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3화 : 만박자(萬博子) (1) (93/210)


93화 : 만박자(萬博子) (1)
2022.02.02.


휙! 휙휙!

열 명의 무인이 말보다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잘 닦인 관도도 아닌 가파른 산길을 이 속도로 오르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휙!

그 열 명을 뒤쫓는 이들.

그중 화룡도객 종일이 있었다.

그는 진천우와 헤어진 뒤 다시 달리기 시작해, 날이 저물기 직전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거기서 잠시 숨을 돌리려던 찰나, 련의 무인들이 나타났다.

-쫓아라!

그때부터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련의 무인과 후발대 모두 각 세력의 정예들.

즉, 서로 실력이 비슷했다.

‘저것들이 어떻게 따라잡힐 것 같으면서도 끝까지 잡히지 않는군.’

아니, 사실 시간이 지날수록 거리가 벌어졌다.

이쪽은 지부에서 여기까지 쉬지 않고 달려 지친 상태고, 저쪽은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였다.

“이놈!”

그때 협개 정철이 앞으로 뛰어들었다.

맹의 자랑이자 개방의 상징이기도 한 그는 후발대의 지휘를 맡은 화룡도객을 뛰어넘는 고수다.

특히 개방 출신답게 정철의 경신법은 가히 경탄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정철의 신형이 방금 막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매섭게 앞으로 뻗었다.

그와 련의 무인 사이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들었다.

물론, 이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홀로 적들에게 뛰어들다니.

자칫 협공을 당할지도 몰랐다.

허나 그거야말로 정철이 노리는바.

련의 무인들이 그를 협공하면 필연적으로 발을 멈출 수밖에 없다.

그리되면 뒤쫓는 후발대 무인들이 곧바로 놈들을 포위할 터.

련의 무인은 겨우 열 명인 데 반해, 후발대는 백풍대와 함께 그 수가 스물이 넘었다.

정철은 기꺼이 협의 일원으로 가장 위험한 역할을 자청했다.

휙!

그 순간, 련의 무인 중 가장 뒤편에서 달리던 자가 정철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그의 소매에서 검은 비수가 튀어나왔다.

휙휙!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셋.

“흥! 이깟 암기로 날 어떻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느냐!”

쾅!

정철이 곧바로 한 발로 땅을 강하게 찍더니, 허리춤에서 타구봉을 꺼내 크게 한 바퀴 휘둘렀다.

탕! 타탕! 팟!

그 자리에서 비수 둘이 박살 나고 하나가 튕겨 나갔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튕겨낸 비수가 놀랍게도 제 주인을 향해 돌아갔다.

“헙!”

비수를 날렸던 련의 무인이 급히 숨을 삼키며 팔을 휘둘렀다.

그는 두 자루의 소도를 교차해 비수를 막았다.

쾅!

그런데 타구봉으로 튕겨낸 비수에 기를 실었을 줄이야.

“컥!”

련의 무인이 내상을 입고 뒤로 물러났다.

과연 협개 정철!

그 대단한 명성은 결코 허명이 아니었다.

“됐다. 한 놈을 붙잡았다.”

곧바로 화룡도객과 후발대 무인들이 놈을 붙잡았다.

‘지독한 놈들!’

화룡도객이 낙오된 동료 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고 달아나는 련의 무인을 보며 이를 갈았다.

이제 그는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열 놈 중 한 놈을 희생 없이 사로잡았다.

이는 대단한 성과다.

화룡도객은 이 성과로 만족하고 추격을 멈출지, 아니면 남은 아홉을 계속 쫓을지 결정해야 한다.

‘녀석들은 분명 우리를 유인하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이런 추격전을 일으킬 리 없었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자신들이 이곳에 막 도착한 순간을 노려 기습하는 게 더 큰 전략적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친 우리를 바로 공격하지 않았다는 건, 틀림없이 따로 숨기는 게 있다는 뜻이겠지?’

화룡도객은 이만큼이나 눈치채고도 일부러 련의 무인들을 뒤쫓았다.

설령 놈들이 함정을 숨겼다 해도, 자신들이 수적으로 큰 우위에 있다는 걸 놓칠 수 없었다.

게다가 련이 무언가를 숨긴 것처럼 자신도 비장의 수를 숨기고 있었다.

‘설령 네놈들이 독을 사용한다고 해도, 우리는 이미 그 해독법을 알고 있다.’

