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 대회 난입 (1)
(76/210)
76화 : 대회 난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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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화 : 대회 난입 (1)
2021.12.25.
스륵!
진천우가 인파 속에 녹아들었다.
아이는 제 바로 뒤에 누군가가 서 있단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우웅!
은잠술에 이어 역근경까지 운용하자 오감이 극도로 예민해졌다.
꿀꺽!
얼마나 예민해졌는지, 상대의 침 삼키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였다.
쿵쾅쿵쾅!
‘긴장했군.’
아이의 심장이 듣는 이의 귀를 아프게 할 만큼 거칠게 뛰었다.
‘아무래도 소매치기를 몇 번 해보지 못한 것 같은데?’
어쩌면 처음일 수도?
그만큼 녀석은 모든 게 어설펐다.
팟!
그 순간, 아이가 중년인의 주머니를 낚아채 달아났다.
“엇!”
서툰 솜씨에 중년인은 바로 이상을 눈치챘다.
“도둑이야!”
그는 즉시 아이를 붙잡으러 몸을 날렸다.
놀랍게도 후덕한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몸놀림이 무척 재빨랐다.
덥석!
“이놈!”
“놔요!”
“놔줄 것 같으냐! 당장 훔쳐 간 주머니를 내놓거라!”
“주머니? 난 그런 거 몰라요!”
“웃기는 소리!”
중년인은 바로 아이의 몸을 뒤졌다.
거친 손길로 넝마나 다름없는 옷을 뒤집었다.
그러자 안에서 잡다한 물건이 쏟아져나왔다.
부서진 나무 막대와 돌멩이 그리고 낡은 천…….
“내놔요!”
아이가 갑자기 악을 쓰며 중년인의 손에서 낡은 천을 낚아챘다.
“이건 부모님의 유품이란 말이에요!”
“뭐?”
중년인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 조그만 게 아무리 상황이 급해도 부모님이 죽었다는 거짓말까지 해!”
“아니에요! 이건 정말로 며칠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이란 말이에요!”
“…….”
아이가 양손으로 천을 움켜쥐며 서럽게 흐느꼈다.
확실히 저 표정은 거짓이라 하기에는 너무 절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둑질을 용납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아이의 몸을 아무리 뒤져도 사라진 주머니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상하다. 분명 저 아이가 훔친 것 같았는데?’
중년인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제 소매가 갑자기 가벼워진 걸 느끼고 바로 고개를 들었다.
그때, 달아나는 아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가만 생각하면, 이 녀석이 내 주머니를 훔치는 모습은 보지 못했잖아.’
“정말로 네가 내 주머니를 훔치지 않은 거냐?”
“그러니까 난 모르는 일이라고 했잖아요!”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그럼 주머니는 도대체 어디에?
“저기…….”
그때, 누군가 중년인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아까 당신이 도둑맞았다는 주머니……. 왼쪽 소매에 있는 그거 아닙니까?”
“네?”
이게 무슨 소리지?
난 분명 약을 사고 주머니를 오른 소매에 넣었는데?
“어?”
하지만 중년인은 제 왼 소매를 확인하고 고개를 저었다.
정말 처음 보는 청년의 말대로, 왼 소매 끝에 주머니가 삐져나와 있었다.
겉에 보라색 나비를 수놓은 그것은 틀림없이 자신의 주머니였다.
“어엇?!”
중년인은 깜짝 놀라서 고개를 저었다.
그 뒤 그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눈을 감았다가 뜨더니, 곧바로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행했다.
“감사합니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주머니를 찾아준 이에 대한 감사.
그리고.
“미안했다.”
억울하게 도둑으로 몰았던 아이에게 하는 사과.
“내가 얼마나 정신이 없었으면, 왼쪽 소매에 넣은 주머니를 오른쪽 소매에 넣었다고 착각하다니…….”
그리 말하며 중년인은 서둘러 조금 전에 산 푸른 약을 삼켰다.
“후우!”
화악 하고 올라오는 약 기운이 머리를 맑게 해주었다.
그렇게 그가 잠시 약 기운에 취한 동안, 아이는 서둘러 그 자리에서 최대한 멀리 달아났다.
