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 그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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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화 : 그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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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화 : 그의 이름은?
2021.11.03.
“……이!”
이해할 수 없다.
그렇기에 진천우는 망설이지 않고 손을 뻗었다.
[예]
‘어디…….’
어째서 그 이름이 나왔는지 알기 위해.
[중간광고를 시작하겠습니다.]
우우웅!
진천우는 곧바로 눈을 감았다.
* * *
정신을 차리자, 저 멀리에 두 청년이 보였다.
“또 네 녀석이냐?”
“허허, 이것이 우리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인가 보오.”
“개소리!”
“허허허!”
승려로 보이는 이와 무인으로 보이는 이.
둘은 말다툼 중이었다.
주로 검은 무복 차림의 무인이 날카롭게 찌르면, 금빛 가사의 승려가 이를 가볍게 웃어넘겼다.
“허허허허!!”
-큭!
가볍게?
전혀 아니었다.
승려의 웃음에 범상치 않은 기운이 실려 있었다.
이만큼 떨어졌는데도 몸이 떨리고 식은땀이 날 정도면, 정면에 선 무인은 어떻게 견디는 걸까?
“치워라.”
“허허, 역시 시주는 대단하시구려.”
견디는 게 아니었다.
중년인은 주위에 눈에 보이지 않는 얕은 막을 치고, 승려의 기세를 상쇄했다.
웃음 뒤에 기세를 숨기는 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기막을 펼치는 것 모두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진천우는 이를 보고, 그들이 이 땅에 천재지변을 일으킨 당사자임을 깨달았다.
“허허허!”
승려가 계속 입에 긴 호선을 그렸다.
그러자 무인의 이마에 얕은 힘줄이 그어졌다.
“그래, 네가 순순히 그치지 않겠다면…….”
그가 천천히 한 발을 들었다.
-이런!
이를 본 진천우가 기겁하며 몸을 사렸다.
자신의 예상이 맞다면, 저건!
쾅!!
엄청난 굉음이 터졌다.
-이 땅 한가운데 박힌 족적은 틀림없이 천마의 걸음(天魔步 : 천마보).
흑의 여인이 가장 먼저 알아차린 그것.
천마가 디딘 걸음이 사방에 가공할 기세를 뿌렸다.
허나 승려도 보통이 아니었다.
“허허허허!!”
그는 여전히 웃음을 거두지 않고 허공에 몸을 날렸다.
인간이 저리 손쉽게 하늘을 날다니?
그야말로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이 따라간다.
“날벌레같이 날아 재끼기는!”
소림의 비전인 대나이신법(大那移身法)의 요체를 벌레에 비유하며, 천마가 손을 흔들었다.
-이 땅을 쓸어버린 강한 풍압은 천하에 오직 하나, 천마의 손짓(天魔流 : 천마류)으로 만든 게 분명하다.
과연 전설은 조금도 과장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손짓 한 번에 강맹한 바람이 일더니, 눈앞의 모든 걸 찢겨 발겼다.
이때 승려는 대나이신법을 사용해 그야말로 나비처럼 하늘을 노닐고 있었다.
하나 나비의 얕은 날개로 저런 강풍을 견딜 리가…….
스륵!
-견뎠어?!
금빛 나비는 가뿐하게 바람을 흘리고 땅에 내려섰다.
“허허허허!”
이 정도의 바람으로 그의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대나이신법의 요체는 불어오는 바람을 등지고 날아가는 낙엽처럼 상대의 힘을 이용하는 데 있습니다. 아무리 모진 바람도 가늘고 긴 대나무는 꺾을 수 없듯이 말이죠.”
“어쩌라고!”
뜬금없이 자신의 무공의 요체를 설명한 승려도 승려지만, 천마 역시 그러한 이야기에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내 힘을 이용한다?
“어디 할 수 있으면 해보시지!”
자신은 천마(天魔)다.
하늘에 닿을, 아니, 그 하늘조차 거꾸러트릴 지고의 마(魔).
상대가 제 힘을 이용한다면 그 배의 힘으로, 그것마저 이용하면 배의 배가 넘는 힘으로 전부 박살 낼 뿐!
쾅! 콰쾅! 쾅!!
귀가 멀 것 같은 커다란 굉음이 연이어 터졌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굉음과 함께 각종 천재지변이 승려를 덮쳤다.
홍수까지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뒤따라 하늘에서 떨어지는 낙뢰는 녹록지 않았다.
콰릉! 콰르릉! 콰콰콰쾅!!
말 그대로 하늘이 요동쳤다.
천마가 기세 좋게 손가락으로 승려를 가리키자, 시뻘건 번개가 우수수 떨어졌다.
“하하하하하!!”
천마가 섬뜩한 광소를 터트렸다.
이에 호응한 듯, 하늘에서 쉬지 않고 낙뢰가 떨어졌다.
