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 신의의 제안 (1)
(62/210)
62화 : 신의의 제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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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화 : 신의의 제안 (1)
2021.11.22.
약학을 익히자, 머릿속으로 약 제조에 필요한 모든 전반지식이 단숨에 주입되었다.
“그런?!”
아직 그 일부만 받아들였을 뿐인데, 절로 감탄이 나왔다.
‘난 정말 아무것도 몰랐구나.’
이러니 학수선의가 자신을 어쭙잖게 의술을 배운 멍청이란 말을 하지.
부글부글!
이때도 몸속에 단약의 기운이 들끓었다.
허나 처음과 달리 지금은 크게 걱정할 게 없었다.
단약 다음으로 먹은 녹담이 질긴 고삐가 되어, 야생마 같은 기운의 머리에 씌워졌다.
휙!
약 기운이 그대로 위로 솟구쳤다.
단전보다 위로, 심장보다 훨씬 위로.
‘여긴?’
기운은 정확히 정수리 한가운데, 백회(百會)에서 멈췄다.
공교롭게도 타이쿤이 맨 처음 뚫은 절맥이 위치한 곳.
이게 단순한 우연일까?
‘절대 그럴 리 없지!’
진천우가 즉시 땅바닥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그는 눈을 감은 채, 단약의 기운이 무슨 작용을 하는지 지켜보았다.
이미 백회혈은 뚫렸다.
하지만 단순히 뚫어만 놨을 뿐, 여전히 그곳은 다른 혈도에 비해 절반 넘게 막혀있었다.
그걸 약 기운이 낡은 검의 녹을 벗기듯 하나하나 정성껏 걷기 시작했다.
이때 황귀신이 효과를 보였다.
단순히 힘으로는 벗겨지지 않는 오래된 녹을, 황귀신의 노란 성분이 겉을 녹여 보다 쉽게 벗겨지게 만들어 주었다.
마지막 철쭉잎은 황귀신이 백회 외 다른 주요 혈도를 건드리지 못하게 주위를 틀어막았다.
이 모든 게 놀랍도록 치밀한 구성.
“…….”
너무 감탄한 나머지, 진천우는 한동안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별것 아닌 잡초도 절묘하게 배합하니, 어떤 진귀한 약초 못지않구나!’
아니, 오히려 그 셋은 약초보다 못한 성분을 지녔기에 지금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이보다 효과가 강했다면 약 기운과 반발하거나, 섬세한 혈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게 분명했다.
그거야말로 약학의 진수가 제 몸에서 연이어 펼쳐졌다.
“쯧, 이제 좀 네놈의 우둔함을 깨우쳤느냐?”
“…….”
고개를 들자, 눈앞에 대라신선이 서 있었다.
진천우의 눈이 태산을 마주한 듯 한없이 위로 향했다.
“제게…….”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이를 보고, 평범한 사람은 무슨 반응을 보일까?
이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그 존재를 우러러보거나.
“제발 제게…….”
그게 아니면 지극히 몸을 숙여, 상대의 극히 일부라도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
진천우는 후자를 택했다.
그는 어떻게든 학수선의의 기예를 배워 제 천형을 극복하길 원했다.
이를 위해서라면 고개를 숙이는 것쯤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다만, 자신이 고개 숙인다고 상대가 이를 받아주는가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였다.
“…….”
학수선의는 계속 말이 없었다.
지금 그가 무슨 표정을 짓는지, 고개 숙인 진천우는 알 수 없었다.
찰나의 순간이 억겁같이 느껴졌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서야, 드디어 학수선의의 붉은 입술이 얕게 달착거렸다.
“잠깐!”
그런데 엉뚱하게도 먼저 입을 연 건 진천우였다.
심지어 그는 곧바로 몸까지 일으켰다.
스스로 가르침을 칭하고서, 그 답도 듣지 않고 몸을 일으켜?
세상에 이런 무례는 또 없으리라!
학수선의도 이런 적은 처음이라,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눈만 꿈쩍였다.
슥!
진천우는 바로 담장 쪽으로 다가갔다.
그 앞에 조금 전에 학수선의가 무시한 월담초가 보였다.
그는 월담초 뿌리가 상하지 않게 조심하며 그것을 캐기 시작했다.
정말 이게 무슨 무례인가?
“제가 학수선의께 아주 큰 무례를 범한 줄 압니다.”
