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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 독(毒)의 노래 (33/210)


33화 : 독(毒)의 노래
2021.09.15.


‘두 번째도 두 번째지만, 물과 불의 노래는 뭐지?’

진천우가 현판 글귀에 의문을 느끼자 이변이 시작되었다.

“어?”

손을 들었는데, 손이 검게 변했다.

바뀐 건 손만이 아니었다.

온몸이 검게 물들었다.

‘이건?!’

이전에도 이와 같은 일이 있었다.

소림의 비보, 대환단을 삼켰을 때.

‘아니, 그때와는 다르다.’

확실히 몸 전체가 검게 변한 건 같지만, 이번에는 격자무늬가 없었다.

목구멍에 태양처럼 강한 기운도 나타나지 않았다.

스윽!

‘이건?’

대신 단전에 아주 작은 두 개의 공이 생겼다.

손톱보다 작은 둘은 아주 느리게 원을 그리며 움직였다.

“…….”

진천우가 가만히 두 개의 공을 지켜보더니, 조심스럽게 단전 안에 있는 내공을 가까이 있는 푸른 공 쪽으로 보냈다.

퐁!

푸른 공은 내공과 닿자 곧바로 물의 기운을 쏟아냈다.

마치 깊은 샘에서 막 퍼 올린 듯 청명하고 맑은 기운.

“헉!”

이를 본 진천우가 급히 내공을 거뒀다.

그는 푸른 공이 수기(水氣)를 내뿜으면서, 언뜻 그 안의 검고 지독한 또 다른 기운을 느꼈다.

‘어째서 독기(毒氣)가 저 안에?!’

푸른 공 안에는 미혼산과 괴혈독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한 독기가 움츠리고 있었다.

행여나 실수로 푸른 공에서 저 독기가 조금이라도 흘러나오면…….

그다음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다행히 독기 주위로 강한 물의 기운이 감싸고 있구나. 그런데 그걸 내가 건드렸다니.’

오싹!

순간, 소름이 돋았다.

“후우!”

진천우가 숨을 길고 깊게 내쉬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아마 저 푸른 공이 독괴가 남긴 거겠지?’

푸른 공에 담긴 건 물과 독의 기운.

예부터 독과 물은 상성이 좋았다.

물은 독을 녹였다.

그렇게 해서 독을 보다 쓰기 쉽게, 보다 은밀하게, 보다 빨리 퍼지게 했다.

독을 다루는 독인은 필연적으로 물 또한 제 수족처럼 다룰 줄 안다.

그러니 독괴가 남긴 유물에 이처럼 강한 물의 기운이 있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이 천천히 옆으로 옮겨졌다.

지금 단전에는 푸른 공만 있는 게 아니었다.

스윽!

푸른 공 옆에, 똑같은 크기의 붉은 공이 보였다.

슥! 스르륵!

두 공은 느리지만 쉬지 않고 움직였다.

둘은 아주 가까이 붙어있지만 결코 닿지 않았다.

당연했다.

‘붉은 공에는 불의 기운이 담겨있구나.’

불과 물은 서로 상극.

솔직히 상극인 둘이 이처럼 가까이 있는 게 이상한 일이다.

‘그리고 불은 독과도 상극이지.’

대체로 독은 불에 약했다.

강호 상식 중 하나로, 독인이 가장 경계할 이는 의원과 같은 독인 그리고 강한 양강지기를 익힌 무인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독괴의 유물에 불의 기운이?’

그것도 평범한 화기(火氣)가 아니었다.

화륵!

갑자기 내공이 들끓었다.

조금 전, 푸른 공을 확인하기 위해 움직였던 내공이 뒤로 물러나면서 붉은 공 근처로 갔기 때문.

화르륵!

하지만 근처만 갔을 뿐 내공은 붉은 공에 닿지도 않았는데, 순식간에 불타버렸다.

그야말로 순수한 화기(火氣).

불은 강하고 탐욕스러웠다.

그러나 다행히 그 옆의 물의 기운이 훨씬 강했다.