* * *
얼마나 달렸을까?
“후우!”
아이가 가쁜 숨을 내쉬며 걸음을 멈췄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자신은 뚱뚱한 중년인의 주머니를 훔쳐 달아났다.
그러고 바로 잡혔다.
눈앞이 깜깜했다.
필시 주머니를 훔친 대가로 얻어맞겠지.
재수 없으면 거기서 끝나지 않고 관가로 끌려갈지도 모른다.
도둑질에 대한 처벌이 뭐더라?
-놔요!
일단 되는대로 반항했다.
혹시나 상대가 손을 놓쳐 달아날 수 있기를.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는 어른의 우악스러운 손에 바로 몸에 지닌 모든 걸 드러냈다.
그중 하나가 낡은 천이었다.
‘저건 안 돼!!’
생각과 동시에 손이 앞으로 나갔다.
저건 얼마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옷깃이었다.
-어, 엇?
중년인은 크게 당황했지만, 끝까지 아이를 붙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이제 녀석도 달아나기를 포기했다.
그런데 몇 번이나 뒤져도 아이의 몸에서 주머니가 나오지 않았다.
‘왜 없지?’
아이가 누구보다 가장 크게 놀랐다.
분명 주머니를 훔치자마자 품에 숨겼는데, 그게 어디로 사라졌지?
더 놀라운 건 그 주머니가 중년인의 왼쪽 소매에서 나왔다는 점이었다.
‘저게 왜 저기로?’
그야말로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어쨌든, 덕분에 아이는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다.
녀석은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들어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꼬르륵!
긴장이 풀리자 배가 미친 듯이 고파왔다.
“큭!”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그러나 먹을 걸 살 돈이 없었다.
돈을 구하려면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너 같이 어린놈에게 시킬 일은 없다!
안타깝게도 근방에 아이가 할 만한 일거리는 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꼬박 굶자, 아이는 배고픔에 눈이 멀어 절대 해서는 안 될 행위에 손을 뻗고 말았다.
그런데 첫 시도에서 실패했다.
“하!”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어째서인지 그 표정이 밝았다.
-언제나 정직하게 살거라.
잠시 잊고 있었던 어미의 유언이 떠올랐다.
‘죄송해요!’
아무리 며칠을 굶었더라도, 어떻게 어머니의 유언을 잊었을까?
‘내가 잠시 뭐에 씌었구나.’
그래도 천만다행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첫 소매치기에 실패했다.
그래도 한번 저지른 잘못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겠지만, 적어도 소매치기를 성공했을 때보다는 마음 편히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꽈악!
아이가 얼마 남지 않은 기력을 쥐어짜, 어미의 옷깃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응?”
그런데 왜 손에서 옷깃 외에 다른 무언가가 함께 잡히는 거지?
옷깃 안에는 아무것도 없을 건데?
조심스럽게 주먹을 풀었다.
그러자 옷깃 안에 엄지손톱 크기의 작고 검은 환약이 보였다.
‘이거?’
분명 조금 전에 엄청난 인파가 몰렸던 약장수의 좌판에 올라가 있던 약이 아닌가?
“이게 왜 여기 있지?”
처음에는 소매치기에 실패한 뚱뚱한 중년인의 약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가 산 약은 검은 색이 아닌 푸른색이었다.
‘일단 돌려주러 가자.’
언제나 정직하게 살아라.
아이는 다시 한번 어미의 유언을 떠올리며 다시 약장수의 좌판으로 돌아갔다.
“응? 그 검은 약은 뭐냐? 여기서 파는 거 아니냐고? 모른다. 내가 만든 거 아냐. 아, 글쎄 난 모른다니까? 바쁘니까 애들은 가라!”
관우 가면을 쓴 약팔이가 귀찮은 듯, 약을 돌려주러 온 아이를 내쫓았다.
그 뒤, 그는 몰려든 사람들에게 구성진 가락을 쏟아냈다.
“여기 이 붉은 약 하나 먹어봐! 비 오는 날이면 쿡쿡 쑤시던 관절이 말끔해져! 또 이 푸른 약을 먹어봐! 머리 아픈 게 싹 사라져! 이 노란 약은 또 무엇이냐? 이거 한 알이면 속 쓰림, 배 아픈 게 몽땅 날아가!”
