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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화 : 화후 사냥 (3) (48/210)


48화 : 화후 사냥 (3)
2021.10.20.


“잡았다!”

진천우가 화후를 향해 손을 뻗었다.

끼긱!

녀석은 철석같이 믿었던 신기루가 덧없이 사라져 혼란한 상태라, 피하는 게 한발 늦었다.

그러나 과연 전설의 영물.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자, 놈은 놀랍도록 재빨랐다.

게다가 짐승답게 생존을 위해서라면, 보통 무인들이 하기 꺼리는 뇌려타곤도 서슴지 않았다.

문제는, 상대 역시 그까짓 것쯤 전혀 꺼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우당탕!!

진천우가 눈부시게 빛나는 금빛 털을 잔뜩 움켜쥐고 원숭이와 함께 땅을 굴렀다.

우키긱!

설마 이 정도로 독한 인간일 줄 몰랐다.

화후가 기겁하며 양팔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사실 이 인간 수컷은 전혀 무섭지 않았다.

하지만 놈을 떼어놓지 못하면 바로 인간 암컷이!

“붙잡았구나!”

젠장, 암컷이 보기에도 섬뜩한 미소를 띠며 이쪽으로 달려왔다.

끼기긱!

어쩔 수 없이 녀석은 진천우를 몸에 매단 채 몸을 날렸다.

쾅쾅!

화후는 어떻게든 그를 떼어내려고 주먹을 휘둘렀다.

무지막지한 괴력.

허나 진천우는 절대 손에 힘을 풀지 않았다.

‘이 기회를 놓치면 언제 불 원숭이를 또 잡을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다.’

반드시 놈을 붙잡는다.

그래서 여길 탈출한다.

다행히 중수의 샘에 몸을 담근 보람이 있었다.

거기다 역근경을 운기하고 대환단의 기운까지 흡수한 그의 몸은 웬만한 외공 고수 못지않게 질기고 단단한 피부를 지니게 되었다.

쾅쾅쾅!

화후의 공격이 아무리 거칠다지만, 흑의 여인이 손을 쓸 때까지 물고 늘어질 여력은 충분했다.

“잘했다!”

찰나지만 천년 같은 시간이 지나고, 결국 그녀가 원숭이의 배후를 붙잡았다.

그대로 희고 긴 손이 뻗어오자 녀석이 발작하듯 몸서리쳤다.

끼이이이이익!!

“앗?!”

진천우가 갑자기 소리 질렀다.

그는 화후의 몸에 바짝 붙은 덕에, 지금 놈의 떨림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알 수 있었다.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떨림.

이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화후기식법을 익힌 이라면 모를 수 없었다.

‘화후의 숨결!’

“놈이 불을 토합니다!”

화륵!

그 생각이 맞았다.

게다가 그건 보통 불이 아니었다.

금빛 불꽃.

이미 흑의 여인을 연거푸 두 번이나 물린 바로 그 불꽃.

하지만 이번에는 물러나지 않았다.

이번 불꽃의 위력이 전보다 덜해서가 아니었다.

지금 자신이 피하면, 원숭이의 가슴에 매달린 진천우가 고스란히 불을 뒤집어써야 했다.

그러니 물러날 수 없었다.

화륵!

눈부신 금빛이 시야를 뒤덮었다.

아름답지만 그 이상으로 지독했다.

불꽃은 닿는 모든 걸 태웠다.

나무도, 공기도, 심지어 땅까지.

그러나 불 원숭이가 가장 태우고 싶어 한 암수 두 사람은 태우지 못했다.

우우웅!

흑의 여인과 진천우를 감싼 검은 기운이 그들을 금빛 불꽃으로부터 보호해주었다.

그건 내공을 극도로 압축해 만든 호신강기(護身罡氣)였다.

허나 화후의 불꽃도 만만치 않았다.

도검불침(刀劍不侵)의 호신강기의 표면이 조금씩 녹기 시작했다.

그만큼 녀석이 토해내는 금빛 불꽃의 위력은 엄청났다.

게다가 그녀는 지금 자신뿐 아니라 진천우까지 함께 호신강기로 덮었기에 완전한 위력을 낼 수 없었다.

“소주!”

“멈춰라!”

백의 여인이 뭐라도 돕기 위해 몸을 날렸지만, 주인의 매서운 일갈에 걸음을 멈췄다.

“당장 물러나라. 지금 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한마디가 이랑의 가슴을 들끓었다.

허나 옳은 말이다.

자신은 저 싸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되레 방해나 하지 않으면 다행.

화르륵!

그 순간 화후가 더욱 거세게 불꽃을 토했다.

무려 하루에 세 번이나 금빛 불꽃을 토할 줄 몰랐지만, 이렇게 된 이상 반드시 이걸로 두 연놈을 처리해야 했다.

설령 몸속 깊숙이 숨긴 내단을 일부 소모해서라도!

