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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화 : 너와 나는 다르다 (58/210)


58화 : 너와 나는 다르다
2021.11.13.


‘가보자!’

팟!

진천우가 서둘러 몸을 날렸다.

다행히 굉음의 진원지는 그가 아는 장소였다.

금지의 경계.

그러니까 처음 흑의 여인을 만난 곳.

한참 달려가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넌?!”

“무사하셨군요.”

“당연하지! 그보다 소주는! 아니, 아니다.”

백의 여인이 다급히 질문하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의미 없는 물음이었다.

그녀 또한 하늘을 울리는 굉음을 들었다.

그 소리는 자신의 주인이 만들어 낸 게 틀림없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제 주인은 무사하다!

‘소주, 당장 달려가겠습니다.’

백의 여인은 바로 몸을 날렸다.

굳이 진천우를 기다려 줄 여유는 없었다.

……그건 진천우도 다르지 않았다.

“너?!”

자신은 분명 전력을 다했는데, 어느새 따라잡혔다.

아니!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뭐?”

팟!

진천우는 그대로 화살처럼 앞으로 쏘아졌다.

이를 본 백의 여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전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둘 사이의 거리는 점차 벌어졌다.

도저히 그 간격을 메꿀 수 없었다.

‘이 무슨!’

그녀가 경악했다.

분명 처음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변변찮은 무공 하나 모르던 놈이었는데.

어느새 자신을 훌쩍 뛰어넘다니.

엄청나다.

믿을 수 없다.

백의 여인은 너무 놀란 나머지, 그만 발걸음을 멈추려 했는데.

쾅!!

하늘에서 또 한 차례 굉음이 울렸다.

“?!”

이를 듣고, 그녀는 자신의 실태를 깨달았다.

‘이게 무슨 짓인가!’

내가 아무리 놀랐다지만, 주인께 향하는 걸음을 멈추려 하다니!

무공?

그까짓 건 얼마든지 뒤처져도 된다.

하지만 제 주인을 향한 충성만은 그 누구에게도 뒤처질 수 없었다.

“소주!”

지금 제가 달려가겠습니다.

당신을 만나러!

그녀는 곧바로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최고의 경공을 펼쳤다.

주위를 살피지 않고 오직 정면을 향해 똑바로 나아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이 그녀를 똑 닮아있었다.

휘익!

그 순간, 백의 여인은 지금껏 펼친 경공 중 가장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만은 진천우의 대나이신법에도 버금갈 정도의 속도였지만, 그녀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오직 제 주인을 만나는 것에만 집중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백의 여인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 * *

탓!

마침내 굉음의 진원지에 도착했다.

진천우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흑의 여인이 처음 만났던 바로 그 장소에 홀로 서 있었다.

“왔느냐?”

그녀는 무릎까지 올라오는 호수 한가운데서 진천우를 맞이했다.

“소주!”

한발 늦게 백의 여인이 달려왔다.

그녀는 주인의 무사한 걸 확인하고 눈물을 터트렸다.

“소주!”

백의 여인은 눈물로 시야가 흐려져 어쩔 수 없이 양손으로 흑의 여인의 온몸을 더듬었다.

다행히 몸에 상처는 없고, 피부도 여전히 곱다.

절벽에서 주인을 놓친 다음부터 한시도 쉬지 않고 그녀를 찾았다.

혹시 잘못되진 않았을까,

왜 난 그때 소주를 놓친 걸까,

멍청한 년!

걱정의 걱정이 꼬리를 물었다.

“그간 네가 고생이 많았다. 난 멀쩡하니 안심해라.”

“소주!”

어쩌면 무례하다고 할 수 있었을 텐데, 흑의 여인은 백의 여인이 제 몸을 살피는 손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녀의 머리맡을 가볍게 손을 올렸다.

그 따뜻한 손길에 백의 여인은 그간의 모든 고생이 눈 녹듯 사라졌다.

두 여인은 그렇게 얼마간 재회의 기쁨을 나눈 뒤 몸을 뗐다.

흑의 여인이 진천우를 바라보았다.

“기다리게 했군.”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실 그리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시군요.”

진심이었다.

너무나 그녀다운 태도에 진천우가 낮게 웃었다.

-그러니 네가 내 반신을 가져간 것도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

웃다 말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반신(半身)을 가져갔다.

