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화 : 밀려드는 환자들 (2) (65/210)


65화 : 밀려드는 환자들 (2)
2021.11.29.


‘디펜스라니? 방어? 막기? 뭐를 막는 거지? 환자를? 왜?’

갑자기 너무 많은 정보가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진천우는 당황하지 않고, 새로 얻은 정보를 차분히 정리했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손이 멈췄다.

“신참! 환자를 앞에 두고 뭐 하는 거냐?”

이를 본 산적 의원이 한마디 했다.

그래도 이전처럼 날 선 목소리가 아니었다.

이는 뒤따라 대화에 끼어든 마부 의원의 웃음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하하, 마지막 환자라고 대충할 생각 하지 말라고. 만약 피곤해서 그런 거라면 내가 대신 봐주지.”

그는 정말 진천우를 대신해 눈앞의 환자를 봐주었다.

마지막 환자는 배앓이로 찾아왔는데, 간단한 진맥 후 복통을 진정시키는 약을 조제해 주었다.

정확한 배합률과 눈에 띄게 빠른 속도.

“약 조제에 능숙하시군요.”

“의원이라면 당연하지. 하지만 내가 우리 중 가장 약 조제에 능숙한 건 사실이지.”

마부 의원이 자랑스럽게 가슴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 순간, 정말 그의 가슴 위로 현판이 나타났다.

[마부 의원은 ‘약재를 혼합한 정신 치료’에 능합니다.]

‘이건?!’

당연히 그건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진천우가 조금 더 생각을 정리하고는, 다른 의원에게 말을 걸었다.

맨 처음은 솔선수범해 주위를 정리하는 산적 의원에게.

“내 특기? 침술이지.”

[산적 의원의 특기는 ‘침을 이용한 내상 치료’입니다.]

‘내상 치료가 가능하단 건, 그 또한 내공을 다룰 줄 안다는 뜻.’

의원이 내공을 지니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어쩐지 처음 대면했을 때부터 내뿜는 예리한 기세가 보통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가 내공을 다룰 줄 안다면, 나처럼 점혈도 가능할 게 분명하다.’

진천우가 산적 의원에 대한 정보를 차곡차곡 쌓았다.

그 뒤 그는 다른 의원에게도 특기를 물었다.

이들은 이미 진천우를 인정한 뒤였다.

그렇다 보니 모두 순순히 제 특기를 알려주었다.

‘다섯 중 셋이나 내공을 다룰 줄 안다. 그리고 다섯 중 셋은 외상 전문이고 나머지 둘은 내상 전문이다. 전반적으로 다섯 모두 침, 뜸 등 모든 의술에 능하다.’

신기하게도 진천우가 다섯 의원에 대한 정리를 끝마치자, 그들 머리맡에 푸른 현판이 떠올랐다.

거기에는 방금 막 자신이 정리한 의원들의 특기 외에도, 옆에 아주 커다란 오각형이 보였다.

오각형의 각 꼭짓점에는 침술이나 약 조제 등 다섯 의원의 특기가 적혀 있었는데, 그 특기에 능숙한 의원은 유독 그 부분이 크게 솟구쳐 있었다.

‘내가 정리한 정보를 시각화한 건가?’

물론 다섯 모두 명의의 반열이라, 누구 하나 크게 치우치는 부위 없이 커다란 원을 그렸다.

진천우가 그래도 상대적으로 원의 크기가 작고 치우친 점소이 의원을 불렀다.

“죄송하지만, 학수선의께서 따로 약재를 가져오지 않았습니까?”

“왜 그런 걸 묻지?”

그가 막 뭐라 하려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별것 아닌지라 순순히 답해주었다.

“사실 신의께서 챙긴 건 아니지만, 그분께서는 매번 밖을 나설 때마다 일을 벌이기에, 우리들이 따로 대량의 약재를 챙겨오지.”

“잘됐군요. 그것들을 전부 여기로 가져와 주시길.”

“뭐?”

분위기가 일시에 경직되었다.

“자네, 방금 그건 무슨 소리지?”

산적 의원이 평소의 험상궂은 얼굴로 돌아왔지만 무시했다.

진천우는 소매에서 휴대용 지필묵을 꺼내, 급히 무언가를 적었다.

-당장 세가 창고에 있는 모든 약재를 꺼내 이 서신을 가져온 자에게 내줄 것. 시급을 요하는 일이니, 가문에 손이 빈 하인과 시녀들도 전부 딸려 보낼 것.

