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 : 최고의 하인 (17/210)


17화 : 최고의 하인
2021.08.09.


‘무슨?!’

진천우가 놀란 눈으로 제 가슴을 내려보았다.

으직! 으지직!

가슴 함몰이 끝이 아니었다.

양팔과 양다리, 거기다 온몸 근육이 차례로 찢겼다.

[대환단의 약성이 극도로 불안정한 신체를 조율합니다.]

[사용자에게 적용된 ‘운신이 자유로운 몸’이 ‘활력이 넘치는 몸’으로 바뀝니다.]

변화는 극적이었다.

이제는 당연하다고 여길 만큼 오랜 기간 몸을 짓눌렀던 무게감이 한결 가셨다.

‘이대로 땅을 박차면 그대로 날아오를 것 같군.’

물론 그럴 리 없었다.

하지만 그만큼 엄청난 해방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놀랄 일이 하나 더 있었다.

움찔!

“어?”

뱃속에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분명 처음 느끼는 감각이지만, 그게 무엇인지 바로 눈치챘다.

‘이건 내공?!’

그는 장 의원을 처리하면서 단전을 개방했지만, 내공은 전무했다.

그러니 이건 자신이 생전 처음 얻는 내공.

슥! 스르륵!

그것이 제 의지대로 움직였다.

이는 있을 수 없는 일.

진천우는 아직 어떤 심법도 익히지 않았다.

당연히 내공을 다루는 법 따위 알 리가 없었다.

허나 지금 그의 내공은 소림의 비전인 대환단에서도 특별히 정제된 기운으로, 사람이 날 때부터 지니는 선천진기에도 비견될 정순함을 지녔다.

‘그런데 그 양이 너무 적다.’

아무리 선천진기에 맞먹는 정순한 내공이라지만, 대환단을 삼키고 얻는 내공이 겨우 한 줌에 불과하다니.

‘널리 알려진 바로, 대환단으로 얻을 수 있는 내공은 무려 일 갑자. 설사 거기에 과장이 섞여 있더라도 한 줌뿐인 내공은 말도 안 된다.’

필시 다른 뭔가가 있다.

진천우가 그 무언가를 떠올리기 위해, 골똘히 생각하는 와중.

웅성웅성.

“음?”

갑자기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지?’

귀를 기울이자, 누가 크게 소리 지르는 게 들렸다.

“너희는 누군데 감히 진가에서 행패더냐!”

‘이 목소리는!!’

진천우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즉시 몸을 날렸다.

* * *

쾅!

“윽!”

지축을 흔드는 커다란 굉음에 현석이 눈을 떴다.

“여긴?”

낯선 천장이 보였다.

아니, 완전 낯선 건 아닌가?

대충 주위를 둘러보고, 이곳이 어딘지 알 수 있었다.

“약당?”

약당은 정기적으로 소가주의 약을 타오는 현석에게 제법 익숙한 장소였다.

하지만 이렇게 조용한 약당은 그도 처음이었다.

몸을 일으켜 주위를 살폈지만 아무도 없었다.

‘다 어디 갔지?’

순간, 현석은 무슨 일이 생겼다고 확신했다.

진씨세가의 약당을 책임지는 약당주는 아주 깐깐하지만 자상한 성격이다.

그렇기에 그는 언제 아플지 모를 소가주를 위해, 반드시 약당에 밤낮 상관없이 한 사람 이상을 대기시켜 놓았다.

‘그런데 어째서 한 명도 보이지 않는 거지?’

어제부터 혼절해 있는 현석이 맹에서 백풍대가 왔다는 사실을 알 리 없었다.

그 때문에 진가의 가솔들 전부 오월각으로 피신했다는 사실은 더더욱 알 수 없었다.

피신 중 누군가 현석도 데려가야 하는지 물었는데, 약당주가 고심 끝에 결정을 내렸다.

