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8화 : 대를 위한 소의 희생 (2) (68/210)


68화 : 대를 위한 소의 희생 (2)
2021.12.06.


진천우가 칼을 빼든 무인들을 향해 걸음을 옮기려는 그때!

휙!

그보다 먼저 몸을 날린 이가 있었다.

산적 의원!

헌데 그 몸놀림이 보통이 아니다.

‘아, 그는 내공을 지니고 있었지.’

그렇다면 무공을 쓸 줄 안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휙! 휙!

곧바로 산적과 마찬가지로 내공을 지닌 마부와 거지가 몸을 날렸다.

놀랍게도 내공이 없는 장사꾼과 점소이도 각자 무공이 아닌 다른 특기를 발휘에 싸움에 나섰다.

진천우가 얕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이러면 난 굳이 다른 이들을 지킬 필요 없이 혼자 싸우면 되겠군.’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앞으로 나서려는데, 뜬금없이 현판이 눈앞을 가렸다.

[세 번째 웨이브는 사용자의 직접 개입을 지양합니다.]

[가능하면 그간 함께한 다섯 의원을 지원하는 데 집중하세요.]

아, 그러고 보니 아직도 환자 디펜스 중이었나?

‘하지만 이 상황에서 내가 굳이 뒤로 물러날 필요는…….’

확실히 타이쿤은 그에게 싸우지 말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 뒤 현판에 새로 새겨진 글은, 이를 강요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저들의 움직임을 잘 지켜보세요. ( 0 / 1000)]

[다섯 의원에게는 각자 학수선의가 직접 전수한 의술과 접목시킨 특수한 무공이 녹아있습니다.]

‘그런 게 있다면 말이 다르지.’

진천우가 재빨리 뒷걸음질 치면서 생각했다.

손 하나 까닥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보상을 얻다니.

‘이거 완전 자동 사냥이네.’

* * *

‘대단한데!’

저도 모르게 두 눈이 치켜떠졌다.

“크윽!”

“억!”

칠 대 오.

일곱 명의 칼을 든 무인이 맨손의 다섯 의원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저런 식으로 타격하는 법이 있다니!’

일반적인 무공은 어떻게 하면 더 빠르게, 더 강하게,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는가에 집중한다.

즉, 과정에 치중했다.

하지만 다섯 의원의 움직임은 그것과 전혀 달랐다.

이들은 미리 타격할 부위를 정해놓고, 어떻게 그 부위에 일정 충격을 줄지에 집중했다.

심지어 어떤 부위는 타격이란 말이 무색하게, 단순히 손끝이 닿기만 해도 만족했다.

그러나 그들의 손이 몸에 닿는 순간 일곱 무인은 갑자기 몸이 굳거나 생전 처음 겪는 현기증을 느끼는 등 여러 이상 증상을 경험했다.

과정이 아닌 결과를 중시하는 무공.

그게 바로 저들의 무공이었다.

‘그야말로 인체의 약점이 어딘지 속속들이 꿰차고 있는 의원만이 펼칠 수 있는 무공.’

물론 이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람의 몸에는 각종 장기와 근육, 그리고 수천수만 개의 혈도가 극히 세세하고 유동적으로 작용했다.

말 그대로 몸 안에 방대한 소우주가 펼쳐진 셈.

특히 진천우는 이를 과거 의술의 신과 파이프 게임을 통해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다섯 의원은 놀랍게도 그런 소우주를 이해하고 또 다루었다.

그들 전부 명의의 반열에 오른 의원이라서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로는 각자 자신의 특기에 맞게 무공을 변형시켰기 때문이었다.

‘산적은 고지식한 성격 그대로 인체에 있는 수만 개의 혈도를 모두 외워, 요혈만 집중적으로 공략하는구나, 그에 반해 마부와 거지는 혈도가 아닌 장기의 움직임에 집중해 타격을 날린다.’

장사꾼과 점소이는 내공이 없어서 근접전을 피하고 주로 멀리서 싸움을 지켜보다, 절묘한 순간에 냄새가 고약한 약초를 던지거나 크게 소리를 내 의원 연합 무인들의 주의를 돌렸다.

그게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여도, 사람의 신체 구조상 반드시 반응할 수밖에 없을 때만 주의를 끈 탓에, 일곱 무인은 아무리 이를 경계해도 두 눈 뻔히 뜬 채 당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 정말 생각도 못 한 방법으로 의술을 무공에 접목시켰다.’

진천우가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호, 저걸 알아차린 거냐?”

“신의?”

그때 그의 옆에 학수선의가 나타났다.

지금껏 어디 있다가 이제야?

“급히 처리할 일이 있었다. 그보다 네놈은 저것들의 움직임이 이해되는 모양이지?”

“…….”

진천우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앞의 첫 번째, 두 번째 환자 웨이브에서 전반적인 의술 스킬을 전부 끌어올린 덕에, 다섯 의원의 움직임에 숨은 의미를 간신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타이쿤이 저 움직임은 모두 학수선의가 전수한 거라고 했지?’

