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 백풍대와 공동작업 (1)
(19/210)
19화 : 백풍대와 공동작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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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 백풍대와 공동작업 (1)
2021.08.14.
“내가 분명 진씨세가의 소가주는 건드리지 말라고 했을 텐데?”
백풍대 제구십구대 대주, 백청강.
뿌득!
그는 이를 갈며, 눈앞의 수하를 노려보았다.
“…….”
진천우를 공격한 무인은 아무 말도 못 했다.
애초에 말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마지막에 당한 박치기에 턱이 나갔다.
더 황당한 건, 자신이 왜 턱이 나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혼란 상태에 빠진 후유증이 생각보다 컸다.
퍽!
순간, 복부에 강한 충격을 받고 무릎을 꿇었다.
얼마나 빠른지 공격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쿨럭!”
내부가 진탕되었다.
그가 진가의 소가주에게 날린 것과 같은, 내공이 깃든 주먹이었다.
“일 년.”
백풍대주가 뜬금없이 기한을 말했다.
이를 들은 무인이 사색이 되었다.
“자, 자, 잠끄암!”
말을 부서진 턱 때문에 발음이 새는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덥석!
그는 아예 백청강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물어졌다.
이 자리에 끌려오기 직전, 차라리 죽었으면 죽었지 절대 추해지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 결심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무림의 태산북두인 소림에는 참회동(懺悔洞)이란 곳이 있다.
계율을 어긴 승려나 소림 무승에게 붙잡힌 악인을 가두는 장소로, 낮이고 밤이고 말없이 벽만 바라보며 지난 잘못을 반성하는 동굴이었다.
맹에도 이와 비슷한 참회관(懺悔棺)이 있었다.
하지만 그곳은 참회동보다 훨씬 심했다.
괜히 말미에 시체를 넣는 관(棺)을 붙인 게 아니었다.
제대로 눕기도 힘든 좁은 공간에, 삼시 세 끼 벽곡단만 먹으며 정해진 기한 동안 연명하는 장소.
한번 닫힌 입구는 정해진 기한이 끝날 때까지 절대 열리지 않았고, 그 안에서는 남은 기한도 알려주지 않았다.
맹의 무인이라면 당연히 보통 정신력이 아닐진대, 그런 그들도 참회관에서 몇 달만 지내면 반쯤 미쳐 돌아왔다.
“참회관에서 일 년간 견디며 참회해라.”
백풍대주가 제 바짓가랑이를 붙잡은 수하에게 지극히 차가운 눈길을 보냈다.
말이 좋아 참회지, 지금껏 참회관에서 일 년이나 보낸 이는 셋 중 하나꼴로 미쳐 돌아왔다.
“대, 대주, 지가 자모했습니다. 옹서히주시시오.”
부서진 턱에서 피 섞인 침이 흘렀다.
덕분에 발음이 샜지만, 잘못했다와 용서해달라는 말은 똑똑히 알아들었다.
그러나 늦었다.
처음부터 잘했어야지.
“잘 들어라.”
백청강이 옆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수하가 몇 장의 서류를 대주의 손 위에 올렸다.
“삼 년 전…….”
‘삼 년?’
뜬금없이 그건 또 뭔가?
그대로 대주의 말이 이어지자, 놈의 눈빛이 흔들렸다.
“삼 년 전, 네놈이 하북에서 임무를 수행 중 한 아녀자를 초주검으로 만들었다.”
“그건! 그뇬이 저느 흐개보며 모욕했기에…….”
“그래, 확실히 그녀는 네놈에게 음식이 든 그릇을 던지고 나가 죽으라고 소리쳤지. 하지만 그 여인이 그랬던 까닭은, 네가 그녀 남편의 팔을 잘랐기 때문이다. 너는 내게 그자의 팔을 벤 이유가 도적으로 착각해서라고 보고했지.”
“어굴함미다!”
“억울하다고? 그분들이 아니라 네가?”
“이미 후소조지까지 다 끄나지 아나슴니까!”
“후속 조치? 네놈 가문의 사람이 따로 처리한 그것? 난 그래도 돈이 많은 집안이니 거금이라도 쥐여 쥔 줄 알았다. 그런데 따로 조사해보니, 돈을 주기는커녕 젖먹이 아기에게 칼을 겨누며 협박했더구나.”
