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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 무공을 배우다 (44/210)


44화 : 무공을 배우다
2021.10.11.


“맨 먼저 금강공(金剛功)을 알려주마. 불가의 무공이니 너와 궁합도 괜찮을 거다.”

“…….”

진천우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였다.

어째서 흑의 여인은 자신과 불가의 무공이 어울린다고 생각한 걸까?

‘설마 내가 역근경을 익히고, 대환단을 먹은 걸 눈치챈 걸까?’

역근경과 대환단 모두 소림에서 철저히 감춰온 비전(祕傳).

하지만 이 둘은 일체 가공 없는 순수한 자연지기를 다루기에, 불가의 기운이 느껴질 리 없었다.

‘거기다 그녀는 이번에도 또 내 은폐 스킬을 꿰뚫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진천우는 흑의 여인이 남들은 가지지 못한 육감을 가진 게 아닌지 의심되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

“아닙니다.”

지금껏 지켜본 흑의 여인의 성격상, 물어본다고 순순히 진실을 알려줄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면, 결과가 나오지 않을 일에 쓸데없이 심력을 소모하기보다, 그녀가 마음을 바꾸기 전에 무공을 전수받는 게 옳았다.

“가부좌를 틀어라.”

시키는 대로 바닥에 앉아 가부좌를 틀자, 흑의 여인이 곧바로 구결을 알려주었다.

금강공은 진천우의 예상대로 소림의 무공이 맞았다.

허나 금강이란 거창한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그것은 저잣거리 시정잡배들이 돈 몇 푼으로 구한다는 삼재검법과 육합권만큼이나 간단한 기초 중의 기초 심법이었다.

그렇다고 금강공이 아무 효능이 없는 건 또 아니었다.

금강공은 외기(外氣)를 받아들이는 데 큰 효용을 지녀 내공 입문에 제격이었고, 이후 단전을 깨끗이 하는 효과도 있었다.

그러나 그 효용은 딱 거기까지라, 다른 상승 심법처럼 내공을 빨리 쌓거나 무공의 파괴력을 올리지는 못했다.

“?”

진천우가 금강공의 구결을 듣다 말고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

그 반응에 흑의 여인이 잠시 의아한 반응을 보이다, 다시 입을 열었다.

꿈틀!

그런데 또 구결 전수 중, 그가 중간에 고개를 흔들며 맥을 끊었다.

기껏 무공을 알려주는데 이런 식이면 화가 날 법도 한데, 그녀는 도리어 두 눈을 빛내며 살짝 흥분된 기색을 보였다.

“너,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이미 따로 무공을 익히지 않은 건 알았지만, 설마 이토록 백지상태일 줄이야.

‘무공 구결을 못 외우는 게 아니라 아예 이해하는 방법조차 모른다는 건, 이런 식의 전수가 처음이라는 뜻. 무공의 기초조차 모르는 녀석이 기의 바다를 건너고, 중수에 몸을 담그기까지 했다라?’

흑의 여인은 생각했다.

재밌다.

정말 재밌다!

그럴 수밖에.

원래 새하얀 종이를 검게 물들이는 것만큼 재밌는 일은 없었다.

“죄송합니다.”

그때, 진천우가 고개를 숙였다.

그는 처음 구결을 들었을 때부터 어떻게든 몸에 적용해보려 했지만, 할 수 없었다.

“괜찮다. 모를 수도 있지.”

흑의 여인이 가르치는 방법을 바꿨다.

“내공은 움직일 줄 알겠지? 처음에는 기해혈부터.”

그녀는 금강공 운기에 필요한 혈도를 차례로 불러주었다.

진천우가 알려준 대로 내공을 움직였다.

당연히 처음 익히는 심법이라 본의 아니게 실수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거기가 아니다. 기운을 오른쪽으로 틀어.”

그때마다 흑의 여인이 바로 알아차리고 조언해주었다.

그렇게 일각 정도 지나자.

“후우!”

금강공을 몸 전체로 한 바퀴 돌릴 수 있었다.

일주천하는 데 일각이면 충분하다는 것도 금강공의 장점이었다.

“이제 대충 운기하는 법은 다 익혔지?”

흑의 여인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가 진천우를 향해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처음 무공을 익힌 것치고는 제법이라고 칭찬이라도 해줄 줄 알았는데…….

“방금 네가 익힌 금강공은 그야말로 기초 중의 기초다. 사실 기초라 말하면 듣기 좋을지 몰라도, 남들이 보면 그냥 쓰레기지.”

“네?”

“뭘 모르는 척하지? 너도 일주천하면서 느꼈을 텐데? 필요한 혈도는 지나치게 간단하고, 기껏 운기해서 늘어난 내공도 쥐똥, 아니지 이건 쥐똥에게 실례겠군. 쥐벼룩의 똥만큼도 안 늘었을 텐데?”

“…….”

기대가 너무 컸나?

흑의 여인은 칭찬은커녕, 차라리 대놓고 욕하는 게 나을 수준의 악평을 마구잡이로 쏟아냈다.

