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 대를 위한 소의 희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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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화 : 대를 위한 소의 희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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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화 : 대를 위한 소의 희생 (1)
2021.12.04.
세 번째 웨이브와 함께 들이닥친 열 명.
‘저치들!’
그중 일부가 자신과 안면이 있었다.
허나 상대는 진천우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어험!”
“크흐음!”
그들은 그저 빈민가의 낯설고 더러운 환경이 언짢고 불쾌했다.
이를 보고 그가 넌지시 말을 걸었다.
“청 의원께서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날 아는가?”
“이 근방에서 가장 이름난 청 의원님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눈앞의 푸른 비단옷의 중년인은 자신이 처음 발작할 당시 거금을 대가로 진씨세가까지 왕진해 온 의원이었다.
하지만 그는 두 번째 발작 때 진천우를 포기했다.
그런 주제에 따로 왕진비와 약값을 다시 뜯어갔다.
물론 처음 받은 것 이상의 거금으로.
“허허!”
청 의원은 여전히 진천우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명의란 칭찬에 가볍게 입꼬리를 실룩거렸다.
하긴, 청 의원이 자신을 진맥한 건 아주 어릴 적의 일.
그의 기억 속에 진천우는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환자지만, 지금 눈앞의 상대는 제법 건장한 체구의 청년.
쉽게 연결되지 않는 게 당연했다.
“크흠!”
“확실히 청 의원이 근방에서 가장 이름난 의원인 건 사실이지만, 우리도…….”
이때 청 의원 옆의 붉고 노란 비단옷 차림의 중년인들이 낮게 한마디씩 했다.
이들 역시 얼굴이 익다.
모두 과거에 한 번 이상 진맥을 받은 의원이었다.
사실 이 근방에서 진천우가 진맥을 받지 않은 의원을 찾는 게 더 힘들었다.
“뒤의 두 분은 적 의원님과 황 의원님 아니십니까?”
그가 바로 아는 척하자, 둘은 언제 삐쳤냐는 듯 입가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것만 봐도 그 둘이 청 의원보다 심계가 떨어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의술 실력도 청 의원보다 훨씬 아래였지.’
그나마 청 의원은 첫 발작을 진정시킬 수준이었지만, 함께 모신 둘은 지금껏 보지 못한 증상이라며 우왕좌왕하기만 했다.
그러면서 나중에 진료비와 약값은 청 의원 못지않게 뜯어갔다.
당시 진천우의 부모님도 그들의 탐욕에 학을 뗐을 정도.
‘그런데 이 셋이 다 같이 여긴 왜 온 거지?’
다쳤나?
조심스럽게 그들을 살폈지만, 딱히 다친 기색은 없었다.
적 의원이 거만한 자세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흐음……. 갑자기 빈민가에 환자가 몰렸다고 들었는데, 어찌 잘 대처한 모양이군.”
‘아! 설마 갑자기 빈민가에 환자가 몰렸다는 소식을 듣고 도와주러 온 건가?’
진천우가 크게 실수했다.
그도 이들에게 당한 게 많아, 그런 생각은 추호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정황상 그것 외에 다른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물론 혹여나 제 비단옷에 빈민가의 구정물이 묻지 않을까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저들을 작태를 보면, 절대 손을 보태러 온 게 아닌 것쯤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럼 도대체 여긴 왜 온 거지?’
“자네가 여기 책임자인가?”
그때, 청 의원이 뜬금없이 책임자를 찾았다.
“아닙니다.”
진천우가 고개를 저었다.
만일 조금 전에 그 질문을 받았다면 당연히 자신을 지목했겠지만, 방금 막 독에 중독된 환자의 진료를 마친 이상, 여기 책임자는 그가 아니었다.
진천우가 이 자리에 없는 신의를 대신할 산적 의원을 책임자로 소개하려 했으나, 청 의원이 먼저 선수 쳤다.
“아니, 누가 책임자건 크게 상관없겠군. 여기 있는 이들 전부 날 따라오게.”
“우리가 왜 그래야 하오?”
대뜸 따라오라는 말에 산적 의원이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적 의원과 황 의원이 그런 그를 크게 나무랐다.
“어허!”
“어디! 우리가 따라오라면 잠자코 따라올 것이지, 대꾸를 해? 보아하니 실력도 미천해 보이는데, 그런 자네들에게 우리가 아주 큰 기회를 주는 걸세!”
‘하하!’
진천우가 속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저들이 무슨 기회를 준다는 건지는 일단 제쳐두고, 미천한 실력?
저것들의 눈은 옹이구멍인가?
여기 있는 다섯은 어디 내놓아도 명의 소리를 들을 이들.
심지어 학수선의 아래서 수학하고 있으니, 의원으로서 가장 높은 위치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도 못 알아보고 저리 큰소리치다니.
