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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 새로운 퀘스트 (24/210)


24화 : 새로운 퀘스트
2021.08.25.


‘이건?’

진천우가 놀란 눈으로 알을 살폈다.

화륵!

맨 왼쪽, 검은 불꽃으로 이뤄진 알부터.

[패왕(霸王)의 알 - <화(火)속성> - (레전드)]

알 위에는 금빛 명칭이 있고, 아래에는 상세설명이 있었다.

하지만 설명 대부분은 글자가 깨져 읽을 수 없었다.

유일하게 읽을 수 있는 문장은 ‘필요조건 불충분으로 선택 불가’란 문구였다.

다음으로 알을 살폈다.

으직! 으직!

검은 나무껍질로 이뤄진 알에서 연신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자세히 살피니, 내부에서 뭔가가 끊임없이 차올랐지만 알의 형태를 유지하느라 그만큼 외부에서 부서지고 있었다.

나무 속성 알 역시 불의 알과 똑같이 ‘선택 불가’란 문구가 적혀있었다.

‘이것도 안 되는 건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설마 세 개의 알 전부?

서둘러 마지막 알을 확인했다.

찰랑!

검은 물로 이뤄진 알에서 뭔가가 꿈틀거렸다.

물고기 같기도 다른 무언가 같기도 한 그것은, 워낙 빨라서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다행히 물 속성 알의 설명란은 문제없이 읽어졌다.

[패왕(霸王)의 알 - <수(水)속성> - (레전드)]

- 튜토리얼 퀘스트를 완수한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

“음…….”

겨우 한 줄이라니.

기대한 것에 비해 설명이 너무 짧았다.

“왜 그러십니까?”

주인이 신음하자, 현석이 고개를 들었다.

화주가 꽤 독했는지 어느새 볼이 붉게 물들었다.

그러나 눈빛은 여전히 또렷했고 발음도 정확했다.

“너는…….”

진천우가 눈짓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눈치 빠른 하인이 즉시 그 시선을 따라갔다.

하지만 기대한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아니다.”

역시 세 개의 알은 자신에게만 보이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코앞에서 검은 불꽃이 넘실거리는데 저리 태평할 리 없지.’

“물 한 잔만 가져오겠느냐?”

“당장 가져오겠습니다.”

현석이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밖으로 나갔다.

그가 밖으로 나가는 순간, 진천우가 물로 이뤄진 알을 손에 쥐었다.

[‘패왕의 알(수속성)’을 부화시킵니다.]

쏴아아!

잠시 뒤, 알을 형성하던 검은 물이 바닥에 쏟아졌다.

신기하게도 바닥과 손은 전혀 젖지 않았고, 물속에서 꿈틀거리던 뭔가만 손에 남았다.

꿈틀!

기껏해야 새끼손가락 크기였는데, 하마터면 손에서 놓칠 정도로 강한 생명력이 꿈틀거렸다.

꿈틀꿈틀!

그러니까 진짜 꿈틀거렸다.

손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진천우가 잠깐 당황했다.

살짝 차갑고 매끈한 몸체.

처음에는 뱀이 아닐까 했는데, 벌어진 손가락 틈으로 튀어나온 두 개의 더듬이가 보였다.

‘이건…… 애벌레?’

[만독(萬毒)의 주인, ‘독고(毒蠱)’를 펫으로 들이겠습니까?]

“독?”

그다지 기분 좋은 울림이 아니었다.

하지만 손안의 벌레를 품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그에게 없었다.

그랬다면 처음부터 이 알을 붙잡지도 않았을 것이다.

[독고를 펫으로 들였습니다.]

[천하제일 타이쿤의 하위 타이쿤, ‘영물(靈物) 마스터’가 개방됩니다.]

독고는 선택받자마자.

꿈틀!!

무슨 무공 고수가 신법을 사용하듯, 몸 전체를 활처럼 튕겨 순식간에 소매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이제 제 것이라 여겼기 때문일까?

“하하하!”

진천우는 그 모습이 어처구니없으면서도 제법 귀여웠다.

* * *

꿈틀! 꿈틀!

