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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 관계 역전 (8/210)


8화 : 관계 역전
2021.07.19.


슥!

“음?”

조금 전까지 아무것도 없던 빈손에 뭔가가 쥐어졌다.

‘뭐지?’

천천히 손을 펴자, 커다란 붉은 옥이 보였다.

잡티 하나 없이 맑고 깨끗한 홍옥.

“와!”

저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진천우는 장신구를 몰랐다.

철이 든 이후 한 번도 가문 담장을 넘지 않았는데, 그런 걸 잘 안다면 도리어 그게 이상했다.

‘그런 내가 봐도 이게 얼마나 귀한 보물인지 알겠군.’

그만큼 손에 쥔 홍옥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윽한 빛은 다시 봐도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렇기에 의문이 들었다.

타이쿤은 왜 보상으로 자신에게 홍옥을 준 걸까?

‘분명 이게 대단한 보물인 건 알지만, 내게는 따로 필요하지 않은데?’

환자에게 값비싼 보물이 무에 필요할까!

차라리 이전에 받은 운신이 자유로운 몸의 기한을 늘려주거나, 아니면 아예 새로운 의술서나 약 같은 걸 줬다면 훨씬 더 기뻤을 거다.

진천우가 영문을 몰라 고개를 젓는데, 현판에 새로운 글이 갱신되었다.

[적천석(赤天石)]

‘적천석? 이 홍옥의 이름인가?’

붉은 하늘이라니, 심상치 않은 이름이었다.

역시 단순한 보석이 아닌 걸까?

그럼 적천석의 진짜 용도는?

안타깝지만 현판에 적힌 건 홍옥의 이름뿐이었다.

혹시 다른 설명이 숨겨져 있을까 싶어 몇 번이나 확인했지만, 그런 건 없었다.

‘또 수수께끼인가?’

재밌군.

꽈악!

진천우가 홍옥을 움켜쥐었다.

지금껏 타이쿤은 무엇 하나 그냥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 비밀을 풀면, 언제나 두 눈이 번쩍 뜨일 보상을 다시 내줬지.’

그러니 타이쿤이 아무리 난해하고 어려운 문제를 내도 진천우는 실망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해답을 찾고, 더 좋은 보상을 받으면 그만이니까.

꽈악!!

손에 좀 더 힘이 들어갔다.

그렇다고 옥이 부서질 정도로 움켜쥐진 않았다.

허나 진천우는 손에 쥔 보옥이 단순한 옥이 아니라, 언제나 예상 밖의 결과를 만드는 타이쿤 보상임을 간과했다.

핏!

순간, 옥에 가는 실금이 일었다.

“엇?!”

이를 본 진천우가 기겁하며 손에서 힘을 뺐다.

기껏 보상으로 받은 옥을 이렇게 부수다니!

그런데 그의 눈에는 제 손으로 보옥을 부순 놀람보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의아함만 가득했다.

“이게……?”

홍옥에 금이 간 순간, 현판이 몇 배로 커졌다.

거기에는 글이 아니라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그림은 얼핏 보면 ‘나무’처럼 보였다.

그림을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현판 쪽으로 다가가려는데, 문밖에 이쪽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당연히 현석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들어가마.”

충성스러운 하인이면 절대 주인의 허락 없이 벌컥 문을 열 리 없었다.

게다가 방문자는 문을 열자마자 크게 고함까지 질렀다.

“믿지 못할 소리를 들었다. 네가 정신이 들자마자 식당으로 갔다던데, 사실이더냐!”

거칠게 문을 연 장 의원이 크게 노한 기색으로 진천우를 노려보았다.

그는 우연히 근처를 지나다, 주방에서 일하는 시녀의 말을 들었다.

아침에 소가주가 먹고 싶은 게 있다며, 주방 책임자인 운 숙수를 닦달해 대량의 요리를 만들게 했다나?

“행여 탈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장 의원이 다시 한번 소리 질렀다.

누가 봐도 직업정신이 투철한 의원이 말 안 듣는 환자를 염려 하는 거로 보였다.

그러나 실제 장 의원이 진천우를 순수하게 걱정할 리 없었다.

‘앞으로 하루나 이틀이면 되는데!’

그는 따로 진씨세가에서 뭔가를 꾸미고 있었고, 그것은 곧 마무리될 참이었다.

‘그 준비만 끝나면, 바로 미련 없이 진가를 뜬다.’

