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 의선비록을 찾아라! (2) (5/210)


5화 : 의선비록을 찾아라! (2)
2021.07.12.


진천우가 손에 쥔 요리책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유니크?’

이 단어는 읽자마자 ‘아주 특별한’이라고 해석되었다.

하지만 타이쿤은 여전히 이 책이 의선비록인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아니, 이건 의선비록이야.’

진천우가 확신에 찬 얼굴로, 오늘의 식단을 펼쳤다.

[첫 번째 요리, 바다의 기운을 가득 머금은 국물 요리]

-국에 깔끔한 맛을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래의 세 가지 재료가 필요하다. 그중 첫 번째는…….

의심할 여지 없는 요리책 내용.

그런데 책을 읽을수록, 그의 표정은 어두워지기는커녕, 오히려 기쁜 기색으로 만연했다.

보통 사람은 허허벌판을 보면 황량함밖에 느끼지 못하지만, 장인은 자연스레 거기에 커다란 주춧돌을 놓고, 단단한 기둥을 세운 뒤, 다시 대들보와 서까래를 얹어 순식간에 멋진 집을 만든다.

그 또한 다를 바 없었다.

‘역시 이 책의 내용은 의선비록이 분명해.’

왜 이런 확신을 하는 걸까?

간단했다.

처음부터 조리법 곳곳에 단서가 깔려있었다.

-첫 번째 요리는 바다의 기운을 머금은 요리.

-기해혈은 기(氣)를 받아들이는 바다(海).

‘그리고 그 기해혈은 요상절초 십팔수의 첫 번째 혈도다.’

진천우는 지금껏 타이쿤이 알려준 내용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했다.

게다가 마침 그는 타이쿤 보상으로 요상절초 십팔수의 전반부를 획득했다.

‘처음에는 내게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걸 왜 줬나 싶었는데, 인제 보니 모든 게 하나로 연결된다!’

쓸모없는 보상인 줄 알았던, 요상절초 십팔수의 전반부는 다음 보상을 얻는 데 가장 중요한 단서였다.

아무리 진천우가 진씨세가에 보관된 모든 서책의 내용을 외웠어도, 요상절초 십팔수의 전반부를 익히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오늘의 식단, 서른여섯 가지’는 서고 구석에서 언제까지고 빛을 보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러나 이제는 달랐다.

오늘의 식단, 아니 의선비록은 지금 진천우의 손에 들려있었다.

‘첫 번째 요리에서 세 가지 재료가 필요하단 건, 침을 찌르는 방향을 말하는 건가?’

기해혈보다 좀 더 위쪽을 상기해(上氣海)라 한다.

반대로 아래를 부르는 명칭은 하기해(下氣海).

여기에 기해혈까지 하면 정확히 세 부분으로 나뉜다.

즉, 손에 들린 이 요리책은 단순히 혈도만 나열된 게 아니라, 그 상세한 사용법까지 적혀있었다.

그것을 깨닫자마자!

[의선비록의 이치의 일부를 습득했습니다. (1 / 36)]

[기존에 익힌 요상절초 십팔수의 전반부가 ‘의선비록’의 하위항목으로 흡수됩니다.]

‘이런 식으로 익히는 거구나.’

진천우가 즉시 다음 장을 넘겼다.

두 번째 요리는 닭 심장 볶음.

‘요상절초 십팔수의 두 번째 혈은 거궐(巨闕).’

거궐은 심장의 기운을 배에 나타내는 혈이다.

그래서 닭의 심장을 요리하는 거라면.

‘마라를 한 움큼이나 넣어 볶는다는 말은, 먹고 난 뒤 혀가 얼얼해지는 것처럼, 침을 놓은 부분이 은은히 데워질 만큼 깊숙이 넣으라는 거구나.’

[(2 / 36)]

이미 전반부를 익힌 덕에 진도가 빨랐다.

얼른 다음 장을 넘겨 세 번째, 구미혈과 관계된 요리를 확인했다.

[(3 / 36)]

[(4 / 36)]

……

열여덟 번째 요리는 부귀닭(富貴鷄) 혹은 거지닭(叫花鷄)으로 불리는 닭 진흙 구이.

이것과 관계된 혈은 전중혈로, 양 젖꼭지를 잇는 선 한가운데 위치했다.

전중혈은 울화가 주로 쌓이는 장소라, 몸속에 화(火)가 많을 때 여길 누르면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다.

