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 사자소생(死者蘇生)
(92/210)
92화 : 사자소생(死者蘇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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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화 : 사자소생(死者蘇生)
2022.01.31.
“으으으으……!”
되살아난 시체가 입술을 부르르 떨며 알아들을 수 없는 신음을 흘렸다.
그것만이면 좋겠지만, 시체는 양손을 뻗고 진천우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면서도 고개는 반대쪽을 향하는 모습이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이런 괴물을 상대하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겁에 질려 달아나거나.
휙!
맞서 싸우는 것뿐.
진천우가 움직이는 시체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퍽!
사후 경직 탓인지 시체의 움직임은 느렸다.
“으으으!”
허나 한 대 맞은 시체는 더욱 거친 신음을 흘리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퍽퍽!
진천우가 쉬지 않고 시체를 팼다.
“으으으!!”
퍽퍽퍽!
패고, 패고, 또 팼다.
“그, 그만……!”
놀랍게도 시체는 사람의 말까지 하기 시작했다.
만일 조금이라도 담력이 부족한 이라면 대경실색하며 달아나도 시원치 않을 판에.
“이제 정신이 드십니까?”
진천우는 되레 시체에게 질문을 건넸다.
퍽!
물론 그 와중에도 주먹은 멈추지 않았다.
“그, 그래……. 그러니까 그만…….”
“아뇨, 좀 더 패야겠습니다.”
“뭐?!”
시체가 황당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천우가 그 눈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퍽!
“컥!”
퍽퍽퍽!
그의 주먹은 그대로 십여 번 더 시체, 아니 선발대 지휘를 맡은 귀도 선립의 몸 구석구석을 강타했다.
“그만!”
그가 다시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어?”
그 순간, 선립은 자신의 몸이 달라진 걸 느꼈다.
완전히 굳어서 제대로 말도 못 했던 몸이 다시 정상적으로 움직였다.
“이제 좀 나아졌습니까?”
“설마 처음부터 내 몸을 회복시키려고 날 팬 건가?”
“그렇습니다.”
진천우가 당연하단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처음에는 죽은 줄 알았던 시체가 살아 움직이자 기겁할 정도로 놀랐지만, 그는 의원이었다.
바로 의안을 사용해 눈앞의 시체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걸 간파하고, 그 즉시 그를 치료하기 위해 주먹을 휘둘렀다.
석신으로 굳은 몸은 이렇게 외부에서 강한 충격으로 깨주지 않으면 절대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
[스킬 ‘타구(打狗)’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여기에 최근에 익힌 타구 스킬도 크게 한몫했다.
원래 타구 스킬은 둔기에 최적화돼 있지만, 맨주먹으로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크윽! 정말 치료 때문에 날 팼다고?”
하지만 눈 뜨자마자 대차게 얻어맞은 선립은 쉽사리 납득하지 못했다.
괜찮다.
원래 어려운 치료 과정을 환자에게 쉽게 이해시키는 것도 의원의 일 중 하나다.
“한시도 지체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서둘러 추궁과혈(推宮過穴)을 하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몸이 굳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니, 부디 이해 부탁드립니다.”
“추궁과혈?”
추궁과혈이란 내공과 점혈을 이용해 내상을 치료하는 방법 중 하나.
무림인인 선립이 이를 모를 리 없다.
아니, 잘 알기에 더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내 평생 주먹으로 그렇게 두드려 패는 추궁과혈은 처음 듣는데도?”
“내가 듣지 못한 건 모두 없는 것입니까?”
그 직후, 진천우가 오히려 더 큰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의 눈에서 나오는 강렬한 눈빛에 도리어 선립이 위축되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의원이 해독에 대해 말하는데, 어떻게 반박할 수 있을까?
게다가 선립은 아직 석신을 다 해독하지 못한 상태라 여전히 기력이 달렸다.
그게 아니어도 진천우의 극에 달한 달변은 아무리 뛰어난 무인이라도 한발 물러나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무엇보다 스스로 그 결과를 체감하고 있지 않습니까? 분명 조금 전까지 입술이 굳어 으어어! 밖에 못 하시던 분이 제 추궁과혈을 받은 뒤에는 제대로 말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이제 사지도 어느 정도 움직일 텐데요?”
“그, 그건…… 옳은 말이오.”
결국 선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귀도라 불릴 만큼 매서운 실력자면서 맹에서 선발대의 지휘를 맡길 만큼 뛰어난 통찰력을 지닌 무인이었다.
분명 마음 한쪽에 뭔가가 크게 걸리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스킬 ‘언변’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선립의 대답을 듣자 이제 언변 숙련도까지 올랐다.