“…….”
놈이 입을 다물었다.
백청강은 그를 매섭게 노려보더니, 거칠게 다음 장을 넘겼다.
아직 읽지 않은 서류가 더 남아있었다.
“이 년 전, 장강 하류에서 뱃사공 노인을 구타했군.”
“그것 역시……!”
“그 노인이 네놈에게 맞고 얼마 안 돼 장독(杖毒)으로 돌아가셨다.”
“…….”
“반년 전에도!”
“…….”
놈은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었다.
설마 백풍대주가 이리도 철저하게 자신의 뒤를 조사할 줄 몰랐다.
“넌 그간 날 진심으로 모시지 않았으니, 당연히 나에 대해 몰랐겠지.”
수하의 죄목을 모두 밝힌 백청강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
그건 마치 화난 짐승의 숨소리처럼 낮고 깊었다.
“방금 말한 일 년은 어디까지나 이번 일에 대한 처벌이다.”
이번 일의 처벌로만 일 년?
“쿨럭!”
놈이 갑자기 피를 토했다.
조금 전 받은 내상에 심마(心魔)가 깃들었다.
“쿨럭! 쿨럭!”
기침은 점점 심해졌고, 그럴수록 바닥은 더욱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백풍대주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그는 이번 일을 절대 가볍게 넘길 생각이 없었다.
지금껏 이놈은 참 잘 피해왔다.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고, 조그만 틈새가 있으면 가문의 뒷배로 비틀어 간신히 처벌을 피해왔지만…….”
어제 일은 달랐다.
점혈 당한 채 모든 사건을 목격한 수하가 있었다.
저번처럼 가문의 뒷배가 막아줄 수 없었다.
“일 년이다. 이번 일로만 일 년!”
아마 이것도 그의 가문이 어떻게든 반년으로 줄이려 하겠지.
그리고 아주 높은 확률로 그 기한을 반으로 줄이겠지만.
백청강은 그마저도 예상하고, 몇 년에 걸쳐 제 손에 든 서류를 작성했다.
그가 선언하듯 말을 끝맺었다.
“기대해둬라.”
반년 뒤 네놈이 참회관에서 풀려나면, 나는 바로 삼 년 전 일로 새로 일 년을 추가할 테다.
거기서 또 나오면 이 년 전 일로, 그게 끝나면 일 년 전 일로!
‘최소 삼 년간은 참회관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가게 해주마.’
백청강은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몸을 돌렸다.
내기해도 좋았다.
삼 년 뒤, 저놈이 제정신이 아닌 거에 천금도 걸 수 있었다.
‘그러니 당장은!’
이미 끝난 수하의 처벌보다 수십 수백 배 더 중요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그는 걸음을 서둘렀다.
* * *
눈을 뜬 진천우는 깜짝 놀랐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머리가 맑았다.
‘두통이 사라졌어?’
그는 지난 십수 년간 지독한 두통을 달고 살았다.
그뿐 아니라 언제나 코와 입이 텁텁하고, 시야가 흐렸으며, 귀도 먹먹했다.
그런데 그 모든 게 말끔히 사라졌다.
눈앞에 푸른 현판이 평소보다 유난히 밝게 반짝였다.
[‘맞으면서 강해지는 역근경’의 수련을 성공적으로 끝내면서, 대환단의 남은 약력을 모두 정수리의 백회로 몰았습니다.]
[역근경과 대환단의 조화로 절맥 중 하나가 뚫립니다.]
[이후, 사용자의 백회혈(百會穴)이 영구히 개방됩니다.]
‘이렇게 내 절맥이 치료되다니!’
하늘이 내린 저주나 다름없던 천형(天刑).
그간 수많은 의원의 진맥을 받았지만, 모두 고개만 저었다.
‘그랬던 절맥이 개방되었다. 비록 아홉 개 절맥 중 단 하나지만.’
진천우는, 아니 그의 가족과 가문은 이 하나를 풀기 위해 모든 걸 바쳤다.
마침내 성과를 얻었다.
하나를 달성하면 그다음은 절로 따라오는 법.