‘닭에 진흙을 발라 굽는 부귀닭은 재료 전체에 불의 기운을 한껏 모으는 요리법이지.’

이때 진천우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가 장 의원에게 받은 시술에서 마지막에 침을 놓은 장소는 전중혈이 아니라 심장이었다.

물론 그때도 전중혈에 정답이란 의미의 붉은 격자가 떠올랐지만, 심장에 그보다 더 밝은 오색 빛이 흘러나왔다.

‘전중혈은 본래 상태가 안 좋을수록 심장의 화기가 모여 울혈을 만드는 곳. 그런데 내 경우, 거기가 아니라 직접 심장을 찔렀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좋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화가 쌓이다 못해, 아예 직접 화의 원천을 찔러야 할 만큼 상태가 안 좋았다는 뜻이니까.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굳이 원치 않았음에도 타이쿤이 눈앞에 나타나 답을 확인시켜주었다.

[정확히 의선비록의 절반을 습득했습니다. (18 / 36)]

진천우가 애써 마음을 추슬렀다.

아무튼, 드디어 절반을 익혔다.

잠깐의 안타까움을 메우고도 남을 성취감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다음 장! 얼른 다음 장을!’

이후부터는 따로 단서가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진천우는 기꺼이 지금껏 쌓은 지식을 태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밝히려 했다.

“소가주님.”

그런데 누구보다 진가의 충성스러운 하인이 갑자기 제 주인을 불렀다.

진천우가 뭔가 싶어 현석 쪽으로 고개를 들자.

“아!”

어느새 동이 트고 있었다.

한밤중에 서고에 왔으니, 꼬박 밤을 새웠다.

“날이 밝았구나.”

현석은 이미 용건을 마친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

둘은 굳이 입을 열지 않아도 서로의 의도를 눈치챘다.

‘아마 곧 어머님께서 처소로 방문하시겠지.’

그런데 만약 처소가 텅 비어있다면?

심지어 전날 심장에 장침을 박은 아들의 처소가?

‘지난 몇 달간 한 번도 방 밖을 나선 적이 없으니, 어머니께서는 내가 외출했을 거라 생각할 리 없다. 자칫 잘못하면 또 혼절하실지도 모른다.’

그건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좀 일으켜 주겠느냐?”

“당연히 제가 할 일입니다.”

진천우는 밤새 머리를 쓴 터라 부축을 부탁했고, 현석은 기쁜 마음으로 제 어깨를 내주었다.

휘청!

“조심하십시오.”

일어나니, 생각보다 훨씬 더 피로가 몰려왔다.

결국 그는 하인에게 업히다시피 해 간신히 처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운이 좋았다.

“천우야!”

막 침상에 몸을 눕히자마자, 어미가 가쁜 숨을 내쉬며 찾아왔다.

하마터면…… 조금만 늦었어도…… 정말이지 큰 소동이 벌어질 뻔했다는 사실에, 진천우는 조용히 제 가슴을 쓸었다.

* * *

서고에서 돌아온 지 만 하루가 지났다.

“제길!”

휙!

진천우가 소리를 지르며, 손에 든 책을 던졌다.

온종일 의선비록을 살폈지만, 성과가 없었다.

[(18 / 36)]

……정말 아무 성과도 없었다.

“…….”

처소 구석에서 이를 지켜보던 현석이 조용히 떨어진 책을 챙겼다.

그가 요리책을 품에 안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

진천우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네가 사과하지?”

“제가 눈치 없이 서고에서 소가주님을 불러서……. 어쩌면 그대로 놔뒀어야 했는데…….”

“헛소리.”

더 들을 것도 없었다.

“눈치가 없기는! 그때 네가 날 부르지 않았으면, 자칫 어머님이 또 쓰러졌을지도 몰랐다. 아니지. 어쩌면 내가 저번처럼 책에 빠져 정신을 잃었겠지. 너는 그걸 막아준 거다. 그런데 뭐가 죄송하다는 거냐?”

“그게…… 죄송합니다.”

“하아!”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다 나 때문이지.’

십여 년 전 발작으로 쓰러진 다음부터, 진씨세가는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가주는 의원을 구하기 위해 밖을 나섰고, 가모는 불쌍한 아들을 끌어안는 데 여념 없었다.

가문의 두 수장이 그러니, 다른 가솔들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특히 눈앞의 하인은 누구보다 열과 성의로 진천우를 챙겼다.

그런 현석에게 어찌 화를 낼까?

