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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화 : 대회 난입 (3) (78/210)


78화 : 대회 난입 (3)
2021.12.29.


‘경계하고 있군.’

진천우가 가판 뒤에서 상대의 기척을 살폈다.

상대는 하오문의 고수.

게다가 명백히 자신을 노리고 왔다.

‘이런데도 상대에게 은신을 들키면 안 된다?’

분명 타이쿤에 그렇게 명시돼있었다.

‘만일 보상이 변변치 않으면 가만 안 있을 거다.’

허나 진천우는 보상만큼은 걱정하지 않았다.

확실한 성과에는 명확한 보상을.

다른 건 몰라도 타이쿤은 이것만은 확실히 했다.

슥!

그가 조심스럽게 가판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저자인가?’

십 장 너머로 낡은 갈의 차림에 쥐 가면을 쓴 자가 보였다.

‘노인?’

상대의 체구와 갈의 밖으로 드러난 피부를 보고 조심스럽게 정체를 유추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집중해 보느라 그만 기척을 흘려버렸다.

휙!

쥐 가면이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아니, 고개만 돌린 게 아니라, 그는 당장 진천우가 숨은 가판 뒤로 몸을 날렸다.

“…….”

가판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착각했나?”

이때 진천우는 바로 옆 가판에 숨어있었다.

상대가 이쪽으로 달려올 때, 서둘러 근처 인파에 숨어 이동했던 것.

‘하마터면 아무것도 못 해 보고 들킬 뻔했군.’

역시나 전설의 하오문!

특히나 이 업계 특성상(?) 남의 기척을 읽는 데 민감하단 걸 간과했다.

무인과 달리 도둑에게 주위를 경계하는 일은 그야말로 목숨이 달린 일.

휙! 휙!

쥐 가면은 텅 빈 가판 주위를 계속 확인했다.

그는 조금 전 일을 착각이라 여기면서도 쉽게 경계를 풀지 않았다.

쉽사리 틈을 보이지 않는 그 모습을 보고, 진천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러면 도저히 방법이……. 어?!’

그가 갑자기 두 눈을 치켜떴다.

쥐 가면이 나타나기 직전, 타이쿤은 은신의 새로운 기능을 개방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야 한가운데에 선을 하나 뚝 그리고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 선이 느닷없이 두 개로 늘어났다.

더 정확히는 선 가운데가 아주 조금 벌리면서 하나가 둘로 나뉜 모양이 되었다.

또 두 선 사이에 아주 희미한 원이 보였다.

‘이게 뭐지?’

진천우가 숨죽이며 그것을 살폈다.

‘왠지 생김새가 눈을 게슴츠레 뜬 모양인데?’

좀 더 자세히 살피고 싶었지만, 그것은 잠시 뒤 다시 하나의 선으로 돌아갔다.

슥!

그때, 옆 가판의 쥐 가면이 움직였다.

‘어?’

쥐 가면이 경계를 멈추자마자 게슴츠레한 눈이 감겼다?

이건 우연의 일치인가?

‘그럴 리가!’

이것은 무려 타이쿤이 제시한 은신의 새 기능이었다.

딱!

진천우가 확인을 위해 가까이 있는 돌을 주워, 쥐 가면의 옆 옆 가판을 맞췄다.

“음?!”

그러자 상대가 바로 자세를 잡았다.

모르는 이가 보면 그저 느긋하게 서서 축제를 구경하는 노인으로 보이겠지만 동종업계 종사자, 게다가 독괴의 전진을 이은 진천우는 저 자세를 단박에 알아보았다.

‘언제든 소매 안의 것을 출수할 수 있게 준비한 자세다.’

쥐 가면의 소매 안에 무기가 있을지 독이 있을지 모르는 이상 함부로 다가갈 수 없었다.

하지만 당장 중요한 건, 저자가 무슨 자세를 취하냐가 아니었다.

이번에도 제 시야 한가운데의 선이 반응했는지가 더 중요했다.

‘과연!’

예상대로 감은 눈이 다시 살포시 떠졌다.

거기다 이번에는 아까 전보다 훨씬 더 눈초리가 게슴츠레했다.

와아아!

그때 마침, 마을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가판 사이를 내달렸다.

녀석들의 손에 하나같이 크고 작은 나무 막대가 들려있었다.

“나는 관우다! 내 청룡 언월도를 받아라!”

“나는 하우돈! 외눈의 도깨비다!”

