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화 : 삼살이견(三殺二犬) (1) (30/210)


30화 : 삼살이견(三殺二犬) (1)
2021.09.08.


“그 자신만만한 얼굴을 잔뜩 울려주지!”

휙!

약초꾼 도적이 몸을 날렸다.

맨손.

녀석은 진천우가 환자인 걸 알기에 한껏 얕잡아봤다.

당연히 환자를 상대로 무공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그 때문에 그는 자신이 산공독에 중독된 걸 몰랐다.

산공독은 내공을 일으킬 때 바로 흩트려 버리는 독.

즉, 내공을 사용하지 않으면 독의 효과가 발휘되지 않았다.

‘멍청한 놈!’

진천우가 코웃음을 치며 소매에 손을 넣었다.

진씨세가를 나오면서, 그는 산공독 외에도 독괴록에 적힌 여러 독을 조합했다.

슥!

그런데 진천우가 은밀히 독을 퍼트린 순간!

“소가주님께 무슨 짓이냐!”

느닷없이 현석이 튀어나왔다.

“이런!”

즉시 독을 거뒀지만, 조금 늦었다.

당황한 건 진천우만이 아니었다.

퍽!

“큭!”

도적 또한 하인의 기습을 예상 못 하고 몸통 박치기를 당했다.

놀랍게도 현석은 도적을 넘어트리고 위에 올라탔다.

“이놈이!”

“뭐라는 거야, 이 자식이!”

퍽!

그대로 이어진 마구잡이 공격.

이를 본 진천우가 두 눈을 부릅떴다.

평소 벌레 하나 못 죽이는 호인이 바로 현석이었다.

그랬던 그가 지난번 장 의원 때나 백풍대 사건 때처럼, 제 주인을 위해 가장 먼저 몸을 날렸다.

“감히 소가주님께 그런 망발을 해!”

“큭! 하인 따위가!”

쓰러진 약초꾼이 뒤늦게 악다구니를 썼다.

진천우가 놀라서 그쪽으로 달려가려는데, 어느새 보부상 도적이 앞을 막았다.

“넌 나랑 놀아야지? 그리고 백가 놈아, 얼마나 정신을 팔고 다니면 무공도 모르는 하인 따위에게 당해? 당장 일어나지 못해?”

“비켜라!”

“어딜!”

놈이 잠시 한눈판 사이 옆으로 빠져나가려 했지만 실패했다.

보부상 도적은 약초꾼과 달리 방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어?!”

그는 누구보다 빨리 산공독을 눈치챘다.

“왜 내공이!?”

휙!

그 틈을 노려 진천우가 옆으로 빠져나갔다.

시간이 얼마 없다.

‘당장 현석을 해독해야 한다!’

분명 약초꾼에게 뿌린 독을 현석이 대신 받았다.

한시가 급한 순간!

“이놈! 이놈! 이놈!!”

퍽퍽퍽!

“응?”

믿을 수 없는 광경.

진천우는 여전히 도적 위에 올라타 쉴 새 없이 주먹을 휘두르는 현석을 보았다.

“이노오옴!!”

퍽!!

아주 쌩쌩했다.

“이 빌어먹을! 컥!”

죽어가는 건 오히려 도적놈이었다.

‘어떻게 독을 맞고도 멀쩡한 거지?’

설마 현석에게 자신도 모르는 독 내성이 있었나?

잠시 뒤, 그 이유가 밝혀졌다.

꿈틀!

‘너!’

현석의 어깨 위에 검은 벌레가 꿈틀거렸다.

언제 소매에서 빠져나왔지?

그러나 그건 사소한 문제였다.

‘네가 현석의 독을 해독해줬구나!’

끄덕!

영특한 녀석은 진천우의 표정만 보고,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었다.

독고의 영특함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놈!”

퍽!

“컥! 이 자식, 아무리 내공을 쓸 수 없다 해도, 내가 무공도 모르는 하인 따위에게 당할 것 같더냐!”

옳은 말.

비록 약초꾼 도적이 뒤늦게 산공독을 눈치채고 지금껏 얻어맞았지만, 애초에 무인의 신체는 내공이 없어도 범인과 비교되지 않았다.

아무리 건장한 체구의 현석이라도, 그가 진심으로 복근과 양팔에 힘을 주면 단순히 떨쳐내는 것쯤!

찍! 찍!

“으, 응?”

그 순간, 현석의 어깨 위에 올라탄 독고가 입에서 가는 실을 뿜었다.

자신이 어깨 위에 있다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실은 매우 가늘고 짧고 투명했다.

그런데도 그 실은 무척이나 단단하고 질겼다.

“내 몸이! 이 무슨!”