그 짧은 전음에 그간의 모든 사정이 담겨있었다.

‘어떻게…….’

알아챈 걸까?

묻고 싶었지만 물을 수 없었다.

이미 그녀는 신경 쓰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 말했으니, 흑의 여인은 정말로 앞으로 이 일에 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을 터.

“그보다…….”

하고 싶은 말을 마친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시야 끝에 끝없이 이어진 호수가 보였다.

그러나 기껏해야 무릎 깊이의 호수가 이만큼이나 넓을 리 없었다.

이곳은 금지의 경계.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한 기운이 끝없이 이어지는 환상을 보이는 게 분명했다.

허나 이 경치도 오늘로 끝이다.

“이제 여기서 나가야겠다.”

흑의 여인이 도원경을 나가겠다 말했다.

그녀는 한번 뱉은 말을 반드시 실행시켰다.

마침 진천우도 그럴 예정이었다.

그가 양손에 각기 다른 색의 깃발을 들었다.

금지의 경계는 온갖 기묘하고 강맹한 기운이 끝없이 휘몰아쳤다.

그 기운은 마치 태산과 같아, 지금 제 손에 들린 신비한 깃발이 아니면 절대 뚫을 수 없었다.

“그럼 제가…….”

“아니.”

그런데 그가 금지의 경계를 뚫기 위해 앞으로 나서려 하자, 흑의 여인이 이를 막았다.

진천우가 영문을 몰라 살짝 눈살을 찌푸리자, 그녀는 도리어 활짝 웃어 보였다.

“내가 하지.”

“네?”

“내가 한다고. 그러니 넌 거기서 얌전히 지켜보거라.”

그리 말하며 흑의 여인이 경계 쪽으로 걸어갔다.

‘위험!’

하필 그때, 그녀를 향해 단단히 뭉친 기운이 쏟아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기운이지만, 화후기식법으로 남보다 배로 기감이 발달한 진천우는 즉시 이를 느끼고, 흑의 여인을 향해 손을 뻗었다.

“…….”

지금 그녀는 양손에 아무것도 쥐지 않은 적수공권(赤手空拳)의 상태.

아마 다른 때라면 자신이 흑의 여인을 걱정하는 일은 없었겠지만, 현재 그녀의 상태는 그리 좋지 못했다.

‘내게서 천마지체의 절반을 뺏겼으니, 틀림없이 모든 감각이 혼란스러울 거다.’

멀쩡한 사람도 갑자기 팔 한쪽을 잃으면, 그 외 특별한 외상이 없어도 몇 달간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로 감각의 혼동을 느낀다.

하물며 그녀는 천마신공의 근간을 이루는 용과 범 중 흑호를 자신에게 넘기고, 그 십 분지 일도 안 되는 자신의 초라한 적호를 넘겨받았다.

이대로 놔두면, 흑의 여인은 눈에 보이지 않은 강한 기운에 얻어맞을 게 분명했다.

휘리릭!

급한 마음에 대나이신법을 발휘했다.

어떤 상황에도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을 움직이는 대나이신법의 묘용이면 그녀를 구하는 것쯤 일도 아니라 여겼는데.

슥!

“어?”

순간, 그의 발이 멈췄다.

저도 모르게 대나이신법의 발동을 그만둔 것.

‘어째서?’

진천우 스스로도 왜 신법을 멈췄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오싹!

그 이유를 한 호흡 내쉰 뒤에야 깨달았다.

“확실히 반신을 빼앗기니 당황스럽더구나.”

흑의 여인이 입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가 한 손을 들었다.

스륵.

하늘까지 뻗은 섬섬옥수(纖纖玉手)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아래로 떨어졌다.

이때도 그녀를 향해 무형의 기운이 날아들었지만, 손이 떨어지는 속도는 조금도 조급함 없이 처음 속도를 유지했다.

“그래서 적응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진천우는 흑의 여인의 다음 말이 듣지 않아도 이미 들리는 듯했다.

-아무튼, 적응했다.

슥.

그대로 손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것만으로는 아무 변화도 없는 것처럼 보였으나.

“하……!”

이를 지켜본 진천우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그는 보았다.

‘그저 손을 내려놓았을 뿐인데.’

하늘이 갈라졌다.

하늘마저 가르는 수도(手刀)에, 무형의 기운은 물론이고 금지를 둘러싼 경계 역시 단번에 양분되었다.