-의원의 말로는 다행히 큰 이상은 없지만, 정신을 차리면 격통이 밀려올 거라더구나. 그러니 억지로 깨우지 말고 약당에 남겨라.

“아무도 없으세요? 약당주님!”

약당주는 떠나기 전, 이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상했다.

그 결과 안심하고 떠날 수 있었다.

“윽!”

현석이 갑자기 아랫배를 움켜잡았다.

-설사 녀석이 정신 차려도, 통증이 심해 일어나지 못하고 얌전히 누워있을 거다.

그러나 통증으로 힘겨워하면서도, 현석은 어젯밤의 기억을 떠올렸다.

지난밤에 가문 서고에 숨어있다가 장 의원을 보았고, 그는 서고에서 수상한 짓을 하다 들켜서 소가주의 멱살을…….

“소가주님!”

현석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자리를 박찼다.

약당주의 예상이 빗나갔다.

그는 아픈 배를 부여잡고 무작정 약당 문을 열어젖혔다.

약당 밖에도 인기척이 없자, 현석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소가주님!”

하인은 제 주인이 걱정돼 미칠 것 같았다.

그래서 발걸음을 서둘렀다.

약방에서 소가주의 처소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가문 중앙을 차지한 커다란 정원을 가로지르는 것이었다.

“큭!”

정원을 절반가량 가로지르는데 다시 통증이 밀려왔다.

‘서둘러야 하는데…….’

겨우 이 정도 통증에 주저앉을 수 없었다.

그때 마침, 현석의 눈에 좋은 게 들어왔다.

제 키보다 훨씬 더 긴 대나무 장대.

정원 구석에 파둔 연못의 수면 위에 뜬 쓰레기 따위를 걷을 때 쓰는 건데, 누가 여기 팽개친 게 분명했다.

불편한 몸을 지탱하데 딱 좋았다.

현석이 장대를 주워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눈앞의 울창한 수풀만 헤치면 바로 소가주님의 처소였다.

쏴아아!

장대로 수풀을 헤치고 그 앞으로 넘어가려는데.

“넌 뭐야?”

“음?”

수풀 너머에 누군가 있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둘.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구지?’

평생 진씨세가에 몸담은 현석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여긴 진가의 담장 안, 그것도 소가주의 처소 바로 앞이다.

이런 중요한 장소에, 안 그래도 분위기는 뒤숭숭하고, 거기다 낯선 외인이 나타나면, 충성스러운 하인이 보일 행동은 하나뿐이었다.

“누구냐!!”

-그리고 현석 이놈이 혹시나 약당 밖을 나선다 해도, 설마하니 이 겁 많은 놈이 맹의 무사들께 감히 뭔 짓을 하려고.

약당주의 마지막 예상까지 아주 거하게, 아니 심각하게 틀려버렸다.

“웬 도적놈들이 감히 진씨세가에 온 거냐!!”

현석은 백풍대 무인을 싸잡아 도적이라 욕하고, 한술 더 떠 오만상을 찡그리며 대나무 장대까지 겨누고 말았다.

* * *

“당장 꺼지지 못해!”

“저놈은 뭐 하는 놈이지?”

“복장이나 말투를 봐선, 진씨세가의 하인이 아닐까요?”

“하!”

백풍대 무인이 헛웃음을 흘렸다.

살다 살다 이런 수모를 겪을 줄이야.

안 그래도 그는 기분이 좋지 못했다.

장 의원의 처소를 뒤지다 실수로 함정을 건드렸기 때문.

그로 인해 처소 아래, 숨겨진 통로 중 일부가 무너졌다.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

-시, 실수입니다.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라!

‘젠장, 그거 하나 실수했다고!’

그 상황을 떠올리니 절로 화가 났다.

아무리 제 실수가 명백하고, 그 때문에 백풍대에서 부상자가 나왔다지만, 그래도 그렇게 면박할 일은 아니지 않는가?

‘겨우 몇 명 다친 걸 가지고 감히 내게 소리를 질러?’