그때, 진천우의 눈앞에 푸른 현판이 튀어나왔다.

[‘완전한 화후의 숨결’을 직접 뒤집어썼습니다.]

[이대로 그 기운을 흡수하면, 불완전한 화후기식법의 마지막 남은 조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매우 놀라운 내용이었지만, 지금 그는 그것에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처음부터 진천우는 화후 포획을 흑의 여인에게만 맡길 생각이 없었다.

심지어 지금 싸움도 어떻게든 도움이 되기 위해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놈은 반드시 내가 잡는다.’

하지만 어떻게?

그 순간, 진천우의 머릿속에 신기묘산(神技妙算)이 떠올랐다.

그는 즉시 소매에서 백호기를 꺼내 오른팔에 칭칭 휘감았다.

청룡기의 효과는 기운을 흩트리는 것.

그럼 백호기의 효과는?

‘백호기는 청룡기와 반대로 기운을 흡수한다.’

“지금 당장 제 팔에 두른 호신강기를 거둬주십시오.”

“뭐?”

“설명할 틈이 없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진천우는 흑의 여인의 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럴 틈이 없었다.

자신이 흰 천을 꺼내고 소리를 지르자 화후의 눈빛이 달라졌다.

끼긱!

녀석이 이제 인간 암컷 대신 수컷부터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진천우가 한발 빨랐다.

아니, 둘이 동시에 움직였다.

“오냐, 믿어보마!”

“이거나 먹어라!!”

흑의 여인이 호신강기를 걷자마자 진천우는 제 팔을 원숭이 입에 처넣었다.

이때도 놈은 금빛 불꽃을 쉴 새 없이 내뿜고 있었지만, 무슨 상관이랴!

우우웅!

백호기가 되레 놈의 불꽃을 흡수했다.

금빛 불꽃은 그 자체로 강력한 기운 덩어리.

마른 천이 물을 빨아들이듯, 백호기는 쉬지 않고 불꽃을 흡수했다.

우끼익!

“아직 안 끝났다. 끝까지 가자!”

그는 제 팔을 더욱 원숭이 입속 깊숙이 쑤셔 넣었다.

완전한 화후의 숨결?

진천우가 노린 건, 그딴 게 아니었다.

당장 놈의 뱃속에 그보다 몇 배 더 크고 강력한 기운 덩어리, 내단이 들어차 있지 않은가!

우우웅! 우웅!!

그 주인에 그 물건이라.

백호기 역시 불꽃만으로는 만족 못 한 듯 게걸스럽게 기운을 빨아들였다.

화후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지만, 소용없었다.

우그긱! 우긱!

그렇게 결국…….

컥!!

원숭이의 눈이 까뒤집혔다.

그 순간, 진천우의 눈앞에 다시 푸른 현판이 나타났다.

[축하합니다. 경쟁전에서 승리했습니다!]

[초월 달성!]

[화후의 숨결만 흡수한 게 아니라, 화후의 내단 절반도 흡수했습니다.]

[완전한 화후기식법을 달성하면서, 지금부터 ‘내단 제조’가 가능해집니다.]

* * *

“잡았습니다! 드디어 저 망할 원숭이를 붙잡았다고요!”

백의 여인이 새된 비명을 토했다.

저 지독한 짐승을 드디어 붙잡았다.

지난 몇 달간 저놈을 잡기 위해 자신과 주인이 얼마나 고생했던가?

“소주, 어서 화후의 내단을 취하십시오!”

그녀는 곧바로 원숭이의 사지를 붙잡아 흑의 여인 앞으로 가져갔다.

이를 진천우는 말없이 지켜보았다.

어째 제가 다 잡은 걸 마지막에 뺏긴 모양새지만 상관없었다.

‘이미 취할 건 다 얻었다.’

지금 불 원숭이 몸 안에 있는 내단은 반쪽짜리.

나머지 절반은 자신이 먼저 취했다.

‘그리고 사실 저 녀석을 잡는 데 그녀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애초에 흑의 여인이 호신강기를 펼쳐주지 않았으면 자신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그녀는 벌써 몇 차례나 자신을 구해주었다.

그 대가로 내단의 절반쯤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진천우는 그쯤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눈앞의 현판을 확인했다.

[내단 제조]

- 몸속에 내단을 제조합니다.

- 이 내단을 먹으면 중급 이하의 독을 모두 해독하며, 오감과 기감이 상승합니다.

‘딱 좋군.’

상세설명에 몇 가지 제약이 보였지만, 그걸 제하더라도 당장 꼭 필요한 스킬이었다.

그는 아직 독괴의 괴혈독에 중독된 상태.

그리고 현석을 해독하는 데도 내단을 쓸 수 있었다.

이제 금지를 탈출하는 일만 남았다.

‘어떻게 저 둘에게 의심 사지 않고 누런 천만 챙기면 되겠군.’

