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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 화후 사냥 (1) (46/210)


46화 : 화후 사냥 (1)
2021.10.16.


끼익!

“날뛰지 마라!”

진천우의 오만상을 쓰며 소리쳤다.

협작질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기세다.

상대가 전설의 영물이든 뭐든 결코 기세에서 밀리면 안 된다.

‘무엇보다 내가 언제든 손에 든 천을 미련 없이 불 속에 던질 수 있는 미친놈이란 걸 보여줘야 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면 화후는 그 틈을 노려 달려들 게 분명했다.

다행히 허세가 먹힌 걸까?

끼이익……!

놈이 이를 악다물며 소리를 줄였다.

분하다.

당장이라도 눈앞의 인간의 머리통을 후려치고 싶다.

하지만 그랬다간.

“가만히 있으라니까!”

화륵!

진천우가 천을 불 가까이에 댔다.

짐승 주제에 누구 앞에서 눈알을 굴려!

화르륵!

그 순간, 숲을 태우던 불꽃이 크게 넘실거렸다.

그때 튄 불똥이 하마터면 천에 닿을 뻔했다.

끼긱!

이를 본 불 원숭이가 즉시 양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공격?

아니, 놀람과 만류였다.

굳이 행동 양식을 분석하지 않아도, 한껏 찡그린 얼굴만으로 놈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확실히 일정 수준을 넘어선 영물은 진실로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화후는 이 와중에도 진천우가 행여나 이상한 짓을 할까 싶어, 그 자리에서 발을 떼지 못했다.

성공이다.

기세를 잡았다.

“그래야지. 그럼 이제 뒤로 물러나.”

불 원숭이는 순순히 말을 따랐다.

만약 저 불이 자신이 토해낸 불꽃만 아니었다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

일반적인 불로는 푸른 천과 흰 천을 태울 수 없었다.

그러나 아주 강한 기운을 품은 불, 그러니까 제 몸에서 토해낸 불이면 저 천을 태울 수 있었다.

만일 천이 타면, 색을 잃은 것과 달리 도원경에서도 복구하는 데 한세월이 필요했다.

화후가 거리를 벌리자, 그제야 굳은 표정을 풀었다.

이 기세를 몰아 교섭을 벌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화후에게 누런 천을 받을 수 있을까?’

아마 자신과 녀석의 목적은 일치했다.

당장 금지 밖으로 나가는 것.

그러나 목적이 일치한다고 반드시 한마음 한뜻이 될 순 없었다.

‘내 목적을 알면 저놈은 반드시 내게 달려든다.’

금지를 빠져나가기 위해 꼭 필요한 청기와 백기를 태우지 못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지금 눈앞의 상대는 단순한 짐승이 아니라, 뱃속에 뱀을 품은 요물이었다.

진천우가 머릿속으로 유한 말투와 논리정연한 설명 혹은 강압적인 폭거 등을 떠올리며 지금 상황에 가장 알맞은 교섭법을 고민하는데, 갑자기 화후가 몸을 움찔거렸다.

“내가 움직이지 말라고…….”

끼긱!

“응?”

불 원숭이는 여전히 충분한 거리를 벌린 채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먼저 양팔을 길게 뻗어 커다란 사각형을 그리더니, 그 위를 뛰어넘는 듯한 시늉을 펼쳤다.

그러다가 잠시 뒤, 두 팔을 교체한 상태로 고개를 좌우로 빠르게 흔들었다.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냐?”

끼기긱! 끽!

화후가 진천우의 말에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놈은 사람의 말을 알아들었다.

한편, 녀석은 다소 흥분한 손짓으로 진천우가 든 두 개의 천을 가리켰다.

그 뒤, 다시 처음 했던 행위를 반복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양팔을 교체하지 않고 동그랗게 모았다.

“흐음…….”

진천우가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며 말했다.

“너, 혹시 여기서 나가는 방법을 아는 거냐?”

끼긱!!

화후가 신이 나서 방금 한 행동을 다시 반복했다.

몸짓을 아까보다 훨씬 더 크고 정확하게 하려는 게 눈에 보였다.

진천우는 저 동작의 의미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일부러 모르는 척 떠듬떠듬 입을 뗐다.

“네모난 건 벽? 이 주위에 벽이 있다? 그걸 넘으려면 내가 가지고 있는 천이 필요하다? 맞나?”

끼기긱! 끼익! 끽끽!

불 원숭이가 정말 기뻤는지 손과 발로 동시에 박수를 쳤다.