농담이 아니라, 이 작고 검은 미물은 생각 이상으로 귀여웠다.

좀 더 정확히는 기특하다고 할까?

슥, 꿈틀? 슥슥, 꿈틀?

‘진짜 영물이구나!’

독고는 진천우의 다리 맡에서 몸을 세우더니, 그대로 주인의 손가락을 따라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안 그래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커다란 자색(紫色) 눈이 제 손끝만 집중하니,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슥!

잠시 한눈판 사이 독고가 다시 손 위로 올라왔다.

처음 소매에 들어갔을 때도 느꼈지만, 움직임 하나는 정말 재빨랐다.

녀석이 손가락 사이로 파고들었다.

스윽!

잠시 뭘 하려는지 지켜보는데.

스윽!

‘이거…….’

스윽!

아무래도?

‘쓰다듬어 달라는 건가?’

슥!

진천우가 반신반의하면서 손가락 끝으로 독고의 머리를 살짝 문질렀다.

꿈틀꿈틀!

마음에 들었는지 녀석은 쓰다듬을 받자 눈을 감더니, 그대로 손가락에 몸을 비볐다.

반짝!

“음?”

순간 독고의 몸이 검게 반짝이더니, 눈앞에 현판이 나타났다.

[독고의 호감도 +1]

[펫과의 교감에서 호감도는 아주 중요합니다.]

[자주 쓰다듬어 주거나, 맛있는 음식을 주어 호감도를 쌓으세요.]

‘펫이라…….’

처음 보는 단어였지만, 이전에도 그러했듯 바로 이해되었다.

독고는 이제 ‘내게 속한 생명체’가 되었다.

슥! 스윽!

몇 번 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독고의 호감도 +1]

[독고의 호감도 +1]

[독고의 호감도 –1]

‘응?’

분명 똑같이 머리를 쓰다듬었는데, 마지막에 호감도가 내려갔다.

[살아있는 생명체의 변덕은 쉽게 예상할 수 없습니다.]

‘무작정 반복하는 게 능사가 아니란 건가?’

아무래도 타이쿤에 너무 익숙해졌나 보다.

‘말을 키울 때도 매일 세 끼 여물을 먹이는 건 물론이고, 위로는 갈기를 쓸고 아래는 발굽을 관리하기까지 어디 하나 소홀함 없이 정성을 다해야 하거늘, 잠시 현판에 눈이 멀어 기본을 간과했구나.’

휙! 휙!

반성하는 진천우의 눈에, 독고가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게 보였다.

마치 이제 쓰다듬는 건 필요 없다는 듯.

하여간 여간내기가 아니었다.

그런데 한참 고갯짓하던 녀석이 갑자기 몸을 움츠렸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자니.

‘설마 배고픈 건가?’

정말이었다.

[독고가 배고픈 모양입니다.]

[뭔가 먹을 걸 줘보는 게 어떨까요?]

[독고는 단 걸 좋아합니다.]

“하!”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설마 손가락만 한 애벌레가 이렇게나 감정이 풍부할 줄이야.

그나저나, 단 것?

“이거면 될까?”

진천우는 현석이 가져온 다과 중 하나를 집어 앞으로 내밀었다.

꿈틀?

독고는 처음에는 그게 뭔지 탐색하듯 노려보더니.

꿈틀!

먹을 거란 사실을 알아채고, 엄지손톱 크기의 다과를 낚아챘다.

사각사각사각!

녀석은 마치 잎사귀를 갈아 먹듯이 다과를 야금야금 삼켰다.

[독고의 호감도 +5]

꿈틀?

독고가 먹다 말고 갑자기 이쪽을 바라보았다.

한참 먹었지만 여전히 다과의 반의반도 먹지 못했다.

“난 신경 쓰지 말고 계속 먹거라.”

끄덕.

사각사각!

“후후!”

또 웃음이 나왔다.

딱히 별걸 한 것도 아닌데, 그냥 지켜보기만 해도 입꼬리가 올라갔다.

‘타이쿤은 이 녀석이 만독의 주인이라고 했는데.’

정말일까?

지금까지의 모습을 보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뚝!