‘역시나 이것들이야말로 만병의 근원이다.’
사람을 죽이는 건 비단 병과 독만이 아니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처럼, 어설픈 의원 역시 사람을 죽였다.
아니, 그들은 멋모르는 환자를 속여 잘못된 지식을 알려줌으로써 도리어 작은 병을 크게 키우고 사방에 퍼트리니, 어찌 보면 어떤 병과 독보다 더 악독한 존재야말로 실력 없는 의원이라 할 수 있었다.
“퉷!”
산적 의원이 기가 찬다는 얼굴로 바닥에 가래를 뱉었다.
귀로 들어간 더러운 소리가 목구멍을 막혔다.
이를 이렇게 뱉으니, 간신히 숨이 트이는 느낌이다.
한편 대놓고 무안을 당한 세 의원이 크게 얼굴을 붉혔다.
“이것들이!”
“아무래도 좋게 말로 해서는 안 되겠군.”
슥!
적 의원이 한 손을 들었다.
그러자 그들과 함께 온 일곱 명이 앞으로 나왔다.
허리춤의 검.
무인들.
어째서 무인이 의원의 말을 듣는가 싶었는데.
“우리는 의원 연합에서 나왔다. 너희도 꼴에 의원이라면 의원 연합의 명에 따라라.”
“의원 연합?”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진천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그가 의원 연합에 대해 설명했다.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군. 잘 들어라. 의원 연합이란, 여기 인근에서 가장 뛰어난 명의이신 세 분께서 항상 의원이 부족한 변방의 사정을 안타까워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만든 연맹이다.”
아니, 바보가 아니고서야 그렇게 노골적으로 만든 이름의 의도를 모를 리 없었다.
그가 고개를 저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세상에! 그러니까 선무당도 안 되는 것들이 자기들끼리 뭉쳐 단체를 만들었다는 거잖아?!’
이것들이 얼마나 큰일을 내려고!
이때 진천우는 몰랐다.
사실 의원 연합이 만들어지는 데 자신이 아주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걸.
본디 이곳에 가장 크고 강한 세력은 모두 세 곳.
바로 철기방과 녹청문 그리고 금룡가였다.
헌데 어쩌다 보니 그 세 곳 모두 진천우가 맹의 백풍대를 이용해 헤집어 놓았다.
그렇게 세 곳이 힘을 잃은 틈을 노려 온갖 잡것들이 활개 치기 시작했으니, 그중 한 곳이 바로 의원 연합이었다.
이를 만든 청, 적, 황, 세 의원은 그간 바가지 치료로 벌어들인 돈으로 무인을 사고, 세를 불렸다.
그들이 노리는 건 기존의 세 세력 중 약초를 독점한 녹청문이었다.
한낱 약사와 약초꾼이 의원인 자신들보다 더 큰 부를 거머쥔 꼴이 항상 못마땅했는데, 이 기회에 그 위치를 역전시킬 셈이었다.
하지만 의원 연합이 무얼 하든 진천우의 관심 밖이었다.
그보다 궁금한 건 저것들이 왜 여길 찾아왔는지다.
그들은 여전히 이곳에 온 이유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잠시 뒤, 황 의원이 그 이유를 밝혔다.
“어험! 내 듣자 하니, 네놈들이 여기 몰려온 중독 환자를 해독했다고?”
“그렇습니다만?”
이번에도 산적 의원이 나섰다.
비록 중독된 환자를 치료하는 데 그가 한 일은 없지만, 혹여나 칼 든 잡것들이 진천우를 해코지할까 봐 나선 것이다.
“마침 잘됐군. 우리 쪽에도 같은 독에 중독된 환자가 있네. 자네들은 당장 가서 그를 해독해줘야겠네.”
“의원이 환자를 치료하는 건 당연한 일이나, 당장 그쪽으로 가는 건 무리입니다.”
“무엇이!”
일이 잘 풀린다 싶다가 갑자기 틀어지자, 황 의원이 쌍심지를 치켜들었다.
그러나 산적 의원의 거부는 단순히 의원 연합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양손을 펼쳐 주위를 상기시켰다.
여기에는 아직 백 명이 넘는 환자가 있었다.
자신들이 한 건 어디까지나 응급조치뿐.
아직 그들에게는 의원의 손길이 절실했다.
“다행히 이번에 문제가 된 독은 생각보다 치명적인 독이 아니니, 의원 연합에서 여기로 환자를 데려오면 함께 진료해드리겠습니다.”
산적 의원의 발언은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완전 비상식.
“난 또. 저것들이 문제였나?”
꿈틀!
순간 산적의 미간이 한가운데로 모았다.
의원이 환자를 두고 저것이라 하다니.
