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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 의선비록을 찾아라! (1) (4/210)


4화 : 의선비록을 찾아라! (1)
2021.07.10.


“으음……?”

“정신이! ……드셨습니까?”

눈을 뜨니, 양손으로 제 입을 막은 청년이 보였다.

저도 모르게 소리 지르려다 급히 다문 모습.

“소가주님……. 드디어 깨어나셨군요. 정말…… 정말 다행입니다!”

진씨세가의 충실한 하인, 현석이 모기만 한 소리로 연신 다행이다를 중얼거렸다.

“아아…….”

막 눈을 뜬 터라, 이런 배려는 상당히 고마웠다.

그런데 배려는 하나가 아니었다.

슥!

현석이 꿀물을 내밀었다.

“일단 속부터 푸시죠.”

“그래.”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니, 이 정도는 혼자 마실 수 있다.”

“알겠습니다. 아무튼, 다행입니다.”

“훗!”

진천우는 도통 안절부절못하는 하인의 모습에 낮게 웃으며, 꿀물을 넘겼다.

꿀꺽!

체온과 비슷해서 마시기 쉬웠다.

현석은 진천우가 처음 발작한 뒤부터 항상 품에 꿀물을 상비했다.

바로 지금처럼 제 주인이 눈을 뜨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기원하며.

“오늘은 부산 떨지 않는구나?”

“네? 무슨 말씀이신지?”

“어쩐 일로 내가 눈 떴는데 어머님과 장 의원을 부르러 가지 않는지 묻는 거다.”

세 번째 발작 후 진천우가 눈을 떴을 때, 현석은 말릴 틈도 없이 밖으로 내달렸다.

그 뒤 땀범벅이 되어 장 의원을 데려왔다.

그 정도로 성실한 하인이 계속 자리를 지키니, 의아할 수밖에.

현석은 곧바로 이유를 설명했다.

“사실 한 시진 전에 장 의원님이 혼절하신 소가주님을 진맥하고 돌아가셨습니다. 다행히 맥은 돌아왔으니 곧 정신 차릴 거라고, 정신이 들어도 큰 문제가 없으면 내일 낮에 다시 찾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랬구나.”

장 의원을 찾지 않은 이유가 밝혀졌다.

하지만.

“어머님께 무슨 일이 생겼구나?”

자신이 깨어났음에도 하인이 진가의 가모를 찾지 않은 이유는 되지 않았다.

흠칫!

주인의 물음에 현석이 잘게 몸을 떨었다.

이를 보고 진천우의 눈썹이 매섭게 올라갔다.

“무슨 일이냐?”

“소가주님……. 제발 진정하시고…….”

“어머님께 무슨 일이 생겼는지부터 말해라!”

“말하겠습니다. 전부 빠짐없이 말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흥분하지 마십시오.”

현석이 애걸복걸했다.

그는 자신이 혼나는 것보다, 행여 주인이 흥분해 다시 혼절할까 두려웠다.

“후!”

그 마음을 아는데, 어찌 더 화낼 수 있을까.

진천우가 애써 치솟은 눈썹을 내리고, 목소리를 낮췄다.

“이제 진정됐으니, 말하거라.”

“그게…… 가모님께서는 소가주님의 심장에 박힌 장침을 보시고 그만 혼절을……. 고, 곧바로! 장 의원님이 가모님을 진맥하시고 침을 놓으셨습니다. 가모님께서는 이미 정신을 차렸고, 지금쯤이면 침상에 드셨을 겁니다!”

하인이 제 주인의 눈썹이 다시 요동치려 하자, 급히 목소리를 높였다.

다행히 진천우가 걱정하는 최악의 사태는 피한 모양.

‘그래, 장 의원에게는 요상절초 십팔수가 있었지.’

타이쿤이 알려준 대로라면, 요상절초 십팔수는 최상급 응급비방이었다.

믿을 만했고, 믿어야 했다.

“아무튼, 어머님께서 이미 정신을 차렸다고?”

“네, 장 의원님께서 소가주님 심장에 장침을 박은 건 어디까지나 시술의 일환이니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가모님께서는 확실히 한결 나아진 소가주님의 혈색을 확인하고 안도하시며 돌아가셨습니다.”

“……알겠다.”

대충 상황 파악이 끝났다.

‘사기꾼의 언변이 이럴 때는 유용했군.’

제 심장에 장침을 꽂은 건 분명 사고였지만, 장 의원은 아무렇지 않게 어머니와 현석을 속였다.