후발대와 백풍대 전원은 진천우가 알려준 석신의 해독법과 몇 가지 종류의 환단을 골고루 지급 받았다.

학수선의의 놀라운 의술과 지부에서 보관한 온갖 귀한 약재를 모두 사용한 환단은 가히 비장의 한 수로 취급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게다가 후발대가 숨긴 비장의 수는 하나가 아니었다.

-만일 화급을 요하는 사태가 일어난다면…….

화룡도객은 후발대의 지휘를 임명받는 자리에서 지부장인 제갈세형에게 따로 받은 것이 있었다.

슥!

그의 시선이 잠시 제 가슴팍에 머물렀다.

살짝 드러난 앞섶 아래로 각각 흰색과 검은색의 가늘고 긴 죽통 두 개가 보였다.

제갈세가의 암기(暗器).

본래 이 방면에서 최고는 사천당가지만, 지자(智者)들이 많기로 유명한 제갈세가 역시 뛰어난 암기 제조술을 갖췄다.

그러니 이 죽통들은 진천우의 환단 못지않게 상황을 역전시킬 놀라운 한 수가 될 게 분명했다.

‘결국, 누가 더 많은 걸 숨겼냐의 싸움이군.’

화룡도객이 죽통을 언제든 꺼낼 수 있게 살짝 위로 꺼내며 결정을 내렸다.

“이대로 계속 놈들을 쫓는다.”

수적으로 우리가 더 많다.

거기다 이쪽에는 백풍대주와 정철 그리고 자신까지 있으니 뛰어난 고수도 이쪽이 위.

딱 하나 걸리는 건,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린 탓에 자신들이 다소 많이 지쳤다는 건데.

“모두 지금 당장 검은 환단을 복용해라.”

“존명!”

명이 떨어지자, 후발대 무인이 즉시 검은 환단을 삼켰다.

꿀꺽!

환단을 먹자 곧바로 피로가 사라지고 온몸에 힘이 넘쳤다.

‘만일 놈들이 우리를 유인하며 뭔가 숨기는 게 있다면.’

그것을 쓰기 전에 먼저 다 찍어 눌러주겠다!

“전원, 젖먹던 힘까지 내서 놈들을 쫓아라!”

“존명!”

팟!

그 직후, 후발대와 백풍대 전원이 앞서가는 련의 무인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처음 놈들을 뒤쫓을 때보다 훨씬 빨랐다.

그에 반해 련의 무인들은 이제 지치기 시작했는지 처음보다 속도가 많이 줄었다.

둘 사이 거리가 눈에 띄게 좁혀지자, 녀석들도 놀란 듯 두 눈을 치켜떴다.

‘됐다.’

그 표정을 보고 화룡도객이 제대로 틈을 찔렀다고 확신하는 순간!

“모두 발아래를 조심하시오!”

“물러나!”

갑자기 정철과 백풍대주가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발아래?

휙!

그 순간, 땅이 갈라지고 칼날이 튀어나왔다.

‘이거구나!’

날이 시퍼런 칼날을 본 순간, 화룡도객은 드디어 놈들이 숨겨놓은 한 수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이것들이 이 땅에 먼저 들어와 함정을 파두었구나.’

그것도 보통 함정이 아니다.

자신이 아무리 승리를 확신했다지만, 주위를 살피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저 한눈에 함정을 알아챈 백풍대주와 정철의 눈썰미가 대단한 것.

무림인의 감각으로도 쉽사리 찾을 수 없는 함정이라니.

놈들 중 뛰어난 장인이 있는 게 틀림없다.

‘허나 이따위 함정!’

“차앗!”

화룡도객이 바로 애도를 휘둘렀다.

탕타당!

그 즉시 사방에 불똥이 튀었다.

바닥에 설치된 칼날은 모두 반파되거나 날이 나간 채 다시 땅으로 흩어졌다.

그는 함정에 아무도 다치지 않은 걸 확인하자마자 즉시 새 지시를 내렸다.

“붉은 환단을 먹어라!”

붉은 환단은 시야를 몇 배로 밝혀준다.

꿀꺽!

예상대로 환단을 삼키자 앞서 보지 못한 몇 가지 이질감이 단번에 느껴졌다.

함정이 있다는 걸 알아채자마자 바로 적절한 판단을 내리는 거야말로 화룡도객이 후발대 지휘를 맡을 자격이 있다는 증거.

이들은 곧바로 련의 무인들을 다시 쫓았다.

