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 함정설치 (3)
(83/210)
83화 : 함정설치 (3)
(83/210)
83화 : 함정설치 (3)
2022.01.10.
꽈악!
젊은 거지가 문고리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치이익!
치이익?
왜 철컥이 아니지?
또 자신은 아직 문고리를 비틀지도 않았는데?
그리고 조금 전부터 갑자기 맛있는 냄새가 풍기기 시작…….
“끄아악!!”
거지가 얼른 문고리에서 손을 뗐다.
찌직 하고 손 가죽 일부가 문고리에 달라붙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는 바로 품에서 금창약을 꺼내, 껍질이 벗겨지고 살결이 뒤집힌 손에 들이부었다.
“헉! 헉!”
한참이 지나서야 놀란 가슴이 진정되었다.
여전히 반 넘게 익은 오른손이 쓰라렸지만, 언제 날아올지 모를 칼날을 상대하는 무인에게 이 정도 고통은 새삼스럽지 않다.
물론 그래도 더럽게 아픈 건 매한가지였다.
“미친!”
거지가 욕을 뱉으며 문고리를 노려보았다.
“묵철(墨鐵)인가?”
틀림없다.
묵철은 일반 철보다 배로 무거운 특성 외에도, 열을 가하거나 반대로 냉기를 가해도 특유의 검은 빛을 잃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만약 문고리가 일반 철이었으면 진작에 시뻘겋게 달아올랐을 거고, 자신이 아무리 방심했어도 문고리를 잡기 전에 눈치챘을 거다.
“썩을!”
치이익!
그게 아니면 지금처럼 직전에 내공을 손에 둘러 열기를 막았겠지.
철컥!
거지가 문을 열었다.
문 뒤편에 예상대로 이전에 없던 장치가 달려있었다.
화르륵!
약탕기처럼 생긴 그것은 주둥이 끝으로 계속 불을 내뿜어 문고리를 달구고 있었다.
쨍강!
화가 난 그가 바로 장치를 부쉈다.
진득!
“?!”
그 직후, 갑자기 발아래에서 느껴지는 불쾌한 감촉에 거지는 바로 몸을 날렸다.
찌지직!
곧바로 신발이 찢어졌다.
확실히 낡아빠진 신발이지만 이리 쉽게 찢어질 게 아닌데?
‘저것 때문인가?’
그는 의당 바닥을 가득 메운 정체 모를 진득한 액체가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본래 여기에는 쇠 구슬이 굴러다녀야 하는데…….’
아무래도 입구의 함정도 바뀐 것처럼 이것도 이전과 달라진 게 분명했다.
‘그럼 이 액체는 독인가?’
다행히 독은 아니었다.
저것에서 독 특유의 메케한 냄새가 나지 않았다.
젊은 거지는 혹시 몰라 개방에서 배운 독 구분법을 총동원했고, 그 결과 또한 저 액체가 독이 아니라고 나왔다.
그래도 쉽게 안심할 수 없었다.
상대가 학수선의이기 때문이었다.
당대 제일 의원인 그라면, 개방의 수법으로도 간파 못 할 독을 만들고도 남았다.
이미 입구 문고리가 묵철로 만든 게 확인되었다.
‘그 말은 처음부터 학수선의가 여기 함정을 만들었다는 뜻.’
분명 신의는 지부에 도착하자마자 의당에 들를 새도 없이 떠났는데 어떻게 새로 함정을 설치했는지 모르겠다.
거지는 함정을 설치한 이가 학수선의라 굳게 믿었다.
어디 지금껏 듣도 보도 못한 변방 가문의 후계자 따위에게 개방 출신인 자신이 당했다는 건, 그의 드높은 자존심이 인정하지 못했다.
“에잇! 이것들이 독인지 아닌지 정확히 알 수 없다면, 이렇게 해결하면 된다!”
휙!
거지가 몸을 날렸다.
개방은 천하제일의 정보집단일 뿐 아니라, 맹을 지탱하는 구파일방의 한 축.
그 명성에 걸맞게 그들은 어디에도 지지 않는 뛰어난 무공을 다수 보유했다.
그중 개방 문도에게만 전해지는 선풍신법(旋風身法)이 펼쳐졌다.
개방 거지는 단숨에 일 층 바닥을 뛰어넘어, 무려 삼 장 거리에 놓인 계단까지 한 번에 도달했다.
‘계단에는 무색무취의 기름이 발라져 있다.’
허나 이 또한 바꿨을지 모른다.
반짝!
다행히 우려와 달리 계단 중간에 여전히 기름이 발라져 있는 게 확인되었다.
선풍신법으로 단번에 바닥을 뛰어넘었으니, 기름에 더 쉽게 미끄러질 터.
그러나 애초부터 저 함정은 무공을 모르는 범인에게나 통할 법한 함정이다.