진천우는 현판의 글귀를 보고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곧 입꼬리를 가볍게 비틀었다.
“음?”
부르르!
이를 본 선립이 갑자기 온몸을 떨었다.
‘뭐지?’
왜 십 년 전, 사파의 귀검자와 사흘 밤낮 사투를 겨룰 때 느낀 것과 똑같은 오한이 지금 드는 거지?
“그러면 곧바로 남은 추궁과혈을 실시하겠습니다.”
“뭐라!?”
“왜 놀라십니까? 아직 몸이 다 회복된 게 아니지 않습니까? 곧바로 완전히 회복시켜드리겠습니다.”
“아니, 잠깐! 이 정도 회복한 것만으로도 충분하오. 나머지는 내 따로 시간을 들여 정양하면서 회복시키겠네.”
“그건 상황이 시급하지 않을 때 얘기지요.”
“상황?”
“설마 다 잊으셨습니까?”
느닷없이 련의 무인이 쳐들어오고, 선발대가 당한 이 상황을?!
“아, 아니…….”
뒤늦게 선립도 지금이 느긋하게 몸을 정양할 때가 아님을 깨달았다.
당장 이곳은 언제 등 뒤에서 칼날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위험한 전장이 아닌가?
하긴, 애초에 진천우가 다시 주먹을 휘두르려는 이유는 지금 상황과는 전혀 상관없었다.
“자, 그럼 갑니다!”
퍽! 퍽퍽퍽!
[스킬 ‘타구(打狗)’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스킬 ‘타구(打狗)’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스킬 ‘타구(打狗)’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선립의 몸이 풀릴 때마다 타구의 숙련도가 올랐다.
지금 그에게 이것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
“으어어어……!”
덕분에 선립은 끊임없는 매타작을 당하며 처음 간신히 입술만 움직였을 때처럼, 그저 애처로운 신음만을 계속 흐느꼈다.
* * *
“자네가 학수선의 님의 사람이라고?”
“아니, 그보다 정말 의원이라고?”
“왜?!”
‘이것들이 덜 맞았나?’
귀도뿐 아니라 풍림객, 선화검, 진무고검까지 석신을 깨고 되살아났다.
당연히 이들도 원래대로 돌아오기 위해 꼭 필요한 추궁과혈을 거쳤다.
덕분에 넷 다 눈두덩이와 몸 여기저기에 푸른 멍이 새겨졌다.
“자꾸 의심해서 미안한데…….”
슥!
진천우가 소매에서 옥패를 꺼내 선립에게 내밀었다.
의당의 패는 그의 신분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넷이 바로 옥패를 알아봤다.
“이건?!”
“틀림없이 의당을 상징하는 옥패?”
“하지만…… 어째서 이 옥패가 자네 손에?”
“그보다 제 질문이 먼저입니다.”
진천우가 밀려드는 질문을 무시하고, 지금 당장 궁금한 걸 물었다.
“지금 학수선의 님은 어디 계신 겁니까?”
석신은 한번 몸이 굳은 뒤에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는 독이 아니다.
몸이 굳고 얼마 안 가 그대로 심장이 멈추는 독.
그런데 이들 넷은 되살아났다.
어떻게?
저들 중 특별히 독공이나 의술에 뛰어난 이는 없었다.
아니, 있다 해도 감히 석신을 어떻게 할 수 있을 리 없었다.여기에 진천우가 그들에게 학수선의의 행방을 물은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슥!
움찔!
그가 손을 앞으로 내밀자, 넷이 동시에 몸을 움츠렸다.
“이미 추궁과혈은 끝났습니다. 이제 더는 안 팹니다.”
“저, 정말이지?”
“그렇다니까요.”
진천우가 눈을 가늘게 떴다.
분명 이들은 지부에서 엄선한 선발대였을 텐데.
‘다 허당만 뽑았나?’
그럴 리가 없었다.
그저 타구의 의미를 담은 그의 주먹질이 석신의 효과로 옴짝달싹 못 하는 넷에게 너무 큰 충격을 줬을 뿐이다.
아무튼, 진천우가 내민 손에는 한 뼘 길이의 침 네 개가 놓여 있었다.
각각 앞의 네 사람의 심장을 찌르고 있던 침이었다.
이 침이 심장의 요혈을 찌른 덕에, 그들은 석신으로 몸이 굳고도 심장만은 굳지 않아 아주 미약하게 생명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석신에 당한 상태로 목숨을 연명할 수는 없었을 테지요. 아마 독에 중독되기 전에 신의에게 따로 석신에 저항할 수 있는 호흡법을 배우지 않았습니까?”