그냥 무공에 의술을 접목시킨 게 아니다.

그는 그것을 다섯 명의 특성에 맞게 바꿨다.

이는 결코 평범한 능력이 아니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학수선의는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고수가 분명하다.’

“크헉!”

“윽!”

털썩!

그 순간, 마지막 남은 일곱 번째 무인이 의원들의 합공에 쓰러졌다.

산적 의원이 고개를 들어 맞은편의 세 의원을 바라보았다.

“다섯이서 한 사람에게 합공하다니!”

“비겁한!”

이것들이 여전히 정신을 못 차렸군.

산적이 낮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들이 처음에는 일곱이었단 걸 까먹은 모양이군.”

게다가 그들은 무인이고, 또 먼저 칼까지 뽑았다.

이 중 단 하나만 꼽아도 상대는 당장 꿀 먹은 벙어리가 될 텐데, 세 의원은 여전히 입을 다물지 않았다.

“가까이 오지 마라!”

“이걸로 끝이라 생각하느냐!”

“우리 뒤에는 서원문이 있다!”

“후우!”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런 놈은 매가 약이다.

안 그래도 자신은 의원이다.

기꺼이 이 잡것들을 위한 약을 처방하려고 마음먹은 찰나.

“이미 다 끝났네.”

“신의님?”

그제야 학수선의가 돌아왔다는 걸 눈치챘다.

그와 나머지 네 의원이 동시에 얼굴을 붉혔다.

그들 생각에 아직 자신들의 무공은 신의에게 보이기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한편, 또 한 명 얼굴을 붉히는 자가 있었다.

“신의?”

청 의원.

그가 경악한 얼굴로 학수선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때, 황 의원이 끼어들었다.

“신의라니! 어디서 그런 망발이냐! 천하에 그 같은 호칭을 쓸 수 있는 의원은 맹의 학수선의와 또…… 청 의원?”

한창 말하던 중간에 갑자기 입이 틀어막히자, 그가 놀란 얼굴로 제 입을 막은 상대를 바라보았다.

덜덜덜!

청 의원의 손이 사시나무 떨리듯 사정없이 요동쳤다.

일단 그는 근방에 가장 뛰어난 의원이 맞다.

모두 소싯적에 풍운의 뜻을 품고 유명한 의원을 찾아 가르침을 사사 받은 덕이다.

그중 과거 학수선의가 맹에서 주최하는 회합에서 수백의 의원을 모아 따로 강의한 게 있었다.

비록 반나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때까지 배운 의술이 송두리째 뒤집힐 정도의 깨달음을 받았다.

그런 경험까지 하고, 어찌 학수선의의 얼굴을 잊을까!

‘진짜다! 진짜 학수선의다!’

그런데 어째서 신의가 맹에 있지 않고, 이런 변방에?

‘아니, 그보다 방금 그가 모든 게 끝났다고 말했는데?’

불안한 예감이 엄습했다.

그런 생각은 언제나 여지없이 들어맞았다.

“방금 네놈이 뒤에 있다고 자신한 서원문.”

“그, 그게 뭐!”

적 의원이 느닷없는 지목에 목소리를 떨었다.

그 또한 청 의원의 썩어 문드러지는 표정을 보고 뭔가 눈치챘다.

“그곳의 문주는 저 혼자 살겠다고 힘없는 사람을 베고 거기다 독까지 퍼트렸다. 이에 맹은 그 죄를 물어 서원문주 마맹귀를 맹으로 압송할 거고, 서원문에도 가주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물을 거다.”

“당신이 무슨 권한으로!”

청 의원이 급히 끼어들었다.

그 정도 처벌은 맹에서 서원문을 해제시키겠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아무리 신의라 해도 한 문파의 미래를 마음대로 정할 수는 없었다.

“아, 당연히 그런 결정을 내가 내릴 리가 있나!”

그런데 학수선의가 순순히 청 의원의 반발에 동의했다.

“난 그냥 이 일을 마침 근처에 있는 백풍대주에게 알렸을 뿐이다.”

“백풍대!”

애초에 백풍대는 맹에서 이런 문제를 처리하라고 만든 단체였다.

‘하필 백풍대가 나섰다니!’

청 의원은 이제 자신이 무슨 변명을 해도 서원문을 구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십중팔구 서원문주는 맹의 뇌옥으로 끌려갈 테고, 서원문은 이번 일의 책임을 지고 해체 수순을 밟을 테지.

“그걸로 끝이라 생각하나?”

“그럼?”

학수선의가 청 의원의 머릿속을 읽었다.

그는 순간 발끈했지만, 어떤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아마 서원문과 함께 이번 사건을 일으킨 금룡가도 함께 제재를 당하겠지. 아무리 일을 저지른 게 서원문주라고 하지만, 정말 그들이 이 사태를 막으려고 했으면 막을 수 있었을 테니까.”

