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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 불 원숭이의 호흡 (34/210)


34화 : 불 원숭이의 호흡
2021.09.18.


“썩을!”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시작부터 길이 오른쪽으로 꺾였다.

“물불!”

반 박자 빨리 외치니, 이번에는 왼쪽으로 꺾였다.

“물. ~불!”

서둘러 반 박자 늦춰 위기를 넘겼다.

“하아!”

한숨이 나왔다.

각오를 다지는 한숨.

왜냐하면, 지금부터 이런 건 위기 축에도 끼지 않을 테니까.

‘길이 오른쪽으로 두 번 꺾였다.’

그러니까 ‘ㄷ’ 모양.

그런데 그다음은 ‘ㄹ’ 모양도 있고, 또 아예 ‘ㅁ’ 모양으로 한 바퀴 돌기도 했다.

“물불물불. 물. 불. 물. 불물불. ~물. 불물! 앗!”

한껏 집중했지만, 어쩔 수 없이 저지른 실수.

푸른 공의 일부가 길에서 벗어났다.

쏴아아! 치익!

공에서 나온 검은 물이 몸 일부를 녹였다.

“……!”

그러나 지금은 비명을 지를 때도, 심지어 눈살을 찌푸릴 때도 아니었다.

‘아직도 하얀 길은 계속 복잡하게 꼬여있는데…….’

이제 길 위에 문양마저 나타났다.

슥!

공이 녹색 거북이 위에 올라가자, 속도가 반 박자 느려졌다.

슥!

반대로 노란 토끼는 공의 속도를 반 박자 올렸다.

여기에 여전히 복잡한 경로가 더해지자, 이전처럼 반 박자 단위가 아닌 셋, 넷, 더 심하면 여섯까지 박자를 쪼개야 했다.

“물불물. 물불. ~물. ~불. 물불물불물불. 제기랄!”

화륵!

붉은 공이 길을 벗어나자 거센 불꽃이 몸을 태웠다.

순간 손이 들썩거렸지만, 진천우는 즉시 손을 내렸다.

아픈 부위를 손으로 쓸면 그만큼 몸속 길이 가려졌다.

‘지금은 아플 틈도 없다. 더 박자를 잘게 쪼개고 정신을 집중해야만…….’

지근!

갑자기 머리가 쑤셨다.

하필 이때!

백회를 개방한 다음부터 지속적인 두통이 멈췄다.

그런데 다시 머리가 아프다는 건, 그만큼 무리했다는 뜻.

사실 무리를 했기에 여기까지 큰 실수 없이 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곧 한계…….’

때마침 두 개의 공이 직선 구간에 돌입했다.

이 틈에 잠깐 숨을 돌리면서, 빛나는 지점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살폈다.

그리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직 반의반도 도달하지 못했다니.’

절망적이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콜록!”

두통에 이어 기침까지 나왔다.

단순한 기침이면 좋겠지만, 마음속에 걸리는 게 있었다.

괴혈독!

‘하지만 괴혈독은 내공을 지닌 이에게는 효과가 더딜 텐데……. 아’

진천우는 타이쿤이 시작되기 전에 붉은 공이 자신의 한 줌뿐인 내공을 전부 불태운 걸 떠올렸다.

‘안 그래도 한계 직전인데, 여기서 괴혈독까지 증상을 보이면 답이 없다.’

그는 급히 단전을 뒤졌다.

우웅!

다행히 단전 깊숙이, 정말 미약한 기운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본래 가진 내공이 한 줌이라면, 지금 남은 건 기껏해야 한 톨 남짓.

‘이걸로는 절대 괴혈독을 어쩌지 못한다.’

이 한 톨의 내공이 독과 상극인 화기(火氣)라면 또 몰라도.

……잠깐?

때마침 자신에게 불의 기운을 다루는 무공이 있지 않은가!

‘아직 이게 정말 화기를 다루는 무공인지 확신할 순 없지만.’

“콜록!”

또 기침이 나왔다.

아쉽게도 타이쿤을 완수해, 무공의 정체를 확인할 틈이 없었다.

‘이건 도박이다.’

그것도 시도부터 목숨을 건.

내공을 다루는 건, 독공 매니아2를 진행하는 것만큼이나 큰 집중이 필요했다.

그런 일을 두 개나 동시에 한다?

‘하지만 다른 방도가 없다.’

진천우는 두 공이 직선 구간을 빠져나가기 전에 서둘러 내공을 움직였다.

우우웅!

한 톨뿐인 내공이지만, 그만큼 가볍고 빠르게 움직였다.

‘이건?!’

그러나 지금 속도는 너무 빨랐다.