그건 반대로 생각하면, 그 일을 끝마칠 때까지 장 의원은 진씨세가를 떠날 수 없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그 전에 진가의 소가주가 느닷없이 배탈로 죽어버리면?

장 의원의 입장이 매우 곤란해질 게 분명했다.

그는 급히 눈을 굴려 진천우의 몸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안색은 나쁘지 않군. 하지만 이 일을 이대로 넘기면 당장 내일이라도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른다.’

평소라면 이런 걱정은 하지도 않았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심장에 침을 잘못 맞은 뒤부터 갑자기 소가주의 몸이 좋아졌다. 그 몸으로 무슨 짓을 할지 모르지.’

이전에는 따로 사고를 치고 싶어도 몸에 힘이 없어 불가능했지만, 지금의 진천우는 언제 무슨 사고를 칠지 몰랐다.

그야말로 천진난만한 아이에게 날이 시퍼런 칼을 쥐여준 격.

그러니 장 의원은 이 기회에, 진천우가 앞으로 최소 며칠간은 어떤 헛짓거리도 못 하도록 아주 단단히 꾸짖을 참이었다.

“넌!”

손가락을 들어 진천우를 가리켰다.

최대한 무섭게 보이려고 쌍심지를 치켜세우고 목소리도 높였다.

“넌……!”

그런데 갑자기 장 의원의 목소리가 떨렸다.

목소리뿐 아니라, 기껏 세운 눈썹과 곧게 뻗은 손가락도 마치 폭풍을 만난 배처럼 사정없이 요동쳤다.

흔들리던 손가락이 슬쩍 아래로 내려갔다.

여전히 진천우를 가리켰지만, 엄밀하게는 그가 든 무언가를 향해.

“……그게 뭐냐?”

장 의원의 관심이 한눈에도 뭔가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는 홍옥 쪽으로 바뀌었다.

‘아차!’

뒤늦게 진천우가 제 실수를 깨달았다.

그를 보자마자 이것부터 숨겨야 했는데, 너무 갑작스러운 방문에 그럴 틈이 없었다.

“이건 진씨세가의 보옥입니다.”

그런데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거짓말이 튀어나왔다.

“진가의 보옥? 그런 게 있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구나.”

“그만큼 귀한 보물이기 때문입니다. 가문에서 이 보옥에 대해 아는 사람은 손에 꼽습니다.”

그리 말하며 진천우는 소매에서 붉은색 주머니를 꺼냈다.

어머니가 용한 점쟁이에게 아들의 건강을 빌며 받은 부적을 담은 주머니였는데, 때마침 이게 떠올랐다.

그는 천연덕스럽게, 주머니의 용도가 원래 이것인 양 적천석을 쏙 담았다.

‘어?’

그러던 중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분명 보옥에 실금이 갔을 텐데?’

주머니에 넣을 때는 홍옥의 실금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커다란 현판도, 거기 그려진 나무 그림도 함께 사라졌다.

“…….”

확인을 위해 다시 주머니에서 보옥을 꺼낼까 고민하는데, 이쪽을 뻔히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다.

‘안 되겠군.’

진천우가 섬뜩한 위험을 느꼈다.

탐욕에 정신이 뺏긴 자는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랐다.

“현석아!”

“네, 소가주님!”

다행히 조금 전에 현석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기척을 느꼈다.

주인의 다급한 목소리에 하인이 서둘러 달려왔다.

진천우는 손에 쥔 주머니를 침상 옆, 탁자 위에 둔 목함에 넣었다.

그리고 그걸 방금 막 처소로 들어온 현석에게 맡겼다.

그는 하인에게 목함을 맡기면서 단단히 당부했다.

“이걸 지금 바로 원래 자리로 갖다두거라.”

“알겠습니다.”

목함은 서고에서 가져왔다.

본래는 지필묵을 담는 용도지만, 장 의원이 이를 알 리 없었다.

그가 멀어져가는 현석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뭔가 결심한 듯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를 놓치지 않고 진천우가 말을 걸었다.

“의원님?”

“응?”

“방금 본 보옥에 대해서는 비밀을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아, 아! 그러지. 당연히 그래야지!”

뒤늦게 정신 차린 장 의원이 잠시 횡설수설했다.

방심했다.

‘잠깐이지만, 보물에 너무 눈이 팔렸어.’

설마 눈치챘을까?

“…….”

“……?”

‘다행히 그런 낌새는 안 보이는군.’

장 의원은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을 짓는 진천우를 보며 가슴을 쓸었다.

보통은 좀 더 의심할 텐데.