“이게 화후의 내단이군?”

그때, 흑의 여인이 화후의 배를 눌러 내단을 빼냈다.

그토록 염원했던 물건.

하지만 그녀는 그걸 미련 없이 그걸 진천우에게 내밀었다.

“가져라.”

“네?”

“화후를 붙잡은 건 내가 아니라 너다. 그러니 이건 당연히 네가 가져야지.”

이럴 줄 몰랐다.

자세한 사정은 몰라도 흑의 여인은 꼭 화후의 내단이 필요해 보였다.

그런데 저리 쉽게 내주다니.

“소주!”

“이랑! 내게 수치를 줄 셈이냐?”

“……!”

백의 여인이 말도 안 된다며 소리 질렀지만, 흑의 여인의 한 마디에 입을 닫았다.

그녀는 제 주인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안다.

소주가 한 번 하지 않겠다고 말한 이상, 설령 목에 칼이 들어와도 말을 바꾸지 않을 터.

‘아무리 그렇다 해도…….’

백의 여인이 안타까운 마음에 발을 동동 굴렀다.

단순히 내공 상승을 노려 화후의 내단을 얻으려 했다면 그녀 역시 미련을 갖지 않았겠지만, 그게 아니기에 문제였다.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데…….’

흑의 여인은 수하의 안타까움을 못 본 체하며, 손에 쥔 내단을 앞으로 내밀었다.

“자, 가져가라.”

“…….”

진천우가 말없이 금빛으로 빛나는 내단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욕심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남의 염병(광증)이 제 고뿔(감기)만 못 하다.’는 말이 있듯, 그녀가 어떤 사정으로 내단을 원하는지 모르는 이상, 자신 또한 제 천형을 고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화후의 내단을 원했다.

허나 이미 결정을 내린 뒤였다.

진천우가 조용히 손을 앞으로 뻗었다.

내단을 취할지 아니면 거절할지 정할 손길이었는데, 그게 내단에 닿기 직전.

끼기긱!!

화후가 갑자기 두 눈을 번뜩 뜨며 그 자리에서 솟구쳐 올랐다.

지금껏 기절한 척을 한 건 아니었다.

그랬다면 녀석의 목을 쥐고 있던 흑의 여인이 모를 리 없었다.

이 모든 건 우연의 일치.

“저놈도 네 못지않게 재밌구나.”

휙!

흑의 여인이 호쾌한 웃음을 터트리며, 몸을 날렸다.

짐승의 행동은 단순했다.

아쉽게도 내리막은 백의 여인이 막고 있으니, 모 아니면 도란 식으로 낭떠러지로 내달렸다.

어차피 이대로 인간에게 붙잡히면 내단을 빼내고자 제 배를 가를 족속들이다.

녀석은 벌써 흑의 여인이 제 몸에서 내단을 빼냈다는 걸 몰랐다.

하긴 설령 알았어도 이제 와 무슨 상관일까.

덥석!

우끼긱!

불 원숭이가 낭떠러지로 몸을 날리기 직전, 흑의 여인이 놈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소주!”

백의 여인이 아연실색한 얼굴로 소리쳤다.

어떻게 화후는 붙잡았지만 그 모습이 너무나 아찔해, 뒤에서 가벼운 미풍만 불어도 둘 다 아래로 떨어질 것 같았다.

“호들갑 떨기는. 설마 내가 여기서 떨어질 것 같더냐?”

흑의 여인이 가볍게 웃으며 몸을 돌렸다.

그제야 백의 여인도, 진천우도 가슴을 쓸었다.

허나 그때!

“읍?!”

갑자기 흑의 여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이전에도 한번 맡았던, 도무지 믿기지 않는 냄새가 진천우의 코끝을 간지럽혔다.

혈향?

“크윽!”

그 순간, 흑의 여인의 입가에 붉은 선혈이 흘렀다.

그대로 그녀가 몸을 크게 휘청하더니, 하필 절벽 쪽으로 쓰러졌다.

“소주!”

백의 여인이 즉시 몸을 날렸지만, 너무 멀었다.

그녀의 손은 흑의 여인을 붙잡을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흑의 여인이 그쪽으로 손을 뻗었다면, 손끝이나마 닿을지도 모르련만…….

“쯧, 이게 내 운명이면 어쩔 수 없지. 네놈은 승리의 대가나 챙겨가라.”

그녀는 떨어지기 직전까지 제 목숨보다 진천우에게 붙잡은 화후를 내주는 걸 우선했다.

이때 가장 가까이 있던 그가 손만 뻗으면 화후를 챙길 수 있었다.

이대로 누런 천을 얻으면 금지를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웃기지 마!!”

진천우는 이 또한 화후의 내단과 같은 결정을 내렸다.

그는 곧바로 화후를 옆으로 쳐내고, 흑의 여인을 향해 양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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