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 의당(醫堂)의 보물
(84/210)
84화 : 의당(醫堂)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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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화 : 의당(醫堂)의 보물
2022.01.12.
“이건?”
진천우가 놀란 얼굴로 탁자 앞에 섰다.
자신이 조금 전까지 앉아있던 탁자에 이런 장치가 있었다니.
‘아까의 진동 때문에 열린 건가?’
사실 무슨 이유로 탁자가 열렸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안의 내용물.
무려 타이쿤이 인정한 ‘의당에 숨겨진 보물’이지 않는가?
“?!”
진천우가 그것을 보고 눈을 치켜떴다.
“......”
그리고 잠시 침묵.
슥!
한참 뒤, 그가 앞으로 손을 뻗었다.
스르륵!
매끄러운 감촉.
그랬다.
이것은.
‘옷?’
흰 장포였다.
가볍게 살펴봤지만, 어디도 특별하지 않은 정말 평범한 옷.
단 그것은 이상하게 눈에 익었는데, 진천우는 뒤늦게 눈앞의 장포가 평소 학수선의가 자주 입는 옷과 똑같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탁자에 숨겨진 물건은 장포만이 아니었다.
가죽 신과 부채, 요대, 담뱃대, 하물며 갈색 대나무를 깎아 만든 침통까지.
그 안에는 평소 신의가 몸에 두르고, 따로 챙겨 다니는 물건들로 채워져 있었다.
‘뭐야, 이건?’
진천우가 그것들을 몇 번이고 다시 살폈다.
역시 평범했다.
다음으로 탁자를 확인해 보니, 탁자 상판을 여는 장치도 그냥 아래에 따로 붙은 문고리를 비틀기만 하면 열리는 아주 간단한 장치였다.
이 장치는 의당 입구의 문고리와 달리 큰 괴력도 필요 없었다.
아무리 봐도 자신이 엉뚱한 기대를 한 모양.
‘어쩐지…….’
이곳은 학수선의의 기예를 훔치기 위해 혈안이 된 맹의 한가운데였다.
신의가 밖으로 출타하면, 천하제일의 정보집단이라는 개방은 물론이고 맹의 노련한 조사관들도 눈에 불을 켜고 의당을 뒤졌을 게 분명했다.
그런 그들이 설마 이런 간단한 장치 하나 못 찾았을까?
분명 진작에 탁자 상판을 열고 내용물을 확인했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나처럼 허탈함을 느꼈겠지.’
반면 학수선의는 이곳에 돌아올 때마다 그들이 헛수고한 흔적을 발견하며 희열을 느꼈을 터.
그게 아니면, 맹의 행동에 아주 크게 실망했을지도.
“후우!”
진천우가 낮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는 바로 탁자를 덮지 않았다.
아직 포기할 수 없었다.
‘분명 타이쿤이 의당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고 했다.’
그는 누구보다 타이쿤을 신뢰하기에, 이 정도에 좌절하지 않았다.
혹시 장포 주머니와 가죽 신 안에 뭔가가 있지 않을까, 부채와 요대 뒤쪽에 무슨 글귀라도 없을까, 담뱃대와 침통 안에 숨겨진 약초나 독이 없을까 모든 걸 꼼꼼히 살폈다.
그러고도 그는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하긴 이 정도 조사는 맹에서도 이미 했겠지.’
그럼 정말 탁자 안에는 보물이 없는 걸까?
‘확실히 타이쿤은 의당에 보물이 숨어있다고는 했지만, 그게 탁자 안에 숨어있다고 하진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타이쿤이 그 사실을 알려준 순간 탁자 상판이 열린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탁자는 정답이 아닐지도?
‘뭐, 시간은 충분하니, 다시 이 방을 샅샅이 뒤지면 보물을 찾을 수 있겠지.’
진천우가 다시 각오를 다졌다.
그는 이번에는 진짜 탁자를 덮기 위해 손을 들었는데, 그 순간 탁자 상판 뒤쪽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이건?’
왜 이걸 이제야 알아봤을까?
“목패?”
상판 뒤편에 위에서부터 아이 손바닥 크기의 목패가 일렬로 박혀있었다.
일부러 목패와 똑같은 크기의 홈을 파 그 안에 박아 넣은 데다, 상판 색도 목패와 똑같은 색이라 알아보는 게 늦었다.
