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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 도원경(桃源境) (39/210)


39화 : 도원경(桃源境)
2021.09.29.


초월 달성 보상을 받기 전, 기본 보상이 주어졌다.

[진법에 대한 이해가 주어집니다.]

“큭!”

진천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태극(太極), 삼재(三才), 오행(五行), 육합(六合)…….

머릿속에 진법에 관한 지식이 물밀듯 밀려왔다.

타이쿤이 알려준 건 어디까지나 진법의 기초였음에도, 그 지식은 놀랄 만큼 방대했다.

그러나 진천우는 그 모두를 이해하자마자 머릿속에서 깨끗이 지웠다.

“다 필요 없어.”

그 말대로.

어차피 그것들은 전부 지식에 불과했다.

하지만 당장 손에 든 깃발을 휘두르면 대기가 움직이고 바람이 휘몰아쳤다.

자연의 이치를 이해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을 다루는 게 기문둔갑(奇門遁甲)의 요체.

이를 깨달은 이상, 진법의 기초는 죽은 학문에 지나지 않았다.

즉, 보상이 보상이 아니게 되었다.

타이쿤은 언제나 확실한 성과에 명확한 보상을 내주었다.

그러니 이 일에 대한 반응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초월 달성을 했기에, 기존 보상 외에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추가 보상으로 부족한 몫을 채운다.

그럼 과연 어떤 게 주어질까?

진천우가 추가 보상을 예상해보았다.

‘타이쿤을 진행하다 보니 가문 뒷산인 천옥산에 독괴의 유물이 있단 걸 알게 되었지.’

그리고 산을 오르던 중 삼살이견을 만나 화후 전설에 관해 들었다.

놀랍게도 그 전설은 사실이었다.

‘독괴가 천옥산을 찾은 이유는 바로 화후를 찾기 위해서였지.’

그런 식으로 둘이 연관돼 있었다.

화후기식법도 이때 얻었다.

그런데 독괴와 화후 외에도 자신이 천옥산에서 들은 또 다른 전설을 하나 더 있었다.

현석이 늙은 거지에게 들었다는 금지(禁地) 전설.

진천우는 추가 보상이 그것과 연계돼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의 확신에 찬 시선을 받자, 타이쿤이 금세 금빛 광채를 내뿜었다.

[추가 보상으로 지금부터 일시적으로 도원경(桃源境)으로 들어가는 문을 개방합니다!]

“도원경?”

계곡물 위로 떠오른 복사꽃 꽃잎을 따라가야만 도달할 수 있고, 일단 떠나면 가는 중 어떤 표식을 남겨도 다시는 찾을 수 없는 그곳?

‘확실히 금지 전설과 딱 들어맞는구나.’

진천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설마 떡하니 눈앞에서 금지가 개방될 줄 몰랐다.

허나 당장 그는 도원경으로 떠날 수 없었다.

‘일단 내려가서 현석부터 찾아야 한다.’

자신은 서둘러 삼살이견을 실험대 삼아 현석과 제 몸에 퍼진 괴혈독을 해독해야 했다.

따로 뭔가를 하려 해도, 그것부터 해결한 뒤에 해야 했다.

그러나 그건 진천우의 사정일 뿐.

타이쿤은 이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휘오오!

느닷없이 등 뒤에서 바람이 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이 만들어내는 강한 바람.

“어어? 어어어어?!”

강풍은 그대로 진천우를 낚아채, 도원경 안으로 끌어들였다.

* * *

“안 돼! 소가주님!!”

현석이 기겁한 얼굴로 동굴 입구를 막은 돌을 치웠다.

쉽지 않았다.

허겁지겁 돌을 치웠지만, 그 뒤로 제 몸집보다 큰 바위가 보였다.

“멍청한 놈!”

휙!

순간, 몸이 붕 떴다 그대로 땅에 패대기쳐졌다.

가슴부터 떨어져 숨이 턱 막혔지만 그는 고통을 호소하지 못했다.

우르르!

조금 전까지 자신이 있던 자리가 폭삭 무너졌다.

안 그래도 무너진 지 얼마 안 된 곳을 섣불리 건드렸으니, 다시 무너지는 것도 당연했다.

“죽고 싶어 환장했냐!”

현석을 구해준 보부상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그도 기분이 좋지 못했다.

저 안에는 자신이 지금 중독된 독을 해독할 놈이 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되다니.

‘어떡하지?’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서둘러 동굴 입구를 뚫고 진천우를 구해내는 일.