지금껏 상당수의 인간을 봤지만, 이놈처럼 말이 잘 통한 인간은 처음이다.

사실 전에 만났던 인간들은 자신을 보자마자 비명을 지르고 달아나거나, 자신의 내단을 노리고 다짜고짜 달려드는 놈밖에 없었다.

아니, 딱 한 놈…… 자신이 여기 들어오기 직전까지 쫓아왔던 인간 하나는 어째서인지 자신과 대화를 나누려는 시도를 계속하긴 했지만…….

“그런데 내가 네놈 말을 어떻게 믿지?”

그때 진천우가 화후의 상념을 깨웠다.

역시 이 인간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약한 주제에 머리는 제법 비상하게 돌아간다.

“흠…….”

끼익……!

인간과 불 원숭이가 동시에 턱에 손을 괴며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대로 꽤 시간이 흘렀다.

먼저 입을 연 건 진천우였다.

“그래, 이렇게 하지.”

끽?

“네놈이 허리에 두른 누런 천도 이거랑 같은 거지?”

끼익?!

놀랐다.

그러나 뒤이은 그의 설명에 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딱 봐도 그 천에도 내 것과 같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데, 어딜 모른 척하고 있어?”

확실히 그랬다.

어느 정도 기운을 느낄 줄만 알면, 저 반쪽짜리 천은 몰라도 완전한 누런 천의 영험함을 모를 리 없었다.

게다가 저 인간은 반쪽짜리 천이 누런 천과 동조해 빛을 내는 것도 똑똑히 보지 않았던가.

일부러 감추고 있던 사실을 들키자 화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진천우의 다음 말에, 녀석의 낯빛은 아예 시꺼멓게 썩어들어갔다.

“그거 나한테 줘. 그럼 내가 이 천과 함께 금지를 두른 벽을 열어주지.”

웃기지 마라!

네놈을 어떻게 믿고!

그러나 화후는 뜻밖에 감정을 폭발하지 않았다.

되레 차분히 생각하는 듯 잠시 눈살을 찌푸리더니, 놀랍게도 천천히 허리춤의 누런 천을 풀었다.

그리고 녀석은 천을 손에 든 채 진천우 쪽으로 다가갔다.

“거시서 멈춰. 천을 땅에 두면, 내가 가져가지.”

불 원숭이가 떨어진 거리의 절반 정도 오자, 진천우는 손을 들어 제지했다.

놈은 순순히 천을 내려놓고 물러났다.

진천우는 화후가 다시 끝까지 물러난 걸 확인하고 천 쪽으로 다가갔다.

마침내 그가 누런 천에 손에 대려는 순간!

팟!

불 원숭이가 몸을 날렸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진천우가 조금도 놀라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코앞에 있는 누런 천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처음부터 화후를 시험하기 위해 해본 말이었다.

그는 화후가 다가오는 것보다 빨리 원래 자리로 돌아가 손에 청기 백기를 들고 소리쳤다

“당장 멈추지 않으면 이걸 불 속에…… 불이?!”

어느새 불이 꺼졌다.

언제!?

그랬다.

시간을 끌고 있던 건 진천우만이 아니었다.

화후는 제가 토한 불이 곧 꺼질 걸 알고, 일부러 몸짓 발짓을 하며 시간을 끌었다.

끼기긱!

달려오면서 어느새 누런 천을 회수한 원숭이가 입가에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저 인간을 마음껏 때려줄 거다.

그리고 푸른 천과 흰 천을 빼앗아야지.

저것들만 얻으면 드디어 이 지루한 곳과 안녕이다!

끽!!

화후가 바로 기이할 정도로 긴 팔을 앞으로 뻗었다.

불이 꺼졌으니 인간은 또 뒤로 달아나겠지만, 일단 자신이 제대로 마음먹으면 금세 붙잡을 수 있다.

그렇게 녀석이 의기양양하게 달려들자.

“멍청한 놈!”

진천우가 크게 소리 지르며 앞으로 튀어나왔다.

앞?

진퇴보는 앞으로 나아가거나 물러날 때 큰 효능을 보인다.

그런데 진퇴보가 가장 큰 효과를 보일 때는 그냥 나아가거나 물러날 때가 아닌, 한 번 나아갔다가 물러나거나 반대로 물러난 뒤 나아갈 때다.

자신은 이미 한 번 물러났다.

그 뒤 다시 앞으로 나아가려 하자.

쉐엑!

진천우의 몸은 한 줄기 바람이 되어 쏘아졌다.

