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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화 : 진짜 예술! (95/210)


95화 : 진짜 예술!
2022.02.07.


‘레드 존?’

붉은 지역?

타이쿤이 번역해주었지만, 그 뜻이 바로 이해되지 않았다.

사실 번역은 필요 없었다.

진천우는 굳이 번역이 없어도 지금부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았다.

왜냐하면 앞으로 일어날 일은 전부 자신이 꾸민 일이니까.

“달아나세요!”

“달아나라니?”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는 화룡도객이 뭐라 대꾸할 틈도 없이 몸을 밀쳤다.

휙!

밀리면서 한 발 물러난 자리에 갑자기 창이 솟구쳤다.

만일 이걸 못 피했으면 발에 커다란 구멍이 생길 뻔했다.

‘어떻게?!’

위기를 넘긴 것도 넘긴 거지만, 종일이 가장 크게 놀란 건 따로 있었다.

자신은 조금 전에 진천우의 환단을 삼켰다.

그래서 기운이 넘쳤고, 눈도 밝아졌다.

‘그런데도 내 발아래의 함정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지금부터의 함정은 눈이 조금 밝아진 거로는 알아챌 수 없습니다.”

“어째선가?”

“전부 저 때문입니다.”

“뭐?!”

-지금부터 모두 제 지시대로만 따라주십시오.

진천우는 진법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선발대 네 무인을 철저하게 부렸다.

이들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다른 이도 아닌, 은인의 말이기에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현석이 너도 마찬가지다.

-제가 소가주님의 지시를 잘 따를 수 있을지…….

-암! 누구도 너보다 잘할 수 없고, 오직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시킬 거니 걱정 말거라!

진천우가 곧바로 현석에게 지시를 내렸다.

-네?

-불만이냐?

-그럴 리가요!

현석이 즉시 고개를 돌렸다.

-지금 즉시 네 분은 저희를 업고 이동하랍니다.

현석에게 내린 지시는 아주 간단했다.

그냥 자신의 말을 들은 후, 네 무인에게 그대로 전해줄 것.

너무 간단해서 굳이 자신이 필요한가 싶었지만, 이미 말했듯 이건 현석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이는커녕, 현석이 아니면 누구도 못 할 지시였다.

-거기서 오른쪽으로 트시랍니다.

-여기서 쭉 직진!

-그대로 저 앞의 나무를 타고 올라주십시오!

물론 이 정도는 그냥 진천우가 말해도 된다.

하지만 중간에 현석을 끼면, 상황이 완전 달라졌다.

[스킬 ‘조련’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조련사의 직업을 가진 현석.

녀석은 진천우와 달리 아주 사소한 일에도 조련 스킬 숙련도가 올랐다.

그렇게 오른 숙련도는 전부 진천우와 공유되었다.

-왼쪽!

-직진!

-멈춰!

스킬 숙련도가 오르자, 이제 현석은 길게 말할 필요 없이 짧은 단어로도 네 무인을 조련했다.

놀랍게도 이들 넷은 현석의 지시에 전혀 불만을 느끼지 않았다.

조련 스킬의 효과로 현석이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저희는 여기까지 최단 거리로 올라왔습니다.”

“거기까진 알아듣겠네. 그런데 왜 갑자기 주위의 함정과 독, 진법이 요동치고 있는 건가?”

“아, 그건 제가 시간이 부족해서, 여기까지 오면서 만난 함정과 독, 진법을 전부 어설프게 손댔기 때문입니다.”

진천우가 진법에 발을 들였을 때, 남은 제한 시간은 불과 일 각이었다.

겨우 차 한 잔 마실 동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척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냥 진법을 폭주시켰습니다.”

“뭐?”

별수 있나?

시간은 촉박하고, 그렇다고 자신이 진법에 깊은 조예가 있는 것도 아니다.

거기다 진천우는 선발대 무인에게 이 진법을 만든 이가 강호에서 두뇌로 손꼽히는 만박자란 것도 들었다.

그런 자를 상대로 진법의 주도권을 두고 정면 승부를 펼치는 건 바보짓이다.

“어차피 내가 못 가질 바에는 그냥 판을 뒤집어야죠.”

단, 그냥 뒤집는 거로 끝내지 않는다.

상대가 정말 노련한 진법가라면, 판이 뒤집힌 상황에서도 나름 승기를 찾을 테니까.

다행히 진천우에게는 부족한 진법 실력을 지탱해줄 다른 여러 타이쿤 스킬이 있었다.