아무래도 축제 가면을 쓴 채 전쟁놀이를 하는 듯했다.

딱! 따닥! 딱딱!

아이들이 가판 사이를 누비며 손에 든 막대를 휘둘렀다.

“이 말썽꾸러기들!”

“저리 가서 놀지 못해!”

결국 가판을 지키던 어른들이 내쫓았지만, 금세 다시 돌아올 게 분명했다.

이 마을에서 전쟁놀이를 할 만큼 너른 장소는 여기뿐이었다.

그 광경을 본 쥐 가면이 낮게 한숨을 쉬며 자세를 풀었다.

그 순간, 진천우가 두 눈을 치켜떴다.

‘눈이 또 감겼다.’

다시 짧은 선만 남았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이 선, 아니, ‘감은 눈’은 내 은신이 들켰는지 안 들켰는지 알려주는 거군.’

지금 그가 느끼는 감정은 경악에 가까웠다.

‘이러면 설사 내 은잠술이 쥐 가면의 탐색 능력보다 뒤떨어진다 해도 들키지 않고 다가갈 수 있다.’

만일 조금이라도 들킬 것 같으면 바로 물러났다 다시 다가가면 된다.

그야말로 사기나 다름없는 기능.

거기다 진천우가 지닌 이점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웅성웅성!

지금 이곳은 모처럼 열린 축제로 사방에 인파가 넘쳤다.

즉, 잡으려는 이보다 숨으려는 이가 유리한 곳.

슥!

진천우가 때마침 가판 옆을 지나는 인판 속으로 몸을 숨겼다.

‘아직 눈이 떠질 기미는 없다.’

쥐 가면의 고개도 반대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의안(醫眼)!’

그의 눈에 붉은 기가 맺혔다.

그 빛은 쥐 가면의 몸에 새겨진 붉은 격자가 반사돼 비치는 빛이었다.

‘근육과 혈도의 움직임으로 보아, 이쪽으로 몸을 돌릴 기미는 없다.’

감은 눈도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와아아!

이때, 조금 전에 쫓겨난 아이들이 지금 막 가판 주위를 한 바퀴 돌아 다시 돌아왔다.

‘지금!’

진천우가 바로 몸을 날렸다.

와아아아!!

“쯧!”

마을 아이들이 제 옆을 스쳐 지나가자 쥐 가면, 하오문 장로 흑월이 낮게 혀를 찼다.

‘거치적거리게!’

그가 인상을 쓰며 한 손을 들었다.

아이들이 지나치면서 일어난 흙먼지를 날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쪽 소매가 가볍……?!

‘어느새?!’

흑월이 쥐 가면 아래로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오른 소매에 난 긴 칼자국.

당연히 소매 안은 텅 비어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하오문의 장로인 자신이 소매가 텅 빌 때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다니!

‘난입자가 범상치 않은 대도라더니, 과연!’

흑월은 당혹해하면서도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확실히 이 정도면 내 제자들이 당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군.’

못해도 일급에 준하거나 어쩌면 이를 뛰어넘는 수준.

그 간격을 판단하는 기준은 마을 아이들이었다.

‘일부러 아이들이 주의를 끄는 걸 이용한 걸 보아, 아직 일급에 미치지 못하는 실력일 수도 있다.’

정말 실력에 자신이 있다면, 굳이 아이들을 사용하지 않고 제 실력으로 소매를 털었겠지.

그러나 만일 아이들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실력이면서, 그저 더욱 철저히 하기 위해 때를 기다린 거라면?

‘일급 중에서도 최상위 수준이라는 건데…….’

그야말로 하오문의 장로인 자신과 동급이란 뜻.

흑월이 곧바로 자세를 바로잡았다.

이제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자세는 풀지 않는다.

그리고 더는 방심하지 않는다.

상대가 언제 어디서 무슨 수를 쓰든 그는 그 즉시 반응해, 감히 하오문의 장로를 능멸할 죄를 물을 생각이었다.

그 기세가 옆 옆의 가판으로 몸을 숨긴 진천우에게도 느낄 정도였다.

‘열 받았군.’

그는 조용히 손에 든 소도를 갈무리했다.

길이가 한 뼘도 되지 않는 이것은 앞서 다른 소매치기를 털면서 얻은 소매치기 도구였다.

과연 하오문의 특제답게 소매를 찢고 안의 내용물을 손쉽게 꺼내는데 특화돼 있었다.