그대로 서신 말미에 진씨세가의 소가주를 상징하는 수결을 맺었다.

다른 의원들도 그것을 지켜보았다.

“이게…….”

“무슨?”

모두 입을 벌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도대체 신참이 왜 이러는 거지?

처음에는 그가 자신들이 가져온 약재를 강탈하려는 줄 알았다.

그런데 서신 내용을 보니, 그게 아닌 듯했다.

아니, 애초에 그들은 진천우가 진씨세가의 소가주인 것도 지금 처음 알았다.

“이걸 가지고 진씨세가로 가주십시오. 진가의 위치는…….”

진천우가 서신을 마부에게 건넸다.

다섯 중 그가 가장 약재를 알아보는 능력이 뛰어났다.

산적 의원이 다가왔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설명하게.”

“설명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뭐?”

지극히 황당한 표정.

이해한다.

그러나 그가 납득할 때까지 하나하나 설명할 수 없었다.

사실 이제 설명할 필요도 사라졌다.

우당탕!

저 멀리서 큰 소란이 일었다.

“의, 의원님!”

“살려주십시오!”

“내 다리! 내 다리!!”

“내 팔!!”

잠시 뒤, 소란이 인 방향에서 엄청난 흙먼지와 함께 대량의 환자 떼가 이쪽을 향해 파도치듯 쏟아졌다.

[일각이 지났습니다.]

[환자들이 몰려옵니다.]

“뭐하십니까! 당장 출발하지 않고!”

“어엇!”

“어서!”

“아, 알았다!”

진천우가 아직도 어물쩍대던 점소이와 마부를 쫓아냈다.

빠르게 멀어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그는 처음 ‘환자 디펜스’라고 적힌 현판을 보고 떠올린 의문의 답을 내렸다.

-디펜스라니? 방어? 막기? 뭐를 막는 거지? 환자를? 왜?

왜 환자를 막아야 하지?

무엇으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방금 막 조치를 마친 환자들이 보였다.

“에구구!”

“저게 무슨 일이래?”

“세상에나!”

이들은 새로 몰려오는 환자를 보고, 그저 안타까워했다.

아직 사태 파악을 전혀 하지 못했다는 소리.

남의 염병이 제 고뿔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지금 몰려드는 환자는 멀리서 봐도 아주 심각해 보였다.

대부분 가벼운 상처로 조치를 마친 저들보다 훨씬 더!

염병도 아니라 고뿔에 걸린 남 따위, 저들의 눈에 미칠 리 없었다.

만약 의원이 저들을 다 치료하지 못하면, 그들 눈앞에 이미 치료를 마치고 거기다 손에 약까지 든 이들이 보이면 어떤 기분일까?

‘폭동이 일어나겠군.’

이걸 막아야 하는구나!

슥!

진천우가 드디어 자신이 무엇으로부터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환자를 구하기 위해, 몰려드는 환자를 막아라.

그가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제가 여기를 관리하겠습니다.”

“뭐?”

미처 상황을 다 파악하지 못한 산적과 거지, 장사꾼이 의문을 터트렸다.

그러자 진천우는 곧바로 그들을 향해 일갈을 질렀다.

“지금부터 당신들은 제가 정한 배치에 따릅니다. 전 바로 저 환자들을 증상에 따라 분류, 분배할 테니, 모두 맡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쉬지 않고 환자를 진맥하세요.”

“잠깐, 지금 그게…….”

“변명은 나중에 듣겠습니다!”

불평불만은 듣지 않았다.

지금 여기 ‘병자가 모인 장소’에 가장 필요한 건, 몰려드는 환자가 의원에게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진맥 받을 수 있는 ‘길을 잡아줄’ 책임자였다.

그리고 그 적임자는 누가 뭐래도 ‘의술의 신 2’를 가진 자신밖에 없었다.

의원, 진천우가 모두를 향해 단호히 선언했다.

“지금부터 이 병장(病場)은 제가 집도(執道)합니다.”

* * *

“이건?!”

진천우가 몰려드는 환자를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의아아! 의원님! 의원님!”

“아픕니다. 너무 아프다고요!”

“아악! 살려줘!!”

‘타이쿤이 환자가 대량으로 몰려온다고 했을 때, 어느 정도 각오했지만.’

그 수가 그의 각오를 훌쩍 뛰어넘었다.

정확히 백 명.

이만한 숫자가 떼로 달려들면, 혼자서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들리지 않았다.