그동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망망대해를 표류했다면, 이제 어디를 향할지 방향을 찾은 셈이다.
그에게 이 성과는 이루 말로 할 수 없이 값지고 컸다.
‘그럼 앞으로 내가 할 일은…….’
“소가주님?”
그때 문이 열리고 현석이 들어왔다.
하인이 목소리를 떨었다.
“깨어나셨습니까?”
‘그러고 보니 또 기절했었지.’
“그래, 깨어났다.”
진천우가 짧게 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륵!
현석이 느닷없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러더니 아예 주저앉아 펑펑 울기 시작했다.
“엉엉!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소가주님이! 엉엉! 소가주님이!! 크엉!”
하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진천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귀가 아팠다.
전부터 현석은 귀가 침침한 주인을 위해 언제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지금은 귀가 떨어질 것 같았다.
“그만…….”
“엉엉엉!”
“그만 그치래도!!”
뚝!
바로 울음을 그쳤다.
그치긴 했는데, 조금 놀란 표정.
그는 평소에 제 주인이 이렇게 큰 목소리를 내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통해 진천우는 깨달았다.
‘아무래도 백회를 개방한 덕에 오감(五感)이 예민해진 것 같은데?’
말 그대로였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까지 총 다섯 가지 감각이 전과 비교할 수 없이 예민해졌다.
이전에는 얕은 막에 몇 꺼풀씩 감싸져 있었다면, 지금은 그 막을 모두 걷어냈다.
‘멋지구나!’
진천우가 진심으로 자신의 변화에 감탄했다.
여긴 원래 이렇게나 밝았구나!
귀를 조금만 기울이면 처소 밖에서 이리도 많은 새와 풀벌레 소리가 들렸구나!
그리고.
“차를 가져왔느냐?”
“네, 소가주님이 언제나 드시던 거로 가져왔습니다. 지금 곧 준비하겠습니다.”
쪼륵!
현석이 조심스럽게 다기에 차를 따랐다.
‘이 녀석은 항상 이렇게 향이 진한 차를 가져왔구나!’
겨우 한 잔 따랐을 뿐인데, 방 안에 차향이 가득 퍼졌다.
전에는 그저 은은한 향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후룩!
차를 한 모금 마시자마자 저도 모르게 인상이 써졌다.
너무 썼다.
내가 이렇게 쓴 차를 마시고 있었구나!
슥!
그때 느닷없이 눈앞에 찻주전자가 들이닥쳤다.
놀라서 고개를 뒤로 젖혔는데, 막상 피하고 보니 눈앞에 아무것도 없었다.
“소가주님, 다시 차를 따르겠…… 엇?!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찻주전자는 여전히 하인의 손에 들려있었다.
오히려 현석은 막 차를 따르려다, 진천우의 뜬금없는 행동에 놀라 뒤로 물러났다.
‘어?’
순간 녀석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하나가 아니라 둘.
둘은 완전히 겹치지 않고, 미묘하게 달랐다.
‘오른발?’
탁!
현석이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조금 전에 겹쳐 보인 오른발부터.
“저……. 괜찮으십니까?”
‘이번에는 왼손.’
현석이 무척 걱정하는 얼굴로 왼손을 내밀려다가.
달칵!
“음?”
바깥에서 문을 여는 소리에, 내밀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분명 겹쳐진 모습에 현석이 고개 돌리는 장면은 없었다.
“천우야!”
새로 방문한 이는 진씨세가의 가모였다.
그녀는 간신히 가솔들을 오월각에 대피시키고 안도하던 중, 아들이 또 쓰러졌다는 소리에 급히 달려왔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설마 다시 발작이라도?”
이미 아들이 쓰러졌다는 소리에 억장이 무너질 것 같았다.
그런데 옆에 있던 현석이 자세한 사정을 설명하자, 생각지도 못한 감정이 올라왔다.
“뭐. 라. 고?”
맹의 백풍대가 제 아들을?!
도무지 참고 넘길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약하지만, 어미는 강했다.
진가의 가모는 당장이라도 백풍대주에게 달려갈 기세였다.
아마 그녀를 뒤따라온 시녀들의 만류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그랬을 거다.