맨 위의 목패에는 학수선의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 아래는 산적 의원.
그 밑이 마부 의원.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까지 모두 아는 이름이었다.
학수선의와 그를 따르는 다섯 의원.
그런데 마지막 일곱 번째 목패는 뭘까?
진천우가 그것을 자세히 살피다 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저 목패에 새겨진 이도 자신이 아는 사람일 줄은 몰랐다.
아니, 그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자의 이름이 일곱 번째 목패에 새겨져 있었다.
‘장 의원, 어째서 그 망할 사기꾼의 목패가 여기 있는 거지?’
확실히 그가 학수선의 밑에서 따로 심부름꾼을 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를 신의에게 억지로 떠넘긴 건 맹이란 것까지도.
그래서 안심하고 있었건만.
‘내가 학수선의의 성정을 잘못 봤구나.’
정확히는 일부러 눈을 돌린 게 맞았다.
지금 생각하면 산적도, 마부도, 심지어 거지까지 제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이가 심부름꾼이라고 내쳤을 리 없었다.
눈앞의 탁자 상판에 제 이름이 새겨진 목패가 박혔다는 것.
이게 무슨 의미인지 진천우는 단번에 눈치챘다.
슥!
그는 바로 품에서 학수선의가 맹을 떠나기 전 자신에게 던져준 목패를 꺼냈다.
진천우는 그것을 한 손에 강하게 움켜쥐고는.
퍽!
그대로 그 손으로 사기꾼의 목패를 후려쳤다.
주먹을 뻗을 때 내공을 둘렀기에, 손에 쥔 목패는 멀쩡하고 사기꾼의 목패만 박살 났다.
워낙 상판에 홈을 정교하게 파 둔 터라, 이렇게 부수지 않으면 꺼낼 수 없었다.
게다가 그 사기꾼이 진씨세가에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학수선의 또한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자신을 의당에 들여보냈다는 건, 이 일곱 번째 목패를 어떻게 처분할지 그에게 맡긴 거나 다름없었다.
‘뭐, 혹시 다른 뜻이 있었다면 죄송합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진천우는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든 제 눈앞에 사기꾼의 흔적이 보이면 절대 넘어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달칵!
사기꾼의 목패가 박살 나고 빈 자리에 자신의 목패를 끼웠다.
이 또한 저 스스로 내린 판단.
학수선의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다.
목패는 마치 원래부터 그 자리에 박혀있던 양, 똑 들어맞았다.
진천우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눈앞의 광경을 머리에 새겼다.
그 뒤, 그는 천천히 탁자 상판을 닫았다.
철컥!
처음 탁자가 열렸을 때와 같은 소리가 나며 상판이 닫혔다.
그런데.
달칵!
“음?”
막 탁자가 닫힌 걸 확인하고 몸을 돌리려는데, 등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그건 분명 탁자가 열렸을 때 난 것과 같은 소리.
‘탁자가 고장 난 건가?’
그럴 수도 있다.
애초에 저 탁자가 열린 건 우연이었다.
일 층에서 생긴 커다란 진동이 아니었으면 열릴 일이 없었기에, 진천우가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쩌면 그 진동이 아니라, 내가 휘두른 주먹에…….’
사기꾼의 목패를 부수고 그 자리에 제 목패를 박은 건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학수선의의 물건을 부순 거라면, 이건 매우 죄송한 일이다.
“어?”
그런데 탁자는 멀쩡했다.
다시 상판이 열린 게 아니었다.
대신 다른 게 열렸다.
탁자 아래에 작은 서랍이 튀어나왔다.
이를 본 진천우가 눈을 치켜떴다.
자신이 몇 번이나 저 탁자를 살폈던가?
‘그런데 저런 서랍이 숨어있었다고?’
서랍은 그 이음새나 마감이 탁자 상판을 연 장치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교묘했다.
‘허허실실(虛虛實實)이라더니.’
허와 실이 일정하지 않다는 그 말처럼, 빈 곳처럼 보인 곳이 사실은 차 있고, 차 있는 듯 보인 곳이 실은 비어 있었다.
진천우는 그저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확실히 기껏 찾은 장치가 그저 옷장인 걸 확인한 맹의 조사원들은 허탈한 마음에 이런 서랍이 있는 줄은 상상도 못 했을 터.
진천우가 서랍을 더 살피다가, 더욱 놀랄 사실을 발견했다.