특히나 고지식한 그는 그것에 대해 뭐라 하려다가.
“내 이번만, 조금 전의 무례를 넘겨주지. 됐으니까 따라오게. 우리 쪽에 훨씬 더 중요한 환자분이 기다리고 계시니. 자네도 들어봤을 걸세. 서원문의 마 대협이라고.”
‘저것’과 ‘중요한 환자분’?
환자를 급으로 나누다니, 이놈들이 정녕 의원인가!
당장 일갈을 터트려도 모자란데, 산적은 어째서인지 서원문의 마 대협이란 말에 마음 한편이 찜찜했다.
분명 모르는 인간인데, 어디서 자꾸 들은 것 같은 건 왜지?
“이번에 명월 객잔에서 싸움을 일으키고, 패퇴해 멀쩡한 빈민가 사람들을 베고, 종국에는 독까지 퍼트린 자 말이군요.”
이때 진천우가 명쾌하게 가려운 부위를 긁어주었다.
‘아!’
그걸 듣고야, 산적이 뒤를 닦지 않고 뒷간에서 나온 것 같은 찝찝한 기분을 털어냈다.
“입조심하게!”
반면, 황 의원은 대경실색한 얼굴로 급히 목소리를 낮췄다.
“이 미친놈들이 어디서 큰일 날 소리를! 아무튼 그분께서 같은 독에 중독됐으니, 너희가 얼른 해독해야겠다.”
“이상하군요. 스스로 퍼트린 독이니, 보통은 해독제를 따로 지니고 계실 텐데?”
“당연히 그분께서는 이미 해독제를 복용하셨다. 그런데…….”
“아아!”
진천우가 바로 상황을 이해했다.
‘해독제가 듣지 않았군.’
처음부터 잘못된 해독제를 가지고 있었든가, 아니면 앞의 싸움에서 너무 크게 다쳐 해독제도 듣지 않을 만큼 독이 심하게 퍼졌거나 둘 중 하나다.
“잘 듣게. 마 대협은 최근 세가 한풀 꺾인 금룡가를 대신해 근방의 가장 강한 무가의 수장이 되실 분이네.”
‘아! 어쩐지. 수년째 무인 간의 싸움이라고는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이런 소란이 인 이유도 금룡가와 서원문 간의 싸움 때문이군.’
의원 협회라는 곳은 같은 신생 세력이란 명목으로 금룡가가 아닌 서원문과 손을 잡은 게 분명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이상한 게 하나.
“왜 우리를 데려가려는 거지? 그쪽도 의원이니 직접 마 대협을 해독하면 될 텐데?”
그 말을 뱉으면서, 순간 설마 했다.
“흠!”
그런데 힘겹게 숨을 삼키는 황 의원의 표정을 보고 바로 답이 나왔다.
설마가 사람을 잡을 줄이야!
‘그래도 근방에 가장 뛰어난 의원이란 것들이 이리도 무능할 줄이야!’
이것들이 자신들이 독을 해독하지 못하니까, 여기까지 찾아와 독을 해독한 의원을 데려가려는 거였다.
“시끄럽다! 너희는 잠자코 우릴 따라오면…….”
“불가(不可)!”
황 의원이 새빨개진 얼굴로 의원들을 강제로 끌고 가려고 하자, 산적 의원이 귀청 떨어질 목소리로 소리쳤다.
“분명 말했을 텐데! 우리가 떠나면 여기 있는 환자들을 어쩌라고! 정 중독된 환자가 걱정되면, 당장 돌아가 그자를 여기로 데려오시오!”
그의 외침은 누가 봐도 이치에 맞았다.
그러나 눈앞의 열 명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은 모양.
“멍청하긴.”
세 의원의 수장 격인 청 의원이 더는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섰다.
“굳이 권주를 마다하겠다면, 어쩔 수 없이 벌주를 내릴 수밖에. 뭣하느냐, 어서 저것들을 끌고 오지 않고.”
“넷!”
그의 손짓에 함께 온 일곱 무인이 칼을 뽑았다.
무인들의 기세에 탄력받은 청 의원이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사람이라면 무릎 대세를 읽고, 대를 위해 소가 희생할 줄 알아야 하는 법!”
대(大)? 소(小)?
무엇이 대(大)고 무엇이 소(小)인가?
진천우는 순간, 이 말이 목젖까지 차올랐지만, 그만두었다.
굳이 답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저들의 말투, 저들의 태도에서 이미 답이 나왔다.
‘자신을 위해서라면 남을 희생하는 게 당연하단 거겠지.’
저것들은 설득이 필요 없다.
피식!
진천우가 제 쪽으로 다가오는 칼을 든 무인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의원, 독인, 그다음으로는 무인 진천우가 나설 차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