붉고 푸른 공에 비교하면 먼지나 다름없는 그것은 하얀 길을 타고 순식간에 그 뒤를 쫓았다.

파앗!

거기다 놀랄 일이 하나 더 있었다.

스르……. 륵!

‘음?’

따로 문양을 밟지 않은 이상, 항상 같은 속도를 유지하던 두 공이 갑자기 느려졌다.

변화의 원인은 명백했다.

스르르……. 륵!

지금도 두 공이 무언가에 끌리듯 자꾸 느려졌다.

‘푸른 공과 붉은 공이 내 내공에 끌리고 있다?’

분명 단전에서는 이러지 않았는데?

진천우가 시험 삼아 내공을 두 개의 공 바로 아래로 이동시켰다.

스윽!

공이 다시 제 속도를 찾았다.

그다음으로 내공을 공보다 앞에 보냈다.

슥!

공이 빨라졌다.

하지만 그대로 내공과 만나자 원래 속도로, 아니 순간적이지만 그 자리에서 멈췄다가 다시 돌기 시작했다.

“이거다!”

저도 모르게 쾌재가 튀어나왔다.

드디어 찾았다.

독공 매니아2의 공략법을!

* * *

슥! 스르르륵!

푸르고 붉은 두 개의 공이 하얀 길 위를 빠르게 내달렸다.

직선 구간은 진작에 빠져나갔다.

구불구불 꺾이고, 제 마음대로 뒤틀리고, 몇 바퀴나 연속으로 돌았지만 공은 조금도 길을 벗어나지 않았다.

우우웅!

그런 공보다 한발 먼저, 한 톨의 내공이 뻗어나갔다.

슥!

곧바로 푸른 공이 내공을 쫓아 움직였다.

그러다 그대로 길 위에 고정되었고, 이제 붉은 공이 내공을 쫓았다.

‘공들이 이리도 민감하게 반응할 줄이야.’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공략법.

이 공략법은 어떤 어려운 길도 단번에 해결해주었다.

중간중간 토끼와 거북이 문양이 박자를 바꿔 방해해도 소용없었다.

‘이대로만 가면 된다. 이대로만 가면 두 번째 무공을 완벽히 깰 수 있어.’

그러나 타이쿤도 가만히 당하지 않았다.

눈앞에 거북이와 토끼가 아닌, 처음 보는 문양이 등장했다.

세 번째는 짐승의 형태가 아니었다.

계속해 원을 그리는 소용돌이 문양.

‘저건 또 뭐야?’

깊게 생각할 틈이 없었다.

바로 직전에 토끼 문양이 두 번 연속 나왔다.

철저하게 계산된 등장.

그렇다고 쉽게 당해줄 수 없기에, 진천우는 눈을 부릅떴다.

‘저 문양이 어떤 효과가 가지든 반드시 극복해주겠다.’

슥!

푸른 공이 소용돌이 위로 올라갔다.

다음은 붉은 공.

이 순서가 바뀔 일은 없었다.

그런데!

휙!

대신 회전 방향이 바뀌었다.

원래 오른쪽으로 돌던 게, 갑자기 왼쪽으로 바뀌었다.

‘진짜 박자를 가지고 노는구나!’

확실히 놀랐지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미 자신은 공략법을 찾았다.

그 공략법이 너무 대단한 나머지, 이건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했다.

그 뒤에도 타이쿤은 포기하지 않고 온갖 희귀한 방법으로 방해했다.

갑자기 길의 일부가 투명해진다든지,

분명 아무것도 없는 동굴에서 갑자기 새와 곤충 소리가 들린다든지,

하지만 그것도 공략법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휙!

“무슨!”

그래도 마지막 방해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만큼 놀라긴 했다.

느닷없이 몸이 뒤집혔다.

지금 하얀 길은 그의 몸속에 있다.

한참 진행하는 와중, 갑자기 시야가 돌아가다니!

이건 다른 어떤 방해보다 심했다.

“휴! 물불!”

그러나 이것마저 소용없었다.

진천우의 공략법은 그야말로 절대적이었다.

그렇게 진행하다 보니 눈앞에 거북이 문양이 나타났다.

스윽!

푸른 공이 문양에 닿자 전체 속도가 반 박자 느려졌다.

그 상태로 또 눈앞에 거북이가 나타났다.

스으윽!

다시 반의반 박자가 느려졌다.

또 함정?

‘아니, 끝났다.’

그 말대로.

왜냐하면 저 앞에 빛나는 지점이 보였기 때문이다.

스으으윽!

푸른 공이 천천히, 정말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스으으으윽!

그다음 붉은 공이 나아갔다.

그렇게 몇 번 더 두 개의 공이 차례를 바꿔 앞으로 나아갔다.

슥!

마침내 끝에 도달했다.