‘이 서랍은 내가 사기꾼의 목패를 부쉈기 때문에 작동한 거구나.’
이러니 맹은 이 서랍을 찾지 못할 수밖에.
아무리 그들이 다소 상식 밖으로 학수선의의 처소를 뒤졌지만, 절대로 그 증거를 남길 수는 없었다.
즉, 뒤진 뒤에는 반드시 그 흔적을 지워야 했다.
그런 이들이 목패를 부순다?
이는 있을 수 없는 일.
“하!”
진천우가 이 모든 장치를 구상한 학수선의의 깊은 심계에 마음속으로 찬사를 보냈다.
그런 뒤, 서랍 속 내용물을 확인했다.
그건 우윳빛 옥으로 만든 패였다.
패의 한쪽 면에 칠(七)이란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럼 뒷면은?
진천우가 이를 확인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 손에 옥패에 닿자, 눈앞에 현판이 나타났다.
[‘의당의 정식 소속패’를 발견했습니다.]
휙!
패의 뒷면에는 그야말로 학수선의를 나타내는 의(醫)란 글자가 크게 적혀있었다.
진천우는 단번에 옥패의 가치를 알아봤다.
앞서 그가 사기꾼의 목패를 부수고, 그 자리에 자신의 목패를 박아넣었다.
그건 진천우가 학수선의의 사람임을 다짐하는 행동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저 혼자만의 생각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옥패는 그가 학수선의의 사람이란 걸 모두에게 증명하는 무엇보다 확실한 증표였다.
그 누가 부정하든, 이 옥패가 있는 한 진천우는 맹이 인정한 의당의 일원이었다.
그만큼 중요한 패.
가히 그 가치는 보물이라 칭할 수 있었다.
“......”
진천우는 말없이 잠시 옥패를 살피더니, 그것을 소중히 제 소매에 넣었다.
그 뒤, 그는 서둘러 탁자 상판을 닫고 주위를 정리했다.
잠시 뒤 여기로 올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쾅!
정리를 모두 마친 순간, 이 층 문이 박살 났다.
“놈!”
박살 난 문 너머로 개방 거지가 모습을 보였다.
‘아니, 거지가 맞나?’
척!
놈은 문을 박차고 들어오자마자, 검은 몽둥이를 진천우에게 겨눴다.
“이게 뭔지 아느냐? 바로 타구봉(打狗棒)이다. 우리 개방 거지가 보다 효율적으로 개를 패기 위해 오랜 세월 깎아 만든, 가장 효율적인 몽둥이지. 이걸로 복날 개처럼 두들겨 맞기 싫으면 당장 네가 익힌 학수선의의 의술을 불어라!”
마치 맡겨둔 물건을 내놓으라는 듯한 언행.
그는 진천우가 설치한 함정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다 결국 기절까지 하고, 간신히 정신을 차린 뒤 다시 여기로 올라오느라 얼마 없는 심력을 모조리 소비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 의도를 숨긴다거나, 상대를 제 뜻대로 움직일 여력이 남아있을 리 없었다.
그는 이제 뒤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저 흉흉한 기세를 대놓고 드러내며 진천우를 압박했다.
부르르!
거지의 협박이 끝나자 진천우가 크게 몸을 떨었다.
놈은 당연히 제 협박이 제대로 먹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진천우가 몸을 떤 이유는 따로 있었다.
개방 거지의 협박이 끝난 순간, 눈앞의 현판에 새로운 글귀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눈앞에 거지에게 타구(打狗)의 의미를 들었습니다.]
[특수 이벤트가 발생합니다.]
[천하제일 타이쿤의 하위 타이쿤, ‘타구(打狗)의 달인’이 개방됩니다.]
그런데 현판 맨 아래에 다소 의아한 문구가 보였다.
[단, ‘타구(打狗)의 달인’은 기본적으로 둔기를 사용합니다.]
[서둘러 가장 가까이 있는 둔기를 손에 드세요.]
‘둔기?’
지금 자신이 지닌 무기는 소매 안의 예리한 소도뿐이다.
그런데 당장 둔기를 어디서 구하란 말인가?
잠시 곤란해하던 진천우는 주위를 둘러보다 뭔가를 발견하고 화색을 지었다.
“아!”
때마침 그가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딱 좋은 둔기가 놓여있었다.
심지어 진천우는 이 둔기를 사용하는 게 처음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