“그래, 예의를 밥에 말아 먹는 짓을 지금도 하고 있지.”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로 끝날 거면, 세상에 관청과 포졸이 왜 필요한가?”
“정말 죄송합니다.”
진천우는 연신 죄송하단 말을 반복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월담초를 캐는 걸 멈추지 않았다.
쑥!
결국 월담초를 온전히 뿌리째 뽑았다.
탁탁탁!
진천우는 지금 막 뽑은 월담초에 묻은 흙먼지를 가볍게 손으로 쳐 털더니.
슥!
그걸 그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어째서?
왜?
그 이유는 간단했다.
먹어야 했으니까.
우우웅!
이 순간에도 몸속에 단약의 기운이 백회를 말끔하게 만들고 있었다.
허나 딱 거기까지.
더는 남은 약효가 없었다.
‘그렇지만, 여기에 월담초를 더하면!’
슥?
한참 백회에 머물던 기운이 돌연 청소를 멈추더니, 갑자기 아래로 꺼져버렸다.
스르륵!
그것은 구렁이 담 넘듯 빠르게 아래로 빠르게 미끄러지더니 심장, 좀 더 정확히는 천지혈(天地穴)에서 멈췄다.
타이쿤이 백회 다음으로 뚫은 두 번째 절맥.
진천우는 이번에도 즉시 땅에 가부좌를 틀고 제 몸을 지켜보았다.
쿵!
약 기운이 천지혈을 강하게 두드렸다.
즉시 혈도가 흔들리며, 주위의 미처 다 뚫지 못한 부위가 떨어져 나갔다.
충격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쿵!
두 번.
쿵!
세 번!
합계 세 번의 충격이 심장을 강타했고, 곧바로 혈도 주위에 필요 없던 노폐물이 상당수 밖으로 빠져나갔다.
아쉽게도 단약의 효과는 여기까지였다.
“휴우!”
하지만 그는 뒤늦게 숨을 몰아쉬며, 썩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전보다 훨씬 머리가 맑아졌고 온몸에 부담이 줄었다.
마치 또 하나의 절맥을 뚫은 것만큼의 해방감이 전신을 감쌌다.
“후!”
진천우는 다시 한번 길게 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켰다.
당장 학수선의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는 상당히 놀란 얼굴로 진천우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약학의 기초도 모르던 놈이 어떻게?”
“학수선의께서 그 기초를 알려주시지 않았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확실히 세상에는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깨닫는, 문일지십(聞一知十)의 재기(才器)가 드물게 존재했다.
떠들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은 이를 두고 촉망받는 수재(秀才)라 칭했다.
‘그러나 내 단약에 녹담, 황귀신, 철쭉잎을 더한 상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재능은 겨우 열을 깨닫는 수준이 아니다.’
열(十)이 아니라 백(百), 천(千)!!
그것이야말로 호사가 따위가 떠들 필요 없이 만인(萬人)이 인정하는 하늘이 내린 재능(天才).
물론 진천우는 정확히 따지면, 학수선의가 생각하는 재능과 많이 달랐다.
그가 월담초를 떠올릴 수 있었던 건 모두 타이쿤 덕분이었다.
허나 그 또한 재능의 범주에 포함시키면?
게다가 설령 그런 지식을 따로 알았다 해도, 학수선의 앞에서 예를 거스르면서까지 월담초를 캐고 그걸 삼키는 담력 또한 보통이 아니었다.
“허!”
진천우가 지닌 재능의 본질이 무엇이든, 그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학수선의는 지금껏 자신 앞에 무릎을 꿇은 무수한 이들에게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제안을 진천우에게 건넸다.
“마침 자네가 날 도울 일이 하나 있네.”
가만 보면 제안이라기보다 강요에 가깝다.
그러나 진천우는 선뜻 고개를 끄덕이며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좋아, 그럼 내일 다시 보기로 하지.”
그렇게 진천우는 드디어 진씨세가로 돌아갈 수 있었다.
* * *
“천우야!”
돌아가자마자, 맨 먼저 어미가 아들을 반겼다.
“이 못난 녀석! 못난 녀석!!”
그녀가 진천우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툭! 툭툭!
등에서 얕은 진동이 느껴졌다.
결코 힘이 없어 이러는 게 아니었다.
지난 며칠 느닷없이 아들이 실종돼 마음고생했음에도, 어미는 천신만고 끝에 돌아온 아들을 혼내고 싶어도 행여나 약한 몸에 탈이 날까 정말 주먹을 등에 갖다 대는 정도로만 화를 풀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아들 역시 그런 어미의 마음을 알기에 입으로, 마음으로 하염없이 사죄의 말을 쏟았다.