독고가 또 다과를 먹다 말고 움직임을 멈췄다.

이번에도 고개를 들어 자신을 볼 줄 알았는데, 녀석은 입에서 검은 액체를 만들더니 그걸 다과 위에 한 방울 떨궜다.

치익!

물방울이 그대로 다과를 녹였다.

‘어?’

너무 뜻밖의 광경이라 잠시 반응이 늦었다.

그러나 다과가 녹으면서 내뿜는 검은 연기와 시큼한 냄새가 정신을 깨웠다.

‘독?!’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급히 창과 문을 열어 환기시켰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도 눈앞이 흐려지거나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중독 증상은 없었다.

꿈틀?

독고가 끄트머리만 남은 다과를 든 채, 이쪽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갑자기 엉뚱한 짓을 하냐는 듯이.

치이익!

그 사이, 녀석은 남은 다과를 완전히 녹여 먹었다.

[독고의 호감도 +5]

‘정말 다과를 먹으려고 독을 쓴 건가?’

그렇지만, 단순히 식사하는 데 독을 사용하다니.

그제야 눈앞의 벌레가 만독의 주인이라는 게 확실히 와닿았다.

“소가주님, 물 가져왔습니다.”

그때 현석이 커다란 호리병을 들고 돌아왔다.

“왜 입구에 서 계십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진천우가 재빨리 몸을 돌려, 하인의 시선을 자기 쪽으로 돌렸다.

그런 뒤 현석이 보지 않는 쪽으로 빠르게 손을 흔들었다.

지금껏 독고가 보여준 행동을 생각하면, 틀림없이 이 손짓을 알아들을…….

휙!

갑자기 소매가 무거워졌다.

영리한 녀석!

‘일단 독고에 대해서는 나만 아는 거로 하자.’

딱히 현석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자신조차 독고가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기에, 확실해질 때까지 숨기려는 것뿐.

“저……?”

“일단 한 잔 다오.”

“네? 네.”

현석은 여전히 의아한 눈치지만, 진천우가 손을 내밀자 바로 따로 가져온 잔에 물을 따라주었다.

꿀꺽꿀꺽!

물은 시원했지만, 여전히 화주의 취기가 다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직후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정신이 바짝 돌아왔다.

꿈틀?

분명 소매 안에 있어야 할 독고가 왜 저쪽에?

“소가주님, 갑자기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제 등 뒤에 무슨 귀신이라도 있는 것처럼…….”

귀신이 아니라 벌레가 있지!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보다 물 좀 더 다오!”

현석이 진천우의 표정을 보고 고개를 돌리려 하자, 급히 빈 잔을 앞으로 내밀었다.

‘당. 장. 돌. 아. 와!’

혹시나 하인에게 들킬까, 소리 없이 입을 뻐끔거렸다.

꿈틀?

다행히 이것도 알아들은 눈치.

독고가 자색 눈동자를 일렁이며 자신을 쳐다보았다.

‘뭐 하는 거야? 돌아오라니까!’

“소가주님?”

아뿔싸!

당황과 짜증 그리고 분노로 잔을 쥔 손이 떨렸다.

이를 본 현석이 무슨 일이냐며 다시 고개를 뒤로 돌렸다.

“안 돼!”

“뭐가 안 된다는 겁니까? 도대체 제 뒤에 뭐가 있다고……. 아무것도 없잖습니까?”

현석이 고개를 돌렸지만 등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찰나의 순간, 독고가 빠르게 몸을 날렸다.

꿈틀!

‘야!’

그런데 하필 현석의 어깨 위로!

저 녀석은 무슨 생각으로 저기로 올라간 거야!

뒤늦게 진천우는 독고가 하인의 어깨 위에 올라간 것 따위, 아무 문제도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지금 녀석이 하려는 일과 비하면 말이다.

콱!

“아!”

짝!

독고가 현석의 목덜미를 물었다.

놀란 하인이 반사적으로 제 목을 쳤다.

“소가주님?”

정확히는 목을 치려 했는데, 그 전에 자기 목을 붙잡은 진천우의 손등을 쳤다.

