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 만병(萬病)의 근원
(66/210)
66화 : 만병(萬病)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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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화 : 만병(萬病)의 근원
2021.12.01.
“당장 날 진료하라고!”
기다리다 지친 환자가 폭발했다.
그가 주위 다른 환자를 마구잡이로 공격했다.
“이런!”
산적 의원이 인상을 찌푸렸다.
당장 저놈을 붙잡아야 한다.
하지만 그 앞에는 위급한 환자가 누워있었다.
의원이 환자를 두고 떠날 수는 없었다.
“누가!”
나 대신 누가 저놈을 말려라!
그러나 오른편의 거지도, 왼편의 장사꾼도 환자에게 양손이 묶였다.
진천우?
그야말로 가장 앞에서 몰려드는 환자를 분류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분명 그래야 하는데…….
“쯧!”
어느새 그가 난동부리는 환자 옆에 섰다.
퍽!
그 직후, 짧고 굵은 타격음이 울렸다.
“컥!”
인체의 급소 중 하나인 명치를 맞고 남자가 눈을 까뒤집으며 쓰러졌다.
“아악!”
“세상에!”
주위 다른 환자들이 기겁하며 물러났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구해야 할 의원이 오히려 환자를 쥐어패다니.
‘알 바냐!’
진천우가 주위를 둘러보며, 착 가라앉은 목소리를 냈다.
“딱 봐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거 보이지? 이 와중에 또 지랄하는 인간이 나오면 바로 이 꼴로 만들어 준다.”
부글부글!
쓰러진 남자의 입에서 대량의 게거품이 나왔다.
이를 본 이들은 극심한 공포감을 느끼며 몸을 움츠렸다.
그때 진천우가 손가락으로 특정 몇몇을 가리켰다.
“특히 너! 너! 너!!”
“네, 넷?!”
“전 아닙니다. 제가 난동을 부린다니요!”
“저도 절대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웃기고 있네!
방금 가리킨 이들의 머리맡에 반 넘게 검게 물든 현판이 떠 있었다.
허나 하나하나 지목하고, 거칠게 으름장을 먹이자, 현판색이 다시 붉은색에서 아예 노란색까지 돌아갔다.
‘역시!’
예상대로.
‘환자의 불평불만을 해소하는 방법이 꼭 달래는 것만이 아닐 줄 알았지.’
말을 달리게 하는 데 필요한 건 채찍과 당근이다.
그중 하나만 사용해서는 큰 효과를 볼 수 없다.
둘을 적절히 사용할 때, 가장 큰 효과가 발휘된다.
진천우는 몇 번의 타이쿤 경험으로 이를 확실히 숙지했다.
“자네, 무슨 짓인가!”
이때, 간신히 급한 환자를 치료해낸 산적 의원이 이쪽으로 달려왔다.
그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소리쳤다.
“의원이 환자에게 윽박지르고, 협박까지 하다니!”
“그 덕분에 이 상황을 진정시키지 않았습니까?”
“웃기지 말게. 이건 의원의 방식이 아니네.”
“의원의 방식?”
“그래!”
산적은 분명 뛰어난 실력의 의원이었다.
그러나 험상궂은 얼굴과 달리, 그는 꽤 고결한 이상을 추구했다.
“우리는 단순히 병만 고치는 의원이 아니네.”
“그게 아니면?”
“의원은 단순히 환자의 육체의 병뿐 아니라 환자의 마음의 병까지 치유할 수 있어야 하는 법. 그런데 자네는 오히려 환자에게 마음의 병을 심어주지 않는가!”
어라?
진천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말 어디서…….
-의원의 일은 단순히 병만 고친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진정한 의원이라면 병은 물론이고, 환자의 마음까지 치유해야 한다.
“아!”
장 의원, 아니, 장가 놈, 그 자식이 제 앞에서 지껄였던 소리다.
본래 학수선의 밑에서 심부름했다고 했으니, 틀림없이 산적 의원과도 면식이 있을 터.
‘놈이 이자에게 들은 말을 내 앞에서 똑같이 내뱉은 거였군.’
이 말을 듣고 내가 어떻게 반응했더라?
아, 기억난다.
그때 난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의원이 병을 고쳐야 의원이지, 무슨 얼어 죽을 마음의 병!
“…….”
하지만 진천우는 산적에게는 그리 말하지 않았다.
말할 이유도, 할 필요도 없었다.
“그쪽은 산적에게, 넌 장사꾼에게, 넌 거지에게…….”
아직 그들에게는 진맥할 환자가 너무 많았다.
산적 의원도 이를 알기에 추궁을 계속하지 못했다.
그가 그렇게 제자리로 돌아가려는데, 등 뒤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들렸다.
“넌 산적에게, 너도 산적에게, 너도 산적이네. 아, 그쪽도 산적에게!”
“자네!”
“무슨 할 말 있습니까? 넌 산적에게, 너도 산적. 영감님, 저기 딱 봐도 산적처럼 생긴 의원 있지요? 저 사람에게 가면 됩니다.”
“자네!!”
이건 바로 추궁하려 했지만, 그 직후 그에게 대량의 환자가 몰려왔다.