사실 자신은 백풍대 따위에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다른 어중이떠중이와 다르게 나름 명문 출신인 그는, 백풍대를 맹의 상층부로 가기 전에 거치는 곳으로밖에 여기지 않았다.

그러니 문제가 생기자 뒤도 보지 않고 물러났다.

오늘은 적당히 근처를 어슬렁거리다, 대주의 화가 풀릴 때쯤 돌아갈 생각이었다.

대주인 백청강도 차라리 없는 게 도움 된다며 그냥 내버려 두었다.

물론 녀석을 혼자 내버려 두면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니, 따로 사람을 붙였다.

이상의 이유로, 둘은 다른 백풍대 무인들이 한창 장 의원의 처소를 뒤질 때 따로 떨어질 수 있었다.

“당장 꺼지라니까!”

그런데 그들 앞에 진가의 하인이 나타났다.

무슨 도적 떼라도 만난 눈으로.

“저놈, 눈빛이 마음에 안 드는군.”

백풍대 무인이 인상을 찡그렸다.

감히 하인 주제에!

단단히 버릇을 고쳐주려는데, 억지로 따라온 후배가 이를 말렸다.

“선배, 상대는 무공을 모르는 범인입니다.”

“적당히 하면 되잖아.”

“절대 안 됩니다!”

무림인이 범인을 괴롭히는 건 수치스러운 일 중 하나.

특히 그들은 맹의 무인이었다.

맹의 무인은 누구보다 공명정대해야 했다.

한편 현석도 이 상황이 못내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진검대주님은 어디 계시길래, 세가에 외인이 돌아다니는 거지?’

사정을 알 리 없으니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제 주인이 걱정되었다.

아까부터 선배를 말리던 후배 무인이 이를 눈치채고 앞으로 나섰다.

“자자, 차근차근 사정을 설명해 줄 테니 그만 진정하게. 그리고 그런 장대는 우리에게 소용없으니까 내려놓고. 우리는 맹에 속한 백풍대 무인들이라네.”

그는 먼저 소속을 밝히며, 자신이 적의가 없음을 알렸다.

“맹의 백풍대?!”

현석이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게 맹은 그야말로 하늘 위의 존재였다.

그러나 너무 까마득해서일까?

“그런 분들이 여긴 왜? 어쨌든, 정원이 훼손되니 당장 나가주시기 바랍니다.”

현석은 급히 말투를 바꿨지만, 여전히 눈빛은 고까웠다.

아직도 그들이 도적이 아닐까 의심했다.

특히나 이곳은 소가주가 아끼는 정원.

그나마 진천우가 몸 상태가 좋아지면 꼭 한 번씩 들러 지친 마음을 달래는 장소였다.

그런 곳에 맹이고 나발이고, 외인이 활개 치게 놔둘 수 없었다.

“알겠네. 그 말대로 하지.”

이에 후배란 자는 얼마든지 시간을 들여 오해를 풀려 했지만, 선배란 자의 생각은 달랐다.

“흥, 이까짓 정원이 뭐라고! 자네도 뭐가 아쉬워 저런 놈의 말을 순순히 들어주는가?”

으직!

그가 가장 가까이 있는 나무의 굵은 가지를 수도(手刀)로 분질렀다.

어지간한 장사가 아니면 엄두도 못 낼 괴력.

‘이 정도 보여주면 알아서 겁먹고 달아나겠지.’

그런데 현석은 전혀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당장 그 정원수에서 손 떼지 못해!”

“음?”

당연히 겁에 질려 달아날 거라 생각했는데, 되레 장대를 높이 쳐들다니?

하필 그 나무는 진천우의 탄생수(誕生樹)였다.

제 주인이 태어난 날 진씨세가의 가주가 축복을 기원하며 심은 나무였는데, 유난히 현석이 정성 들여 키웠다.

그것을 오늘 생판 처음 보는 자가 수도로 가지를 벤 것이다.

“이 빌어먹을 도적놈이 그게 무슨 나무인 줄 알고!”

