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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 백풍대와 공동작업 (2) (20/210)


20화 : 백풍대와 공동작업 (2)
2021.08.16.


“좋습니다. 용서하겠습니다.”

진천우가 백청강의 사죄를 받아들였다.

물론 그냥은 아니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백풍대주가 고개를 들었다.

분명 뭐든 들어주겠다 했다.

그 말에 거짓은 없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자신이 들어줄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맹은 천하에서 가장 강한 집단.

지금껏 이를 간과하고 감히 그 힘을 이용하려 한 자는 모두 용서 없이 짓밟혔다.

백청강이 착 가라앉은 눈으로 진천우를 올려보았다.

‘만약 터무니없는 조건을 내밀면…….’

바로 고개를 저을 거다.

다른 누구보다 진천우와 진씨세가를 위해.

대신, 그는 자신이 가진 가장 귀한 걸 내줄 생각이었다.

그건 진천우에게도 꼭 필요한 물건이라 확신했다.

“소가주는 내게 조건을 말해보시오.”

백풍대주가 연신 제 소매를 만지며 물었다.

잠시 뒤, 진천우가 입을 뗐다.

그런데 조건이 아니라 엉뚱한 질문이었다.

“장 의원, 아니 그 사기꾼은 찾았습니까?”

“음……?”

백풍대주는 바로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인상을 썼다.

반나절 넘게 놈의 처소를 뒤졌지만 이렇다 할 소득이 없었다.

이대로는 맹에 보고할 면이 서지 않았다.

진천우가 그 부분을 파고들었다.

“제 조건은…….”

“그런?”

이상한 조건.

“정말 그걸로 되겠소?”

백풍대주가 눈을 치켜뜨며, 조건을 다시 확인했다.

본래 자신이 내주려 한 것에 비해 형편없을 정도로 하찮은 조건.

정말 그걸로?

“충분합니다.”

진천우의 확신에 찬 대답에, 백청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잊고 있었다.

그가 진씨세가의 소가주와 어떻게 만났는지.

그때 자신이 그를 어떻게 느꼈는지도.

‘그는 역시 대인(大人)이다.’

“알겠소.”

백풍대주는 살짝 감격한 눈으로 상대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 * *

“바닥을 전부 뜯어라. 당연히 천장도 뜯고!”

“오른쪽 벽도 뒤져라. 아, 왼쪽 벽은 함부로 건드리지 마라. 함정이 있다.”

“제길! 기껏 숨겨진 통로를 찾았는데 실수로 무너트리다니! 통로 복구 작업을 서둘러!”

십여 명의 백풍대 무사들이 바삐 움직였다.

또한 그들은 쉼 새 없이 소리쳤다.

어물쩍거릴 시간이 없었다.

이미 반나절이 지났다.

거기다 부상자까지 나왔다.

“서둘러! 서둘러! 부상당한 동료 몫까지 우리가 해내는 거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닥을 뜯어내겠습니다!”

쩌저적! 쩍!!

무공을 익힌 무인은 범인의 몇 배에 달하는 신체 능력을 가졌다.

보통은 장정 십여 명이 필요한 일도, 그들은 두셋으로 끝낼 수 있었다.

별채의 바닥이 순식간에 거덜 났다.

맨 처음 바닥을 뜯어낸 무인이 소리쳤다.

“바닥 아래에 검은 보자기가 있습니다!”

“섣불리 건드리지 마라! 무슨 함정이 있을지 모른다!”

그들은 한껏 긴장하며 보자기 주위를 확인했다.

다행히 주변에 다른 함정은 없었다.

보자기 안에 따로 독도 없었다.

몇 번의 확인 끝에 안전하다는 확신이 들자, 마침내 보자기가 펼쳐졌다.

“이건?”

몇 권의 서책이 나왔다.

내용을 보니 무슨 장부 같았다.

하지만 군데군데 글씨를 뭉개놔서, 무엇을 기록했는지 알기 힘들었다.

“끄응! 이건 우리가 해독하긴 힘들겠군. 맹에서 사람을 보내주기로 한 건 어떻게 됐지?”

“조금 전에 사람을 보내겠다는 답신을 받았습니다.”

“그래?”

답신을 받았지만, 진씨세가에서 가장 가까운 맹의 지부까지의 거리를 생각하면 일러도 내일 점심 무렵이었다.

보고받은 무인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며, 손에 든 수상쩍은 장부를 다시 보자기에 넣었다.

그다음으로 바로 천장을 뒤졌다.

시간을 조금도 허투루 쓸 수 없었다.

이 순간에도 다른 동료들이 달아난 장가 놈의 흔적을 쫓고 있었다.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더불어 도둑맞은 학수선의의 보물을 찾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단서를 찾아야 했다.

이는 별채를 뒤지는 모든 백풍대 무인들의 염원이었다.

덕분에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전심전력으로 작업을 착수할 수 있었다.