산적 의원의 한 맺힌 외침은 밀려오는 환자에게 파묻혀 사라졌다.
“휴우!”
“간신히 한숨 돌렸군.”
한편, 그 덕에 장사꾼 의원과 거지 의원의 부담이 줄었다.
둘은 체력이 약해, 조금 전까지 한계 직전이었다.
‘설마 이를 눈치채고, 우리 부담을 줄이려고 환자를 한쪽에 몰아준 건? 에이, 아무렴 그럴 리가!’
장사꾼은 여유가 생기자, 아까 게거품을 물고 쓰러진 남자에게 갔다.
어쨌든 그도 환자이니 진료해야 마땅할 터.
그런데!
“아니?!”
화들짝 놀래는 장사꾼 뒤로 진천우가 나타났다.
그가 나직이 한마디 했다.
“모른 척해 주십시오.”
“모른 척하라니!”
어찌 이를 모른 척하란 말인가!
장사꾼은 산적보다는 사고가 유연했다
그래서 조금 전에 진천우가 질서를 위해 환자를 공격한 것도 넘어갔다.
그러나 쓰러진 남자에게 나는 이 시큼한 냄새!
‘독!’
어찌 이런!
‘의원이 환자에게 독을 쓰다니!’
“다시 한번 살펴보십시오.”
“뭐?”
“어서.”
진천우가 장사꾼에게 다시 남자를 살피게 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재차 쓰러진 남자를 살폈다.
그러자 믿기 힘든 사실이 밝혀졌다.
“어!?”
장사꾼은 처음 남자에게서 독을 찾았을 때보다 더 크게 놀랐다.
‘독으로 몸을 마비시켜 통증을 진정시켰어?’
독으로 병을 억누르다니.
무척 특이한 사용법.
좀 더 살피니, 진천우가 굳이 독을 쓴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약보다 빠른 독의 즉효성을 이용한 거군.’
확실히 이거야말로, 시간에 쫓기는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었다.
그제야 그는 왜 진천우가 산적에게 환자를 몰아주는지 이해되었다.
‘확실히 고지식한 그라면, 이 방법이 아무리 가장 효율적이어도 절대 허락하지 않겠지.’
그러니 그냥 그에게 환자를 몰아줘,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리지도 못하게 만든다.
대신 남은 둘에게는 이 사실을 알려 적극적으로 협조를 받는다.
“알겠네.”
앞서 말했듯, 장사꾼은 사고가 유연했다.
“저도 이 방법밖에 없다는 데 동의합니다.”
마찬가지로 사고가 유연한 거지도 순순히 동의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도, 진천우가 사전에 다섯 의원의 특기와 성격을 철저히 분석한 덕분이었다.
드디어 완벽한 방어 진지가 구축되자, 더는 몰려드는 환자가 두렵지 않았다.
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천군만마까지 도착했다.
“미안, 늦었다!”
“지금 막 진씨세가에서 약초를 가져왔습니다.”
잠시 부족한 약초를 가지러 간 점소이와 마부 의원이 동시에 도착했다.
“잘 오셨습니다. 죄송하지만 오자마자 바로 환자를 진맥해야겠습니다.”
“그거야 의원으로서 당연히 할 일이지.”
“맡겨만 두게!”
진천우는 그 즉시 둘을 가장 필요한 자리에 배치했다.
그리고 환자 배분도 잊지 않았다.
“그쪽은 산적에게, 당신은 장사꾼에게, 넌 거지에게, 댁은 마부에게, 부인은 점소이에게, 넌 산적, 너도 산적, 그쪽도 산적, 당신들도 전부 산적에게 진맥 받으면 됩니다.”
“자아네에에에!!!!!!”
이 바쁜 와중에 한 사람만 불만을 쏟아냈지만, 아까 말했듯 너무 바빠서 그의 불만은 가볍게 무시됐다.
그렇게 진천우는 단숨에 모든 환자의 배치를 끝마치고, 자신도 진료에 들어갔다.
무려 여섯 의원이 모이자, 환자 백 명의 진료도 순식간이었다.
[스킬 ‘침술’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스킬 ‘약학’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스킬 ‘언변’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
그 순간, 가지고 있던 모든 의술 관련 스킬의 숙련도가 상승했다.
“똥개 훈련하는 것도 아니고, 왜 나만!”
맨 마지막으로 제 몫의 환자를 끝낸 산적 의원이 볼멘소리를 냈다.
[스킬 ‘조련’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또 의문의 조련 스킬 숙련도도 함께 상승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갔다.
그렇게 모두 넘어가는 줄 알았는데.
[특수 이벤트 ‘환자 디펜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일각 뒤, 다시 환자가 몰려옵니다.]
[‘환자 웨이브’는 총 3번입니다. (1 / 3)]
[두 번째 ‘환자 웨이브’에는 첫 번째에는 없던 ‘엘리트 환자’가 함께 옵니다.]
[다섯 의원과 함께 이들 모두를 치료하세요.]
뭐?!
‘웨이브? 파도?’
이딴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 중요한 건, 간신히 첫 번째를 넘겼는데 아직 두 번이나 더 남았다는 사실.
