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 엇갈린 운명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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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화 : 엇갈린 운명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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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화 : 엇갈린 운명 (3)
2022.02.19.
“신의는 그만 가보시오.”
“네?”
“가라고.”
사내가 대수롭지 않게 학수선의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그러고 바로 몸을 돌렸다.
“방금 말한 환자는?”
“이제 더는 환자가 아니게 됐소.”
“무슨?”
“안 갈 거요?”
두 번째 축객령.
이제 정말 가야 했다.
사내는 같은 말을 세 번이나 하지 않는다.
그는 그런 사람이니까.
같은 이유로 사내는 거짓도 말하지 않았다.
이제 더는 환자가 아니다.
‘정말 환자가 없다면…….’
확실히 학수선의가 여기에 계속 머물 이유는 없었다.
“그럼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그래, 약조는 지키시오.”
앞으로 맹과 관계를 끊으라는 약조.
“알겠습니다.”
신의는 수긍했고,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렇게 학수선의는 동굴 안의 남자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 * *
우우웅!
“허, 거참!”
사내가 눈앞의 광경을 보며 혀를 찼다.
‘어째서 신물이 저놈과 반응한 거지?’
신물(神物).
정확히는 자신이 련을 나와야 했던 가장 주요한 이유.
그는 약간의 수고 끝에 신물을 손에 넣었고, 이제 다시 련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그 전에 가볍게 낚시나 즐기려다 뜻밖에 물고기 대신 사람을 낚았고, 그 뒤 학수선의를 만났다.
그런데 어째서 중간에 신물을 날치기당한 걸까?
“황당한 노릇이군.”
혹시나 이런 일이 있을까 싶어 일부러 신물 옆에 그럴듯해 보이는 검을 함께 두었다.
개방이나 하오문 그 외 어설픈 잡것들이 수작을 부릴 때를 대비한 거였다.
헌데 저놈은 일부러 눈앞에 떡하니 둔 고색창연한 검을 놔두고 정확히 신물만 가져가려 했다.
더 황당한 건, 신물이 이놈에게 반응했다는 거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너무 오래 걸리는군.”
놈이 신물을 손에 넣고 벌써 사흘이나 지났다.
그동안 녀석은 용케도 멀쩡했다.
신물의 붉은 기운이 온몸을 감싼 덕분일까?
상처가 상당히 호전되었다.
‘그래도 이건 내가 아는 신물의 반응과 너무 다른데?’
오래된 문헌에 따르면, 신물은 정당한 주인에게는 그 힘을 나눠주지만, 반대로 허락받지 않은 이가 손을 내밀면 아주 무서운 대가를 치른다고 했다.
예를 들어 뛰어난 무공고수도 그 자리에서 다섯 말의 피를 토하고 주화입마에 걸린다든가, 오른쪽 팔과 왼쪽 다리가 동시에 날아가거나, 내장 일부가 없어지거나, 눈이 멀거나 하는 정당한 대가 말이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대가를 치르는 데 사흘 넘게 걸린다는 말은 없었다.
‘귀찮군.’
슬슬 사내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다.
사실 자신이 사흘이나 한곳에 머문 것도 처음 있는 일.
이 이상 기다려 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였다.
‘죽일까?’
어쨌든 신물은 가져가야 한다.
그런데 저리 온 사방에 발광하고 있으면, 쓸데없는 이목을 받게 된다.
당연히 이목에는 귀찮은 일이 따라올 터.
물론 사내에게는 그 모든 귀찮은 일을 해결할 능력이 있었지만.
‘그걸 굳이 내가 처리하는 것보단 그냥 강제로 녀석과 천을 뜯어내는 게 낫겠지.’
허락받지 않는 자의 손길이 닿으면 정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오른팔과 왼쪽 다리? 내장의 일부? 눈?
하!
“가져갈 수 있으면 가져가 보라지.”
확실히 처음에 저 천을 붙잡았을 때, 영문 모를 기운이 느껴지긴 했다.
그러나 사내는 그대로 천을 땅에 패대기쳐서 쓸데없는 기운을 잠재웠다.
만약 그걸로 안 됐다면, 그 자리에서 천을 찢거나 불태웠을 것이다.
신물은 무슨!
자기 뜻대로 쓸 수 없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와 다를 바 없었다.
쓰레기는 미련 없이 부숴야 한다.
슥!
사내가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우우웅!
붉은 천이 여전히 흉흉한 기운을 사방에 뿜었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계속 손을 뻗었다.
아마 저 손이 붉은 기운에 닿는 순간, 천과 사람은 속절없이 찢어질 게 자명했다.
그런데 손이 기운에 닿기 직전!
우우우웅!!!!
갑자기 천에서 지금껏 본 적 없는 가장 크고 섬뜩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더니, 그대로 그 기운 전부가 기절한 남자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응?”
이를 지켜보던 사내가 살짝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설마 자신이 손을 뻗은 까닭에 붉은 천이 급히 기운을 갈무리한 건 아니겠지?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손을 뻗는 건데.
“어쨌든!”
“으…… 으윽!”
놈은 살아있었다.