곧바로 타이쿤이 나타나, 성공을 축하해주었다.

그것도 무려 금빛 글자를 빛내며!

[‘독공 매니아2 – 물과 불의 노래’에 성공했습니다.]

[성공 보상으로 독괴의 ‘화후기식법(火猴氣息法) - (레전드)’을 습득했습니다.]

‘화후기식법?’

진천우의 현판에 적힌 글을 보고 고개를 모로 꺾었다.

타이쿤이나 레전드처럼 모르는 단어가 아니었다.

분명 무슨 뜻인지는 알지만, 바로 이해되지 않았다.

화후기식법은 직역하면 ‘불 원숭이의 호흡’이었다.

괴상하기 짝이 없는 무공명.

하지만 그 아래 이어진 상세설명은 놀라웠다.

[화후기식법(火猴氣息法) - (레전드)]

- 독괴가 죽기 직전에 깨우친 놀랍도록 신묘한 무학의 이치.

- 단전을 시작으로 십만 개의 혈도를 사용해 내공을 전신에 돌리는 게 특징.

‘십만 개의 혈도를 사용한다고?’

그러니 그렇게 복잡하기 짝이 없는 길이 만들어질 수밖에.

그러나 화후기식법은 난해한 만큼 효과도 확실했다.

- 화후기식법 운용하면 몸 안의 독을 남김없이 태워주며, 또한 중독된 독을 흡수해 내공으로 바꿔줌.

- 화후기식법을 운용하면 온몸의 감각이 깨어남. 오감(五感)과 기감(氣感)은 물론이고 영감(靈感)까지 깨어남.

그러고 보니 어느새 기침이 그쳤다.

내공도 늘었다.

화후기식법을 운용하기 직전 그렇게 지끈거렸던 두통도 말끔히 사라졌다.

‘거기다 마지막 영감은 모르겠지만, 기감이 깨어난 덕에 공 안에 있던 물과 불의 기운이 내공을 유도할 수 있었던 건가?’

그것이라면 자신이 찾은 그 말도 안 되는 공략법이 성립될 수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화후기식법의 마지막 설명을 읽으려는데…….

- 화후기식법은 현재 미완성.

‘미완성이라고?’

미완성인데도 이 정도 효과라니?!

그럼 만약 화후기식법을 완전히 완성시키면?

하지만 진천우는 마지막 설명과 함께 이어진 첨삭을 확인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화후기식법을 완성하려면 ‘화후의 내단’이 필요.

‘화후는 그야말로 전설의 영물인데, 그걸 어디서 찾으라고.’

단순히 난이도만 따지면, 화후의 내단은 적어도 보관 장소는 명확한 대환단보다 구하기 힘들었다.

‘이건 포기해야 할지도…….’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약해지려는 찰나, 다시 눈앞에 현판이 반짝였다.

[사용자는 타이쿤에 기록되지 않은 공략법을 찾아냈습니다.]

[그 보상으로 ‘새로운 중간광고 시청’이 해금됩니다.]

[‘중간광고’를 보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중간광고? 일전에 의선의 기억을 보여줬던 그거?’

그렇다면, 이번에는 독괴의 기억일까?

확실히 흥미로웠다.

독괴가 어째서 불의 기운을 가지게 됐고 또 어떻게 화후기식법을 깨닫게 됐는지도 물론 궁금하지만, 진천우가 가장 궁금한 건 독괴가 왜 이런 좁은 동굴에서 최후를 맞이하게 됐는지였다.

[예]

동의하기를 눌렀다.

그러자 곧바로 시야가 흐려졌다.

* * *

끼기긱!

귀를 찢는 날카로운 소리.

잠시 정신을 잃은 진천우가 급히 눈을 떴다.

휙! 휙휙!

눈을 떴지만 여전히 시야는 어지러웠다.

하지만 그건 막 정신을 차렸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휙!

너무나도 빠르게 주위 풍경이 바뀌었다.

‘또 몸이 바뀌었구나.’

의선의 기억 때, 진천우는 어린 의선의 몸에 들어갔다.

지금은 웬 처음 보는 중년인의 몸에 들어갔다.

중년인은 뛰어난 경공을 발휘해 숲을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이자가 독괴인가?’

그런데 그는 어딜 이리 급히 달리는 걸까?

끼이익-!

그때 또다시 섬뜩한 짐승의 외침이 귀를 뚫고 들려왔다.

진천우가 놀라 고개를 돌린 순간, 그는 단숨에 독괴의 목적을 알아차렸다.

‘저건?!’

그의 눈앞에 웬 금빛 털을 가진 커다란 원숭이가 꽁지 빠지게 달아나고 있었다.

‘설마 전설의 화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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