‘맹이 금룡가에도 제재를 가한다고?’

그 말인즉, 맹에서 이번 일을 절대 그냥 넘기지 않고 아주 철저하게 파헤치겠다는 소리인데, 그리되면 당연히 자신의 의원 연합도 무사할 리 없었다.

“그래서 그 부분 말인데…… 백풍대주가 진씨세가의 소가주에게 어디까지 파고들지 그 범위를 맡기겠다고 하더군.”

“제게 말입니까?”

뜻밖에 여기서 진천우가 지목되었다.

솔직히 백풍대의 역할은 서원문과 금룡가를 제재한 데서 끝났다.

그러나 이번 일을 마무리 한 건 어디까지나 다섯 의원과 그들을 지휘한 진천우.

만일 그들이 몰려드는 환자를 모두 치료하지 않았다면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을 터.

백풍대주는 그 공을 인정하고, 진천우에게 오늘 사고를 마무리할 권한을 내주었다.

“잠깐, 진씨세가의 소가주?”

그제야 청 의원이 진천우를 알아봤다.

“네, 오랜만입니다.”

“허어, 그 유약하던 아이가 이리도 장성할 줄은…….”

말하다 말고 아차 싶었다.

말속에 진천우가 지금껏 살아있단 게 믿기지 않는다는 감정이 드러났다.

하물며 지금은 자신이 그에게 아주 잘 보여야 할 상황이 아닌가?

“확실히 당시에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무사할 수 있던 데에는 청 의원께서 첫 발작을 멈춘 덕이 큽니다.”

“아닐세. 내 실력이 미천해 그다음부터는 손을 놓아야 했지. 내 항상 자네를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뿐이네.”

다행히 진천우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첫 발작 때 자신이 구해줬다는 것도 먼저 언급해주었다.

청 의원의 얼굴에 안도의 기색이 맺히려는 그때.

“허나 공과 사는 분명히 구분해야겠죠.”

“자네!”

불길한 느낌!

청 의원이 뭐라 말하기 전에, 그가 먼저 제 할 말을 빠르게 쏟아냈다.

“사람이라면 무릇 대세를 읽고, 대를 위해 소가 희생할 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피식!

진천우가 조금 전 청 의원이 한 말을 언급하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무엇이 대(大)고 무엇이 소(小)인가?

그는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었다.

고개를 살짝 돌리자 푸른 현판이 보였다.

[저들의 움직임을 잘 지켜보세요. ( 700 / 1000)]

아쉽게도 다섯 의원의 특별한 무공을 아직 다 지켜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여기서 일이 마무리되면 보상을 받을 수 없었다.

그건 싫다!

“청 의원, 이미 그쪽이 말했듯, 대(나)를 위해 소(댁)를 희생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아니! 아니!! 내게 이럴 순!!”

그가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지만, 이미 정해진 대세는 거스를 수 없었다.

“결정됐군.”

곧바로 맹의 등에 업은 다섯 의원과 진천우 그리고 학수선의가 의원 연합의 대문을 두드렸다.

쾅!

아니, 박살 냈다.

* * *

진천우는 의원 연합을 박살 낸 후 가문으로 돌아왔다.

그 뒤, 바로 가모인 어머니와 백풍대주, 학수선의와 상담해 오늘 일어난 일들을 마무리 지었다.

모든 걸 끝내고 처소로 돌아오니 어느새 해가 저물었다.

[저들의 움직임을 잘 지켜보세요. ( 1000 / 1000)]

‘간신히 횟수를 채웠군.’

처소로 돌아오자마자 현판을 확인했다.

드디어 타이쿤 보상을 수령할 시간.

[보상을 받기 위해, 지금 당장 표시된 장소로 이동하시오.]

“음?”

그런데 타이쿤은 바로 보상을 내놓지 않았다.

다행히 현판이 가리킨 장소는 그리 멀지 않았다.

그가 곧장 처소를 나섰다.

‘이쯤이군.’

가문 외각 담장.

슥!

그 순간 멀리서 검은 인영이 튀어나왔다.

진천우가 반사적으로 몸을 숙였다.

‘저자는?’

낯익은 얼굴.

오늘 낮까지만 해도 함께 환자를 진료한 점소이 의원이었다.

그런데 그가 왜 담장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걸까?

‘진가께서 그들에게 배정한 숙소는 이쪽이 아닐 텐데?’

아무래도 길을 잃은 건 아닌 모양.

휙!

그랬다면 저렇게 담장을 넘었을 리 없었다.

담장 너머로 넘어가는 점소이의 뒷모습을 보고, 진천우가 타이쿤의 의도를 눈치챘다.

‘쫓자!’

정답!

곧바로 그의 눈앞에 현판이 등장했다.

[특수 이벤트가 발생합니다.]

[천하제일 타이쿤의 하위 타이쿤, ‘미행’이 개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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