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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화 : 축제 (74/210)


74화 : 축제
2021.12.20.


와아아!

마을 입구에는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뛰어다녔다.

와아아!

똘망똘망한 눈, 가는 팔다리.

어딜 보나 평범한 아이로 보였지만, 단 하나가 심상치 않았다.

“대체…….”

진천우가 아이들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곧 조심스럽게 한 아이를 불렀다.

“얘야.”

“네? 왜요?”

“지금 네가 쓰고 있는 그거.”

“이거요? 이게 왜요?”

“그러니까 그게 뭐지?”

“네? 무슨 소리예요? 어른이 가면이 뭔지도 몰라요?”

“아니, 그건 아닌데…….”

진천우가 다시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자신이 정말 저게 뭔지 몰라서 물었겠는가?

‘아마 변검 가면 같은데?’

북경에 경극이 있듯, 사천에는 천극(川劇)이란 전통 공연이 있다.

이 천극의 한 단락을 맡는 변검(變臉)은 공연자가 수십 개의 가면을 그 자리에서 바꿔 쓰는데, 그 속도가 얼마나 재빠른지, 코앞에 선 관객도 가면을 어떻게 바꿔 쓰는지 보지 못할 정도였다.

그만큼 특별하고 화려하기에, 변검은 천극 공연의 꽃이란 뜻인 천극지화(川劇之花)로도 불렸다.

‘거기까지는 알겠는데…….’

그리고 지금 눈앞의 아이가 쓴 흰 바탕에 눈과 입 주위만 붉게 칠한 가면이 변검의 손오공 가면인 것도 알겠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진천우가 아무리 골똘히 머리를 싸매도, 아이들이 얼굴에 각기 다른 가면을 쓴 이유를 알지 못했다.

심지어 의문은 그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왜 이 마을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전부 가면을 쓰고 있는 거지?’

그 때문에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사람 대신 요괴 따위가 사는 곳이라 착각할 정도였다.

“아무래도 이 마을에 오늘부터 축제가 있는 모양이군.”

그 순간 학수선의가 진천우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축제?”

“그래, 오늘부터 사흘간 이 마을에 축제가 시작된다는군. 축제 기간 동안은 마을 사람과 외부인 할 것 없이 얼굴에 가면을 쓰고 돌아다니는 게 축제의 규칙이라는군.”

하루 종일 가면을 써야 하는 축제라니, 완전 금시초문이었다.

진천우가 혹시나 싶어 현석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녀석도 전혀 모르는 일이라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런데 근방에 사는 자신들도 모르는 축제를 신의는 어떻게 아는 거지?

“뭘 어떻게 알아? 저기 마을 입구에서 가면 파는 상인에게 들었지.”

그리 말하며 학수선의가 방금 상인에게 산, 붉은 바탕에 턱 주위를 검게 칠한 관우 가면을 얼굴에 썼다.

그러곤 자신들에게도 상인에게 산 다른 가면을 내밀었다.

검은 바탕에 입 부위만 흰 쥐 가면이었다.

“저 상인이 파는 가면 중에 이게 가장 싸더군.”

그러니까 자신은 가장 비싼 관우 가면을 쓰고, 남은 가장 싼 쥐 가면을 준다?

“불만이냐? 불만이면 네 돈 주고 사든지.”

“아닙니다.”

진천우가 냉큼 신의의 손에서 쥐 가면을 낚아챘다.

그런데 일단 주는 거라 받았다면, 이걸 왜 주는 거지?

“축제에 참가하실 겁니까?”

“그럴 건데?”

흐흐흐!

학수선의가 갑자기 낮게 웃기 시작했다.

“며칠간 실컷 고생했으니 조금은 쉬어야지.”

거짓말!

지난 며칠, 그는 다섯 의원과 자신이 달구지를 끌며 고생하지 않은 걸 아주 불편해했다.

그래놓고 이제 와 자신들을 쉬게 해준다?

‘뭔가 꿍꿍이가 있군.’

예상대로 신의는 잠시 주위를 살피더니, 은밀하게 진천우를 따로 불렀다.

“그래서 저것들이 조금 쉬는 동안, 네가 따로 할 일이 있다.”

학수선의가 그리 말하며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그 손을 따라가자, 거기에는 요 며칠 쉬지 않고 달구지를 끈 도적들이 보였다.

놈들은 전부 기력을 다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저것들을 버리고 와라.”

“버리라고요?”

분명 처음 저것들을 사로잡을 때, 맹까지만 달구지를 잘 끌면 풀어주기로…….

-설마 그걸 믿은 건 아니겠지?

씨익!

은밀하게 전해지는 신의의 전음에 진천우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다행이다.