하지만 그건 무인인 삼살이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뭣보다 기껏 동굴을 뚫어도, 안에 들어간 놈이 이미 죽었을 수도 있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하인 놈이 가진 해약을 모조리 빼앗는 게?’

그러면 며칠의 기한이 생긴다.

그 안에 어떻게든 명의를 찾아 독을 해독하는 방법이 있었다.

‘나쁘지 않군.’

보부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사흘간, 옆에 진천우가 없던 까닭에 호감도가 급속도로 떨어졌다.

그는 얼굴을 험악하게 일그러트리며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당장 해약을 내놔라.”

그러고 보니 삼살이견은 아직 오늘분의 해독환도 받지 못했다.

막 그걸 받으려 할 때 동굴이 무너졌다.

기세에 눌린 현석이 저도 모르게 해독환을 내주려 하다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

“어서 약을 주지 않고 뭐 하는 거냐!”

보부상이 허공에 멈춘 손을 보며 짜증을 냈다.

당장 귀싸대기를 날릴까 하는데, 이놈이 영 황당한 소리를 지껄였다.

“약을 받고 싶으면, 동굴을 막은 돌부터 치워주십시오.”

“뭐?”

“저 돌을 치워달라고 했습니다. 무공을 익힌 당신들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지 않습니까?”

“뭐!”

어렵지 않기는!

혹여 정말 쉬운 일이라 해도, 그걸 제 의지로 하는 것과 하인 놈의 명령 때문에 하는 건 전혀 달랐다.

후자의 경우라면 무인의 자존심이 곤두박질치는 것이다.

“이 자식이!”

우수수!

“?!”

바로 현석의 뺨을 날리려는데, 그의 손에서 갑자기 검은 가루가 떨어졌다.

보부상은 한눈에 가루의 정체를 알아챘다.

“이 미친!”

“당장 저 돌을 치우지 않으면, 가지고 있는 해약을 전부 부수겠습니다.”

“이놈이!!”

그는 더는 못 참겠다며, 눈이 뒤집은 채 발길질을 날렸다.

턱!

그런데 그가 날린 발을 누군가 막았다.

약초꾼이었다.

“어허!”

“뭐야? 또 나보고 참으라는 거냐! 웃기지 마!”

“누가 참으래?”

“뭐?”

“이건 나도 그냥 지켜볼 순 없어서 말이지.”

이전까지 약초꾼은 되도록 진천우와 현석의 말을 잘 따라주었다.

먼저 동굴의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었고, 자주 열불을 터트리는 보부상의 행동도 손수 말렸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이번 일은 무인의 자존심이 달렸다.

흠칫!

“녀석.”

현석이 살기를 느끼고, 뒤로 물러났다.

약초꾼은 보부상처럼 어쭙잖은 협박은 하지 않았다.

“당장 해약을 내놓거라.”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잠시 잊었다.

‘그래, 이자들은 무인이었지.’

현석은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며 침을 삼켰다.

무공을 익힌 무인은 산중호걸인 범보다 날쌔고 강했다.

게다가 그 잔혹함은 배고플 때만 사냥하는 맹수와 비할 바가 못 됐다.

자신은 그런 무인을 상대로 협박을 한 것이다.

아무리 소가주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눈에 뵈는 게 없다고 해도…….

“!?”

‘소가주님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으면, 당연히 눈에 뵈는 게 없어야지!’

우수수!

즉시 손에 힘을 주었다.

또다시 그의 주먹에서 검은 가루가 날렸다.

“이놈이!”

“……죽고 싶나?”

삼살이견이 각각 뜨겁고, 차갑게 기세를 올렸다.

몸이 다시 떨렸다.

그만큼 또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당장…… 동굴 입구를…… 치워……!”

현석이 창백한 인상으로 명령했다.

“이게!”

보부상이 눈에 핏발을 세웠다.

그때, 약초꾼이 먼저 앞으로 나섰다.

“…….”

그는 아무 말 없이 현석을 노려보았다.

섬뜩!

살기가 짙어졌다.

어찌나 지독한지 숨을 쉴 수 없었다.

부르르!

그러나 현석은 결코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도 알았다.

‘여기서 내가 눈을 돌리면, 이자들은 해약을 뺏고 달아날지도 모른다.’

절대 안 뺏긴다.

그리고 반드시 주인도 구해낸다.

우수수!

어느새 새 해독환을 꺼내, 그것도 가루 냈다.

“만약 그 손을 펼치면 넌 죽는다.”

그래, 가루만 낸 거면 아직 먹을 수 있다.

약초꾼 삼살이견이 경고와 함께 더욱 기세를 올렸다.

