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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 독공을 익히다! (2) (27/210)


27화 : 독공을 익히다! (2)
2021.09.01.


또륵!

실을 타고 녹색 독이 한 방울 떨어졌다.

떨어지는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하지만.

‘저걸 어떻게 하라는 거지?’

진천우는 의아한 얼굴로 독이 떨어지는 걸 지켜보았다.

독 방울이 오른손 중지 지척까지 내려왔다.

그 순간 보였다.

중지에서 손톱 하나만큼 위에 난 검은 표식.

실이 흰색이었기에 표식은 유난히 눈에 띄었다.

독 방울이 표식을 지나친 순간, 그는 뭔가를 감지하고 급히 중지를 구부렸다.

띠딩!

중지와 연결된 실에서 맑은소리가 울렸다.

‘맑다고? 아니, 탁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맨 처음 줄을 튕겼을 때는 이것보다 소리가 훨씬 청명했기 때문이다.

또륵!

또 천장에서 독이 떨어졌다.

이번에는 푸른빛 독으로, 검지 쪽 실을 타고 떨어졌다.

“…….”

진천우는 무슨 생각인지 독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사전에 검지 위에도 검은 표식이 있음을 확인했다.

그다음 푸른 독이 표식과 겹치자, 바로 검지를 구부렸다.

띠링!

‘그래, 이 소리야!’

은쟁반 위로 옥구슬이 구르듯 맑고 깨끗한 소리.

그가 처음 들은 소리와 정확히 일치했다.

스윽!

거기에 독과 표식이 완벽히 겹칠 때 손가락을 튕기자, 손끝에 독의 푸른빛이 스며들었다.

또르륵!

이번에는 세 방울이 시간차를 두고 떨어졌다.

엄지, 약지, 소지.

일부러 첫 번째는 표식보다 조금 이르게, 두 번째는 표식보다 완전 이르게, 세 번째는 아예 손가락을 퉁기지 않았다.

“큭!”

결과는 좋지 않았다.

조금 이르게 친 건 약간 탁한 소리가 나는 거로 끝났다.

하지만 완전 이르게 줄을 퉁기자, 줄을 타고 내려온 독이 위로 튀며 진천우의 볼을 스쳤다.

잠깐 잊었는데, 이건 독이었다.

치이익!

볼에서 약간의 연기와 함께 시린 고통이 느껴졌다.

손가락을 튕기지 않은 새끼손가락에도 연기가 피어올랐다.

독이 손끝에 스며들지 않고, 손끝을 녹인 것.

다행히 독의 양이 극미량이라 금세 연기가 그쳤다.

그러나 이대로 한 방울, 두 방울이 쌓여 열 방울, 수십 방울이 되면?

제 몸이 견디지 못한다는 것쯤,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타이쿤이 보여온 행동을 생각하면…….’

또륵! 또르륵! 또르르륵!

“역시나!”

그 직후, 십여 개의 방울이 떨어졌다.

두 방울 혹은 세 방울씩 동시에 떨어지는 걸 보고 진천우가 급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띵! 띠링!

띠딩! 땅! 띠이!

띵! 땅! 띠이!

띠링! 땅!

모든 방울을 표식에 맞춰 정확히 튕길 수 있었던 건, 떨어지는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은 덕이 컸다.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또르르르르르르르륵!!

이번에도 같은 십여 개의 방울이, 조금 전보다 배는 빠르게 떨어졌다.

‘그럴 줄 알았다!’

대충 예상했다.

진천우가 눈에 불을 켜고 손가락을 튕겼다.

앞서 어느 정도 적응해두었기에, 속도가 빨라진 건 문제 되지 않았다.

띵!

청명한 소리가 몇 번이나 울렸다.

“후우!”

한 차례가 끝나자마자 바로 손가락을 풀었다.

위기는 넘겼지만, 이대로 계속 실을 튕겼다간 금방이라도 손가락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기다려주지 않겠지?’

