사흘간 운신이 자유로운 몸]

분명 전반부는 이제 효과가 없다고 했는데 왜 보상으로?

하지만 진천우는 보상목록을 보고, 입가에 얇은 호선을 그렸다.

‘운신이 자유로운 몸?’

십 년 넘게 제 몸뚱이 하나 건사하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두 번째 보상은 다른 어떤 보상보다 각별했다.

첫 번째 보상 역시 실망할 필요는 없었다.

‘천하제일 타이쿤이 진짜라면, 이번 보상이 끝이 아닐 테니까.’

다음에도 또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그때는 병세를 호전시킬 뭔가를 얻을지도 몰랐다.

진천우는 살면서 언제나 절망만 느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눈앞의 작은 희망에 기뻐할 줄 알았다.

그는 곧바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궁리했다.

“장 의원님, 혹시 침을 놓기 전에 제게 어디에 놓을지 미리 짚어주시겠습니까?”

“사실 저도 장 의원님의 신선의 영역에 닿은 의술을 배우고 싶습니다.”

“제가 많이 부족하단 건 압니다. 하지만 곁눈질로나마 장 의원님의 의술을 배운다면, 조금이라도 병세를 호전시키는 데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디! 제발!!”

효과는 확실했다.

[‘잡소리’를 시전했습니다.]

[스킬 ‘언변’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개소리’를 시전했습니다.]

[스킬 ‘언변’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개잡소리’를 시전했습니다.]

[스킬 ‘언변’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천우의 말발은 말도 안 되게 유려해졌다.

특히 대단한 건, 그가 말할 때 자신의 의도는 뒤로 감추고 상대를 띄우는 데 여념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네가 그렇게나 간절하니, 들어주지 않을 수 없구나.”

결국, 장 의원도 큰 의심 없이 이를 수락했다.

이후로는 모든 게 일사천리였다.

진천우는 장 의원이 알려주는 위치가 격자무늬의 것과 다르면, 즉시 교묘한 말솜씨로 정확한 자리로 유도했다.

[요상절초 십팔수가 제대로 시전되면 보상이 주어집니다. (17 / 18)]

“이걸로 시술이 끝나는구나.”

생각보다 길어진 시술에 피곤했는지, 장 의원이 가볍게 고개를 꺾었다.

그는 곧바로 마지막 침을 들었다.

근 두 뼘에 가까운 엄청난 장침!

“이걸로 전중혈(膻中穴)을 찌를 거다.”

전중혈은 임맥에 속하는 중요한 혈 자리 중 하나.

“보통 장침을 놓을 때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찔러야 하지만, 이 시술은 그렇지 않다. 단숨에 장침을 밀어 넣을 테니, 절대 움직이면 안 된다.”

장 의원이 시술 전, 엄중히 경고했다.

그러나 진천우는 걱정하지 않았다.

전중혈의 위치는 양쪽 젖꼭지를 이은 선 한가운데.

유난히 찾기 쉬울 뿐 아니라, 미리 짚어준 위치도 타이쿤이 알려준 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해냈다!’

속으로 쾌재를 질렀다.

한편 장 의원은 진지한 얼굴로, 침을 놓을 최적의 자세를 취했다.

“셋을 센 뒤 찌르마.”

“알겠습니다.”

“하나!”

다시 말하지만, 이미 시술은 성공했다.

혹시 몰라 다시 살폈지만 그의 몸 어디에도 검은빛은 없었다.

‘어?’

그런데 대신 다른 빛이 보였다.

분명 전중혈이라 적힌 붉은 혈 자리 왼편에, 갑자기 오색 빛깔을 띤 점이 등장했다.

‘이건 또 뭐야?’

진천우가 급히 고개를 돌렸다.

현판에는 아무 글도 적히지 않았다.

‘하지만 오색 빛깔의 혈 자리라니! 누가 봐도 심상치 않잖아?’

“둘!”

문제는 시간이 없었다.

“자, 잠깐!”

“…….”

급히 장 의원을 불렀지만, 그는 과도하게 집중한 탓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어쩌지?’

이제 와서 저 혈이 뭔지 물을 틈은 없었다.

솔직히 가만있어도 시술은 성공이었다.

‘하지만!’

진천우는 몇 번이나 억지로 납득하려 해도, 오색 빛의 혈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건 도박이다.

그것도 아주 위험한 도박.

괜히 잘못되면, 간신히 성공한 시술도 망칠 게 분명했다.

당연히 진천우가 이걸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도.

“셋!”

“에잇!”

그는 장 의원이 셋을 세는 순간 주저 없이 몸을 틀었다.

“무슨 짓이냐!!”

뒤늦게 장 의원이 고함을 질렀다.

쑥!

그러나 이미 장침은 진천우의 몸을 파고든 뒤였다.

전중혈의 왼편.

바로 심장을 향해!

움찔움찔!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장침이 박히자마자, 발바닥 용천(涌泉)부터 정수리 백회(百會)까지 벼락이 꽂힌 듯 크고 빠른 기운이 샘솟았다.

“됐다!”

꽉!

진천우가 주먹을 움켜쥐며, 성공을 확신했다.

잠시 뒤, 무엇보다 확실한 보증이 눈앞에 등장했다.

[초월 달성!]

[초월 달성을 했기에, 기존 보상 외에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추가…… 보상?’

진천우는 급히 현판의 새 글을 확인하려 했지만, 끝없이 솟구치는 기운에 그만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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