“인상 쓰기는. 걱정 마라. 아무렴 내가 그것도 모르고 네게 금강공을 알려줬을까.”

“혹시 금강공에 제가 모르는 특별한 효능이라도?”

“없지. 이만큼 간단한 무공에 따로 숨겨진 효능 따위 있을 리가. 아, 그래도 보통 무인들은 이런 건 모를지도?”

슥!

그녀가 갑자기 진천우의 뒷덜미를 붙잡아 자리에서 일으켰다.

“다시 금강공을 운기해라.”

“네?”

가부좌가 아니라, 선 채로?

“운기에 필요한 혈도가 백 개도 안 되는 심법에 가부좌는 무슨! 이 정도는 서 있을 때나 누울 때, 그리고 악독한 마두에게 쫓기는 순간에도 운기할 수 있어야지.”

최소한 마지막은 억지였다.

하지만 앞의 둘은 제법 그럴듯해서, 진천우는 순순히 선 채로 금강공을 운기했다.

우우웅!

정확히 일각에서 반각이 더 지나자 일주천이 끝났다.

눈을 뜨니, 흑의 여인이 살짝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이 정도로 봐주겠다는 얼굴로, 입을 뗐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고(流水不腐 : 유수불부),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지(轉石不生苔 : 전석불생태). 요는, 움직이는 것은 썩지 않는다는 뜻이다.”

“?”

또 다른 무공 구결인가?

진천우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에 빠지더니, 갑자기 벼락을 맞은 듯 급히 고개를 치켜들고 몸을 틀었다.

휙!

정신을 차렸을 땐, 흑의 여인의 새하얀 주먹이 귀밑을 스친 뒤였다.

“무슨 짓입니까?”

“어쭈?”

그녀가 계속 재밌어 죽겠다는 얼굴로 말했다.

“왜 피하지?”

당연히 피해야지.

조금 전에 주먹에 맞았으면 적어도 삼 장은 날아갔을 터.

“그러니까 아까 안 피했으면, 한 대만 맞았을 거잖아.”

“무슨?!”

퍽퍽!

맞다.

눈앞의 상대는 지금으로써는 당해낼 수 없는 고수였다.

그는 순식간에 흑의 여인의 주먹에 가슴을 연달아 맞고 뒤로 일곱 장이나 날아갔다.

“어때? 이제 괜찮지?”

괜찮냐니?

‘저 여자가 남자의 가슴을 와장창 부숴놓고, 무슨 망발을!’

“그러니까 이제는 몸이 어느 정도 만들어져서, 선을 넘어도 제법 견딜 수 있지 않나?”

“선?”

그러고 보니, 어느새 샘의 영역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우웅!

사방에서 사나운 기가 넘실거렸다.

진천우가 기겁하며 영역 안으로 돌아가려는데.

“돌아오지 말고 거기서 금강공을 운기해라. 일단 열 번만 일주천하면 들어오게 해주지.”

“무슨 말도 안 되는!”

“진짜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몸소 보여줘?”

“…….”

그 직후 그녀가 짓는 해맑은 미소에, 진천우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흑의 여인은 반드시 제가 한 말을 지킨다.

이를 막을 방도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서 가부좌를 틀고 금강공을 운기했다.

“!?”

그 직후 벌어진 놀라운 기사에, 하마터면 운공 중에 소리를 지를 뻔했다.

‘몸속으로 들어오는 외기가 확연히 늘었다?!’

“금강공이 외기(外氣)를 받아들이는 데 큰 효용을 지녔다는 건 이미 알지?”

흑의 여인이 물었지만, 진천우는 운공 중이라 답하지 못했다.

그녀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처음부터 대답을 바란 질문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네가 앉아있는 곳이 어디지?”

기(氣)의 바다.

외기가 지나치다 못해 아예 격랑을 일으키는 곳.

그제야 진천우는 흑의 여인이 자신에게 금강공을 가르친 진짜 이유를 깨달았다.

‘역시 보통이 아니다.’

그가 속으로 아주 크게 감탄하려는데…….

“자, 그럼 그대로 계속 금강공을 운기하면서 새로운 보법도 익혀볼까?”

“네?”

너무 놀라 결국 운기하는 도중에 소리를 질렀다.

금강공이 서서도 운기 가능한 간단한 심법이라 다행이었다.

그게 아니었으면, 지금처럼 일주천이 중간에 끊기는 거로 끝나지 않고 주화입마에 빠졌을지도 몰랐다.

‘잠깐?!’

-운기에 필요한 혈도가 백 개도 안 되는 심법에 가부좌는 무슨! 이 정도는 서 있을 때나 누울 때, 그리고 악독한 마두에게 쫓기는 순간에도 운기할 수 있어야지!

-흐르는 물은 썩지 않고(流水不腐 : 유수불부),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지(轉石不生苔 : 전석불생태). 요는, 움직이는 것은 썩지 않는다는 뜻이다.

드디어 진천우는 흑의 여인이 중간중간 엉뚱한 소리를 한 이유를 알아차렸다.

