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 하늘과 땅이 뒤집히다
(55/210)
55화 : 하늘과 땅이 뒤집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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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화 : 하늘과 땅이 뒤집히다
2021.11.06.
“자, 잠깐!”
다짜고짜 붙자니!
진천우가 고개를 거세게 흔들었지만.
“자, 간다!”
당연히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휙!
얼굴을 향해 똑바로 날아오는 주먹.
평범해 보이지만, 그 안에 깃든 기운은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천마신공!’
천하제일 무공으로 꼽히는 신공의 막대한 기운이 저 작은 주먹에 단단히 뭉쳤다.
‘잘못 맞으면 죽는다.’
저 정도 기운이면 막아도 죽는다.
피하는 것만이 살길.
팟!
즉시 땅에서 몸을 튕겼다.
아슬아슬하게 주먹이 뺨을 스쳤다.
“제법이군. 이제 진퇴보가 어느 정도 몸에 익었구나.”
“감사합니다.”
흑의 여인의 칭찬에 순순히 감사를 표했다.
진퇴보는 그녀가 알려준 무공.
또한, 자신이 처음으로 제대로 배운 무공이었다.
워낙 급하다 보니, 몸에 익숙한 보법이 자연스레 펼쳐졌다.
“허나 내가 보고 싶은 건 그게 아니야.”
휙!
흑의 여인이 다시 주먹을 뻗었다.
급히 뒤로 물러났다.
아무리 천마신공의 막강한 내력이 녹았다 해도, 단순히 내지르는 주먹이면 피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진퇴보의 성취는 이미 충분히 봤다니까.”
팟!
그녀 또한 진퇴보를 사용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진천우가 뒤로 물러나는 것보다 흑의 여인이 앞으로 나가는 게 더 빨랐다.
‘진퇴보는 옆으로 피하는 수법이 없다.’
이대로면 속절없이 당한다.
당장 그가 주먹을 피할 방법은 하나뿐.
휘릭!
진천우가 한참 물러나던 중 갑자기 양발을 교차하더니, 뱀이 똬리를 틀듯 급작스럽게 몸을 비틀었다.
우드득!
“큭!”
온몸의 관절이 앞다퉈 비명을 질렀다.
대나이신법은 진퇴보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최상승 무학.
예상대로 쉽게 펼쳐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효과는 대단했다.
“……너?”
흑의 여인이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언제 이만큼이나 거리를 벌렸지?’
지금 둘 사이 거리는 무려 한 장(약 3미터).
단순히 거리 때문에 놀란 게 아니었다.
이만큼 떨어질 동안 그녀가 가만히 두고 봤다는 게 놀라웠다.
한순간이지만, 흑의 여인이 뒤쫓을 생각조차 못 할 정도로 재빨랐다는 소리니까.
“그게 네가 익힌 무공이냐?”
그 직후, 그녀의 표정이 또 바뀌었다.
“재밌구나!”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웃음.
어째서인지 저 표정이 낯이 익다.
어디서?
‘중간광고에서 본 천마의 얼굴.’
갑작스럽게 나타난 의선의 등장에 천마는 놀라기보다, 자신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진 걸 즐거워했다.
그때 천마가 지은 표정과 정말 똑 닮았다.
‘설마 그녀는 천마의 후손인가?’
어쩌면…… 아니,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무공명이 뭐지?”
“대나이신법입니다.”
“역시 소림!”
씩!
흑의 여인의 입꼬리가 더욱 짙어졌다.
팟!
그녀가 몸을 날리자, 진천우도 지지 않고 몸을 틀었다.
휙휙휙!
사방에서 거센 바람 소리가 울렸다.
그중 타격음은 없었다.
흑의 여인이 몇 번이나 헛손질했단 뜻이지만, 이는 그녀의 깊은 배려였다.
진천우는 대나이신법을 펼치는 게 이번이 처음.
당연히 몸에 익힐 시간이 필요했다.
흑의 여인은 단순히 대나이신법을 경험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당장 진천우가 펼칠 수 있는 최고의 대나이신법을 경험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걸 거꾸러트려야지!’
과연 그녀는 하늘을 거꾸러트린 천마의 후예다웠다.
둘은 몇 번 더 공방을 나누더니.
“슬슬 제대로 간다.”
“네? 자, 잠깐! 조금만 더……!”
“아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
다짜고짜 주먹을 내질렀다.
그건 지금까지의 평범한 주먹과 질적으로 달랐다.
우우웅!
제대로 된 식(式)이 담긴 권격.
저건 정말 완벽히 피하지 않으면 절대 뿌리칠 수 없는 주먹이었다.
휘리릭!
진천우가 대나이신법을 발휘해 이를 피했다.
“어?”
놀란 눈.
어느새 신법이 몸에 익었다.
흑의 여인은 대나이신법을 익힌 당사자보다 훨씬 더 상세히 그의 상태를 꿰뚫었다.