하지만 그는 속으로 또다시 해약을 가루 낸 현석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독한 놈!’

보통의 범인이라면 벌써 정신을 잃고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지금도 하인 놈은 눈이 반쯤 까뒤집힌 채 온몸을 발작하듯 떨어댔다.

‘그런데도 쓰러지지 않다니.’

가끔 있다.

마음속에 단단히 기둥을 세워, 이를 지키기 위해 제 목숨도 초개처럼 버리는 이가.

그러나 지금껏 그가 본 자들은 모두 범상치 않은 기운과 성정을 지닌 뛰어난 무인이었다.

‘그중 누구도 이놈처럼 무공도 모르는 평범한 범인은 없었다.’

그래서 더 감탄스러웠다.

무공을 모른다는 건, 지금 제가 내뿜는 살기를 몇 배로 더 크게 느낀다는 거니까.

그렇다 해도 이놈의 말을 순순히 따를 순 없었다.

‘내가 개처럼 꿇을 줄 아느냐!’

아무리 자신의 별호가 삼살이견(犬)이어도, 그는 개가 아니었다.

‘개가 될 바에는 차라리 이 자리에서 네놈을 죽이고 만다.’

약초꾼이 현석의 눈앞에 대고 여봐라는 듯 주먹을 쥐었다.

딱히 그는 더 살기를 내뿜지 않았지만, 단순히 서 있는 것과 주먹을 쥔 상태는 한눈에도 달라 보였다.

뚝!

그 순간, 뭔가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현석의 이성이 끊어진 걸까?

그렇다면 놈은 제법 잘 견딘 것.

기꺼이 칭찬하고, 목숨 또한 살려줄 의향이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광경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주륵!

현석의 입가에 한줄기 선혈이 흘렀다.

살기를 견디려고 얼마나 이를 악다물었는지, 그대로 어금니가 부서진 것이다.

그 대신 비릿한 피 맛이 정신을 되돌렸다.

현석이 한결 멀쩡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당장 동굴 입구를 치워.”

손을 펴면 날 죽이겠다고?

‘어디 죽여 봐라!’

그 직후, 녀석의 입꼬리가 기이하게 비틀렸다.

제 주인을 닮은 미소.

약초꾼이 눈앞에서 주먹을 쥐며 자신을 협박했다면, 나는 주먹을 펴서 널 협박해주마.

현석이 막 주먹을 펼치려는데!

“아, 알았다! 내가 졌다. 당장 동굴을 뚫으마!”

약초꾼이 급히 양손을 위로 들며 몸을 돌렸다.

“너도 가자.”

그리고 바로 보부상과 함께 동굴 쪽으로 달려갔다.

다른 변명은 필요 없었다.

자신은 하인 놈과 기세 대결에서 졌다.

녀석은 목숨을 버렸지만, 자신은 그러지 못했다.

이는 군말 없이 따라온 보부상도 마찬가지.

그렇게 그들은 개가 되어주었다.

그 둘이 진심으로 그리 인정한 순간, 누군가의 눈앞에 푸른 현판이 나타났다.

[사용자와 주종관계를 맺은 현석이 ‘조련사(調鍊師)’ 직업을 획득했습니다.]

[주종관계에서 주인은 일방적으로 하인의 스킬을 공유합니다.]

[스킬 ‘조련(調鍊)’을 습득했습니다.]

* * *

풍덩!

“헉!”

물에 빠진 진천우가 급히 숨을 들이켰다.

갑작스러운 돌풍으로 강제로 도원경에 들어왔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삼 장 높이의 허공이었다.

‘다행히 아래에 물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경공을 익히지 못한 그였기에, 물이 충격을 흡수해주지 않았다면 크게 다쳤을지도 몰랐다.

“억!”

그런데 가만 생각하니 자신은 자맥질도 할 줄 몰랐다.

평생 가문 밖을 나선 적 없는 그가 언제 수영을 해봤을까.

“억! 컥!”

진천우가 물속을 허우적대며 몇 번이나 물을 삼켰다.

그러다 갑자기 몸이 쑥 떠올랐다.

발이 땅에 닿았다.

뒤늦게 몸을 일으키니, 물이 딱 제 가슴팍 높이였다.

그는 민망함에 얼굴을 붉히며 물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때 갑자기 현판이 앞을 가렸다.

“이게 무슨 소리…….”

영 이상한 내용에 현판을 자세히 확인하려는데.

“꼼짝 마라!”

“?!”

스릉!

난데없이 날카로운 검이 진천우의 목에 겨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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