고개를 돌리자, 그녀의 양손에 언제 주웠는지 손톱 크기의 돌멩이가 한가득했다.

‘진짜 이대로 보법을 알려주려고?’

설……마?

“이제부터 알려줄 무공은 진퇴보(進退步)라고,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나는 동작이 다인 간단한 보법이다. 당연히 익히면서 금강공은 계속 운기해야 하는 거 알지?”

진짜다!

이 여자는 지금 진심이다!

휙!

진천우가 기겁하며 뭐라고 소리치려 했지만, 그보다 한발 돌이 날아왔다.

정확히 안면을 노리고!

우우웅!

심지어 내공까지 실어서!!

* * *

‘호오?’

흑의 여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확실히 재밌는 놈이야.’

그녀도 안다.

아무리 금강공의 특성이 있어도, 이만큼 농밀한 기운 한가운데서 심법을 운공하는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심지어 그 상태로 보법까지 함께 익힌다?

당연히 몇 번 하다 말고 각혈하고 혼절하는 게 정상이다.

그래도 무리해서 시키면 이후 성장에 도움이 될까 싶어 억지로 시켰다.

‘그런데 설마 어떻게든 소화해낼 줄이야?’

정말 제법!

[여왕이 원합니다.]

[퀸 메이커가 당신의 무공 수련을 보조합니다.]

[‘각혈하면 강제 지혈! 혼절하면 강제 각성!!’을 실행합니다!]

사실 이런 사정이 있지만, 이를 알 리 없는 흑의 여인은 그저 감탄하며 손에 쥔 돌멩이를 날렸다.

“젠장!!”

진천우가 자신에게 날아오는 돌을 보고 두 눈을 치켜떴다.

내공을 실은 돌에 맞으면 뼈가 울리기에, 그는 곧바로 뒤로 물러났다.

그냥 물러나는 게 아니라, 앞서 그녀가 알려준 발놀림을 따라 했다.

진퇴보는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나는 두 가지 동작뿐인 단순한 보법.

하지만 그 단순함 덕에, 나아감과 물러서는 것만은 어느 상승 신법 못지않았다.

휙!

용케 돌을 피했지만, 역시 처음 펼치는 보법이라 어설펐다.

틀린 자세를 말로 일러주는 건 쉽다.

그러나 쉽게 손에 넣은 건 그만큼 쉽게 흩어지는 법.

흑의 여인은 일부러 어려운 방법을 택했다.

그녀가 다시 돌을 던졌다.

휙!

진퇴보를 펼칠 때는 옆으로 움직일 수 없다.

이미 한 번 물러났으니 이번에는 앞으로 나가야 했다.

진천우가 땅을 박차며 몸을 날렸다.

“큭!”

또 자세가 흔들렸다.

휙휙!

그런데 맨 처음 날아온 돌 외에 시간차를 두고 또 돌이 날아왔다!

그것들에 맞지 않으려면 자세를 바로잡는 수밖에 없었다.

핏!

정말, 정말 간신히 돌을 피했다.

비록 옆구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쳤지만, 이만하면 훨씬 나아졌다.

하지만 쉬고 있을 틈이 없었다.

휙!

또 돌이 날아왔다.

휙휙!

그것들을 모두 피하려면, 확실한 자세로 진퇴보를 펼치는 수밖에 없었다.

휙휙휙!

다만…….

휙휙휙휙!!

‘아무리 맞으면서 익히면 잘 잊지 않는다지만, 이건 너무 많잖아!!’

퍽!

결국 십여 번 간신히 피한 끝에 진천우의 명치에 돌이 박혔다.

“우웨엑!”

그 자리에서 구토할 만큼 끔찍한 고통.

“후후후!”

그런데 그걸 보고 뭐가 그리 기쁜지, 흑의 여인이 아주 해맑게 웃었다.

저건 인간이 아니다!

‘숫제 악귀다. 저건 날 족치려 지옥에서 올라온 악귀나찰이야.’

얼마나 악에 받쳤는지 절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허나 이건 약과였다.

“심법에 보법도 익혔으니, 이제 권법을 익혀볼까?”

아아, 저 여자는 정녕 마라(魔羅)인가?

“음?”

그때 흑의 여인이 갑자기 고운 아미를 찡그렸다.

하필 바로 직전에 속으로 갖가지 욕설을 뱉은 뒤라 진천우는 설마설마하며 목을 움츠렸다.

부처조차 유혹하고 괴롭혔다는 마라이기에, 어쩌면 생각마저 읽는 게 아닌가 싶었다.

“크흠!”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인상을 찡그렸다.

“아쉽게도 권법까지 손봐줄 시간이 없구나. 오늘은 심법과 보법에만 열중하도록.”

그 말만 남기고 흑의 여인은 뭔가에 쫓기듯 다급히 몸을 돌렸다.

그녀가 몸을 돌릴 때, 진천우의 코끝에 뭔가가 흘러들어왔다.

‘이건 혈향(血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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