첫 구절이 끝나자, 바로 다음 구절이 이어졌다.
“이 약만 먹으면 당신도 건강해지고, 행복해지고, 웃을 수 있고, 살도 빠지고, 체구도 커지고, 예뻐지고, 잘생겨지기까지 해!!”
아이가 좌판에서 내쫓기며 생각했다.
‘나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
말도 안 된다.
자신 같은 어린아이조차 저 말이 달콤한 사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믿고 싶었다.
어쩌면 저기서 약을 사는 다른 어른들도, 사기라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속아주며 약을 사는 건지도 몰랐다.
아이도 믿고 싶었다.
자신도 건강해지고, 행복해지고, 그리고 웃고 싶었다.
꼬르륵!
일단 당장은 너무 배가 고팠다.
‘적어도 이걸 먹으면 허기가 가실지도?’
주인 없는 약.
도대체 이게 왜 어머니의 유품인 옷깃 안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배가 고파 더 깊게 생각할 수 없었다.
꿀꺽!
그 자리에서 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대로 약을 몇 번 씹었을까?
스륵!
약이 혀 위에서 녹아 사라졌다.
아쉽다.
조금 더 뭔가를 씹는 감각을 느끼고 싶었는데.
그런데 그 대신!
쿵!
“어?”
갑자기 심장이 뛰었다.
심장뿐 아니라 온몸의 근육도, 장기도 한꺼번에 날뛰었다.
‘설마 독?! 왜 내가 그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뒤늦게 생각 없이 약을 먹은 걸 후회하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슈우욱!
약발이 상상 이상으로 빨리 돌았다.
믿을 수 없게도, 그 직후 굶주림으로 언제 쓰러져도 이상할 것 없는 몸에서 정체 모를 기운이 넘쳤다.
몸도 조금 성장한 듯, 시야가 높아졌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아이는 정말 말도 안 된다며 몇 번이고 제 몸을 더듬으며 확인했지만, 그 어떤 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따로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대신 시간이 지나 조금 마음이 진정되자, 아이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검은 약은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보내준 선물이 아닐까?’
그것 외 이 이상한 일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만일 그 약이 정말 어미의 선물이라면, 자신이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언제나 정직하게 살거라.
정직하게!
‘다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비록 주위에 어린아이가 할 만한 일이 없더라도, 다시 한번 젖 먹던 힘으로 찾으면 꼭 구할 수 있으리라.
당장 몸에 넘치는 힘만 있으면, 어떤 어려운 일도 해낼 것 같았다.
바로 그때.
“너!”
고개를 돌리자, 조금 전에 자신이 주머니를 훔치려 한 뚱뚱한 중년인이 보였다.
아직도 이 주위에 있었나?
‘그런데 어째 처음 봤을 때보다 표정이 훨씬 밝아진 것 같은데?’
중년인은 푸른 약을 먹고, 지난 몇 달간 고생하던 두통이 싹 나았다.
허나 이제 두통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아이를 보고 바로 손을 내밀었다.
“그러고 보니 고아라고 했지. 그럼 따로 머물 곳도, 할 일도 없겠구나. 너만 괜찮다면, 우리 객잔에서 일하지 않겠느냐?”
“네?”
“마침 최근 객잔에 일거리가 늘었거든. 물론 품삯은 많이 줄 수는 없다. 대신 잘 곳과 삼시 세 끼는 확실히 챙겨주지.”
그게 어딘가!
“정말 제게 일을 줄 거예요?”
“그래, 안 그래도 아까 네 부모님 유품을 함부로 건드린 것 같아 미안했거든. 어떠냐? 날 따라오겠느냐?”
“감사…….”
뚝!
말을 잇다말고, 양 눈에서 투명한 구슬이 떨어졌다.
바로 소매로 눈가를 훔쳤지만, 이상하게 닦아도 닦아도 눈앞이 계속 흐렸다.
결국 아이는 눈물 훔치는 걸 멈추고, 대신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녀석은 그 자리에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 * *
‘저 아이, 운이 좋군.’