“좋아. 이대로 계속 간다!”
“……!”
진천우가 표정을 굳혔다.
더는 변명하지 않았다.
‘애초에 들어줄 상대도 아니고!’
그렇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자신도 진지하게, 그녀의 천마신공을 상대하기로 각오…… 아니, 그냥 상대하는 거로는 부족했다.
‘아예 거꾸러트려야 한다.’
할 수 있을까?
의미 없는 질문.
무조건 거꾸러트린다.
그러지 않으면, 상대는 멈추지 않았다.
슥!
흑의 여인이 한쪽 발을 들었다.
그대로 발이 천천히 내려오는 걸 보고 진천우가 급히 몸을 날렸다.
쾅!!
발이 땅에 닿자 굉음이 터졌다.
지진(地震).
아니, 천마의 걸음(天魔步 : 천마보).
간신히 그 기세가 퍼지기 전에 몸을 날렸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었다.
“훗!”
흑의 여인이 하늘로 솟아오른 진천우를 향해 소매를 흔들었다.
천마의 손짓(天魔流 : 천마류).
콰르릉!
별안간 태풍이 들이닥친 듯 거센 바람이 사방을 쓸었다.
그 무지막지한 힘 앞에, 공중에 뜬 진천우는 날벌레처럼 비루했다.
그러나 순순히 당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활로는 있다!’
그는 중간광고를 봤다.
광고에서도 천마는 지진 다음으로 태풍을 불렀다.
당장 흑의 여인의 천재지변은 그때 천마의 십 분지 일도 안 되는 위력.
자신이 이제 막 대나이신법을 몸에 익혔다면, 그녀는 아예 처음 천마신공을 펼쳤다.
당연히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진천우는 흑의 여인과 달랐다.
배려 따위 없었다.
‘배려는 강자가 약자에게 베푸는 것.’
게다가 그게 아니어도.
‘그녀는 그걸 바라지 않을 터.’
안 그래도 괴물 같은 상대가 천마신공까지 몸에 익히면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러기 전에 철저히 꺾어야 했다.
휘릭!
진천우는 광고에서 본 승려의 대나이신법을 따라 했다.
자신보다 아득히 높은 경지의 무인이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무공을 펼친 걸 본 기억은, 그에게 압도적 우위를 가져다주었다.
퍽!
진천우의 첫 공격.
비록 상대의 팔에 막혔지만, 대나이신법을 발휘하며 휘두른 주먹은 강력했다.
당장 흑의 여인은 공격을 막은 채 세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
‘숨 돌릴 틈을 주지 않는다.’
착각하면 안 된다.
자신은 그녀보다 약하다.
잠깐은 승기를 얻었지만, 이는 언제든 역전될 수 있었다.
그전에 자신의 모든 걸 쏟아부어야 했다.
그는 쉬지 않고 주먹을 휘둘렀다.
허나 단순히 신법에 의존한 주먹으론 아무리 용을 써도 제대로 된 타격을 줄 수 없었다.
“후!”
결국 흑의 여인이 몸을 빼, 쉴 틈을 주고 말았다.
그녀는 곧바로 혼잣말을 뱉었다.
“권법이나 검법도 가르쳐야 했는데, 아쉽군.”
만일 그랬다면, 어쩌면?
아니, 아니다.
흑의 여인은 갑자기 고개를 저었다.
설령 아쉽다 해도 이 싸움은 이제 멈출 수 없다.
“실언이었다.”
“괜찮습니다.”
진천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직 한 번도 손에 쥔 적 않은 패를 아쉬워하기보단, 당장 제 손에 들린 패에 집중했다.
비록 자신은 이렇다 할 검법도 권법도 없지만, 대신 천하제일의 신법이 있었다.
‘무엇보다 여전히 승기는 내 손에 있다!’
이걸 놓치지 전에 먼저 승부를 낸다!
팟!
그 순간, 둘이 동시에 몸을 날렸다.
콰르르! 번쩍!
홍수와 낙뢰.
넘실거리는 수량과 눈을 어지럽히는 섬광이 매섭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광고에서 본 승려의 움직임만 떠올리면, 절대 못 피할 건 아니다.’
정말 무서운 건 이다음.
‘그게 나오기 전에 끝을 봐야 한다.’
휘리릭!
극에 달한 대나이신법이 펼쳐졌다.
그 움직임이 어찌나 재빠른지, 마치 몸 전체를 기이하게 비튼 것 같았다.
팟!
“큭!”
“큭!”
찰나의 공방과 함께 둘이 한꺼번에 물러났다.
누가 할 것 없이 둘 다 이를 갈았다.
진천우는 기껏 천마신공을 뚫고 반격했지만 그 공격이 또 무위로 돌아간 것이 분했고, 흑의 여인은 또다시 제 천마신공이 뚫린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끝이 다가왔다.