또르륵! 또륵! 또르르륵!!

역시나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하늘에서 색색깔 독이 빗발쳤다!

띵! 띠링! 띵! 띠링!

땅! 띠이! 띠딩! 띵!

두 구절을 막 끝내는데, 천장에서 처음 보는 짙은 붉은 색 독이 떨어졌다.

같은 한 방울인데, 그것만 유난히 컸다.

그리고 붉은 독은 왼손이 아니라 오른 주먹으로 떨어졌다.

오른 주먹은 줄을 튕기기보다는 털어낸다는 느낌이 강했다.

둥!!

유난히 낮고 웅장한 소리가 울리자 한 호흡 쉴 수 있었다.

‘방금 그건……?’

진천우는 그 틈에 지금 것이 앞의 것과 어떻게 달랐는지 생각했다.

앞서 떨어진 독 방울이 단순히 어떻게 독을 튕기는지 알려주는 거였다면, 지금 건 명확한 율(律)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율이 낯설지 않았다.

‘이걸 어디서 들었더라?’

곧 떠올렸다.

“시경!!”

그 직후, 현판이 밝게 반짝였다.

[튜토리얼이 끝났습니다]

[지금부터 독공 매니아가 진짜로 시작됩니다.]

[위에서 떨어지는 독에 맞춰 율(律)을 담아 시경(詩經), 위풍(魏風)의 ‘큰 쥐야[碩鼠]’를 연주하시오.]

또륵 또르륵! 또륵! 또르르르르르르르르륵!!

독들이 다시금 빗발쳤다!!

띵! 띠링! 띵! 띠링!

땅! 띠이! 띠딩! 띵!

진천우가 아까와 똑같이 손을 튕겼다.

이다음은 오른 주먹을 흔들 차례.

둥!!

‘큰 쥐야[碩鼠]’는 위나라 말기 부패한 관료를 쥐로 비유해, 그들에게 수탈당한 농민의 절규를 담은 노래였다.

방금 친 첫 구절은.

碩鼠碩鼠 / 쥐야, 쥐야,

無食我黍 / 내 곡식을 먹지 마라!

또르르르르르르르륵!!

곧바로 다음 독 방울이 빠르게 떨어졌다.

띠링! 띠딩! 땅! 띠이!

띵! 띠딩! 띵! 땅!

三歲貫女 / 삼 년이나 너를 섬겼는데,

莫我肯顧 / 나를 아니 돌볼 거냐?

두 번째 구절이 끝나자, 또 붉은 독이 왼 주먹으로 떨어졌다.

둥!!

아마 무작정 독에 맞춰 손가락을 튕겼다면 아주 힘들었을 거다.

그러나 진천우는 이미 시경을 숙지했기에, ‘큰 쥐야’가 어떤 율로 이뤄졌는지 외우고 있었다.

정신을 집중하고 율을 외우니, 남은 세 번째와 네 번째 구절도 손쉽게 퉁겨졌다.

逝將去女 / 내 반드시 너를 떠나,

適彼樂土 / 저 낙원으로 가리니,

樂土樂土 / 낙원이여! 낙원이여!

爰得我所 / 바로 내가 머물 땅이여!

둥!!

마지막에 주먹을 내리며, 숨을 돌렸다.

“……휴!”

해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큰 쥐야’는 하나가 아닌 세 수로 이뤄진 시로, 방금 자신이 끝낸 건 그중 첫 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두 번째와 세 번째가 첫 번째와 큰 차이는 없는, 반복되는 노래지.’

또르르륵! 또륵! 또르르르르르륵!!

한 호흡 쉼이 끝나자 곧바로 대량의 독 방울이 떨어졌다.

다행히 예상했던 대로, 첫 수에서 몇 군데를 제외하면 거의 다르지 않았다.

띵! 띠링! 띵! 띠링!

땅! 띠이! 띠딩! 띵!

둥!!