진천우는 아무 말 없이 뚱뚱한 중년인을 따라가는 아이를 지켜보았다.
조금 전 저 아이가 먹은 약은 자신이 만든 거였다.
원래라면 줄 생각이 없었다.
아무렴, 소매치기나 하는 녀석이 뭐가 예쁘다고.
하지만 그때 그의 눈에 아이는 분명히 아주 예뻤다.
예쁠 수밖에 없었다.
녀석이 훔친 주머니를 진천우가 다시 빼앗고, 그걸 중년인의 왼쪽 소매에 넣는 순간, 그의 눈앞에 푸른 현판이 등장했다.
[스킬 ‘소매 넣기’를 습득했습니다.]
[‘소매 넣기’는 ‘소매치기’와 연동되는 숨겨진 스킬입니다.]
[두 스킬은 서로 숙련도를 공유합니다.]
그러니까 소매 넣기의 숙련도가 오를수록 소매치기의 숙련도 또한 오른다는 뜻.
이 정도 스킬을 새로 얻게 해줬으니, 아무리 소매치기라 해도 보상을 안 할 수 없었다.
‘우선 딱 봐도 영양실조군. 단숨에 부족한 영양을 회복하면서 성장 촉진 효과가 있는 약이면 될까?’
그렇게 순식간에 검은 약이 만들어졌다.
게다가 그 약에는 금지에서 가져온 귀한 약재도 추가했기에 효과가 즉각적이었다.
‘설마 약을 돌려주러 다시 이곳으로 올 줄은 몰랐지만.’
그것만 봐도 생각만큼 나쁜 녀석이 아닌 듯해, 더욱더 검은 약이 아깝지 않았다.
여기에 굳이 걱정되는 게 있다면, 아이를 데려간 중년인의 정체 정도지만.
-아, 저 사람은 객잔 주인이 맞아. 어떻게 아냐고? 우리가 오늘 묵을 객잔의 주인이니까!
학수선의의 한마디에 그나마 남은 걱정마저 전부 해결되었다.
‘그럼 이제 남은 문제는…….’
진천우가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도 좌판 주위는 약을 사기 위한 인파로 가득했다.
그런데.
슥! 스륵!
그 인파 사이사이로 보이는 불편한 손길.
‘무슨 소매치기가 이리 많지?’
확실히 축제 중에는 도둑이 활개 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 수가 너무 많았다.
‘뭐, 나야 덕분에 횡재했지만.’
도적이 훔친 걸 다시 훔치는 건 절대 양심에 찔리지 않는 일.
심지어 자신은 놈들이 훔칠 걸 다시 원주인에게 돌려주니, 더더욱 양심에 찔릴 이유가 없었다.
[스킬 ‘소매치기’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스킬 ‘소매 넣기’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그리고 이왕 할 거면, 아예 도적놈의 속곳까지 몽땅 털어야 후련하지 않을까?
[스킬 ‘소매치기’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진천우는 소매치기가 눈에 보이는 족족, 놈이 숨긴 걸 남김없이 앗아갔다.
애초에 그것들은 검은 약을 준 아이와 달리 훔치는 손길이 매우 능숙했다.
절대 오늘 처음 하는 솜씨가 아니었다.
그 증거로, 녀석들에게서 턴 주머니 전부 단 하나의 예외 없이 아주 묵직했다.
호기심에 몇 개를 개봉했다.
‘돈은 당연히 있고 또…….’
“음?”
그 안에 뭔가 이상한 게 있었다.
그게 한 주머니에만 있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훔친 다섯 개 주머니 전부에 다 ‘검은 나무 조각’이 들어있었다.
‘이게 뭐지?’
진천우가 조금 의아한 시선으로 다섯 개의 나무 조각을 손 위에 올리는 순간, 눈앞에 또 푸른 현판이 나타났다.
[현재 이 마을에는 하오문이 주최하는 ‘비밀 소매치기 대회’가 개최 중입니다.]
[사용자는 하오문의 증표 다섯 개를 모두 훔쳤습니다.]
[이 순간부터 사용자는 소매치기 대회 ‘난입’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