승려는 무려 십여 차례나 번개를 피했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금빛 가사가 번갯불에 태워져 넝마로 변했고 전신은 검게 그을렸다.
“후우!”
찰나 간 낙뢰가 뜸한 틈을 타 간신히 숨을 몰아쉬었다.
허나 그건 결코 호재가 아니었다.
천마는 인정을 모른다.
그리고 방심도 모른다.
그런 그가 잠시 낙뢰를 멈췄다?
‘내공이 떨어진 게 아니라면…….’
그 경우만은 절대 불가능했다.
하늘에 닿은 지고의 마왕이 겨우 낙뢰 몇 번으로 내공이 딸리겠는가.
틀림없이 자신을 완전히 끝장낼 한 수를 준비한 게 분명했다.
승려의 예상대로.
부글부글!
느닷없이 땅이 들끓었다.
화산(火山)!
“하하하하! 어디 시뻘건 용암 위에서도 아까처럼 날아다닐 수 있을지 보자꾸나!”
대나이신법이 아무리 소림의 자랑이지만, 결국 사람의 기술.
사람은 하늘을 날지 못했다.
능공허도(凌空虛道)나 천상제(天上梯)같이 극성에 이르면 하늘에 닿는 신기(神技)도, 펼치는 자가 사람인 이상 반드시 다시 땅에 내려와야 했다.
천마가 이를 노렸다.
“대단하구려.”
승려가 다시 입을 뗐다.
확실히 놀란 표정.
그러나 그 뒤에는 천마가 바란 낭패나 절망의 감정은 내비치지 않았다.
허세일까?
‘아니다!’
그 또한 몇 번의 공방으로 상대의 성격을 알아차렸다.
“허허허!”
그 증거로 승려가 다시 웃기 시작했다.
웃음소리에 서린 웅혼한 기운이 들끓는 땅의 열기를 크게 밀었다.
그러나 내공으로 천마를 당할 자는 없었다.
저건 단순한 시간 벌이에 불과한 것.
‘허나 넌 잠깐이라도 시간을 벌면 충분히 천마신공을 상대할 수 있다고 여기는 거겠지?’
도대체 어떤 무공으로 천마신공에 대적하겠다는 걸까?
그 순간, 천마는 자신이 승려와 목숨을 건 승부 중인 것도 잊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그저 강한 무공에 대한 호기심만 가득했다.
과연 하늘을 거꾸러트리겠다는 마왕다운 오만함.
“좋다. 상대해주지!”
천마가 그 자리에서 기운을 끌어모았다.
네놈이 어떤 무공을 선보이든, 그 또한 하늘과 함께 거꾸러트려 주마!
그가 지금부터 선보일 천마신공의 극의는 그리 자신할 자격이 넘치고도 남았다.
하지만 그러하기 전에.
“쓸데없는 구경꾼부터 처리해야겠지.”
구경꾼?
쉭!
진천우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선명한 핏빛 기운에 기겁하며 몸을 숙였다.
간신히 피했지만, 공격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쉭! 쉭쉭!
절대 막을 수 없고,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공격.
활로가 있다면 오직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
진천우가 몸을 앞으로 날렸다.
그 재빠른 판단 덕에, 그는 입을 틀어막은 복면이 찢기는 것 외에 별다른 상처 없이 천마의 연격을 피했다.
“…….”
-?!
그제야 진천우도 제 몸의 이상을 알아차렸다.
내가 언제 복면 따위를 썼지?
-그러고 보니 본래 중간광고는 내가 남의 몸에 들어가 그 기억을 보는 것이었을 텐데?
지금껏 자신은 천마와 승려, 그 누구의 몸에도 들어가지 않고 멀찍이서 둘의 승부를 지켜보았다.
즉, 이 몸의 주인은 방금 천마가 말한 쓸데없는 구경꾼인 셈.
“허어?”
“음?”
그런데 어째 둘의 반응이 이상했다.
저건 절대 낯선 이를 만났을 때의 표정이 아니었다.
“어찌?”
승려가 잔뜩 인상을 찡그리다 말고 갑자기 노성을 터트렸다.
“어찌 자네가 여기 있는 건가!!”
뒤이어 천마가 가볍게 입꼬리를 올렸다.
“재밌군.”
그는 정말 이 상황이 즐거웠다.
“설마 그대 정도 되는 자가 복면으로 정체를 감추고 우리를 노렸을 줄이야.”
하긴 그건 진천우도 동의했다.
그 역시 타이쿤 문구를 보고 처음에는 승려처럼 믿지 못했고, 나중에는 천마처럼 흥미를 느꼈다.
어째서.
-어째서 의선이 이 싸움에 끼어든 걸까?
의선(醫仙).
의술에 있어 당대 최고의 경지에 이른 이.
지금 이 몸의 주인이 의선이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맨 처음 겪은 중간광고에서 본 어린 의선의 모습이, 청년으로 자란 몸에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헌데 이 몸에는 첫 번째 중간광고 외에도 두 번째 중간광고의 흔적도 엿보였다.