내공도 못 쓰는 무인이 그 실을 끊는 건 쉽지 않았다.

“아까부터 계속 뭔 헛소리냐! 이놈아!!”

퍽퍽!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현석은, 제 밑에 깔린 놈이 도적에 미치기까지 했구나 싶어 더욱 거세게 주먹을 휘둘렀다.

미친놈에게는 매가 약이다.

“으아아아! 이노옴!!”

매타작에 분노한 약초꾼이 간신히 실을 끊고 반격하려 해도.

찍!

독고가 다시 새로운 실을 뿜어 녀석의 움직임을 막았다.

퍽퍽퍽!

그리고 주먹은 멈추지 않았다.

‘저쪽은 현석과 독고에게 맡기면 되겠군.’

진천우도 이를 보며 살짝 질려 하며 고개를 돌렸다.

“네놈,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보부상 도적이 이쪽을 노려보았다.

녀석은 당황한 와중에도 어느새 손에 날카로운 철조를 쥐었다.

내공을 못 쓰는 대신, 병기의 예리함을 빌릴 속셈.

앞서 말했듯, 무공을 익힌 무인은 내공이 없어도 그 능력이 무시무시했다.

여기에 병기까지 든다면 결코 진천우가 상대할 수 없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그가 독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아직도 쓰러지지 않고 서 있는 건 칭찬해주지.”

“뭐?”

“네놈이 중독된 건 산공독만이 아니라는 소리다.”

“무슨?”

핑!

그 순간 보부상의 시야가 한 바퀴 돌았다.

‘내가 어느새 또 다른 독에?!’

처음부터 진천우가 걱정한 건 현석뿐이었다.

가까이 있는 녀석이 중독될까 봐 독 사용을 상당히 자제했다.

하지만 함께 있는 독고가 현석을 독에서 지켜준다는 걸 안 이상, 망설일 이유가 사라졌다.

그는 이미 가지고 있던 독을 전부 풀었다.

보부상 도적은 자신도 모르는 새 다섯 종류의 독에 중독되었다.

그중 가장 큰 효과를 낸 건 미혼산(迷魂散)이었다.

미혼산은 한때 장 의원이 통증을 줄이는 향료라 속인 것으로, 알고 보니 미혼산의 제조법도 독괴록에 있었다.

“쿨럭! 쿨럭!”

부들부들!

보부상 도적이 연신 크게 기침했다.

몸도 사정없이 요동쳤다.

미혼산은 마시면 마실수록 정신을 혼란케 하는 독.

시간이 지날수록 시야가 흐려졌다.

심지어 지독한 한기마저 들었다.

챙!

결국 손에 힘을 잃어, 들고 있던 무기도 놓치고 말았다.

“자, 그럼…….”

뚝! 뚜둑!

모든 준비가 끝나자 진천우가 손을 풀며 다가왔다.

“자, 잠깐!”

놀란 보부상이 기겁하며 몸을 숙였다.

철푸덕!

땅에 떨어진 철조를 다시 주우려 한 거지만, 몸에 힘이 없으니 그대로 넘어졌다.

이래서 독이 무서웠다.

이미 정해진 힘의 우위조차 단숨에 역전시키는 무기.

퍽퍽퍽!

당장 그 증거가 등 뒤에 있었다.

“이놈! 이놈! 이놈!”

“으아아! 그만해, 이 자식아!!”

어떤 무공도 익히지 않은 현석이 독과 독고의 도움으로 약초꾼 도적을 압도했다.

저렇게 착한 하인도 힘내서 사람을 패는데!

‘주인인 내가 겁을 먹고 물러설 순 없지.’

슥!

진천우가 앞으로 한 발 옮기자, 보부상 도적이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떨어트린 무기는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지금은 어떻게든 제멋대로 떠는 몸을 진정시켜 이 자리를 벗어나야 했다.

그래야 하는데…….

털썩!

이번에는 뒤로 크게 넘어졌다.

갑자기 다리가 굳었다.

조금 전까지 그렇게 요동치던 몸이 이젠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왜? 쿨럭!?”

산공독, 미혼산에 이어 세 번째 마비독과 네 번째 출혈독도 효과를 보였다.

휙!

이를 본 진천우가 몸을 날렸다.

“이 악다물어라!”

“그, 그만!”

놈이 급히 소리 질렀지만, 들어줄 턱이 있나?

퍽!

턱에서 커다란 파열음이 터졌다.

그러나 그건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퍽퍽퍽!

뒤이어, 매서운 타격음이 쉬지 않고 이어졌다.

* * *

퍽!

“그, 그만!”

퍽퍽!

“그……. 그…….”

퍽퍽퍽!

“…….”

‘끝났군.’