‘발바닥을 넓게 펴고 바닥을 찍어 누를 듯이 힘을 주면, 그깟 기름에 발이 미끄러질 일은 없다!’
단번에 해결책을 떠올린 거지가 힘주어 계단을 밟았다.
과연 그의 예상대로 발은 조금도 미끄러지지 않았다.
아니, 미끄러지고 싶어도 미끄러지지 않는 게 도리어 문제였다.
“끄아아아악!!”
개방 거지가 곧바로 비명을 질렀다.
그와 동시에 그의 양발이 붉게 물들었다.
쑤욱!
거지가 발을 들자, 발바닥 한가운데서 검은 못이 뽑혔다.
심지어 그냥 못이 아니었다.
묵철로 만든 못.
유난히 검은 묵철의 특성상, 가까이서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설령 내공을 지닌 무인이라도 이것을 쉽게 발견할 수 없었다.
“크흑!”
거지는 한가운데가 뻥 뚫린 오른발을 옆으로 치웠지만, 거기에도 못이 튀어나와 있었다.
발끝에 닿는 서늘한 예기에 깜짝 놀란 그는 서둘러 더 옆으로 발을 치웠다.
다행히 거기에는 못이 없었다.
그런데 급히 발을 옆으로 치우다, 그만 자세가 흐트러졌다.
하필 그가 지금 서 있는 장소는 기름이 한껏 발라진 계단 한가운데.
삐긋!
“헉!”
순간, 발이 미끄러졌고, 거지는 기겁하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 와중에 왼발이 크게 들렸고, 이대로라면 계단에서 굴러떨어진다는 생각에 그는 황급히 몸을 틀었다.
쾅!
간신히 왼발을 강하게 내리찍어, 자세를 잡았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아까보다 더 큰 비명이 터졌다.
자세를 바로잡느라 또 묵철 못을 밟았다.
묵철은 짙은 색과 무게 외에도 단단함 또한 보통 철과 비교되지 않았다.
“크흑! 학. 수. 선. 의!!”
개방 거지는 양발에 정확히 세 개의 커다란 구멍을 내며, 이 자리에 없는 이를 울부짖었다.
그는 몰랐다.
확실히 자신이 당한 함정 중 절반은 학수선의의 생각이 맞지만, 나머지 절반은 그가 전혀 신경도 쓰지 않은 이의 작품이란 사실을.
심지어 그것들을 무인의 관점에서 반드시 연달아 당하도록 계획한 건, 학수선의조차 개입하지 않은 설계라는 사실을.
마지막으로 거지가 간과한 게 또 하나 있었다.
아직 의당에 설치된 함정은 끝나지 않았다.
‘내 반드시 당신의 의술을 훔쳐내리라!’
이를 알 리 없는 개방 거지는 들끓는 화를 복수심으로 승화시켰다.
그는 지독한 고통을 간신히 참고, 고개를 숙여 계단에 박힌 묵철 못을 찾는 데 집중했다.
바로 그 순간.
휙! 휙휙!
“?!”
갑자기 위에서 불길한 소리가 세 번 연속해 울렸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들자, 첫 번째로 웬 가죽 포대가 이쪽으로 날아왔다.
아래쪽만 신경 쓰느라 알아채는 게 늦었다.
“이건 또 뭐야!”
허나 상대는 개방의 거지.
그는 서둘러 선풍신법을 사용해 가죽 포대를 피했다.
푹!
“끄아악!!”
그 대가로 발바닥에 네 번째 구멍이 생겼다.
휙!
그 직후, 두 번째 가죽 포대가 날아왔다.
“크윽!”
거지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이제 진짜 당하지 않는다.
쿵!
그는 확실히 묵철 못이 없는 계단에 발을 디뎌 두 번째 공격을 피했다.
휙!
마지막 세 번째 공격.
쿵!
이것도 아까와 같이 피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썩을!”
아니었다.
빌어먹게도 세 번째 공격은 가죽 포대가 아니었다.
계단 폭과 같은 길이의 가죽 기둥이 날아왔다.
계단에서 몸을 날릴 생각이 아닌 이상, 이건 피할 수 없었다.
결국 힘으로 쳐내야 했다.
하지만 자신은 개방의 거지!
“아예 천장을 뚫을 기세로 날려주마!”
우우웅!
개방 거지가 즉시 양손에 내공을 둘러 앞으로 뻗었다.
개방의 절정 무공인 용호풍운장(龍虎風雲掌).
그의 양손에 강맹한 기운이 피어올랐다.
그 기세가 어찌나 사나운지, 그대로 가죽 기둥을 찢어발길 듯했다.
실제로 가죽 기둥은 용호풍운장과 닿기도 전에 벌써 겉이 찢어졌다.
찌이익!
“?!”
가죽이 찢어지며 드러난 기둥의 속살.