다만 물은 속에 독을 품고 억제하느라, 제 옆의 불을 끄지 못했다.

지금 진천우의 몸에는 전혀 다른 세 개의 기운이 아슬아슬한 각축전을 벌였다.

물과 불 그리고 독.

그가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눈앞에 현판이 나타났다.

[‘독공 매니아2 – 물과 불의 노래’가 시작됩니다.]

‘뭐가 시작된다는 거지?’

반짝!

현판에 적힌 글을 보고, 진천우가 갈팡질팡할 때, 그의 몸에 새하얀 길이 등장했다.

그건 그야말로 온몸을 관통하는 대도(大道)였다.

스륵!

이때도 두 개의 공은 여전히 쉬지 않고 움직였다.

그런데 가만 보니 두 공이 있는 장소가 하필 대도의 시작점이었다.

‘설마?’

이 길을 따라 공을 옮기는 건가?

‘하지만 어떻게 공을 옮기지?’

[현재, 물과 불의 공은 사용자의 것입니다.]

[정신을 집중해 타점을 노리면 공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정신을 집중하라고?’

진천우는 타이쿤을 믿고 시선을 움직였다.

스륵!

‘어?’

정말 두 개의 공과 그 아래에 뻗은 하얀 길을 동시에 노려보자, 놀랍게도 공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푸른 공이 길 위에 고정되고 붉은 공이 그 주위를 돌았다면, 이제는 붉은 공을 중심으로 푸른 공이 움직였다.

‘처음에는 물이었으니, 다음은 불. 그다음은 물, 그리고 다시 불.’

진천우가 정신을 집중하며 계속 공을 움직였다.

다행히 흰 길은 일직선으로 쭉 뻗어있었고, 공이 도는 속도는 한결같았다.

그는 속으로 계속 일정한 박자를 세며 공을 앞으로 옮겼다.

물론 모든 게 수월하지만은 않았다.

아무래도 처음 하는 낯선 작업.

조금이라도 집중이 깨지면 공이 바로 길 위를 벗어났다.

화륵!

“큭!”

붉은 공이 길에서 아주 살짝 벗어나자 갑자기 화기가 솟구쳤다.

지금 공이 움직이는 장소는 진천우의 몸속.

솟구친 불이 그대로 몸을 태웠다.

게다가 조심해야 할 건 붉은 공만이 아니었다.

‘아!’

몸이 타들어 가는 통증에 그만 집중이 흩어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푸른 공이 옆으로 미끄러졌다.

콰르르!

“윽!”

푸른 공에서 물이 쏟아졌다.

그냥 물이 아니었다.

검은 물.

독수(毒水)였다.

물에 섞여 많이 약해졌지만 여전히 지독했다.

진천우는 제 몸 어딘가가 천천히 녹는 걸 느꼈다.

‘이대로 몇 번 더 실수하면 죽는다.’

불에 타죽거나!

독에 녹아 죽거나!

당연히 그는 둘 다 원치 않았다.

“후우!”

다시 한번 숨을 깊고 길게 뱉으며 정신을 집중했다.

‘물!’

푸른 공이 정확히 하얀 길 중앙에 멈췄다.

‘불!’

그다음 붉은 공도 중앙에 멈췄다.

‘다시 물!’

‘다시 불!’

역시 집중하자 실수가 사라졌다.

하지만 진천우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집중 상태를 유지했다.

“물. 불. 물. 불. 물. 불…….”

온 신경을 한곳에 쏟아붓자, 입에서 물불이란 말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물. 불. 물. 불. 물. 불…….”

그런데 그는 자신이 소리 내고 있다는 걸 전혀 몰랐다.

그 와중에 큰 성과가 있었다.

두 공은 어느새 하얀 길의 절반을 지났다.

“물. 불. 물. 불……. 어?”

그대로 진행하던 중, 진천우의 고개를 잠깐 올라갔다.

“이크! 물! 불!”

하마터면 또 공이 미끄러질 뻔했다.

“물. 불. 물. 불…….”

진천우는 다시 집중해 공을 진행 시켰다.