[스킬 ‘은폐’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먼저 은폐 스킬로 기존의 함정을 더욱 찾기 힘들게 만드는 것 외에도.

[스킬 ‘함정설치’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스킬 ‘독공’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아예 새 함정과 독을 군데군데 뿌려버렸다.

그것들 전부 폭주한 진법에 의해 제멋대로 이동해 버렸다.

이제 레드 존 안에서는 언제 어떤 함정과 독이 터질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진천우는 물론이고, 이 진법을 만든 만박자조차!

“…….”

이때, 만박자는 처음 섰던 자리에 마치 뿌리를 박은 듯 꿈쩍하지 않았다.

‘저자가 만박자?’

진천우는 도망치는 와중에도 그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쾅!

그 순간 둘 사이에 함정이 터졌고, 그로 인해 발생한 흙먼지가 시야를 가렸다.

“됐습니다. 어서 가요!”

진천우는 즉시 만박자에게 시선을 거두고, 화룡도객과 함께 그 자리를 벗어났다.

쾅쾅쾅!

사방에서 폭음이 터졌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죄, 죄송합니다.”

자신의 등 뒤에 현석이 업혀있는 한, 절대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제가 어찌 감히 소가주님께 업힐 수 있습니까.

처음에 그는 진천우에게 업히는 걸 거부했지만, 시끄럽다는 한마디로 입을 다물게 했다.

진천우는 선, 후발대, 심지어 백풍대주와 정철과 비교하더라도, 그중 가장 뛰어난 신법을 익혔다.

지금처럼 언제 어디서 독과 함정이 날아올지 모르는 사지에서 현석을 완벽히 지킬 수 있는 건 자신뿐이었다.

게다가 그가 현석을 직접 업은 이유는, 단순히 녀석을 아끼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소리쳐라.”

“네?”

“지금 당장 네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전부 여기 모이라고 소리쳐라.”

“어째서?”

“어허, 어서!”

“아, 알겠습니다.”

진천우가 현석에게 정말 뜬금없는 명령을 내렸다.

녀석은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하늘같은 소가주의 명이라 곧장 따랐다.

“백풍대주님과 백풍대는 당장 이리로 오십시오!”

“더 크게!”

“정철 대협과 후발대 무인들도 이리 오십시오!!”

“더 크게!!”

“아무튼, 전부 다 이리 오란 말입니다!!!”

설마 단순히 현석의 목소리가 커서 이런 걸 시켰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았다.

소리치고 얼마 안 가, 정말 사람들이 이쪽으로 몰렸다.

“날 불렀나?”

맨 처음 백풍대주가 수하들을 이끌고 나타났고.

“아니, 어째서 진 공자가 여기에!?”

협개도 함께 하던 후발대 무인들과 같이 나타났다.

[스킬 ‘조련’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스킬 ‘조련’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스킬 ‘조련’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

그때마다 현석의 조련 스킬이 아주 크게 올랐다.

앞서 현석은 마차에서 환단을 나눠주며, 이들을 상대로 조련 스킬을 올렸다.

즉, 여기 모인 이들은 어느 정도 그에게 조련된 상태였다.

진천우는 처음부터 이런 일이 일어날 걸 예상하고, 겁많은 현석을 데려왔던 거였다.

“잘했다. 그럼 이후에도 계속 내 지시를 네가 크게 외치거라.”

“알겠습니다.”

“우선 위로 올라간다.”

“넷!”

달아나려면 당연히 아래로 내려가야 하건만, 진천우는 엉뚱하게 위를 가리켰다.

“위로!”

하지만 현석은 그 지시에 조금도 의문을 가지지 않았고.

“알겠네.”

“위란 말이지!”

함께 하던 십수 명의 무인들 역시 주저 없이 지시를 따랐다.

[스킬 ‘조련’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여기에는 확실히 현석의 조련 스킬이 큰 영향을 미쳤지만.

‘진 공자가 위라고 하면.’

‘틀림없이 무슨 이유가 있겠지.’

그것과 동등하게 이들은 지금껏 보아온 진천우의 능력을 믿었다.

쾅쾅쾅! 휙! 번쩍!!

여전히 곳곳에서 함정과 독이 날아왔다.

쾅! 콰직!

“오른편은 내가 맡겠소.”

“그럼 왼편은 내가!”

“후방은 내가 맡기시오.”

그러나 백풍대주와 정철, 거기다 화룡도객까지 나서서 지켜주니, 후발대의 피해는 그야말로 미미했다.