이를 본 개방 거지가 두 눈을 치켜떴다.
“뭣?!”
가죽 아래에 왜 저토록 크고 굵고 검고 짙은 쇠기둥이 숨어있지!?
일반 철보다 배로 무겁고 또 배로 단단한 게 묵철의 특성!!
“학수선의!!”
또 거지가 애꿎은 학수선의를 울부짖었다.
쾅!
그 직후, 계단 중앙에서 엄청난 굉음이 터졌고.
휙!
옷뿐만 아니라 몸 전체가 넝마가 된 거지가 빠르게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 * *
“됐다!”
진천우가 환호를 질렀다.
그는 지금 의당 이 층에 홀로 앉아있다.
그런데 왜 갑자기 환호를 지른 걸까?
그 이유는 자신에게만 보이는 현판에 새로 갱신된 글 때문이었다.
[첫 함정인 ‘불에 달군 손잡이’가 성공했습니다.]
[‘나 혼자 맹에?!’ 달성률이 상승합니다.]
[두 번째 함정인 ‘끈적이는 점액’이 침입자의 신발을 벗기는 데 그쳤습니다.]
[‘나 혼자 맹에?!’ 달성률이 극히 미미하게 상승합니다.]
[세 번째 함정인 ‘추가된 묵철 못’이 성공했습니다.]
[두 번째 함정인 ‘끈적이는 점액’으로 미리 신발을 벗긴 탓에 효과가 배가됩니다.]
[‘나 혼자 맹에?!’ 달성률이 아주 크게 상승합니다.]
진천우는 비록 홀로 앉아있지만, 실시간으로 아래층 상황이 전해졌다.
또 현판의 글 외에도.
-끄아아아악!!
자신이 아래에 설치한 함정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이렇게 침입자가 비명으로 알려주었다.
‘이거 생각보다 재밌는데?’
그는 진심으로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함정의 연계가 제 생각대로 맞아떨어지는 상황이 상상 이상으로 즐거웠다.
쿵쿵쿵!
그때 아래층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울리자, 진천우는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이대로 학을 떼고 달아날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개방 거지는 그만큼이나 데고도 물러나지 않고 계속 함정에 몸을 날렸다.
과연 정파의 구심점이라는 구파일방의 한 축다운 굳센 기개.
[‘나 혼자 맹에?!’ 달성률이 상승합니다.]
[‘나 혼자 맹에?!’ 달성률이 미미하게 상승합니다.]
[‘나 혼자 맹에?!’ 달성률이 크게 상승합니다.]
그 덕에 남은 달성률이 가파르게 올랐다.
‘이제 끝이군.’
팟!
진천우가 품에서 소도를 꺼내 제 옆에 팽팽하게 당겨진 줄을 잘랐다.
줄 끝에 가죽 포대를 달아놨다.
[침입자가 ‘첫 번째 가죽 포대’를 피했습니다.]
‘어라?’
그걸 피했다고?
하지만.
-끄아아아악!!
[침입자는 가죽 포대를 피하는 대신, 또 묵철 못을 밟았습니다.]
[‘나 혼자 맹에?!’ 달성률이 아주 크게 상승합니다.]
‘그럼 그렇지!’
진천우가 슬며시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때 현판에서 갑자기 눈부신 빛이 쏟아졌다.
아직 가죽 포대 함정이 다 끝나지 않았다.
그것들이 다 끝날 때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음에도, 진천우는 현판의 새 글에 시선을 빼앗겼다.
[‘나 혼자 맹에?!’ 달성률이 100%가 되었습니다.]
[보상으로 의당에 숨겨진 보물의 단서가 주어집니다.]
‘벌써 달성률을 충족했다고?’
아무래도 기존의 함정을 개조한 덕에 달성률이 더 빨리 오른 모양.
‘그리고 보물? 의당에 그런 게 숨겨져 있다고?’
그는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진천우는 처음 이 층에 올라오고 크게 실망했다.
일 층에 이것저것 함정이 있던 것과 달리, 이 층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있는 거라고는 방의 절반을 차지하는 커다란 탁자와 십여 개의 의자 그리고 빈 책장뿐.
정녕 맹이 당대 제일 의원에게 제공한 처소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쾅!!
그 순간, 아래층에서 커다란 굉음이 터졌다.
‘마지막 함정인 가죽, 아니 묵철 기둥이 발동했구나!’
이렇게 큰 굉음이 터질 줄은 몰랐다.
과연 개방!
‘생각보다 훨씬 거칠게 반항했군.’
부르르!
그 여파로 이 층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허나 진동은 곧 잦아들었고, 그 뒤 아래층에서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진천우는 일단은 상황 파악을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가려 했는데.
달칵!
‘음?’
갑자기 그가 앉아있던 탁자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더니.
철컥!
그대로 탁자 상판이 저 혼자 뒤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