“어……. 괜찮으십니까? 방금 그리 세게 친 건 아니지만, 손등이 조금 붉어졌는데.”

“난 괜찮다!”

진천우가 갑자기 소리쳤다.

손등이 아파서 그런 게 아니었다.

‘운신이 자유로운 몸’에서 ‘활력이 넘치는 몸’으로 바뀐 그에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부르르!

하지만 진천우는 온몸을 거세게 떨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 이유는 당연히 손등이 아파서도, 독고가 감히 현석을 물어서도 아니었다.

‘지독한 놈!’

장 의원!!

이 사기꾼은 완전히 처리했다고 여긴 다음에도, 끈덕지게 자신과 진씨세가를 물고 늘어졌다.

[영물의 호감도가 10을 넘겼기에, 새로운 능력이 개방됩니다.]

[독고가 해독(解毒) 능력을 얻었습니다.]

[독고가 하인의 몸에 중독된 ‘은장독(隱臟毒)’을 흡수해 해독했습니다.]

[은장독은 중독된 뒤에도 장기 깊숙이 숨어 어떤 활동도 하지 않다가, 수년 뒤 갑자기 다섯 말의 피를 토하며 죽게 만드는 끔찍한 독입니다.]

[은장독은 일반 독과 달리 각기 다른 세 종류의 독이 합쳐졌을 때, 완전히 중독됩니다.]

타이쿤의 설명은 여기까지였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장 의원, 그 썩을 놈이 죽어서도 우리 가문에 독을 퍼트렸구나!’

놈이 성격을 모르지 않았지만, 이 정도로 지독할 줄이야!

독고가 갑자기 현석을 문 건 그를 중독시키려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해독시키기 위함이었다.

진천우는 그 순간, 세 개의 패왕의 알 중 수속성을 택한 게 최고의 선택이라고 확신했다.

‘만약 불 속성이나 나무 속성의 알을 택하고, 거기서 나온 게 독고처럼 해독 능력이 없었다면…….’

정말이지, 생각도 하기 싫은 끔찍한 죽음을 영문도 모른 채 당할 뻔했다.

그것도 자신과 가족뿐 아니라 진씨세가의 다른 가솔들까지!

‘은장독은 각기 다른 세 종류의 독에 모두 당할 때 중독된다고?’

세 종류의 독이 한자리에 있다면, 누구든 쉽게 중독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쉽게 해독될 수도 있지.’

장 의원의 성격상, 한자리에 세 독을 모아두진 않았을 터.

그렇다면 독의 진원지는 모두 세 곳.

그곳들을 모조리 찾아내 반드시 해독해야 했다.

‘거기다 현석 외에도 은장독에 중독된 다른 진가의 가솔들도 있을 테니, 그들도 해독해야 한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치자, 현판에 새 내용이 갱신되었다.

[위기의 순간, 냉정한 사고로 스스로 퀘스트 달성 조건을 만족시켰습니다.]

[새로운 퀘스트, ‘진씨세가를 정화시켜라!’가 생성됩니다.]

-달성 조건 :

1. 독의 진원지 세 곳을 찾아 정화하라. (0 / 3)

2. 은장독에 중독된 이를 해독하라. (1 / 10)

[보상 : 독공(毒功)]

꿈틀?

갱신된 내용을 확인하는데, 어느새 소매 안으로 돌아온 독고가 고갯짓하는 게 느껴졌다.

이 녀석은 설마 글까지 읽을 수 있는 걸까?

그러나 진천우는 그걸 알아내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단 걸 떠올렸다.

‘정말 잘했다.’

스윽!

그는 손가락 끝으로 독고의 머리를 문질러주었다.

분명 처음 했던 것과 똑같이 쓰다듬는 것처럼 보였지만, 거기에는 처음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자그만 손짓 하나에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고마움이 묻어났다.

꿈틀꿈틀!

독고도 이를 느꼈는지 기쁜 듯 진천우의 손가락에 입을 맞추고는, 다시 소매 속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독고의 호감도 +100]

[영물의 호감도가 100을 넘겼기에 새로운 능력이 개방됩니다.]

[독고가 ‘독 탐지(探知)’ 능력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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