그건 곧 붉은 천과 반응이 끝났다는 뜻.
“이거 재밌네?”
그랬다.
이건 정말 재밌는 상황이었다.
일부러 련에 가져가려 했던 신물이 중간에 멋대로 련과 전혀 상관없는 이와 반응했다.
“일어나!”
타탓!
사내가 남자의 가슴과 등에 가볍게 손가락을 찔렀다.
“엇?!”
그러자 그는 바로 정신을 차렸다.
내력이 깃든 점혈이었는데, 효과가 발군이었다.
“으음……. 여긴?”
남자는 막 눈을 떠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일어났나?”
하지만 그건 사내가 알 바 아니었다.
“네? 당신은?”
설마 또 기억을 잊은 건 아니겠지?
“은공. 무슨 일입니까?”
“다행이네. 누구십니까 같은 헛소리를 하면 한 대 패려 했는데.”
“네?”
“그냥 너 운이 좋다고.”
“네?”
남자가 정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상태로 그는 눈앞의 사내에게 괴상한 제의를 받았다.
“네?”
영문을 모르겠다는 감정이 더욱 깊어졌다.
그러자 사내가 다시 한번 제의를 건넸다.
일단 그는 같은 말을 세 번은 하진 않지만, 두 번까지는 해주기 때문이었다.
사내의 제안은 간단했다.
“너, 내 제자가 돼라!”
* * *
진천우가 회랑에 도착하자마자, 논공행상(論功行賞)이 시작되었다.
공(功)에 따라 알맞은 상을 내리는 일은 맹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누구든 공짜로 일하지 않는다.
맹에는 승려도 있고, 도사도 있고, 군자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아무 대가 없이 일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런 이들이야말로 명성을 좇아 더 많은 공을 세우길 원했고, 맹은 당연히 이에 대한 적절한 포상을 내릴 의무가 있었다.
맹의 논공행상은 공정성을 기리기 위해 해당 지부의 관리 셋과 본 맹에서 내려온 관리 한 명이 포함해 넷이서 함께 처리했다.
“이번에 련의 습격은 참으로 뜻밖이었소.”
“뜻밖이라기보단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아무렴, 어떻소. 일단 잘 막아낸 것을.”
“그렇지. 그렇지.”
그들은 먼저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가를 살피고.
“이 모두가 지부에서 보낸 선발대 덕분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후발대의 역할도 컸지.”
“개방도!”
“무엇보다 재빠르게 선, 후발대를 조직한 지부장의 역할도 크지요.”
그 뒤 누가 그 사건에 주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따졌다.
이때, 진천우에 대한 말은 없었다.
꽈악!
옆에서 지켜보던 백풍대주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럴 수가!’
여기 올 때부터 어느 정도 견제는 예상했다.
‘하지만 이렇게 독하게 찍어누를 줄이야!’
아무리 학수선의가 적이 많다지만, 이는 너무 심했다.
사실 여기에는 갑작스러운 신의의 실종이 크게 한몫했다.
아무리 학수선의와 척을 지는 자라도, 맹에서 장로급 대우를 받는 신의가 건재했다면 이럴 수 없었다.
그러나 학수선의가 느닷없이 종적을 감추자, 그들은 제 세상 만난 들개 무리처럼 사납게 설쳐댔다.
‘아!’
한참 속을 끓이던 백풍대주가 갑자기 고개를 꺾었다.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이 상황을 가장 참지 못할 당사자를 깜빡했다.
자신마저 이리 화가 치미는데, 진 공자는 도대체 무슨 심경일까.
‘제발!’
참아야 한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
그래야 새 인력을 차출 받을 수 있다.
‘만일 맹에서 새 인력을 내놓지 않는다면, 내 공을 포기해서라도 인력을 차출하겠네.’
그러니 제발 참아라.
백풍대주가 정말 걱정되는 얼굴로 진천우의 안색을 살폈다.
“…….”
‘응?’
그런데 이상하다.
안색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씰룩!
‘약간 웃음을 참는 것 같기도?’
에이, 아무렴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날까?
내가 잘못 본 거겠지.
‘어쨌든 진 공자는 내 생각보다 훨씬 잘 참는구나.’
천만다행이다.
과연 그는 내가 인정한 대인 중 하나였다.
슥!
이때, 이곳 회랑에서 가장 상석에 앉은 제갈세형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그러자 아까부터 쉬지 않고 떠들어대던 네 책임자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본래 제갈세형은 이 논공행상에선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한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명목상.
아무리 그래도 무려 한 곳을 책임지는 지부장이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할 리 없었다.
어쨌거나 저 넷 중 셋은 제갈세형이 뽑은 이가 아니던가.
그렇지만, 이번에 진천우를 압박하는 행사에 그는 조금도 관계하지 않았다.
확실히 둘은 불편한 사이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대놓고 부당한 일을 저지를 만큼 제갈세형은 멍청하지 않았다.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따로 있었다.
‘맹에서는 이번 일을 되도록 크게 벌이고 싶지 않은 모양이군.’
왜인지 알 것 같았다.