여기에 진천우 또한 남몰래 한몫 거들었다.

‘오른쪽에 진법의 기운이 약하다.’

“오른쪽!”

그는 타이쿤으로 깨우친 감각을 총동원해 진법의 기운이 약한 방향을 찾아 사람들을 이끌었다.

덕분에 시간이 흐를수록 독과 함정이 터지는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팟!

마침내 그들은 지긋지긋한 진법에서 빠져나왔다.

콰콰콰!

“여긴?”

콰르르릉!!

간신히 빠져나온 그곳은 사방이 물소리로 시끄러운 절벽 위였다.

백풍대주가 아래를 살피며 말했다.

“아래에 큰 계곡이 있군. 하지만 그리 높은 산도 아닌데 저리 물살이 심하다니…….”

“아무래도 진법의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런가? 아무튼, 이 정도 경사에 물살도 저리 거칠다면, 절벽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는 건 무리겠어. 아무래도 다른 길을 찾아야 할 것 같은데……!?”

그가 말하다 말고 갑자기 고개를 젖혔다.

백풍대주뿐 아니라 후발대 무인들 전원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우우웅!

방금 막 빠져나온 진법이 다시 진동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진법은 그대로 귀에 거슬리는 불길한 소리를 계속 내다가 갑자기 뚝 끊기더니.

스륵!

안에서 사람을 뱉어냈다.

“저것들이!”

“아직 살아있다니!”

후발대 무인들이 자신들도 간신히 빠져나온 레드 존에서 련의 무인들이 무사히 나오는 걸 보고 두 눈을 치켜떴다.

이제 네 명만 남은 련의 무인들이 차례로 진법을 빠져나오고, 마지막으로 붉은 피풍의의 남자가 걸어 나왔다.

만박자.

그 또한 멀쩡한 모습으로 진법을 빠져나왔다.

아니, 그는 단순히 진법에서 도망쳐 나온 게 아니었다.

“제법 재밌는 짓을 저질렀더군요. 덕분에 진법을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정중하지만,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목소리.

그런데 겨우 진땀?

다 같이 죽자고 판을 엎은 걸, 단지 재밌는 짓이라 치부해?

“그럼 절 귀찮게 한 대가를 받겠습니다.”

만박자가 여전히 차가운 목소리로 가냘픈 손을 들었다.

우우웅!

조금 전, 그는 엎어진 진법을 진정시켰다고 했다.

그 말은 다시 진법의 조종권을 손에 넣었다는 뜻.

그는 아직 진법 안에 남는 함정과 독을 이쪽으로 끌어왔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 수가 적어 필요한 만큼 모으는 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감히 내 예술적인 작품을 망친 값은 아주 비쌀 겁니다.”

그래도 그 정도는 저들이 겁에 질리는 모습을 보는 거로 참을 수 있었다.

스윽!

헌데 진천우는 겁에 질리기는커녕, 대담하게 등까지 돌린 채 바닥에 무언가를 그렸다.

“음?”

만박자가 한눈에 그것을 알아보았다.

‘진법?’

그러나 기껏해야 가까이 있는 함정 하나 발동시키는 게 다인 기초 중의 기초 진법이다.

‘설마 저따위 허접한 진법으로 날 상대할 생각은 아니겠지?’

물론 만박자의 눈은 정확했다.

그런데 지금 진천우가 발동하려는 한 개의 함정 주위로 수십 개의 폭탄과 함정이 몰려있다면?

우우웅!

“엇?!”

만박자도 진천우가 진법을 가동시키는 순간, 그것을 알아챘다.

“도대체 어떻게!?”

그는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다.

아무리 만박자라도, 설마 진천우에게 진법을 속속들이 꿰뚫는 눈과 제 뜻대로 조정 가능한 신물이 동시에 있을 거라고는 예상할 수 없을 테니까.

만박자가 진법 안에 남은 함정과 독이 얼마 없다고 느낀 것도, 진천우가 여기로 오는 눈에 보이는 족족 함정과 독을 뜯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모두 뭉쳐 방금 그린 기초 진법과 연결시켰다.

씨익!

진천우가 입꼬리를 짙게 비틀며, 조금 전 만박자의 말을 비꼬았다.

“당신이 만든 진법이 예술이라고?”

내가 진짜 예술을 보여주지.

“……!”

만박자가 뭐라 말하려 입을 열었지만, 진천우는 조금도 기다리지 않고 진법을 가동시켰다.

콰콰쾅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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