‘결과적으로 어머님의 걱정을 덜어드렸다니, 천만다행이군.’

지금 진천우에게 가장 중요한 건 제 몸이 나아지는 것보다, 어머니께서 더는 마음고생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라면, 사기꾼 하나가 가문에서 날뛰는 것쯤은 우습게 넘길 수 있었다.

슥.

이불을 걷고, 몸을 일으켰다.

옆에 있던 현석이 화들짝 놀라며, 손을 뻗었다.

“부축하겠습니다.”

“이 정도는 혼자 할 수 있다.”

“그런……?”

제 주인이 정말 자기 도움 없이 혼자 몸을 일으키자, 하인이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병세가 많이 호전되셨군요. 역시 장 의원님은 대단한 신의십니다!”

“…….”

잠시 미간이 꿈틀거렸다.

이때 현석은 너무 기쁜 나머지 눈시울이 흐려져,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래, 장 의원은 확실히 신의지.”

진천우가 즉시 표정을 고쳤다.

이제 장 의원에 대한 신뢰는 천하제일 타이쿤보다 아래였다.

‘미꾸라지 하나가 진가에서 분탕 치는 꼴을 더 보고 싶진 않지만, 당장은 참아야 한다.’

그는 아직 쓸모가 남아있었다.

그러나 결코 오래 참지는 않을 거다.

‘그때를 위해 당장 중요한 일부터 처리해야겠지.’

진천우가 고개를 들었다.

허공에 푸른 현판이 빛나고 있었다.

[요상절초 십팔수를 제대로 시전해 보상이 주어졌습니다.]

[보상 : 요상절초 십팔수의 전반부와 사흘간 운신이 자유로운 몸]

[초월 달성으로 보상이 추가되었습니다.]

[추가 보상 : 의선비록(醫仙祕錄)]

“일단 나가자.”

그는 곧바로 하인이 건네는 두꺼운 장삼을 걸치고, 문밖을 나섰다.

* * *

덜컹!

늦은 밤, 진천우가 가문 서고를 찾았다.

그의 눈에만 보이는 현판이 이곳을 가리켰다.

‘어째서 서고에 의선비록이?’

그 의문을 해결하려면, 서고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따로 찾으시는 책이 있으면, 제게 시키면 바로 가져올 텐데…….”

그때, 뒤따라온 하인이 입을 열었다.

다소 상기된 얼굴.

그의 주인은 오늘, 근 석 달 만에 처소 밖을 나섰다.

당연히 걱정되지만, 그 이상으로 가슴이 뭉클했다.

사실 진천우도 티 내진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언제든 앉았다 일어설 수 있고, 아무 부담 없이 집안을 돌아다닐 수 있는 몸!

그가 그토록 원한 몸을, 타이쿤이 사흘간 허락했다.

하지만 이젠 이걸로 만족할 수 없었다.

‘암! 겨우 사흘이 아니라, 내 천형을 완전히 고쳐 진짜 건강한 몸을 되찾아야지.’

결심을 마친 진천우가 막 서고로 발길을 옮기려는데, 현석이 한마디 했다.

“진짜 다 나으신 겁니까?”

“음? 무슨?”

다 나았다니? 이게 무슨 소리지?

“장 의원님이 소가주님께서 조만간 병을 털고 일어나실 거라 하셨습니다!”

“장 의원이 그리 말했다고?”

잠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가 아무리 언변에 자신 있어도, 구태여 그런 말을 할 리가 없는데…….’

그런데도 그리 말했다면, 생각나는 이유는 하나뿐.

‘조만간 달아날 생각인가?’

진천우가 가볍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처음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빨리 장 의원을 정리해야겠군.’

그러기 위해서는 서둘러 의선비록부터 찾아야 했다.

슥.

서고에 발을 들이자, 현판에 새 글이 갱신되었다.

[의선비록을 찾아라!]

-진씨세가의 서고에 과거 의선(醫仙)이라 불린 신의의 비록이 숨겨져 있다.

[제한 시간 : 사흘]

[제한 횟수 : 세 번]

제한 시간?

횟수?

‘그럼 사흘이 지나면, 서고에 있는 의선비록이 사라지는 건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고민은 길지 않았다.

쓸데없으니까.

진천우는 즉시 서고 안으로 걸어갔다.

망설임은 없었다.

‘가문 서고에 보관된 책은 대충 천 권.’

이름난 명문가에 비하면 형편없겠지만, 중원 벽지의 약소가문치고는 상당한 양.