그러나 그의 눈은 계속 앞을 힐끔거렸다.

‘길이 꺾였어?’

지금까지 실수해도 공이 크게 벗어나지 않은 건, 길이 일직선으로 뻗어있기 때문.

그런데 저렇게나 오른쪽으로 꺾이면…….

‘아니지. 한 번 정도 꺾인 거로 이렇게 당황하면 안 되지.’

“후우!”

진천우가 또 숨을 크게 내쉬었다.

집중하자.

집중!

그러는 사이, 두 개의 공이 직각으로 꺾인 장소까지 나아갔다.

“물. 불. 물불!”

길이 꺾인 탓에, 그 위에 다음 공을 올리려면 반 박자 빨라야 했다.

다행히 미리 각오한 덕에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첫 번째 시련을 극복했다.

하지만 막 시련을 극복하고도 진천우는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그간 봐온 타이쿤은 결코 시련을 하나만 준비하지 않는다.

다시 저 앞에서 길이 직각으로 꺾였다.

이번에는 왼쪽이었다.

“물. 불. 물. 불. ~물!”

오른쪽으로 꺾인 게 반 박자 빠르니까, 왼쪽으로 꺾인 건 반 박자 늦게.

두 번째 시련이 끝나자 길은 다시 처음 방향으로 돌아갔다.

진천우는 여전히 공에 집중하면서 앞을 살폈다.

저 멀리 유독 밝게 빛나는 지점이 보였다.

저기가 끝?

그럼 저기까지만 집중하면 된다는 건가?

‘아냐, 방심하지 말자. 지금 난 타이쿤을 하고 있다고. 이 녀석이 이렇게 쉽게 끝낼 리 없잖아.’

이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독공 매니아2가 그냥 독공 매니아보다 쉬울 리 없어.’

그랬다.

단순히 하얀 길을 따라 공을 옮기는 건 생각만큼 어렵지 않았다.

앞서 독고가 내뿜은 실을 따라 다섯 손가락과 주먹을 함께 움직여야 했던 독공 매니아는 이것보다 배는 더 어려웠다.

그러니까 당연히.

‘거봐, 또 새로운 게 나타날 줄 알았다니까.’

세 번째 시련이 눈앞에 나타났다.

하얀 길은 여전히 곧게 뻗어있었다.

대신 길 한가운데에 처음 보는 녹색 문양이 보였다.

등 위에 무거운 껍질을 짊어진 짐승 문양.

‘거북이?’

저 문양이 의미하는 게 뭘까?

솔직히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거북이 문양은 길 한가운데에 새겨져 있어,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었다.

‘피할 수 없으면…….’

슥!

그 순간, 푸른 공이 문양 위에 멈췄다.

‘즐겨야겠지!’

진천우가 두 눈을 부릅떴다.

이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절대 놓치지 않겠다.

즐긴다는 건, 현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아야만 가능한 일.

‘길 위에 거북이라도 튀어나오나? 그럼 공으로 등껍질을 눌러버려야 하나? 그게 아니면…….’

그 잠깐 사이, 머릿속에 오만 생각이 들었다.

‘혹시 거북이가 공을 물고 달아나진 않겠지. 그리고 공으로 등껍질을 눌러버리다 그만 미끄러질지도 모르니, 그건 하지 말아야겠군.’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스륵!

이런 중에도 여전히 공은 느리게 움직였다.

조금 전에 푸른 공이 고정됐으니 지금은 붉은 공 차례.

그런데.

‘왜 이렇게 공이 움직이는 속도가 느린 것 같지……. 아니, 진짜 느려졌잖아!?’

그제야 거북이 문양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걸 밟은 뒤부터 공의 속도가 반 박자나 느려졌다.

“~불!”

그리고 그 속도는 계속 유지되었다.

“~물. ~불. ~물. ~불…….”

사실 이건 호재였다.

속도가 느려지면 진행은 더뎌지지만, 그만큼 더 정확히 나아갈 수 있었다.

그때 눈앞에 또 다른 문양이 나타났다.

노란색 토끼 문양.