‘바꿔 말하면, 축제 인파와 이런 도구까지 사용해야 간신히 저자에게 들키지 않고 가진 걸 훔칠 수 있었다는 뜻인데…….’

파르르!

감은 눈도 어느새 게슴츠레 눈을 떴다.

다행히 상대는 이쪽을 완전히 특정하지는 못한 모양.

그럼 이대로 자리를 지켜, 눈이 다시 감기길 기다렸다 움직이는 게 상책이었다.

진천우가 가판 아래로 더욱 고개를 숙이며, 조금 전에 훔친 물건을 확인했다.

‘진(眞)’이란 글자가 새겨진 주머니.

안에 든 내용물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좀 썼네?’

비록 크게 바뀌진 않았지만, 살짝 가벼워졌다.

용서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대가를 돌려받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이대로 저자가 계속 경계한다면, 역시 곤란하겠는데.’

안 그래도 털기가 쉽지 않은 상대가 저리 나오면 달리 방도가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주 특별한 방법이 필요했다.

“소가주님?”

그때, 누군가 숨어있는 진천우를 불렀다.

“너?”

현석이었다.

그는 급히 하인의 멱살을 잡아 옆에 앉혔다.

다행히 감은 눈은 여전히 게슴츠레한 시선만 지을 뿐, 더 커지지 않았다.

“여기서 영 이상한 자세로 뭐하십니까?”

갑자기 멱살 잡혀 끌려온 현석이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 가문에서 가주, 가모님 다음으로 높으신 분이 주인 없는 가판 뒤에 홀로 쭈그리고 앉아있는 까닭이 도통 생각나지 않았다.

반대로 진천우도 그런 하인을 위아래로 훑으며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축제가 꽤 즐거웠나 보구나?”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녀석은 학수선의가 나눠준 검은 쥐 가면 외에도 녹색, 푸른색, 붉은색 가면을 더 사서 머리에 쓰고 있었고, 양손 가득 각종 먹거리와 기념품이 들려있었다.

“헤헤!”

이를 지적받자 현석이 멋쩍게 웃었다.

그래도 그는 떳떳했다.

마을 입구에서 축제 소식을 듣자마자 놀다 오겠다고 허락받았고, 여기 사용한 돈 역시 그간 제가 한 푼 두 푼 아껴 모은 월봉이었다.

마지막으로.

“여기요.”

“뭐냐?”

“소가주님도 축제를 좋아하시지 않습니까?”

현석은 제 손에 들린 먹을 것과 기념품을 앞으로 내밀었다.

인제 보니 그것들 모두 두 개씩이었다.

“이건 구운 떡이고, 이건 당과. 아, 사탕수수 줄기도 몇 개 사놨습니다.”

전부 진천우가 좋아하는 것들뿐.

진씨세가에서 가장 충성스러운 하인은, 학수선의를 돕느라 정신없이 바쁜 주인을 대신해 축제에서 진천우가 좋아할 법한 것을 전부 싹 쓸어왔다.

“또 전병도 팔길래 몇 개 챙겼는데……. 이런?!”

현석이 자랑스레 축제 전리품을 꺼내던 중 갑자기 인상을 찡그렸다.

손에 쥔 당과가 실수로 옷에 묻었다.

아무래도 조금 전, 진천우가 멱살 잡고 끌 때 묻은 게 분명했다.

“미안하구나.”

진천우도 이를 눈치채고 바로 사과했다.

그러자 녀석이 크게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이게 뭐 대수라고!”

자신이 무슨 비단옷을 챙겨입은 것도 아니고, 이 정도는 빨면 그만이다.

다만 당장 당과 겉에 바른 설탕물이 진득하게 들러붙은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이걸 사람들 앞에서 벗을 수도 없으니, 나중에 갈아입어야겠군요.”

“음?!”

현석이 곤란해하며 뭐라 하는데, 그 소리를 듣고 진천우의 뇌리에 뭔가가 번뜩였다.

‘그런 방법이 있었군.’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

심지어 이게 잘 풀리면, 저 쥐 가면이 가진 모든 걸 털어버리는 것도 가능했다.

“현석아, 아주 잘했다!”

그는 바로 적절한 순간, 아주 적절한 방법을 알려준 하인을 칭찬했다.

“네? 네??”

갑작스러운 칭찬에 영문을 몰라하는 현석에게 진천우가 따로 뭔가를 지시했다.

“엥?!”

현석이 그것을 듣고 크게 기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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