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 깃발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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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 깃발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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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 깃발의 능력
2021.09.25.
‘정말 괜찮으실까?’
현석이 동굴 입구를 바라보며 걱정돼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 저 안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절대 들어오지 마라.
하지만 제 주인의 엄명에 하인은 그저 속만 쓰렸다.
“어이, 웬만하면 뒤로 물러나지?”
그때 뒤에서 누군가 현석을 불렀다.
“거기 너무 가까이 가서 좋을 게 없으니, 자네 주인이 나올 때까지 여기서 우리와 함께 쉬고 있지?”
여전히 보부상 차림을 한 삼살이견 중 하나가 나무 그늘에서 손짓했다.
이들은 진천우에게 동굴의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는 대가로 잠시 목숨을 구원받았다.
“…….”
허나 현석은 그들에게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놈들은 감히 제 주인에게 흉기를 들이대며 도적질하려 했다.
저들이 무공을 익힌 무인이고, 임시로나마 독을 해독한 지금 한 손으로 자신을 쳐죽일 수 있다 해도 전혀 알 바가 아니었다.
“……!”
현석은 북해의 서슬 퍼런 냉기가 느껴질 만큼 차가운 시선으로 삼살이견을 한 번 노려보더니,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아예 동굴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지금 저 안에서 제 주인이 어떤 고생을 하는지도 모르는데, 어찌 하인 된 자가 편히 쉬며 기다린단 말인가!
“저놈이!”
현석이 제 말을 귓등으로 듣는 걸 보고 보부상 삼살이견이 발끈하며, 일어섰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약초꾼 놈이 손을 들어 그를 만류했다.
“됐어. 참아.”
“참으라고? 감히 하인 놈이 우리를 저리 무시하는데, 그냥 참으라고?”
“그럼 참아야지.”
-동굴 안에 들어간 저놈 주인이 해독법을 알아낼 때까지 저놈과 잘 지내기로 약조했잖나.
보부상이 잠시 흠칫하다, 곧바로 같이 전음을 보냈다.
-아무리 그래도 저 자식이 저리 나오는데?
-처음에는 당연히 저리 나오겠지. 그 정도도 예상 못 한 건 아니잖아. 어차피 동굴로 들어간 주인 놈도 하루나 이틀이면 나올 텐데, 그때까지만 참자고.
“끄응!”
결국 보부상은 이 상황을 받아들인 듯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는 매서운 눈으로 현석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이때 현석은 허리를 대쪽같이 꼿꼿이 세운 채, 하염없이 동굴 쪽만 바라보았다.
‘그래, 어디 네놈이 그 자세로 얼마나 버티는지 두고 보자.’
나름 충실한 하인을 연기하려고 무릎까지 꿇은 모양인데, 저런 자세로 얼마나 견딜까?
하물며 지금처럼 땡볕이 내리쬘 땐, 무공을 익힌 무인도 오래 견디지 못했다.
휙!
보부상이 몸을 돌렸다.
그는 장담했다.
현석이 이대로 반나절도 견디지 못한다고.
그러나 하루, 이틀…….
“……지독한 놈!”
결국 사흘째 되는 날, 그는 그늘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허, 어쩌려고?”
“걱정 말게. 나도 이제 저 독종을 함부로 건드릴 생각은 없으니까. 하지만 벌써 사흘째이니 새 약을 받아야 하지 않겠나.”
“그렇군. 벌써 사흘이 지났군.”
약초꾼이 뒤늦게 날짜를 계산하고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공도 모르는 놈이 자신들에게 덤벼들 때부터 보통이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저 정도일 줄은 몰랐다.
“어이…….”
“…….”
“어이!”
보부상이 현석의 옆으로 다가가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대답을 하지 않는 게, 일부러 무시하는 게 아니라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기 직전임을 알기에 크게 화를 내진 않았다.
뒤늦게 현석이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입니까?”
“사흘째다. 해약을 내놓거라.”
“알겠습니다.”
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이 문제만 일으키지 않으면 제때 해독약을 주라는 주인의 명이 있었다.
현석이 품에서 흰 종이에 싸인 검은 환 두 개를 막 꺼내는데…….
쾅!!
갑자기 동굴에서 커다란 굉음이 터졌다.
“뭐, 뭐야?!”
삼살이견이 화들짝 놀라서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앞에 믿기지 않는 광경이 펼쳐졌다.
우르릉!
조금 전의 굉음 때문인지 동굴 입구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잠깐, 저 안에!”
“우리 해약을 만들어 줄 놈이 있는데!!”
“소가주님!!”