“…….”
그런데 본래라면 당연히 가장 먼저 어미를 말려야 할 진천우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는 무척 진지한 눈으로 주위를 뚫어지게 관찰했다.
‘이게 백회를 개방한 뒤 오감의 각성과 함께 새로 얻은 내 능력인가?’
처음에는 몇 초 뒤의 미래가 보이는 줄 알았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하니 그게 아니었다.
자신의 눈에 보인 게 미래였다면, 중간에 현석이 왼손을 내밀다 말고 고개를 돌렸을 리 없었다.
아마도 자신이 새로 얻은 능력은.
‘관찰력?’
“어찌 그런!”
“죄송합니다. 제가 소가주님을 더 잘 보필해야 하는데…….”
그 증거로 당장 눈앞에 있는 어머니와 현석의 움직임이 때때로 겹쳐 보였다.
“가모님, 상대는 맹의 무인입니다.”
“이는 신중히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미와 함께 온 두 시녀는 전혀 겹쳐지지 않았다.
진천우는 처소 안의 사람들을 몇 번이나 번갈아 보다가,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모습이 겹쳐 보이려면 상대의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 어머님과 현석은 나와 오랜 기간 붙어있었기 때문에 사소한 습관 하나까지 기억해 쉽게 모습이 겹쳐지지만, 그 외 사람들은 그야말로 오감을 총동원해야…….’
흐릿!
진천우가 눈에 핏줄이 설만큼 노려보자, 드디어 시녀의 모습이 겹쳐졌다.
“소가주님? 제가 따로 하실 말씀이라도?”
뒤늦게 자신을 노려보는 시선을 눈치챈 시녀가 뒤로 한발 물러났다.
‘왼발.’
그녀가 왼발을 먼저 옮겼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진천우가 겁먹은 시녀를 진정시키며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당장 필요한 건 모두 얻었다.
좀 더 욕심을 낸다면.
‘이 관찰력이 무공을 익힌 무인에게도 통할까?’
아쉽게도 당장은 적당한 대상이 없었다.
진씨세가의 유일한 무사대인 진검대는 언제나 가문의 일로 바빴다.
또한, 이런 말하기 뭣하지만 그들은 수준이 많이 낮았다.
진천우가 원하는 건 정말 강한 무인에게도 자신의 관찰력이 통하는지 시험하는 거였다.
결국 진천우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진짜 어머니를 말려야 했다.
이대로 놔두면 그녀는 정말 백풍대주를 찾아갈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때!
“여기가 진 공자의 처소입니까?”
누군가 그의 처소를 찾았다.
백풍대주의 목소리였다.
“저자가 무슨 염치로 여길!”
어미가 이를 알아채고 분기탱천하며 문을 박찼다.
“마, 말려야…….”
“가모님!”
기겁한 시녀와 현석이 그녀를 말리러 뛰쳐나갔다.
진천우도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그런데 말리러 나간 하인과 시녀들이 입구 앞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가장 먼저 밖을 나선 진씨세가의 가모 역시 온몸이 돌처럼 굳어 그 자리에 멈췄다.
‘무슨?!’
이게 뭔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렸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세상에……!”
한 시녀의 저도 모르게 놀란 감정을 쥐어짰다.
백풍대 대주라는 자리는 절대 낮은 위치가 아니었다.
무림에서도, 천하에서도 틀림없이 한자리 꿰찰 위치.
그런 자리에 선 이가, 지금 그들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백풍대주……?”
진가의 가모가 간신히 입을 열었지만, 상대의 다음 행동에 다시 입이 얼어붙었다.
쿵!
백풍대주는 놀랍게도 흙먼지투성이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진씨세가의 모든 이에게 용서를 구했다.
“이번 일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책임자로서 용서는 구해야 하기에 이리 찾아왔습니다. 내가 진 공자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모두가 당황해 어쩔 줄 몰랐다.
하지만 진천우만은 착 가라앉은 눈으로 백풍대주를 노려보았다.
저 행동은 과연 진심인가? 위선인가?
사실 뭐든 상관없었다.
“방금 뭐든지 하겠다고 하셨습니까?”
진천우가 입꼬리를 아주 가볍게 비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