붉은 공이 문양 위에 고정되자, 처음 속도로 돌아왔다.

“후우!”

아쉬움의 한숨.

동시에 마음을 다지는 한숨이었다.

왜냐하면, 방금 막 토끼 문양을 지나쳤는데 금방 또 다른 토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토끼의 효과는 당연히!’

슥!

토끼 문양을 밟자 공의 속도가 반 박자 빨라졌다.

“물불물불!!”

곧바로 공이 길 위를 휙휙 나아갔다.

더 어려워졌지만, 이제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저기까지. 저기까지만 가면…….’

빛이 보인다.

저기가 길의 끝이다.

집중! 또 집중!!

“물불물불물불물불! 물!!”

마지막 순간, 진천우가 크게 소리쳤다.

푸른 공이 빛나는 지점에서 멈추자, 검게 변한 몸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독공 매니아2 – 물과 불의 노래’에 성공했습니다.]

[성공 보상으로 독괴의 ‘독뇌(毒雷) - (유니크)’를 습득했습니다.]

독뇌는 독괴의 대표적 절기였다.

본디 독을 쏘아내는 평범한 용독술을 철저히 단순화시킨 수법.

그러나 모든 쓸데없는 걸 걷어낸 그것은, 마치 번개처럼 순식간에 상대를 중독시켰다.

독의 섬전, 그것이 바로 독뇌였다.

‘그런데 내가 언제 이걸 습득했다고……. 아!!’

진천우가 두 눈을 치켜떴다.

과거 대환단을 삼켰을 때, 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요상절초 십팔수를 따라 대환단의 기운을 이끌었다.

그 결과 역근경을 얻었다.

이번에는 상황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대환단 때는 파이프만 연결하면 몸속 어디든 갈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오직 하얀 길만 바라보며 가야 했다.’

그것도 몇 번 짧게 트는 게 다인, 아주 간단한 길.

그 하얀 길이 바로 독괴가 오랜 세월 철저히 거르고 거른 독뇌의 운용법이었다.

독뇌는 독뿐 아니라 암기도 순식간에 쏠 수 있었다.

즉, 진천우는 이걸로 전에 없던 비장의 한 수를 익히게 된 것.

모처럼 제대로 된 보상을 얻은 기분.

그런데 아직 타이쿤 보상은 끝나지 않았다.

[독괴의 유물에는 독뇌 외에도, 그가 죽기 직전에 깨우친 무공이 하나 더 존재합니다. 이를 익히겠습니까? (예 / 아니오)]

“음?”

독뇌만 하더라도, 단순하지만 독괴의 명성 대부분을 만든 대단한 무공이었다.

‘그런데 그 독괴가 죽기 직전에 깨우친 무공?’

아쉽게도 타이쿤은 이 이상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지만, 진천우는 푸른 공과 함께 있던 붉은 공이 그것과 깊이 관련돼 있음을 눈치챘다.

그건 그가 두 번째 무공을 반드시 익혀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불은 독과 상극!’

두 번째 무공은 독공의 약점을 극복하는 단서가 될지도 몰랐다.

더불어 해독 능력도 월등히 오를 게 분명했다.

‘그건 곧, 괴혈독 해독에 큰 도움이 되겠지.’

[예]

[‘독공 매니아2 – 물과 불의 노래’, 두 번째 무공 습득을 시작합니다.]

새로운 무공을 익히겠다고 선택하자, 다시 몸이 검게 변했다.

스륵!

단전에 또 푸르고 붉은 공이 나타났고, 뒤이어 하얀 길도 나타났다.

“헉!”

그러나 진천우는 새로 나타난 길을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망할!’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독괴가 죽기 직전에 깨우친 무공.

그 말은 독괴가 평생 익힌 무공 중 최고란 뜻도 되지만, 동시에 독뇌처럼 철저히 단순화시킬 시간이 전혀 없었단 말이기도 했다.

“돌겠네!”

복잡하게 꼬일 대로 꼬여, 마치 잡귀 쫓는 부적처럼 온갖 문양이 가득한 두 번째 길을 보며 진천우는 질색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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