하지만 죄송할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말 면목 없지만, 그는 차마 어머니께 진실을 알릴 수 없었다.
‘내가 잠시 실종된 것만으로 이리 몸을 떠는데, 어찌 독에 중독된 일과 금지로 흘러 들어간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사전에 따로 현석과 입을 맞추길 잘했다.
“산에서 길을 잃었다고?”
어미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천옥산은 진씨세가의 뒷산 같은 장소였다.
거기서 뭘 어쨌길래 길을 잃는단 말인가?
“제가 그만 발을 헛디뎌, 아래로 굴러떨어지면서 길에서 벗어나는 바람에…….”
“뭐?! 그럼 몸은 괜찮은 거냐? 다친 데는 없고?!”
그때, 아들이 길에서 굴렀다는 말에, 머릿속의 의문이 모조리 지워졌다.
진천우는 오로지 아들 걱정뿐인 어미를 간신히 달래며, 속으로 다시 한번 사죄를 연발했다.
“전 괜찮습니다. 현석이 몸을 날려 절 구해줘서 아무 상처도 없습니다.”
“정말이냐? 아아,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구나. 그래, 현석 너도 아들을 구한다고 고생했구나. 너도 심하게 다치진 않았고?”
“네, 넷! 전 멀쩡합니다. 가모님!”
어미의 칭찬에 현석이 황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실제로 구원받은 이는 진천우가 아니라 자신이었기에, 하인은 마음 한편으로 죄스러워했다.
이때 진천우가 서둘러 뒤에 있던 삼살이견을 소개하며 시선을 돌렸다.
“저 두 분이 산에서 헤매는 저희를 발견하고 여기까지 안내해주셨습니다.”
“두 분께서 제 아들과 가문의 식솔을 구해주셨군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진씨세가는 이 일을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어미는 한 가문의 여주인다운 태도로 감사를 표했다.
그러자 그 둘은 따로 진천우에게 지시받은 대로, 소가주를 구한 대가를 청했다.
“은공께서 한동안 진씨세가에 머물고 싶으시다고요? 당연히 환영할 일입니다. 바로 객당에 자리를 마련해놓겠습니다.”
어미는 즉시 그 청을 수락했다.
그렇게 삼살이견은 진씨세가의 선객으로 받아들여졌다.
사소한 문제는 여기까지.
이후, 백풍대주와 그와 함께 온 손님이 가모 앞에 섰다.
그들의 정체를 듣고 하마터면 까무러칠 뻔했다.
“하, 하, 학수선의시라고요?”
너무나 엄청난, 동시에 그간 너무나 바라던 이의 방문.
하지만 그녀는 이 놀라운 사실에 무작정 기뻐하진 않았다.
어미 또한 아들과 마찬가지로, 가짜 학수선의 사건으로 가슴에 큰 멍에를 남겼다.
허나 아무리 큰 상처가 남아도 제 아들의 목숨보다 중할 수 없었다.
“제 아들의 진맥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미 했습니다. 급한 고비는 이미 넘겼더군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말 그대로입니다. 당장 조처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보다 내일 제게 아드님을 빌려주셨으면 합니다.”
“신의께서 제 아들이 필요하시다고요?”
“잘 쓰고 돌려드리겠습니다.”
무슨 연장을 빌리는 듯한 무례한 태도에 가모가 발끈하며 한마디 쏘아붙이려 했지만, 옆에 선 아들이 이를 말렸다.
“제가 이미 수락했습니다.”
“…….”
그녀는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았지만, 진천우가 그리하겠다 한 이상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다소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진씨세가의 가모는 백풍대주와 학수선의 일행에게 진가에서 머물러도 된다고 허락하며 오늘 일을 마무리 지었다.
* * *
본디 목마른 자가 우물을 찾는 법.
이른 새벽, 진천우가 처소 밖을 나섰다.
그는 이대로 학수선의를 찾을 생각이었는데.
“왔나?”
왜 신의가 제 처소 밖에 있는 거지?
“가지.”
그는 자신을 보자, 다짜고짜 몸을 돌렸다.
‘뭐지?’
진천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학수선의가 자신에게 제안한 일을 하려면 가문 밖을 나서야 한다.
‘그런데 왜?’
신의의 발걸음은 가문 밖이 아니라, 세가 안쪽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