-저 복면은 금지 입구에서 독괴와 싸웠던 복면인의 것?
그럼 독괴에게서 붉은 천을 빼앗은 게 그란 뜻?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믿어야 했다.
의선이 아니고서야 어느 누가 독괴를 독으로 압도할까!
“설마 들킬 줄이야.”
의선이 고개를 흔들며 순순히 제 정체를 인정했다.
‘기껏 귀식대법(龜息大法)까지 사용해 기척을 숨겼는데.’
그의 귀식대법은 완벽했다.
타이쿤의 효과로 몸에 깃든 진천우마저 그걸 의식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의선이 정체를 들킨 까닭은, 천마와 승려가 각자 최후 절초를 준비하면서 주위에 퍼트린 기파에 저도 모르게 함께 호응하면서 대법이 풀린 탓이다.
거기에 호응하지 않았다면 저들의 최후 절초에 쓸려버렸을 테니, 어쩔 수 없었다.
그만큼 저 둘의 절초가 대단하다는 뜻.
“역시 두 분을 쓰러트리는 건 쉽지 않겠군요.”
“허? 너 혼자서 우리 둘을 쓰러트리겠다고?”
천마의 비웃음을 뒤로한 채 승려가 앞으로 나왔다.
“의선! 그대는 소림과도 연이 있을 터. 과거 방장대사께 중독된 독을 몰아낸 당신은 누구보다 환자를 위하는 분이셨소. 그런 그대가 어찌 이 일에 끼어든단 말이오!”
“바로 그 때문이오.”
“?”
의선의 엉뚱한 말에 승려와 천마 둘 다 고개를 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의선은 소매에서 침통을 꺼냈다.
그에게 침은 단순한 의료도구가 아니었다.
때로는 어떤 도검보다 날카롭고, 또 어떤 암기보다 은밀한 무기가 바로 의선의 침이었다.
“정말 해볼 셈이군.”
“어찌!”
의선이 다짜고짜 무기부터 꺼내자, 둘도 자세를 고쳐잡았다.
당장의 의문은 나중으로 미루었다.
“자, 그럼…….”
허나 의선은 끝까지 둘에게 의문을 증폭시키며 몸을 날렸다.
“두 분을 구하기 위해 이 몸도 최선을 다하겠소.”
팟!
그 직후, 세 거인이 동시에 몸을 날렸다.
검은빛과 하얀빛, 금빛의 세 기운이 부딪치는 그 순간, 진천우의 의식 또한 눈 깜짝할 사이 의선의 몸에서 튕겨 나왔다.
* * *
“일어나라!”
“헉!”
진천우가 급히 눈을 떴다.
그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손으로 눈과 귀부터 확인했다.
다소 멍멍했지만 시각과 청각은 멀쩡했다.
세 절대자가 충돌하는 걸 목격하자마자 눈과 귀가 멀어 버렸다.
아마 자신이 중간광고를 본 게 아니라 실제 그 자리에 있었다면, 틀림없이 그리됐을 거다.
툭!
‘응?’
진천우는 눈과 귀가 멀쩡한 걸 확인하고서야, 제 손에 뭔가 들려있단 걸 깨달았다.
손 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붉은 빛이 눈에 익었다.
‘적천석(赤天石).’
과거 장 의원에게 ‘점혈’ 당했을 때, 이 녀석 덕분에 ‘해혈’을 익혀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럼 또 새로운 스킬을 익힐 수 있는 건가?’
새로 어떤 스킬을 익힐지 고민하려는데, 갑자기 주먹이 날아왔다.
휙!
“무, 무슨 짓입니까!”
간신히 주먹을 피하고 보니 눈앞에 흑의 여인이 서 있었다.
확실히 정신을 차리는 순간, 그녀 목소리가 들렸다.
“역시 너도 혼란스러운 모양이구나.”
“네?”
“나 역시 방금 막 천마신공을 익혀 아주 혼란스럽구나.”
“네?”
뜬금없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그러고 보니 흑의 여인은 평소답지 않게, 양 볼이 옅은 홍조로 물들어있었다.
이를 본 진천우가 잠시나마 넋이 나갈 뻔했지만…….
“넌 신법을 익혔지?”
“네?!”
그녀가 아무렇지 않게 툭 뱉은 말에, 하마터면 심장이 튀어나올 뻔했다.
의중을 떠보는 소리가 아니었다.
흑의 여인은 모든 걸 다 안다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진짜 목적은 추궁도, 협박도 다른 무엇도 아니었다.
흑의 여인은 오롯이.
“이럴 땐 몸을 움직이는 게 제격이지.”
그녀는 무인이었다.
“붙자! 서로 한번 피 터지게 싸우면 새로 익힌 무공도 몸에 적응하겠지.”
그야말로 천생 무인의 한마디에 진천우는 결국 넋이 나가서 참았던 숨을 모조리 내뱉었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