그는 자신이 화를 내면, 되레 제 주인의 몸이 상하지 않을까부터 걱정했다.

“주제넘은 말일지도 모르지만…… 조금 쉬시는 게?”

지금도 현석은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어떻게든 진천우에게 휴식을 권했다.

그 표정을 보니 절로 맥이 풀렸다.

‘그러고 보니 벌써 날이 저물었군.’

아침에 어머님이 떠나자 금방 장 의원이 찾아왔다.

그는 시술 중 몸을 비튼 일로 크게 역정 냈지만, 더 큰 소란 없이 넘어갔다.

그 뒤부터 진천우는 쉬지 않고 의선비록을 읽었다.

혹시나 놓친 부분이 있을까, 몇 번이나 꼼꼼히 살폈다.

‘그런데도 지금껏 요상절초 십팔수 후반부의 단초조차 찾지 못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시야를 바꿀 필요가 있었다.

“……소가주님?”

자신을 불안하게 쳐다보는 현석을 보며, 진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오늘은 일단 자고, 내일 생각하마.”

“지금 당장 침상을 정리하겠습니다!”

이만 쉬겠다는 말에 하인이 서둘러 방을 치웠다.

그는 정리를 마치면서, 조금 전 진천우가 던진 요리책을 몰래 챙겼다.

혹시나 주인이 밤에 따로 읽을까 염려해서였다.

진천우가 그 모습을 보았다.

‘허!’

헛웃음이 나왔지만, 혼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대신.

“아침에 올 때, 서고에서 약초학 상하권과 혈도 전도 그리고 기본의술서 상하권을 가져오너라.”

오늘은 확실히 쉬고 내일부터 다시 시야를 바꾸기 위해, 어제 미처 챙기지 않은 다섯 권의 잡서를 가져오라 명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현석이 밝게 답하며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힌 뒤에도 얼마간 콧소리가 들렸다.

“휴, 그럼…….”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가볍게 몸을 뉘었는데.

“…….”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역시나 지쳤던 모양.

짹짹짹!

창밖으로 시끄러운 새 소리가 들렸다.

“음!”

잠시 눈만 감았을 뿐인데 어느새 날이 밝다니.

진천우가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푹 잔 건 정말 오랜만인데?’

몸이 아프니 잠도 마음껏 잘 수 없었다.

새벽마다 온몸을 짓누르는 무게에 눈을 떠야 했는데, 지난밤은 말 그대로 잠에 깊이 빠졌었다.

덕분에 그리 오래 자지도 않았는데도 몸에 피로가 완전히 사라졌다.

새삼 타이쿤의 보상인 ‘운신이 자유로운 몸’이 얼마나 대단한지 깨달았다.

그때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소가주님. 현석입니다.”

“들어와라.”

현석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그릇을 쟁반에 받쳐 든 채 들어왔다.

진천우는 요리에 잠시 시선을 줬지만, 그 이상의 반응은 없었다.

그가 찾는 건 하나뿐이었다.

“내가 어제 가져오라 한 책은?”

“당연히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아침부터 드셔야죠.”

하인은 능청스럽게 침상 위에 상을 펴고, 그 위에 가져온 요리를 올렸다.

흰 자기에 담긴 맑은 국에서 은은한 향이 올라왔다.

꼬르륵!

보기만 할 때는 몰랐는데, 냄새를 맡자 몸이 반응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는 쭉 의선비록에 열중하느라 얼마 먹지도 못했지.’

결국 그는 졌다는 표정으로 숟가락을 들었다.

슥.

진천우가 한입 뜨는 걸 보자, 현석이 살짝 흥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맛이 어떤가요? 어젯밤에 일부러 자고 있던 숙수님을 깨워 부탁한 요리입니다. 왜 한밤중에 느닷없이 말린 조개를 찾냐고 국자로 한 대 맞았지만, 그래도 제법 맛있는 국물이 나왔다고…….”

안타깝게도 그의 열정적인 설명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국을 한 숟갈 뜨자, 어제 하루 내내 그렇게 갈망했음에도 모퉁이 하나 보이지 않던 푸른 현판이 눈앞에 나타났다!

[오늘의 요리, 서른여섯 가지 중 첫 번째 요리, ‘바다의 기운을 머금은 국물 요리’를 맛보았습니다.]

[의선비록의 이치를 습득했습니다. (19 / 36)]

[요상절초 십팔수의 후반부 ‘식의(食醫)’를 깨달았습니다.]

16550967176105.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