“…….”

아, 두 사람만 빼고.

“소가주.”

수하들의 작업을 말없이 지켜보던 백풍대주가 입을 열었다.

“…….”

대답이 없었다.

“소가주?”

“…….”

다시 말을 걸어도 마찬가지.

지금 진천우는 아무 말 없이, 백풍대가 하는 일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만 봤다.

그것도 현석이 따로 가져온 의자에 편히 앉은 채로.

“천장에는 뭐가 없나?”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지 말고 확실히 뒤져.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에 뭔가 숨어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 구석까지 샅샅이 뒤졌습니다!”

두 명의 백풍대 무인이 머리에 먼지와 쥐똥을 뒤집어쓴 채 천장에서 내려왔다.

무려 맹의 무인에게는 어울리지 않은 일인 텐데도, 그들은 익숙한 듯 먼지를 털지 않고 바로 다음 작업에 착수했다.

“…….”

진천우가 그런 그들을 계속 쳐다보았다.

“……?”

“……!”

두 사람 모두 뛰어난 무인.

자신을 노려보는 시선을 모를 리 없었다.

하물며 그 시선이 마치 먹이를 노리는 짐승의 눈이라면.

먹이?

백풍대가?

진가의 소가주에게?

무인들은 말도 안 된다고 여겼지만, 아무튼 이 상황은 가만두고 보기 힘들었다.

허나 진천우 옆에는 자신들의 대주가 서 있었다.

-작업을 계속해라.

-하지만 대주…….

-계속하래도.

결국, 백청강의 서슬 퍼런 시선에 수하들은 몸을 돌렸다.

이런 적이 벌써 다섯 번.

그때마다 작업이 잠시 멈췄다.

‘더는 안 되겠군.’

“소가주!”

백풍대주가 다시 한번 진천우를 불렀다.

목소리에 미약하지만, 내공이 실렸다.

‘귀가 아니라 머리에서 소리가 울리면, 아무리 집중한다 해도 반응할 수밖에 없겠지.’

“…….”

‘아니?!’

그러나 진천우는 반응하지 않았다.

놀라운 일!

‘도대체 뭣 때문에 이리 집중하는 거지?’

백청강은 몰랐다.

설마 자신과 수하들의 호흡을 빼앗기고 있으리라고는.

‘제길!’

한참 뒤, 진천우가 속으로 욕지거리를 뱉었다.

그는 오감을 총동원해 백풍대를 지켜보았다.

과연 백풍대는 뛰어난 무인이었다.

이전에 아무것도 몰랐을 때와 지금 보는 것은 그야말로 천지 차이였다.

이들은 아무리 심하게 움직여도 호흡이 거칠어지지 않았다.

지친 기색은커녕,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몸속 깊은 곳에서 활기가 흘러넘쳤다.

진천우는 뒤늦게 그것이 내공의 기색임을 눈치챘다.

‘내공은 저런 식으로도 쓸 수 있구나.’

그것 외에도 알아챈 게 있었다.

‘이들 전원이 비슷하게 호흡하고, 비슷하게 발을 움직인다.’

처음에는 그게 이해되지 않았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고, 체구가 달랐다.

이처럼 전혀 다른 게 사람인데, 어떻게 호흡과 걸음이 비슷할 수 있지?

같은 환경에서 생활해서? 아니, 그런 거면 현석과 다른 가솔들도 비슷해야 했다.

뒤늦게 진천우는 이것이 같은 무공을 익혔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과연 맹이다!

‘맹의 무공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또 이들 역시 얼마나 노력했기에, 나이와 신분에 상관없이 전부 비슷한 호흡과 걸음을 할 수 있을까?’

진천우는 몰랐다.

확실히 백풍대 무인들도 대단하지만, 잠시 그들을 살핀 것만으로 이런 사실을 알아낸 자신도 보통이 아니란 사실을.

그러나 그는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무리 백풍대를 관찰해도, 이들 중 누구도 모습이 겹치지 않았다.

“휴!”

한숨이 나왔다.

거기에는 상대에 대한 감탄과 자책감이 섞여 있었다.

“소가주!!”

그때 백풍대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드디어 진천우가 이에 반응했다.

“받게나.”

“네?”

정신을 차리자, 눈앞에 웬 푸른 환약이 보였다.

“청명환(晴明丸)일세.”

삼 년에 열 개씩, 맹의 대주급에게 지급하는 요상단.

백청강이 본래 용서를 구하는 대가로 내놓으려던 물건이었다.

“소가주는 이따금 발작으로 정신을 잃는다고 했지. 청명환의 가장 큰 효과는 즉각적인 각성일세. 아무리 심한 상처도 이 한 알만 삼키면 반 각 내로 정신 차리지.”

“예?”

진천우가 놀란 눈으로 눈앞의 청명환을 바라보았다.

백풍대는 맹의 소속인 만큼 거친 일도 도맡아 했다.