함정 때문에 거리가 벌어졌지만, 그것도 순식간에 따라잡았다.

붉은 환단 덕분에 놈들이 흘리는 비지땀이 선명히 보였다.

굉장히 당황한 표정도 놓치지 않았다.

‘만일 저게 연기라면.’

저것들은 무인보다는 저잣거리에서 공연하는 게 훨씬 적성에 맞으리라.

“……!”

그런데 놈들이 갑자기 앞에 있는 무언가를 보고, 일그러진 표정을 풀었다.

“대장!”

후발대 중 누군가도 그것을 보고 화룡도객에게 경고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이 상황을 예상했다.

함정이 등장한 순간부터, 아니 그 이전 진천우가 석신이라는 독에 대해 알려준 뒤부터 화룡도객은 바로 이 순간을 염두에 두었다.

“나왔구나!”

그가 자신이 펼칠 수 있는 가장 빠른 경신법을 펼쳤다.

우우웅!

그 순간, 갑자기 커다란 진동과 함께 시야가 일그러졌다.

땅이 흔들리고 하늘이 무너졌다.

화룡도객이 아는 바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현상을 일으키는 건 하나뿐이다.

진법(陳法).

감히 인간의 힘으로 천지 만물의 조화를 무너트리거나 혹은 더욱 강하게 이어주는 신비한 공부.

독, 함정에 이어 진법까지 튀어나왔다.

아무리 천하가 넓다고 한들, 이 모든 걸 홀로 다루는 이는 손에 꼽았다.

화룡도객이 고개를 똑바로 들고 붉은 피풍의를 두른 문약해 보이는 남자를 향해 소리쳤다.

“만박자(萬博子)!!”

그는 즉시 품에 숨긴 두 개의 죽통 중 검은 죽통을 꺼냈다.

* * *

‘그가 누굴까?’

진천우가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생각에 빠졌다.

‘도대체 누구길래 신의께서 환자조차 내팽개치고 막으러 간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이가 없었다.

‘참! 굳이 내가 떠올릴 필요는 없지.’

진천우가 방금 막 자신이 석신으로부터 구해준 선발대 무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들 모두 지부에서 엄선한 무인인 만큼, 여러 분야에 다양한 지식을 알고 있을 게 분명했다.

우우웅!

그런데 진천우가 막 입을 떼려는 순간, 저 멀리서 커다란 진동이 느껴졌다.

이 느낌, 낯설면서도 어딘가 익숙하다.

‘천옥산의 결계?’

아니, 그것과 비슷하면서도 많이 다르다.

‘이런 기운이 갑자기 느껴진다는 건?’

“근처에 진법이 펼쳐졌군.”

귀도, 선립이 진천우와 같은 답을 내놓았다.

그리고 그가 물었다.

“혹 자네와 함께한 후발대에 진법을 다루는 자가 있었나?”

“없었습니다.”

“이런!”

“그렇담 역시 련에서…….”

선립뿐 아니라 다른 선발대 무인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때, 진천우는 무언가를 결정해야 했다.

-달아나라.

학수선의가 남긴 전언.

이를 따라 여기서 도망쳐야 할까?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래, 신의 님의 말씀을 따라야지.’

슥!

그가 걸음을 옮겼다.

조금 전, 커다란 진동을 느낀 방향으로.

-달아나라!

학수선의는 분명 자신에게 그리 전언을 남겼다.

그러나 진천우는 신의의 전언을 따르기 위해 오히려 진법을 향해 나아가기로 결정했다.

어째서?

신의는 선발대 무인들을 구하며 이리 전언했다.

-학수선의께서는 우리 다음으로 파견될 후발대와 조우하거나 혹시나 지부에 남겨두고 온 자신의 사람이 오면 꼭 전하라고 말했다네.

즉, 그의 전언은 진천우에게만 남긴 게 아니다.

자신뿐 아니라 후발대 무인들에게도 똑같이 달아나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까 지금 진법 안에 있을 그들과 함께 달아나야지!’

사실 애초부터 학수선의의 전언을 따르겠다는 건 핑계였다.

그는 자신의 의지로 신의와 진법에 갇힌 이들을 구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팟!

그 순간, 진천우의 마음에 호응하듯 눈앞에 타이쿤이 나타나 눈부신 빛을 사방에 흩뿌렸다.

……그런데 그 빛이 불길한 붉은 색이었다.

게다가 내용까지.

[제한 시간 : 이각(二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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