그는 은연중 진천우를 얕보았다.

철저히 갑과 을, 의원과 환자의 관계.

이것이 언제까지고 지속될 거라고.

이때 진천우는 최대한 감정을 숨기는 데 집중했다.

잘못하면 그대로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위기의 순간을 언변으로 잘 넘겼습니다.]

[특수한 상황에서 언변을 사용하면,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헛소리’를 시전했습니다.]

[스킬 ‘언변’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방금은 내가 봐도 나쁘지 않았다.’

이를 말인가!

오늘 처음 만져본 보옥이 가문의 가보라니?

진천우는 제 입에서 쏟아진 청산유수에 일일이 반응하는 장 의원을 보며, 지금껏 느낀 적 없는 희열을 맛보았다.

“참!”

그때 또 한 가지가 생각났다.

“보옥에 대해서는 현석은 물론이고, 어머님도 모릅니다.”

“현석이야 하인이니 모른다 쳐도, 진가의 가모조차 보옥에 대해 모른다고?”

“네, 그 보옥은 대대로 가주에게만 전해진 물건이라…….”

이래야 나중에 장 의원이 현석과 어머님을 귀찮게 하지 않을 거다.

물론 의심이야 하겠지만.

“흐음……. 알겠다.”

어차피 그가 그 이상 알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장 의원은 억지로 이해해야 했고, 잠시 뒤 현판에 다시 새 글이 갱신되었다.

조금 뜻밖의 글.

[‘잡소리’를 시전했습니다.]

[이제부터 장 의원을 상대로 ‘언변’의 숙련도는 극소량만 상승합니다.]

‘이제부터 숙련도가 극소량만 상승한다고? 어째서?’

그건 신호였다.

[현재 타이쿤 사용자와 장 의원의 언변 숙련도는 동등합니다.]

슬슬 의원과 환자의 관계가 끝을 고한다는.

이를 본 진천우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장 의원을 불렀다.

“장 의원님, 그럼 곧바로 침을 놔주시겠습니까?”

“응? 침?”

그가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자신이 여기 온 이유는 과식했을지 모를 환자를 살피기 위해서지, 따로 시술하러 온 게 아니었다.

그러나 진천우는 장 의원을 놔주지 않았다.

“실은 조금 전부터 갑자기 오한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곧 발작할 것 같습니다.”

“뭣? 왜 하필 지금?!”

사실 몸은 멀쩡했다.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마침 조금 전, 오늘의 요리 중 열여덟 가지를 모두 한입씩 먹었다.

식의의 효과를 시험할 절호의 기회!

“윽!”

진천우가 갑자기 신음을 흘리고 눈살을 찌푸리자, 장 의원이 화들짝 놀라며 소매에서 침 뭉치를 꺼냈다.

“이런!”

다른 방도가 없었다.

어쨌든 그는 당분간 진씨세가에 머물러야 했다.

그러려면 진가의 소가주가 멀쩡해야 했다.

“그럼 시술을 시작하마. 후우!”

장 의원이 즉시 손에 단침을 들었다.

첫 번째는 언제나처럼 기해혈부터.

“다음은 거궐, 구미혈이죠.”

“녀석, 이제 다 외웠구나. 하지만 집중해야 하니 조용히!”

장 의원이 가벼운 손짓으로 진천우의 입을 막고, 아주 천천히 기해혈에 침을 놓았다.

이때 진천우의 몸에 붉은 격자무늬가 나타난 지 오래.

“아!”

당연히 효과도 이전과 똑같았다.

아니, 그때 이상!

[‘의술의 신’이 발동 중입니다.]

[의선의 ‘요상절초 십팔수’와 ‘식의’가 동시에 시술됩니다.]

[같은 계열의 치료 행위가 중첩돼 효과가 배가 됩니다.]

하루 전에 똑같은 시술을 한 덕에, 이번에는 장 의원도 끝까지 실수하지 않았다.

시술이 끝나자 푸른 현판이 결과를 알려주었다.

[‘요상절초 십팔수’와 ‘식의’의 효과로 몸에 비틀린 균형이 상당수 해결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침술 시전자의 숙련도가 극히 낮은 관계로, 다음부터는 효과를 낼 수 없습니다.]

‘그렇군.’

진천우가 현판 내용을 확인하고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드디어 의원과 환자의 관계가 완전히 끝났다.

이제 둘의 관계는 하나뿐.

‘곧바로 갈아치워야겠군.’

바로 악독한 사기꾼과 이를 눈치챈 피해자의 관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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