부글부글!
화산(火山).
결국 화산이 나왔다.
진천우가 본 광고는 딱 여기까지.
이 직후, 의선의 등장으로 승려가 어떻게 대응했는지 보지 못했다.
물론 이때 승려가 무슨 무공을 쓰려 했는지는 예상할 수 있었다.
대나이신법 다음으로 얻은 새 무공.
‘여덟 걸음.’
틀림없이 승려는 마지막에 이걸 펼치려 했다.
‘하지만 천마도 그때, 또 다른 무언가를 준비했었지.’
앞서 펼친 신공들도 천재지변에 버금갔는데 그 이상이 남아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호기심이 들었다.
과연 천마와 승려가 펼치려 한 최후 절초는 무엇이었을까?
두근!
갑자기 심장이 뛰었다.
그것도 온몸이 떨릴 정도로 거칠게.
자신이 익힌 무공 중 심장을 자극하는 무공은 하나뿐.
천마신공이 여덟 걸음에 반응했다.
어느새 나타난 두 마리 맹수가 어울리지 않게 서로 협력해 내력을 끌어올렸다.
몸이 알아서 반응할 정도로 여덟 걸음이 심오한 무공이란 뜻.
한편, 맞은편에 선 흑의 여인도 가만있지 않았다.
부글부글!
땅이 끓는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거기다 그녀 주위에 검붉은 기운이 휘몰아쳤다.
그 기운은 한눈에도 불안하고, 섬뜩하며, 지독했다.
그러나 동시에 눈을 돌릴 수 없이 아름다웠다.
“……!”
진천우는 홀린 듯 그것을 지켜보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급히 여덟 걸음을 운용했다.
중간광고에서 승려는 소림 내공으로 이것을 펼쳤지만, 금강공의 내공으로는 여덟 걸음을 발현하는 게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천마신공의 자연지기로 이를 대체했는데…… 생각보다 두 무공의 궁합이 괜찮았다.
“그럼…….”
“……간다.”
진천우와 흑의 여인.
둘이 동시에 걸음을 옮겨, 과거 천마와 승려의 대결을 재현했다.
확!
갑자기 사방이 어두워졌다.
내공으로 시야를 돋워도 어둠은 걷히지 않았다.
이는 틀림없이 천마신공에 의한 암흑.
‘대항할 방법은 하나뿐이다.’
즉시 걸음을 옮겼다.
슥!
한 걸음 나아갔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슥, 슥.
그러나 두 걸음, 세 걸음 나아가자.
쿵!
사방을 감싼 암흑이 크게 흔들렸다.
허나 진동은 오래가지 않았고, 어둠은 다시 한데 뭉쳐 그를 압박했다.
‘당연히 이래야지!’
진천우는 거센 압박 속에서 도리어 입꼬리를 비틀었다.
애초에 그리 쉽게 어둠을 몰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이 정체 모를 암흑이야말로 천마신공의 정수.
더군다나 이것을 펼치는 이는 바로 흑의 여인이었다.
‘둘 다 절대 순순히 당할 상대가 아니지.’
하지만 자신도 순순히 당할 수 없었다.
아니, 그저 저항만 하는 게 아니라…….
‘천마신공이든 뭐든, 전부 거꾸로 트려 주겠어!’
슥! 슥!
진천우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쾅! 쾅쾅쾅!
그러자 곧바로 천지사방에 굉음이 터졌다.
말 그대로 힘과 힘의 대결.
어둠이 걷혔다 다시 뭉치기를 반복했다.
그럴수록 압박은 더욱 심해졌지만, 결코 마음은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여덟 걸음은 단순한 보법이 아니었다.
그 옛날, 부처는 어미 배 속을 나오며 한 손은 하늘을, 다른 한 손은 땅을 가리키며 그 자리에서 일곱 걸음을 걸었다.
그러며 부처는 사방을 둘러보며, 하늘 아래 오직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 말했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당시 부처의 존귀와 마음과 정신이 지금 진천우가 내딛는 걸음걸음에 깃들었다.
슥!
일곱 걸음.
마침내 부처가 태어날 당시와 똑같은 걸음을 내딛자.
쿵!!
주위의 어둠이 걷잡을 수 없이 크게 흔들렸다.
스륵!
그러나 역시 천마신공!
그만큼 거센 진동이 금세 다시 가라앉으려 했다.
‘그렇게 놔둘 수 없지!’
그 말대로.
멋대로 진정되게 놔둘 수 없었다.
진천우가 마지막, 부처조차 떼지 않은 여덟 번째 걸음을 내디뎠다.
그가 최후의 걸음을 내딛는 그 순간!
파앗!
마침내 눈앞을 가리던 어둠이 완전히 걷히고.
“엇?!”
그 뒤에 가려져 있던 충격적인 광경이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