‘분명 천마지체의 절반을 잃고 약해졌을 텐데…….’

진천우의 생각이 맞았다.

흑의 여인은 약해졌다.

하지만 동시에 강해졌다.

본래 그녀의 천형은 구음절맥과 천마지체가 한 몸에 있어 나타난 현상.

두 체질은 과연 전설의 신체답게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싸워댔다.

그 여파로 흑의 여인은 천마신공이란 절대신공을 지니고도 빠르게 죽음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다 천마지체의 절반을 잃었다.

이로써 명백히 한쪽 체질이 월등해졌다.

아마 그녀 몸속의 흑호가 그처럼 순순히 진천우에게 흡수된 건, 이대로는 제 주인을 지키지 못한다는 걸 깨달아서 일지도 몰랐다.

게다가 구음절맥에 필요한 양기는 반쪽짜리 화후의 내단을 삼킨 진천우의 적호가 더 제격이었다.

이로써 몸의 균형이 맞춰졌으니, 거기에 적응만 하면 그녀는 이전과 비교도 되지 않게 강해질 수 있었다.

하늘을 가른 지금보다도 훨씬 더!

“이제 나가면 되겠군.”

하늘을 가른 당사자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을 한 듯 무심한 얼굴로, 잠시 얼이 빠진 백의 여인을 챙겼다.

끼긱!

그때, 구석 수풀에서 짐승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저 녀석, 어느 순간부터 안 보인다 싶더니.’

“똑똑한 놈이더군.”

흑의 여인이 웃으며 화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내가 눈을 떴을 때, 가장 가까이서 너와 나를 지키고 있더군. 그리고 내가 이 몸에 적응하려고 움직이자 냉큼 뒤따라오더군.”

“그랬습니까?”

끼긱끽!

뒤늦게 정신 차린 백의 여인이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말하자, 불 원숭이가 즉시 목소리를 높였다.

그 태도가 원숭이 주제에 상당히 건방지지만, 그래도 제 주인을 지켜줬다는 말에 그녀는 녀석을 인정했다.

“그럼 소주께선 화후를 키우실 생각이십니까?”

“나쁘지 않군.”

끽!

불 원숭이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인간 암컷은 무섭기 짝이 없지만, 이 지긋지긋한 곳을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 기꺼이 따라갈 수 있었다.

물론.

끼긱!

가능하면 인간 암컷보다 인간 수컷을 따라가고 싶었지만, 그건 안 될 말이었다.

아쉽게도 인간 수컷은 따로 임자가 있었다.

“?”

진천우는 어째서 화후가 자신을 아련하게 보는지 잘 이해하지 못한 채, 그도 금지를 빠져나오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멈춰라.”

“네?”

그런데 먼저 경계를 벗어난 흑의 여인이 손을 뻗어 진천우를 멈춰 세웠다.

“넌 좀 더 여기에 남거라.”

“네?”

딱히 문제는 없었다.

자신은 경계가 복구된다 해도 신비한 깃발을 사용해 언제든 여기서 나갈 수 있었다.

“그건 쓰지 말거라.”

그녀가 진천우의 생각을 정확히 꿰뚫었다.

“딱히 네놈 걸 뺏을 생각은 없다. 하지만 아까 말했듯, 여기서 나가는데 손에 든 그것은 필요 없을 거다.”

“무슨 말이십니까?”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에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금지를 빠져나가는데 깃발을 쓰지 말라니.

자신은 흑의 여인처럼 엄청난 천마신공으로 경계를 가를 수 없었다.

“누가 너보고 날 따라 하라더냐?”

그녀가 코웃음을 쳤다.

아무렴, 이놈은 언제나 제 예상을 뛰어넘었지만, 아직 하늘을 가르려면 멀었다.

‘물론 그때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겠지만.’

대신 흑의 여인은 당장 그가 할 수 있겠다 싶은 걸 시켰다.

“넌 나처럼 하늘을 가르는 대신…….”

그녀의 손가락이 하늘을 가리켰다.

쿠르릉!

그 순간, 금지의 경계가 복구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흑의 여인의 목소리는 경계가 복구되는 울림에도 아랑곳없이, 아주 선명히 진천우의 뇌리에 박혔다.

-하늘을 뛰어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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