“맞네.”
넷 중 가장 먼저 추궁과혈을 받은 선립이 그 질문에 답했다.
“련에게 기습당해 사로잡힌 우리 앞에 학수선의께서 나타나셨지.”
역시!
학수선의는 도중에 달아난 게 아니었다.
아마도 자신과 똑같이 약을 사용해 말보다 빨리, 개방의 정보망보다 빨리 현장에 도착한 게 분명했다.
이로써 가장 중요한 문제가 하나 해결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문제가 남아있었다.
왜 그분은 이들에게 적절한 조치만 취하고, 완전히 치료하지 않은 걸까?
학수선의는 누구보다 뛰어난 의원이다.
단순히 의술만 뛰어난 게 아니라, 마음가짐 또한 나무랄 데 없는 참 의원이다.
그런 학수선의가 독에 중독된 이를 내버려 두고 갔다?
“신의께서는 우리 가슴에 침을 꽂고, 석신이란 독에 얼마간 저항할 수 있는 특별한 호흡법을 알려주신 뒤, 온몸이 굳을 때까지 쉬지 말고 달리라고 지시하셨네.”
“신의께서 알려주신 방향으로 계속 달리다가 석신에 중독되었지. 확실히 시간이 지날수록 온몸이 빠르게 굳어져 괴로웠지만, 신기하게도 그 뒤부터 련의 추격자들이 더는 쫓아오지 않더군.”
‘그건가!?’
련의 추격자는 누구보다 석신에 대해 잘 알았다.
딱히 시체를 능욕할 것이 아닌 이상, 석신에 완전히 중독된 넷을 굳이 끝까지 추적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독에 중독돼 곧 죽으리라 봤을 테니까.
그 말은 학수선의가 이들을 살리기 위해, 일부러 독에 중독시켰다는 소리였다.
진천우는 그 또한 사람을 살리는 또 다른 방법임을 깨달았다.
“그럼 선발대의 다른 사람들은?”
학수선의가 단순히 구조만 한 걸까?
물론 의원인 그가 련을 상대하면서 선발대를 구한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아직까지 그분에 대한 소식이 없는 거지?’
구조가 끝났으면 따로 전서구를 구하든 근처 마을에서 개방도를 찾든 해서 무조건 소식을 알렸을 거다.
그래야 맹에서 인력과 자원을 대차게 뜯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지부에서는 후발대가 출발한 오늘 아침까지도 신의에 대한 어떤 소식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자네는 정말 학수선의 님의 사람인가?”
“이 옥패를 믿지 못하십니까?”
“아니, 그건 아니네. 후우! 자꾸 의심해서 미안하네. 신의께서 우리에게 탈출 지시를 내리고 떠나면서 남긴 전언 때문에 그렇다네.”
“전언? 그게 뭡니까!”
그럼 그렇지!
‘이들에게 따로 전언을 남겼구나!’
진천우가 선립에서 다소 흥분한 얼굴을 들이밀며 대답을 독촉했다.
‘저 표정……. 확실히 사부의 안위를 걱정하는 제자의 얼굴이군.’
그는 그런 진천우의 표정을 보고, 자신이 들은 전언을 전하겠다고 결심했다.
사실 그가 지금껏 전언을 밝히길 망설인 이유는, 그 내용이 약간 아리송했기 때문이었다.
-달아나라.
“음?”
진천우가 전언을 듣자마자 반박했다.
“그건 전언이 아니라 당신들에게 한 말이지 않습니까?”
“아닐세. 학수선의께서는 우리 다음으로 파견될 후발대와 조우하거나 혹시나 지부에 남겨두고 온 자신의 사람이 오면 꼭 전하라고 말했다네.”
“제게 달아나라고 했다고요?”
그럼 학수선의는 저들을 구하고 자신도 곧바로 달아난 걸까?
그럴 수 있다.
애초에 그는 무인이 아니라 의원.
이런 싸움판에 낀다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었다.
다만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건, 학수선의가 절대 평범한 의원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는 오히려 싸움판을 보면 그 즉시 두 팔을 걷어붙이고 싸우는 둘을 다 때려눕힌 뒤, 바로 상처를 치료해주고, 둘에게 따로 치료비까지 뜯어낼 위인이었다.
그런데 전언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선립이 전언의 뒷부분을 말했다.
-내가 그를 막을 동안!
‘그?’
그라니?
학수선의가 막아야 할 그는 도대체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