사실 그는 처음부터 산적을 멀쩡히 풀어주는 데 반대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아닌 학수선의의 의견이라 잠자코 있었다.

‘그럼 그렇지!’

아무렴, 저 성격에 악당과 순순히 교섭할 리 없었다.

‘게다가 여기서 산적들을 몰래 처리해야, 다시 출발할 때 다섯 의원에게 다시 달구지를 끌라고 할 수 있을 거고.’

비록 그리되면 자신도 또 달구지를 끌어야 했지만, 그건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이미 산적을 사로잡으면서 상당한 보상을 얻었다.

어쩌면 다시 수레를 끌면 타이쿤이 새로 보상을 줄지도 몰랐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진천우가 바로 산적들에게 다가갔다.

“헉!”

“무, 무슨 일로?”

“설마 마을에서 잠시도 쉬지 않고 떠나는 건 아니겠지요?”

그가 다가가자 산적들이 기겁했다.

그 모습을 보고, 진천우가 생각에 잠겼다.

‘그냥 버리러 가면 난리가 나겠군.’

틀림없이 이놈들은 처음과 약속이 다르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게 분명했다.

그 소리를 다섯 의원이 듣게 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그래도 이미 신의의 허락이 떨어졌으니, 그들도 뭐라고 하진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굳이 귀찮은 문제를 자초해 일으킬 필요는 없었다.

진천우가 즉시 기지를 발휘했다.

슥!

그가 소매에서 작은 가죽 주머니를 꺼냈다.

짤랑!

주머니를 가볍게 흔들자, 안에서 맑디맑은 돈 소리가 울렸다.

역시 산적답게 놈들은 겁에 질린 상태에서도 돈 소리에 귀를 쫑긋거렸다.

“배고프지?”

“…….”

산적들이 쉽게 답을 하지 못했다.

괜히 답했다가 또 얻어맞을지 모르니까.

그런 녀석들을 위해 진천우가 기습적으로 말했다.

“조용히 날 따라오면 고기를 사주마.”

“고기?!”

한 녀석이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안 그래도 뱃가죽이 등에 닿을 지경.

며칠 동안 쉬지 않고 달구지를 끌었는데, 그간 먹은 건 간단한 건량이 다였다.

꼬르륵!

차라리 몰랐을 때는 그나마 견딜 수 있었는데, 고기 소리를 들자 그 즉시 배가 요동쳤다.

그 상태에서 결정타가 날아왔다.

“마침 저쪽 모퉁이 너머에서 돼지고기를 튀겨서 판다더군.”

“튀긴 돼지고기!?”

뭐든 튀긴 건 맛있는 법.

거기다 안 그래도 맛있는 고기를 튀기기까지 한다고?

물론 여전히 산적 중 상당수는 두려움에 엉덩이를 떼지 못했지만, 일부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몸을 일으켰다.

꼬륵! 꼬르륵!

그러자 남은 산적들도 소매로 입가의 군침을 닦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한 무리의 산적들이 진천우를 따라 모퉁이 너머로 사라졌다.

잠시 뒤.

“우리를 속이다니!”

“돼지고기 튀김에 눈이 돌아가지만 않았어도!”

“으아아아아!!”

진천우가 열다섯 산적의 원망을 태연자약하게 무시하며, 그들을 관청에 넘겼다.

* * *

‘지독하군!’

진천우가 산적을 관청에 넘길 때, 누군가 뒷골목에 숨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낡은 갈의 차림의 노인.

그의 머리에 쥐 가면이 삐뚤게 올려져 있었다.

‘돈 소리에 나도 모르게 지켜보다 저런 끔찍한 장면을 보게 될 줄이야.’

부르르!

노인은 산적들이 관청에 넘겨지는 광경을 보고 심하게 몸을 떨었다.

악인을 관에 넘기는 걸 보고 몸을 떤다?

그에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동류(同類).

노인은 소매치기였다.

진천우가 산적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짤랑거렸던 돈 소리는 마침 우연히 근처를 지나던 늙은 소매치기의 시선을 끌었다.

‘불쌍한 것들.’

노인은 관청으로 끌려가는 산적들을 안쓰럽게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돌렸다.

원래라면 자신은 따로 큰일을 준비하느라 한눈을 팔 때가 아니지만.

‘네놈들의 복수는 내가 대신해주마.’

아무래도 동류의 정을 생각하면, 이 같은 불상사를 그냥 넘길 수 없었다.

그러니까 절대 자신이 돈 욕심이 나서 이러는 게 아니었다.

‘아무렴!’

슥!

소매치기가 얼굴에 쥐 가면을 썼다.