‘게다가 일각 뒤?!’
진천우가 급히 고개를 돌렸다.
“헉! 헉!”
“후우!”
“지친다!”
다섯 의원 모두 상당한 기력을 소모했다.
특히 뒤늦게 도착한 둘을 제외한 나머지 셋은 이제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도 없었다.
‘나와 마부, 점소이, 이 셋으로 두 번째 파도를 막을 수 있을까?’
거기다 문제가 하나 더 남아있었다.
‘엘리트 환자?’
엘리트, 뛰어난, 우수한, 소수정예의.
‘그러니까 까다로운 환자가 더 추가된다는 건데…….’
이미 첫 번째 웨이브에서 검상의 환자가 포함돼 있었다.
그보다 더 심한 환자가 몰려온다니,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이럴 때 학수선의는 왜 코빼기도 보이지 않지?’
진천우가 이를 갈며 당장 가장 필요한 이를 찾았다.
그러나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신의는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첫 번째 환자 웨이브 때처럼 뭔가를 준비할 상황도 아니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오직 휴식뿐이었다.
“당장 정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쉬고 계세요.”
“그러지.”
진천우가 막 주위를 정리하려는 마부와 점소이 의원을 막고, 강제로 쉬게 했다.
그대로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많이도 바라지 않는다.
일각.
단 일각만 더 쉬게 해주면, 이들을 다시 알차게 부려먹을 수 있는데.
[일각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타이쿤은 정말 야속하게,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 정확한 시간에 두 번째 웨이브 시작을 알렸다.
우르르!
“어? 저게 뭐지?”
가장 먼저 산적 의원이 이변을 감지했다.
“의원님!”
“살려주십시오!”
다행히 두 번째는 첫 번째보다 수가 적었다.
딱 처음의 반의반.
그러니까 스물다섯.
그러나 진천우는 그 수를 확인하고 도리어 눈살을 찌푸렸다.
‘도대체 엘리트 환자가 얼마나 극악이길래?’
절대 타이쿤이 쉬운 환자를 내줄 리 없었다.
분명 그럴진대…….
멀리서 달려오는 환자 무리의 선두가 의원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의원님! 여기 환자입니다! 그것도 독에 중독된 환자입니다! 도망치던 무인들이 막다른 길에 몰리자, 최후의 수단으로 독을 뿌리는 바람에……. 제발 이들을 살려주십시오!”
“뭐, 독?!”
진천우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목소리가 해맑았다.
“독이라고?! 정말!!”
그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자신을 따라 일어서려는 다른 의원들에게 말했다.
“안 일어나셔도 됩니다.”
“뭐? 왜?”
“저들은 제가 다 맡겠습니다.”
“무슨 소린가! 자네도 듣지 않았는가. 독에 중독된 환자는 검에 베인 환자보다 더 지독하다네!”
“저도 압니다.”
알지.
잘 알지.
너무 잘 알아서 문제지!
“그러니까 저들은 저 혼자 다 맡겠습니다.”
진천우가 다시 한번 의원들에게 일어나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들은 지금 쉬고, 대신 세 번째 웨이브에서 죽도록 진료해줘야 한다.
‘하하, 독이라니!’
환자를 앞에 두고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아는데, 자꾸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쩔 수 없었다.
의원은 독을 보면 인상을 찡그리지만, 독인은 정반대니까.
게다가 그의 소매 안에 마침!
꿈틀!
만독의 지존……이 될 예정에 독 흡수까지 가능한 독고가 있지 않은가!
‘그래, 오늘은 모처럼 포식시켜 주마!’
꿈틀꿈틀!
녀석도 주인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소매 안에서 연신 몸을 꾸물럭거렸다.
곧바로 독인, 진천우가 먹음직…… 아니, 불쌍한 중독자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두 번째 환자 웨이브를 성공적으로 막아냈습니다.]
[스킬 ‘침술’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스킬 ‘약학’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스킬 ‘언변’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
이번에도 의술 관련 스킬의 숙련도가 전부 상승했다.
꾸물, 끅! 끄윽!
모처럼 독으로 포식한 독고도 배를 빵빵하게 불렸다.
녀석은 다시 소매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을 떼굴떼굴 굴렸다.
[스킬 ‘조련’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그래, 이번에는 이해할 수 있다.
‘세 번째 웨이브도 일각 뒤인가?’
그럴 리가!
진천우가 타이쿤의 악독한 성격을 잊을 리 없었다.
[곧바로 세 번째 웨이브가 밀려옵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일어나십시오!”
그가 바로 지금껏 강제로 휴식한 의원들을 불렀다.
이제 너희가 일할 시간이다.
우르르!
때마침, 세 번째 웨이브가 몰려왔다.
이번에는 열 명.
‘또 숫자가 줄었네?’
이것들은 또 어떤 해괴망측한 환자길래?
그런데 그들은 환자가 아니었다.
“하하…….”
진천우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이들을 보고, 그만 헛웃음을 흘렸다.
‘설마 저것들이 들이닥칠 줄이야!’
이번에는 병자가 아니라, 아예 만병(萬病)의 근원이 기어들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