거기다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검상(劍傷).’

환자 중 검에 베인 자가 여럿 보였다.

그중 한 명은 뼈가 보일 만큼 크게 다쳤다.

“무슨 일입니까?”

개중 멀쩡한 환자를 붙잡아 물었다.

그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정황을 설명했다.

“명월 객잔에서 무인들이 칼부림을 일으켰습니다.”

“무인들이?”

어째서?

무인에게는 나름의 규칙이 있다.

그들은 무공을 모르는 범인을 상대로 가능하면 검을 뽑지 않았다.

‘물론 그게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규칙이란 건 잘 안다.’

어디까지나 남의 눈에 의식한 규칙.

그러나 그것이 어느 정도 효력을 가지는 것도 사실.

적어도 지금처럼 백 명의 환자가 한꺼번에 몰려들 정도면, 희대의 마두가 나타났을 때뿐이었다.

‘그런 게 이런 시골 깡촌에 왜 나타나겠어.’

“그게…… 그게…….”

남자가 겁에 질린 듯, 잘 말을 잇지 못했다.

이를 본 진천우가 소매에서 약초잎을 꺼내 내밀었다.

“이걸 드시죠.”

“이건?”

“진정 작용이 있는 약초입니다. 천천히 꼭꼭 씹으면 좀 괜찮아질 겁니다.”

“감사합니다.”

남자는 약초를 몇 번 씹더니, 한결 진정된 듯 빠르게 떨림을 멈췄다.

일반적인 약초라면 이처럼 빨리 효과는 보일 수 없겠지만, 지금 그가 씹는 건 무려 금지에서 채취한 약초였다.

잠시 뒤, 남자의 입에서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그들은 처음부터 두 패로 나눠 싸웠습니다. 그러다 한쪽이 확연히 밀리게 되자, 지고 있던 쪽에서 싸우다 말고 줄행랑쳤습니다.”

“그래서요?”

“우위를 점한 쪽에서 후환 따위 남기지 않겠다며, 달아나는 이들을 집요하게 쫓았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들이 달아난 곳이 여기 빈민가였고, 놈들은 뒤쫓아오는 이들을 보고 기겁해서, 그냥 길 위에 서 있는 우리에게 닥치는 대로 칼을…….”

“미친놈들!”

절로 욕지거리가 나왔다.

경전하사(鯨戰蝦死)라고, 여기 몰려온 이들은 그야말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진 꼴이다.

“의원님!”

“의원님!!”

이 와중에도 환자가 물밀듯 밀려왔다.

[첫 번째 환자는 날카로운 검으로 오른팔에 자상(刺傷)을 당했습니다.]

[두 번째 환자는 도망치는 사람들에 휩쓸려 그만 왼 다리가 부서졌습니다.]

[세 번째 환자는…….]

[다섯 번째 환자…….]

다행히 진천우에게는 타이쿤이 있었다.

“첫 번째 환자는 산적에게, 두 번째 환자는 장사꾼에게, 세 번째 환자는 거지에게…….”

그는 현판에 적힌 환자와 의원의 정보를 조합해, 밀려오는 환자를 분배했다.

세 의원은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환자들만 제 쪽에 배치되자, 이를 선별하는 진천우에게 놀란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여전히 환자가 너무 많았다.

“의원님! 제발! 죽을 것 같습니다.”

“아악! 제 팔이! 팔이!!”

“안 돼! 이렇게 죽을 수 없다고!”

세 의원 앞에 계속 환자가 쌓였다.

의원들도 전력을 다했지만, 환자가 쌓이는 속도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거기다 환자가 일정 이상 쌓이자, 진천우의 눈에 이상한 게 보였다.

‘환자들 현판색이?’

처음 환자의 머리맡에 떠오른 현판색은 초록이었다.

그런데 지금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의 현판색은 노랑.

아예 줄도 서지 못하고 뒤에 선 이들은 붉은색이었다.

그 붉은색마저 전차 검게 변하기 시작했다.

아니, 틀렸다.

이제부터 검게 변하는 줄 알았는데, 무리 가운데 누군가 이미 완전히 검게 변하기 직전이었다.

“으아아악!!”

잠시 뒤, 검은 현판의 환자가 이성을 상실하고 앞으로 돌진했다.

‘어림없다!’

결국 이를 보다 못한 진천우가 그자를 향해 최후의 수단을 사용했다.

16550972638821.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