진천우가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현실에 실망해 정말 간절하게 이상향을 찾는 백성의 마음으로 쉬지 않고 손을 튕겼다.

둥!!

마침내 연주가 끝났다.

[‘큰 쥐야’를 훌륭히 연주했습니다.]

[스킬 ‘용독술(用毒術)’을 습득했습니다.]

독공이 단순히 '독과 관련된 모든 공부'라면, 용독술은 독을 무기에 바르거나 음식에 타는 등 독을 다루는 방법을 뜻했다.

그제야 타이쿤이 느닷없이 손끝으로 실을 튕기게 한 이유를 깨달았다.

‘독을 보다 은밀히, 그리고 광범위하게 퍼트리려면 무엇보다 손가락을 단련하는 게 좋지.’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용독술을 익힌 이는 천하에 자신이 유일하리라.

진천우는 색색깔로 물든 제 손을 보며 기쁜 듯 입꼬리를 비틀었다.

츄!!

그때 천장에서 낮은 기침 소리가 들렸다.

“아!”

아직 독고가 천장에 붙어있었다.

서둘러 녀석을 내려주려고 고개를 들다 그대로 몸이 굳었다.

츄!

한눈에도 독고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통통하던 몸이 홀쭉해졌고, 또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왜 그리됐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나 때문이구나.’

자신이 용독술을 익히는 동안, 독고는 계속해서 독을 뿜었다.

그 독이 어디서 났겠는가?

당연히 독고의 몸속이었다.

녀석은 분명 만독의 주인이지만, 아직 어렸다.

‘정확히는 태어난 지 하루밖에 안 됐지.’

그 상태로 갖가지 독을 연거푸 쏟아냈으니, 몸이 멀쩡할 리 없었다.

꿈틀!

그런데도 독고는 자신은 괜찮다며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그러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듯 살짝 고개를 숙였다.

녀석의 입에 여전히 실이 뭉텅이로 우겨져 있었다.

이 실을 녹이려면 다시 독을 만들어야 하는데, 당장 그걸 만들 기력이 없었다.

진천우가 이를 보며 쓰게 웃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기다리거라.”

기다려라?

기다리겠다가 아니고?

꿈틀?

독고도 뒤늦게 그게 무슨 말이냐며 고개를 옆으로 젓는데.

띠딩!

또륵!

녹색 독 방울이 갑자기 실을 타고 올라갔다.

또르륵!

하지만 녹색 독은 천장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중간에서 멈췄다가 다시 아래로 떨어졌다.

‘음……. 좀 더 손가락 끝에 힘을 줘야겠군.’

“조금만 더 기다리거라.”

내가 네 몸에 다시 독을 채워 줄 테니!

둥!! 땅!

또르륵! 또륵!

또다시 독이 실을 타고 올랐다.

이번 독은 푸르고 붉었다.

왼 주먹, 오른 손가락을 동시에 움직여 독을 뿜었다.

용독술을 익힌 덕에 이런 식의 응용이 가능해졌다.

‘잠깐, 역으로 실을 통해 독을 뿜는 게 가능해졌다는 건?’

진천우가 뭔가 떠올린 듯, 다시 오른손을 빠르게 퉁겼다.

띵! 띠링! 띠딩! 땅! 띠이!

엄지부터 검지, 중지, 약지, 소지 순으로 한 번씩.

그러자 색색깔 독이 순서대로 위로 올라갔다.

‘이대로도 나쁘진 않지만, 느리다.’

그리고 독고가 독을 흡수하는 효율도 나빴다.

자신도 처음 한두 방울씩 떨어지는 독을 튕길 때보다는 큰 쥐야를 연주할 때 더 손끝에 독이 잘 스며들었다.

“좋아. 한번 해보자꾸나!”

띵!

진천우가 연주를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 연주하는 건 ‘큰 쥐야’가 아니었다.

전혀 다른 율(律).

사실 같은 곡을 연주하고 싶어도, 아직 용독술 숙련도가 낮아 ‘큰 쥐야’를 완창하며 독을 다룰 실력이 못 됐다.