그 순간, 현석이 동굴을 향해 몸을 날렸다.
* * *
우우웅! 웅!
“아니?!”
진천우가 제 양손에 들린 천들을 보며 두 눈을 치켜떴다.
‘이게 무슨 일이지?’
우우웅!
왼손에 들린 흰 천, 그러니까 백호기가 갑자기 눈부신 빛을 뿜었다.
마치 이전, 소환단을 대환단으로 진화시켰던 그때처럼.
그리고 백호기가 내뿜는 빛은 그대로 오른손의 푸른 천에 흡수되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오랜 세월 동굴 속에서 색이 바랜 그것이 백호기의 빛에 반응해 빠르게 제 색을 되찾았다.
시간을 되돌리는 것 같은 광경에 진천우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는 그렇게 눈앞에 벌어진 기사(奇事)를 한참 동안 지켜보다가, 마침내 두 천이 가진 능력을 알아냈다.
‘백호기의 능력은 기운을 모으는 거구나.’
시험 삼아 자신이 가진 내공을 흰 천에 흘러보았다.
그러자 그 기운은 마른 천에 흘린 물처럼 순식간에 천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바로 이 능력으로 소환단이 대환단으로 진화한 게 분명했다.
‘반면 청룡기의 능력은 백호기와 정반대다.’
백호기가 기운을 모은다면, 청룡기는 기운을 흩트렸다.
그 증거로, 진천우가 청룡기에 내공을 불어넣자 순식간에 그 기운이 흩어졌다.
‘이것 때문에 중간광고에서 독괴의 독이 청룡기에 닿자마자 흩어졌구나.’
확실히 둘 다 무척 신기한 능력이었다.
어떻게 사용하냐에 따라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도, 정말 유용한 뭔가를 만들 수도 있었다.
왜 백호기와 청룡기가 레전드 등급을 받았는지 이해되었다.
우우웅!
그런데 정반대 능력의 둘을 너무 가까이, 너무 오래 같이 둔 탓일까?
우우우웅!!
“또 뭐야!?”
청룡기가 본래 색을 되찾으면 멈출 줄 알았던 호응 현상이 점점 더 거세졌다.
진천우가 서둘러 둘을 떼어내려 했지만.
우우우우우우웅!!!
“큭!”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이 너무 강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 두 천이 보이는 현상은 명백한 폭주였다.
이걸 가만 놔두면 안 된다고 본능이 속삭였다.
진천우는 역근경으로 향상된 근력과 내공을 사용해, 환자였을 당시에는 상상도 못 할 괴력을 발휘했다.
우우웅!
다행히 힘쓴 보람이 있었다.
아주 조금이지만 두 천 사이 거리가 벌어졌다.
그러나 잠시 뒤, 진천우는 자신이 아주 큰 실수를 저질렀단 걸 깨달았다.
슥!
‘응?’
천과 천 사이에 반투명한 구가 생성되었다.
그것은 반은 푸르고 반은 하얬는데, 안에 담긴 기운이 한눈에도 범상치 않았다.
문제는 그 기운이 어마어마한 만큼, 극히 불안정했다는 점이다.
마치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이!
‘잠깐! 이거! 설마!!’
스륵!
그 직후, 반투명 구가 아래로 떨어졌다.
저건 건드리면 안 된다.
그런데 이대로 아래로 떨어지면 당연히 땅과 부딪치겠지?
진천우는 어느새 원래대로 돌아간 두 개의 천을 쥐고 미친 듯이 동굴 안쪽으로 내달렸다.
쾅!!
불안정한 기운이 바닥에 닿자 귀 찢는 굉음이 터졌다.
미리 거리를 벌리고 손으로 귀를 막고 있길 잘했다.
하지만 안도할 틈이 없었다.
쿠릉!
동굴이…….
쿠르르릉!!
“젠장! 동굴이 무너진다!!”
조금 전의 충격으로 동굴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니, 이미 일부가 무너졌다.
하필 가장 먼저 동굴 입구가 주저앉았다.
‘처음부터 저쪽으로 대피했어야 했는데!’
그 순간에는 그런 걸 살필 겨를이 없었다.
진천우가 냉정하게 머리를 굴렸다.
지금 입구로 가면, 동굴이 무너지기 전에 잔해를 치우고 빠져나갈 수 있나?
결과는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당장은 그저 운에 맡긴 채, 동굴이 폭삭 무너지지 않도록 천지신명께 비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때 진천우가 고개를 돌렸다.
운에 맡기지 않는 다른 방법이 떠올렸다.
등 뒤로 보이는 아주 매끈한 벽면.