제갈세형은 지원대에게 진씨세가의 하인을 찾는 것 외에도 도대체 련이 왜 이번 일을 일으켰는지 따로 조사하게 했다.
그 결과, 련이 근방의 허름한 유적 하나를 발굴한 사실을 알아냈다.
놀랍게도 만박자조차 이목을 돌리기 위한 눈속임에 지나지 않았다.
‘문제는 련이 그 유적에서 무엇을 가져갔냐는 건데.’
아쉽게도 그걸 명확히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니 이대로 이 일이 알려졌다간, 필연적으로 맹의 무능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니 위에서는 어떻게든 사건을 축소하려 했다.
이때 가장 버리기 좋은 패가 바로 진천우였다.
어쨌든 만박자라는 존재만 숨기면, 이번 일은 항상 있는 맹과 련의 가벼운 알력다툼으로 넘어갈 수 있다.
‘대단히 안타깝게 됐군.’
이번에 진천우가 세운 공은 제갈세형도 인정할 만큼 대단했다.
그만한 공이 부당하게 묻히게 됐다.
여기에 대해서는 그도 탄식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굳이 자신이 나서 진천우의 공을 챙겨줄 생각은 없었다.
어쨌든 둘은 그리 편한 사이가 아니니까.
‘그렇지만 하나만은 손 써주도록 하지.’
그래도 제갈세형은 어느 정도 새 인원 차출에 힘을 보탤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그가 이룬 공을 생각하면, 그 정도 대가는 챙겨야 했다.
아마 본 맹이 보낸 사자들도 이를 반대하지 않을 터.
아니, 오히려 가능하면 더 많이 차출하려고 할 수도 있었다.
궁서설리(窮鼠齧狸)란 말처럼, 쥐도 궁지에 몰리면 맹수인 삵도 무는 법이다.
게다가 어차피 차출되는 인원은 본 맹이 아닌 지부의 인력.
마냥 채찍질만 하지 말고 어느 정도 당근을 쥐여줘야 옳게 사람을 부릴 수 있다.
특히 아무리 맹이 학수선의와 사이가 나쁘다고 하지만, 이번에 이렇게 큰 공을 세운 진천우는 맹 입장에서 무척 탐나는 인재였다.
아마 그의 출신이 조금만 더 그럴듯했다면, 이번 논공행상에서 이렇게까지 깎아내릴 순 없었으리라.
‘출신 외에도 이번에 드러난 약점이 너무 컸지.’
제갈세형이 남몰래 쓴 미소를 지었다.
그의 지적대로, 진천우는 당장 실종된 하인을 찾기 위한 인력이 너무 절실했다.
“에헴!”
“그러고 보니 그들 외에도 달리 공을 세운 이가 하나 더 있다던데?”
“아, 여기 자료에 있군요. 진씨세가의 소공자였나?”
드디어 진천우의 이름이 나왔다.
가문의 영광일세!
개천에서 용 났군.
현재 가주가 실종 중이라던데 부디 좋은 소식이 있길 기원하네.
그들이 차례로 마음에도 없는 입에 발린 소리를 쏟아냈다.
이때, 진천우는 그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래도 두 눈은 한껏 정광을 품고 정면을 직시했는데, 당연히 이는 현판의 글귀를 되뇌기 위해서였다.
진천우가 문고리를 잡는 순간, 눈앞에 나타난 현판에는 아주 짧은 한 줄이 적혀있었다.
[‘정체불명의 붉은 천 - (레전드)’이 반응합니다.]
‘붉은 천.’
지금 내 소매에 있는 건 푸른 천과 흰 천, 그리고 누런 천.
결단코 붉은 천은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타이쿤은 이런 글귀를 내놓은 걸까?
답은 간단했다.
‘현석이다.’
녀석이 살아있다!
그런데 어째서 바로 내게 돌아오지 않는 거지?
‘필시 무슨 이유가 있겠지.’
진천우는 녀석의 귀환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럼 이제 자신이 할 일은 무엇인가?
‘녀석이 돌아올 때, 한 아름 안겨줄 보상을 긁어 모아놔야겠지.’
보상이야 어디서든 뜯어낼 수 있겠지만, 이왕이면 지금껏 자신을 갈궈온 맹에서 받아야겠다.
“……이상 우리 넷은 진 공자가 이룬 공에 대한 포상으로 대대적으로 지부의 인력을 스무 명 더 파견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때, 맹의 네 관리가 무슨 큰 선심 쓰듯 진천우의 보상을 두고 의견을 물었다.
그들은 당연히 그가 이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 생각했다.
만약 이 제안을 거절하면, 인원 차출은 절대 없다.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당연히 받아들이겠지. ……뭐!?”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진천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포상을 거절했다.
나아가 부당하다고 딱 잘라 선언했다.
이놈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아주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천우가 혹시나 듣지 못한 자가 있을까 싶어, 아예 회랑 전체가 쩌렁쩌렁하게 울리게 고함을 질렀다.
그 순간, 눈앞에 현판이 튀어나왔다.
[특수 이벤트가 발생합니다.]
[천하제일 타이쿤의 하위 타이쿤, ‘썰전(戰)!’이 개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