진천우는 상대가 완전히 의식을 잃은 걸 확인하자, 그제야 주먹을 거뒀다.

슥.

그는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 점혈까지 짚었다.

정말 철두철미한 대처.

한편, 독과 점혈 없이 오직 완력만 쓰는 현석은 여전히 계속 주먹을 휘둘렀다.

퍽퍽퍽!

“이, 이놈이!!”

때리는 현석도 대단하지만, 맞는 놈도 보통 독기가 아니었다.

그렇게 맞으면서 용케 정신을 잃지 않았으니까.

‘뭐 저리 질기지? 혹시 한가락 있는 놈인가?’

때마침 놈이 지른 고함이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우리 삼살이견(三殺二犬)이 겨우 이딴 놈들에게!”

‘삼살이견?’

세 사람을 죽인 두 마리 개.

언뜻 들어선 괴상하기 짝이 없는 별호.

‘엄청난 거물이잖아?’

그런데 놀랍게도 아는 별호였다.

진천우는 무인이 아니다.

심지어 얼마 전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던 환자라 더더욱 무림 소식에 어두웠다.

그런 그의 뇌리에 남을 정도면, 삼살이견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이 갔다.

삼살이견은 세 사람을 죽임으로써 유명해졌다.

당연히 사파인인 그들이 겨우 세 명만 죽였을 리 없었다.

하지만 삼살이견이란 별호가 생긴 건, 세간에 회자된 세 번의 살인 때문이었다.

이중 첫 번째 희생자는 이류 무인인 무정도(無情刀) 연리백, 두 번째 희생자는 일류고수인 회양부주 정인.

당시 삼살이견은 둘 다 삼류 무인이었다.

그런 둘이 합공으로 이류와 일류를 쓰러트렸다.

거기까진 그럴 수 있었다.

아주 드물지만, 종종 그런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세 번째 희생자는 달랐다.

종남의 장로 명인 도장.

그는 구파일방의 장로답게 벽을 넘긴 절정 고수였다.

그조차 둘의 합격에 쓰러졌다.

더 놀라운 건, 이때도 이견의 수준은 여전히 삼류였다는 점이다.

벽을 넘은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천양지차.

곧 그 소식은 천하를 진동시켰다.

그런데 하필 당한 셋이 모두 맹 소속이었다.

맹은 즉시 둘을 찾았고, 삼살이견은 살기 위해 몸을 숨겼다.

그렇게 수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이들의 명성은 식지 않고 강호를 뜨겁게 달궜다.

‘그 유명한 삼살이견이 우리 둘에게 당했다고?’

확실히 세간에 알려진 삼살이견의 수준은 삼류에 불과했다.

그러나 앞서 일화에서 알 수 있듯, 그들이 그만한 명성을 얻은 데에는 평범한 삼류 무인과 다른 특별한 무언가가 있기 때문.

진천우는 둘과 싸우면서 그 무언가를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헛소리였군.’

그럼 그렇지.

그 유명한 삼살이견이 왜 진씨세가 뒷산에서 약초꾼과 보부상으로 변장했겠는가.

“현석아, 이제 그만하고, 이 둘을 묶거라.”

“넵!”

제 주인의 명에, 하인은 진가를 나올 때 따로 챙겨 온 굵은 동아줄을 꺼냈다.

‘일단 관아로 넘겨야 하나?’

도적을 붙잡았으니, 그게 가장 무난한 선택이었다.

이런 놈들은 다시는 도적질을 못 하도록 곰팡내 나는 감옥에서 썩혀야 했다.

그런데 막 현석이 그 둘을 동아줄로 포박하는데, 사고가 발생했다.

“컥!”

“쿨럭!”

넝마짝이 된 두 도적이 갑자기 입에서 검은 피를 토했다.

치이익!

검은 피가 땅에 닿자 즉시 검은 연기가 일었다.

‘이건 독?’

진천우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이상했다.

그가 두 도적을 중독시킨 독은 모두 다섯.

그중 이처럼 심한 독은 없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중첩된다고 독성이 독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 저 독은 무슨?’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이놈들은 내 독에 중독되기 전에 이미 중독된 상태였다.’

하지만 이렇게 심한 독에 중독된 걸 전혀 몰랐다고?

당사자는 물론이고 독공을 익힌 자신도?!

진천우는 잠시 손으로 턱을 괴고 생각하더니, 곧 답을 내었다.

‘그렇군.’

그 직후, 저도 모르게 한껏 입꼬리를 비틀었다.

‘이놈들이 독괴의 유물과 접촉했구나!’

천옥산을 샅샅이 뒤져야 할 줄 알았는데, 이런 횡재가 있나?!
 

16550969307969.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