‘큰 쥐야’보다 더 짧고 간단한 노래.

마침 딱 알맞은 게 생각났다.

띠딩! 땅! 띠이! 띵!

띵! 띠링! 띠이! 땅!

띵! 띠링! 띠이! 땅!

띠이! 땅! 띠딩! 띠링!

‘큰 쥐야’처럼 탐관오리를 쥐에 비유한 노래.

그러나 이 노래는 ‘큰 쥐야’보다 훨씬 더 제 취향이었다.

노래의 제목은 ‘쥐를 보아라[相鼠]’였다.

相鼠有皮 / 쥐조차 가죽이 있는데,

人而無儀 / 사람이 되어 예의가 없다.

人而無儀 / 사람이 되어 예의가 없으면,

不死何爲 / 차라리 죽어버려라!

相鼠有齒 / 쥐조차 이가 있는데,

人而無止 / 사람이 되어 절제가 없다.

人而無止 / 사람이 되어 절제가 없다면,

不死何俟 / 어서 죽지 무얼 기다리나?

相鼠有體 / 쥐조차 몸이 있는데,

人而無禮 / 사람이 되어 예의가 없다.

人而無禮 / 사람이 되어 예의가 없다면,

마지막 구절만 남았다.

꿀꺽꿀꺽!

그동안, 독고는 실을 타고 올라오는 독을 먹고 점차 원래 몸의 윤기를 되찾았다.

“후후후!”

진천우가 한껏 입꼬리를 비틀더니, 그대로 오른손가락에서 피가 나도록 실을 튕겼다.

띠링! 띠이! 띵! 땅!!

胡不遄死 / 당장 죽어버려라!!

마지막이라 그런지 녹색과 파랑 두 개의 독은 방울이 아닌 뭉텅이로 실을 타고 무섭게 질주했다.

꿀꺽!!

독고가 크게 입을 벌려 그것들을 모조리 삼키자, 지금껏 얌전히 있던 현판이 빛을 발했다.

[초월 달성!!]

* * *

“크으으!”

뚝!

정신을 차렸을 땐 손끝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무리해 손가락을 움직인 탓이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멀쩡하다.’

놀랍게도 전보다 훨씬 몸이 수월하게 움직여졌다.

‘큰 쥐야’에 이어 ‘쥐를 보아라’까지 연주한 덕분에 용독술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했다.

‘독공을 익힌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고.’

다시 말하지만, 독공과 의술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았다.

다른 무엇보다 자신의 천형을 극복하는 게 중요한 진천우에게, 독공은 꼭 필요한 공부 중 하나.

익히는데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상태 확인을 끝나자 드디어 새로 갱신된 현판을 확인했다.

[초월 달성!]

[초월 달성을 했기에, 기존 보상 외에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추가 보상 : 독괴(毒怪)의 유물]

“독괴?”

장 의원이 가지고 있던 독공의 이름 역시 독괴록이었다.

‘단순히 우연인가?’

아니면 전혀 다른 기연?

사실 이름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내가 취해야 할 거란 사실은 명확하니까.’

그러나 타이쿤의 다음 문구가 걸렸다.

[독괴의 유물은 진씨세가 외부에 있습니다.]

진천우는 여러 사정상 가문 밖 출입이 자유롭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천형을 해결하지 못했고, 아들이 바깥으로 나가는 걸 진가의 가모가 쉽게 허락할 리 없었다.

그런데 그 아래 한 줄이 모든 상황을 바꿨다.

[독괴의 유물은 천옥산(天獄山)에 있습니다.]

“천옥산?”

처음에는 잘못 읽은 줄 알았다.

하지만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천옥산은 천옥산이었다.

천옥산이라 하면…….

‘분명 우리 가문 바로 뒤편에 있는 낮은 봉우리의 이름인데?’

그러니까 가문 뒷산에 기연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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