진씨세가는 대대로 문사 집안이었다.

적어도 근처 다른 어디보다 많은 서책을 보관했다.

그러나 진가가 그만큼 책을 모은 건, 비단 문사 가문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진천우는 철이 들기 전부터 천형을 앓았다.

어릴 적부터 방문을 나서는 것도, 쉽지 않은 그에게 책을 유일한 소일거리.

책이 없다면 온종일 천장만 바라봐야 했다.

-다 봤다. 다음 권은? 다른 책은?

진천우는 쉬지 않고 책을 읽었다.

딱히 내용이 궁금해 읽는 게 아니었다.

멍하니 침상에 누워있으면 한 가지 생각만 떠올랐다.

이대로 눈을 감으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는 게 아닐까?

그것을 떨치기 위해, 그는 마치 굶주린 짐승처럼 책을 읽었다.

읽고, 읽고, 읽고…… 몇 번이든 다시 읽었다.

당연히 그런 식의 독서가 몸에 좋을 리 없었다.

하지만 부모는 아들을 말리지 않았다.

아니, 말릴 수 없었다.

시체나 다름없던 아들이 유일하게 탐욕과 집착을 보이는 순간.

이때만은 진천우의 눈에서 희미한 빛이 흘렀고, 그들은 그 빛에서 희망을 구했다.

-천우야, 이번에 아비가 새로 가져온 책을 보렴!

-또 새 책을 구해왔단다!

-이건 북해의 책이라 내용이 좀 난해하지만, 우리 천우는 읽을 수 있겠지?

아들의 병을 고칠 의원을 찾기 위해 천하를 떠돈 진씨세가의 가주.

그는 힘든 여정에도 어떻게든 여비를 아껴, 귀하고 진기한 서책을 모았다.

즉, 진가에 보관된 모든 책은 이들 부자(父子)의 한(恨)이 서려 있었다.

덕분에 진천우는 병상에 누워 지낸 지난 십여 년간, 가문에 보관된 모든 책을 숙지했다.

‘그 천 권 중, 공맹(孔孟)의 도리를 제외한 책은 사백여 권.’

열 개 중 넷.

학자 가문치고 잡서의 비율이 지나치게 높았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현 가주의 노력과 정성이었다.

진천우가 서고 구석으로 들어갔다.

잡서로만 이뤄진 커다란 책장.

‘여기서 의술과 관련된 책은 다섯 권.’

그는 이 다섯 권의 위치를 정확히 기억했다.

‘책장 왼편 위에 꽂힌 두 권은 산과 계곡에서 구할 수 있는 약초 목록을 나열했고, 오른편 아래의 두 권은 각각 침과 뜸에 관한 내용이지.’

마지막 남은 한 권은 무림인들이 다룬다는 혈도에 대해 적혀있고, 책장 오른쪽 위에 있었다.

보통의 경우, 이 중 의선의 비록을 찾으라 하면 자연스럽게 침과 뜸에 관련된 두 권을 고를 것이다.

그게 아니면 예외성을 생각해, 혈도 책을 택할지도.

‘하지만 약초 책도 무시할 순 없지.’

맞는 말이다.

결국, 의선비록을 찾으려면 이 다섯 권을 모두 골라야 했다.

그러나 기회는 세 번뿐.

“…….”

진천우는 잠시 책장을 말없이 지켜보더니, 그대로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이 어디로 향할까?

왼편 위?

오른쪽 위? 아래?

그런데 앞으로 뻗은 손은 좌우, 위아래 어디로도 움직이지 않았다.

오직 앞으로.

덥석!

황당하게도 진천우는 따로 생각해둔 다섯 권이 아닌, 책장 한가운데 꽂힌 책을 집었다.

손가락 사이로 심하게 얇고, 낡고, 더러운 표지가 보였다.

얼마나 오래됐는지 제목은 지워지고 없었다.

그가 기억하기로, 이 책은 가문 서고의 모든 책을 통틀어 가장 잡서다운 잡서.

그걸 알고도 진천우는 망설이지 않았다.

서고에 발을 들이기 전부터, 의선비록이 어떤 건지 확신했으니까.

자신의 확신을 확인할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슥!

진천우가 책장에서 책을 뽑았다.

그와 동시에 타이쿤에서 지금껏 본 적 없던, 신비한 은빛 글자가 새겨졌다.

[‘오늘의 식단, 서른여섯 가지 - (유니크)’를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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