그런 임무 중 정신을 잃으면?

즉시 정신을 깨우는 청명환은 그들에게 여벌 목숨과 다름없었다.

그만큼 귀한 걸 왜 내게?

백풍대주는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이걸 줄 테니 이만 물러나게.”

-제가 백풍대의 작업을 돕겠습니다. 그들과 함께 장 의원의 별채를 뒤질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게 내 조건입니다.

처음 이 조건을 들었을 때, 백풍대주는 일말의 기대를 품었다.

-여긴 제 집입니다. 그리고 저는 지난 반년간 장 의원과 함께 생활했지요. 어쩌면 저이기에 백풍대가 찾지 못하는 뭔가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잘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다른 삼대 무력단체와 다르게, 백풍대는 처음부터 감찰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집단이었다.

게다가 자신들은 이미 수년째 장가 놈의 뒤를 쫓았다.

그런 백풍대도 찾지 못한 녀석의 흔적을 진씨세가의 소가주가 찾는다?

‘내가 공에 눈이 멀어 잠시 판단을 그릇 쳤다.’

아쉽게도 진천우는 작업에 도움은커녕 명백히 방해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쪽을 보며 불편한 표정을 짓는 이가 늘어났다.

‘이 이상 소가주를 여기 두면, 틀림없이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백풍대주는 누구보다 영민하게, 그리고 모든 욕심을 버리고, 지금 가장 필요한 선택을 내렸다.

진천우도 그의 선택을 존중했다.

“확실히 제가 여기 더 있어봤자 방해만 되겠군요.”

“미안하네. 하지만 자네가 어떻게든 도와주려 했다는 걸 내 기억하겠네.”

빈말이 아니었다.

백청강은 진심으로 그리 여겼다.

다만 진가의 소가주는 그 능력이 안 됐을 뿐.

그러나 그건 큰 오산이었다.

“그럼 떠나기 전에 딱 한 군데만 제가 직접 찾을 수 있겠습니까?”

“굳이 그래야 하는가?”

“부탁드립니다.”

“흐음……!”

이제 그도 탐탁지 않아 하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한 가문의 소가주가 이리도 부탁하는데, 앞서 백풍대가 한 잘못과 상대의 면을 생각하면 아니 들어줄 수 없었다.

“알겠네. 단, 한 번만이네.”

대신 두 번은 없다.

이를 확실히 하기 위해 백풍대주가 조건을 내밀었다.

“만일 자네가 한 번에 놈의 흔적을 찾으면, 주기로 한 청명환을 두 알로 늘려주지.”

못하면 뭔가를 뺏는 게 아닌, 해내면 하나 더 주는 식으로.

그것이 맹이 사람을 부리는 방식이었다.

빼앗으면 원망을 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주기로 한 약속은 설사 해내지 못하더라도, 아쉬울망정 원망은 남지 않는 법.

“감사합니다.”

그의 예상대로 진천우는 해맑게 웃으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 모습을 대주와 다른 백풍대 무인들이 지켜보았다.

비웃음과 아주 약간의 기대.

이때, 진천우가 왼편 벽으로 걸어갔다.

“어……. 어……. 거긴?”

반대편 벽에 있던 백풍대 무인이 경고했다.

“아까 들었습니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지요?”

다행히 진천우는 상대가 뭐 때문에 소리쳤는지 알았다.

금방이라도 그에게 달려들려 했던 무인이 그 소리에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거기 튀어나온 돌기를 건들면 곧바로 건물이 무너집니다. 그러니 어서 뒤로…….”

“괜찮습니다.”

“네? 뭐가 괜찮다는 건지?”

그 순간, 입을 연 무인은 크게 후회했다.

낌새를 느낀 즉시 몸을 날렸어야 했는데!

퍽!

진천우는 누가 말릴 틈도 없이 제 앞의 돌기를 부서트렸다.

쿠쿵!

그와 동시에 건물 전체가 흔들렸다.

“이런 미친!”

“모두 대피해라!”

백풍대 화들짝 놀라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우왕좌왕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진천우는 조금 전까지 해맑게 올라간 입꼬리를 가볍게 비틀렸다.

그는 누구보다 장 의원이 성향을 꿰뚫고 있었다.

게다가 자신이 여기서 관찰한 건 백풍대만이 아니었다.

그들을 지켜보며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온 배경 또한 관찰 대상이었다.

그 철두철미한 장 의원이, 왜 한눈에도 함정임을 알아차리는 부자연스러운 돌기를 만들어 놓았을까?

‘어차피 그는 조만간 진씨세가에서 달아날 생각이었다.’

그럼 처음부터 떠나면서 이곳을 무너트릴 생각이었다면?

‘떠나면서 꼭 챙겨야 하는 게 있다면, 건물이 무너지는 순간에 챙겨가면 될 터.’

진천우의 생각이 옳았다.

눈앞에 푸른 현판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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