끼기긱!

원숭이가 기겁했다.

그러나 짐승의 감각은 날카로웠다.

녀석은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진천우의 양팔과 양다리를 노려보았다.

다행히 저 인간은 따로 날붙이를 지니지 않았으니, 주먹과 발길질만 조심하면 된다고 여겼는데.

쾅!!

우끽!

설마 냅다 머리를 박을 줄이야!

아직 어떤 권법도 익히지 않은 진천우의 최강의 패가 박치기일 줄 짐승 따위가 어찌 알까.

‘이 틈에!’

진천우가 누런 천을 향해 손을 뻗었다.

놀란 화후가 곧바로 몸을 비틀었다.

아쉽게도 진퇴보는 옆으로의 움직임에는 약했다.

다 잡은 누런 천을 아깝게 놓쳤다.

더 최악은 그 한 번의 움직임으로 녀석이 진퇴보의 약점을 눈치챘다.

끼이익!

원숭이가 웃음을 되찾았다.

주륵!

끽?

하지만 곧바로 느껴지는 비릿한 피 맛에 금방 인상을 찡그렸다.

조금 전 박치기가 세긴 셌다.

내가 인간에게 이런 수모를 당하다니!

끼이익!

웃다가 갑자기 화내기 시작한 원숭이를 보며 진천우가 소리쳤다.

“지금입니다!”

끽?

뭔 소리?

아니, 나한테 하는 말이 아닌가? 설마!!

휙!

화후가 고개를 돌리자, 섬뜩할 정도로 새하얀 손이 자신을 향해 날아왔다.

지난 며칠 동안 집요하게 제 뒤를 쫓아온 검은 암컷!

“잘했다.”

자신을 사이에 두고 미묘한 웃음을 터트리는 두 남녀 잡것을 보며 불 원숭이는 확신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저 수컷 또한 이걸 노리고 시간을 끈 거구나!

썩을 인간들!

끼익!

그러나 여기서 순순히 붙잡히면 전설의 영물이라 할 수 없었다.

화후는 즉시 몸을 땅에 굴려 암컷의 손을 피하더니, 그대로 숙였던 몸을 튕겼다.

뇌려타곤(懶驢打滾)과 궁신탄영(弓身彈影)!

벽은 넘은 무인도 저렇게는 못 한다.

그야말로 인간을 뛰어넘은 짐승의 움직임.

땅을 박찬 원숭이가 가장 가까이 있는 나무를 향해 날아갔다.

숲에만 들어가면 아무리 무서운 인간 암컷이라도 따돌릴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흑의 여인이 이를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었다.

“이랑!”

언제나 그녀와 함께 있는 백의 여인이 이때를 노리고 나무 위에서 몸을 날렸다.

함정이었다.

빌어먹을!

아무리 같은 짐승이라도, 새가 아닌 이상 공중에서 방향을 틀 수 없는 법.

거기다 아래에서 검은 인간 암컷도 솟구쳐 올랐다.

그야말로 일생일대의 위기!

끼이익!!

결국 녀석은 마지막까지 아껴둔 비장의 기술을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화르륵!

놈이 입에서 불을 토했다.

그런데 그 불이 심상치 않았다.

이전과 같은 불로는 이 무서운 암컷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제 내단의 기운을 섞은 특별한 불을 토했다.

찬란한 금빛 불꽃이 사방에 흩어졌다.

“이랑, 피해라!”

흑의 여인도 저 불꽃은 심상치 않다고 느끼고 수하를 피신시켰다.

휙!

그 틈을 타 원숭이가 또다시 달아났다.

“제길!”

흑의 여인이 이빨을 갈며, 진천우에게 함께 놈을 쫓자고 하려는데…….

“어서 안 쫓고 뭐 하십니까?”

이미 그는 한발 앞서 몸을 날린 뒤였다.

“후후후!”

저놈이 감히 내게 명령을 해?

“건방지게 재밌는 놈 같으니!”

흑의 여인이 씩 웃으며 몸을 날렸다.

백의 여인도 그 뒤를 따랐다.

이때, 화후의 뒤를 바짝 쫓던 진천우의 눈앞에 푸른 현판이 나타났다.

[‘화후의 숨결’을 직접 두 눈으로 목도했습니다.]

[불완전한 화후기식법의 남은 조각 중 하나를 획득했습니다. (1 / 3)]

[이 시간부로 화후기식법의 숨겨진 효과 중 하나인 ‘화후의 숨결’이 해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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