‘원래 동굴 입구는 저쪽이 아니라 이쪽이었다.’
독괴가 독으로 막아둔 진짜 입구.
과연 얼마나 단단히 막혔을지 모르지만, 저 매끈한 벽 뒤에도 밖으로 빠져나갈 통로가 있었다.
‘게다가 이쪽도 독괴가 죽기 전에 푼 독 덕분에 상당히 얇아졌을 테니까.’
이제 모 아니면 도!
진천우는 가장 가까이 있는 아이 머리 크기의 돌을 양손에 들고, 벽 앞에 섰다.
그는 온 힘을 다해 돌을 벽에 내려쳤다.
콱!
한 번 내리쳤을 뿐인데 팔 전체에 짜릿한 감각이 올라왔다.
그러나 아프다고 투정 부릴 때가 아니었다.
우르릉!
이 순간에도 동굴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다.
콱! 콱콱!
그는 양손에 더욱 힘을 줘 돌을 내려쳤다.
콱콱콱!
그대로 몇 번 더 내려쳤을까?
콱! 쾅!!
벽이 터지면서 빈 공간이 드러났다.
“됐다!”
진천우가 쾌재를 지르며, 붉게 물든 손을 다시 들었다.
그리고 사정없이 내려쳤다.
쾅! 쾅쾅쾅!
그렇게 간신히 사람 하나 빠져나갈 틈이 드러나자, 그는 지체 없이 그 너머로 몸을 날렸다.
콰르릉!!
진천우가 모습을 감추자마자 동굴이 완전히 무너졌다.
* * *
“살았다!”
다행히 원래 동굴 입구는 절벽까지 막힘없이 뚫려있었다.
중간광고 마지막에 독괴가 절벽 일부를 무너트렸는데, 어떻게 세월의 힘으로 복구된 게 분명했다.
진천우는 무너지는 동굴을 빠져나와 힘겹게 위로 올라갔다.
‘잠깐?!’
다 올라가기 직전, 불현듯 뭔가가 떠올랐다.
여긴 전설의 영물인 화후가 사라진 장소인 동시에, 정체불명의 복면인이 튀어나온 곳.
‘또 무슨 이상한 게 튀어나올지 모른다.’
“…….”
그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폈다.
딱히 과거에 독괴와 복면인이 싸운 흔적은 없었다.
‘역시 시간이 너무 오래 흐른 탓인가?’
대신 정체 모를 제단은 그대로였다.
청옥으로 쌓아 올려졌고, 뒤편에 깃대가 놓인 것까지.
하지만 거기에는 전처럼 검은 깃발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빈 깃대 세 개만 우뚝 서 있었다.
‘중간광고 때도 깃대 세 개 중, 맨 오른쪽에만 검은 깃발이 걸려있었지.’
그런데 그 근처로 가보니 땅에 다른 깃대를 꽂는 구멍이 두 개 더 보였다.
그럼 원래 여기 있던 깃발의 수는 전부 다섯?
흑(黑), 청(靑), 적(赤) 백(白)…….
‘아, 황색이 남아있구나.’
진천우는 맨 처음 광고에서 화후를 봤을 때, 녀석이 적색 천 외에 황색 천도 함께 두르고 있는 걸 기억해냈다.
그 뒤에도 그는 제단과 그 주위를 다시 면밀히 살폈다.
딱히 특별한 건 찾지 못했다.
타이쿤 보상으로 받은 화후기식법을 완성하려면 화후의 내단이 필요한데, 아쉽게도 이곳에 화후의 흔적은 없었다.
아니, 아직 못 찾은 걸지도 몰랐다.
어쨌든 현재 이 장소는 안전하단 게 확인되었다.
‘그럼 일단 내려갔다가 다시 찾아와야겠군.’
당장은 내려가 현석을 찾아야 했다.
동굴이 무너졌으니, 충성스러운 하인이 얼마나 걱정할지 몰랐다.
또 녀석이 중독된 괴혈독도 해독해야 했다.
어질!
“읏!”
그런데 동굴을 빠져나오면서 너무 무리한 탓일까?
진천우가 잠시 현기증을 느끼고, 우선 가까이 있던 깃대에 몸을 기댔다.
팟!
그 순간, 눈앞에 푸른 현판이 등장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소매에서 푸른 천과 흰 천이 튀어나와, 뱀처럼 깃대를 타고 올랐다.
[청룡기와 백호기에 알맞은 깃대를 찾았습니다.]
[사용자가 양손에 ‘청(룡)기’와 ‘백(호)기’를 쥐었습니다.]
[특수 이벤트, ‘청기백기 게임’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