“뭐 빌어먹을? 이 자식이!”

백풍대 무인이 주먹을 들자, 후배가 기겁하며 그 앞을 막았다.

“선배!”

“이걸 참아주라고?”

“당연히 참아야지요!”

“하!”

후배의 단호한 어조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이를 갈며 뒤로 물러났다.

아니, 물러난 척한 거였다.

‘그래, 그런 방법이 있었군.’

놈은 뭔가를 꾸몄다.

마침 가장 귀찮은 후배는 자신보다 현석 쪽으로 바짝 다가가 그를 보호하는 데 여념 없었다.

이때가 바로 적기였다.

콰직!

그는 순식간에 눈앞의 나무를 박살 냈다.

“이 무슨!”

후배가 뜻밖의 상황에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놀랄 일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휙!

진천우의 탄생수가 박살 나는 순간, 현석이 몸을 날렸다.

“이 자식!!”

그는 그대로 도적놈에게 대나무 장대를 찔렀다.

제법 하인답지 않은 날카로운 공격!

하지만 상대의 백풍대 무인이었다.

“훗!”

눈에 뻔히 보이는 공격에 코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가 슬쩍 팔에 힘을 주자, 장대가 저 멀리 날아갔다.

“뭣?!”

“겨우 이런 거로 놀라면, 너무 섭한데?”

무인은 눈 깜짝 사이 현석의 품에 파고들었다.

뒤늦게 후배가 선배를 말리려 했지만, 한발 늦었다.

휙!

매서운 주먹이 현석의 복부로 날아왔다.

‘뭐, 죽이지는 않으마.’

후배가 보는 앞에서 무공도 모르는 범인을 죽이면 문제가 되니까.

그러나 이번에는 저놈이 먼저 ‘무기까지 들고’ 달려들었다.

‘이 경우, 사지 중 하나둘쯤 박살 내도 아무도 뭐라 못하겠지.’

처음부터 그런 명분을 쌓기 위해, 일부러 나무를 부숴 놈을 자극한 거였다.

퍽!

주먹이 단단히 배에 꽂혔다.

맞은 느낌도 제대로였다.

“아니?!”

그런데 백풍대 무인은 공격에 성공하고도 눈을 치켜떴다.

“소, 소가주님!!”

현석이 사색이 된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느닷없이 진천우가 나타나 저 대신 맞을 거라고 누가 상상했을까!

“큭!”

충격이 상당했다.

그러나 현석이 맞는 것보단 나았다.

녀석은 어젯밤까지 빈사 상태였다.

심지어 그때 당한 부위도 복부.

그 상태로 이런 공격을 맞았다간…….

역시 몇 번 다시 생각해도 자신이 대신 맞는 게 맞았다.

그런데 그로 말미암아, 아주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소가주님! 소가주님! 이런 말도 안 되는!!”

하인이 반쯤 정신을 놓은 채, 하염없이 제 주인을 살폈다.

이를 본 진천우가 현석을 진정시켰다.

“아니다. 넌 잘했다.”

그의 말에 거짓은 없었다.

“그래, 넌…… 정말 최고의 하인이다.”

오히려 칭찬이 부족할 정도.

진천우가 현석 대신 한 대 맞자, 눈앞에 타이쿤이 나타났다.

그것은 눈부신 황금빛 글자로 아직 끝나지 않은 대환단의 남은 보상을 알려주었다.

[초월 달성으로 기존 보상에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추가 보상 : 역근경(易筋經) - (레전드)]

[역근경은 달마가 저술했다는 의서(醫書)인 동시에 소림의 신체 강건법(强健法)입니다.]

[의선의 의선비록은 이 역근경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현재 당신의 몸에는 대환단의 약성 일부와 역근경의 이치가 녹아있습니다.]

[역근경은 매우 독특한 방법으로 수련 가능합니다.]

[‘맞으면서 강해지는 역근경’을 수련하겠습니까? (예 /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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