지금은 축제 기간.

가면을 쓰지 않으면 되레 눈에 띄었다.

그 뒤, 그는 기척을 숨긴 채 조용히 목표의 뒤를 쫓았다.

“오!”

진천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역시 축제 기간이라 거리에는 평소의 배가 넘는 사람이 돌아다녔다.

그만큼 곳곳에 활기가 넘쳤고, 구경거리 또한 즐비했다.

“와!”

진천우가 길 한복판에 펼쳐진 작은 인형극을 보고 감탄을 연발했다.

‘뭐지?’

한편,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매치기는 의아함에 고개를 저었다.

지금 저 어리바리한 놈이 바로 조금 전에 돼지고기 튀김을 미끼로 산적들을 관청에 넘긴 그 지독한 놈이 맞나?

‘아무리 봐도 어디 시골에서 막 올라온 촌놈인데?’

정확했다.

진천우는 지난 십수 년을 집 안에서 지냈다.

그러니 이런 작은 마을 축제조차 저렇게 눈을 떼지 못하고 즐거워했다.

‘분명 신의는 이 마을에서 며칠간 머문다고 했지?’

무척이나 반가운 결정.

화르륵!

“와아!”

그 순간, 반대편에서 불을 사용한 곡예가 펼쳐졌다.

마을 아이들이 하늘로 치솟는 불길을 보고 몰렸다.

그 안에 진천우도 있었다.

소매치기는 그 뒤를 계속 쫓았다.

어느새 소매치기 가능한 간격에 들어왔지만, 그는 신중했다.

‘빈틈투성이군.’

틈이 너무 많아, 함정이 아닌가 의심되었다.

그러니 좀 더 기다린다.

화르륵! 화륵!

그때 곡예사가 또다시 화려한 불꽃을 선보였다.

와아아!

아이들이 환호를 질렀다.

진천우도 이에 질 수 없었다.

짝짝짝!

손이 아플 만큼 박수 치고, 눈을 반짝였다.

허나 아쉽게도 화염 곡예는 금세 끝났다.

아이들의 실망한 목소리가 곳곳에 울렸다.

어쩔 수 없었다.

곡예사도 마냥 계속 재주를 선보일 수는 없었다.

그가 관객에게 인사를 올렸다.

휙! 휙!

구경꾼 중 일부가 수고의 의미로 푼돈을 던졌다.

이를 본 아이들이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아무래도 어리다 보니 가진 돈이 없었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 이 아이들과 똑같이 웃던 진천우는 달랐다.

짤랑!

그가 소매에서 가죽 주머니를 꺼냈다.

‘!’

늙은 소매치기가 두 눈을 치켜떴다.

그러면서 그는 정말 은밀하게 움직였다.

휙!

진천우가 주머니에서 꺼낸 돈을 곡예사에게 던졌다.

“감사합니다!”

제법 씀씀이가 커서, 곡예사가 따로 감사 인사를 보냈다.

진천우는 기분 좋게 웃으며 가죽 주머니를 여몄다.

그다음 주머니를 다시 소매에 넣었다.

그러고 몸을 돌리려는데.

슥!

진천우의 옆으로 몇 사람이 스쳐 지나갔다.

평범한 아낙과 청년 그리고 노인.

“어?”

그런데 그들이 스쳐 지나간 뒤에 진천우가 급히 고개를 숙였다.

어느새 그의 소매 끝이 찢어졌다.

그 안에 있던 가죽 주머니도 사라졌다.

‘당했다.’

도대체 언제?!

진천우는 조금 전부터 누군가 제 뒤를 쫓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이 돈 소리를 낼 때마다 반응을 보인다는 걸 알아챘다.

그는 소매치기의 목표가 됐다는 사실을 깨닫고, 녀석이 행동을 보일 때 바로 붙잡아 관청에 넘기려 했다.

허나 놈의 솜씨가 예상을 뛰어넘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방심은 하지 않았다.

아마 역근경과 화후기식법으로 감각을 끌어올렸다면 이렇게 쉽게 당하지 않았겠지만, 상대는 자신이 미처 소매치기당한다는 낌새도 느끼기 전에 주머니를 낚아챘다.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와아!”

잠시 뒤 진천우의 입에서 감탄이 육성으로 튀어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 또 감탄하는 건 너무 늦지 않나?

전혀 늦지 않았다.

왜냐하면, 육성으로 튀어나온 감탄은 다른 것에 대한 반응이었기 때문이다.

진천우가 눈앞의 푸른 현판을 확인했다.

[소매치기에게 당했습니다.]

[스킬 ‘소매치기 - 하오문식(下午門式)’를 습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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