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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화 : 만남 (1) (110/210)


110화 : 만남 (1)
2022.03.14.


‘깜짝아!’

진천우가 너무 놀라,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이번 방문자는 앞의 방문자와 정반대였다.

도귀의 방문은 예상 범위였다.

하지만 이자의 방문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도귀는 의당에 어울리지 않는 방문자였다.

그러나 이자는 누구보다 이곳에 제격인 자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보다 의당에 더 오래 머문 이.

“다행히 무사했군.”

“아니…….”

그것도 내가 할 말 같은데?

“무사하셨습니까?”

진천우가 산적 의원에게 물었다.

학수선의와 함께 행방불명된 그가 의당으로 돌아왔다.

당연히 가장 먼저 물은 말은 정해져 있었다.

“신의님은?”

산적 의원이 고개를 저었다.

“학수선의께서는 이제 맹으로 돌아가지 않네.”

“네?”

어째서?

“그렇게 됐네.”

아쉽게도 산적 의원은 신의가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다.

“혹시 학수선의님께 무슨 큰일이라도?”

“큰일이라면 큰일이지.”

휴!

그가 말하다 말고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만 보더라도 신의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다만.

‘뭔가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생긴 건 확실한데…….’

저 반응을 보아하니, 학수선의의 안위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 듯했다.

그랬다면 산적 의원이 그저 낮게 한숨만 쉴 리 없었다.

애초에 그는 의원.

신의의 곁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강구했겠지.

그럼 그가 의당으로 돌아온 이유는?

“절 데려가기 위해서입니까?”

비록 감시당하는 와중이나, 의당의 정확한 위치는 지부 외곽이다.

빠져나가려면 어렵지 않게 빠져나갈 수 있다.

당장 산적 의원만 하더라도 특별히 대단한 무공을 지닌 것도 아닌데 감시망을 피해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는가?

‘그나저나 의당에 이런 숨겨진 통로가 있었을 줄이야?’

진천우가 조심스럽게 산적 의원의 뒤로 시선을 옮겼다.

의당에 설치된 다른 함정보다 몇 배로 공을 들인 티가 났다.

그러니 자신도 지금껏 찾지 못한 거겠지.

이 통로가 어디까지 연결된 건지 모르겠지만, 여길 통하면 지부 밖으로 몰래 나갈 수 있을 게 분명했다.

비록 자신은 신안과 함께 맹으로 가기로 했지만.

‘학수선의께서 찾으신다면 당연히 그분을 따라야지.’

진천우는 마음속으로 신의를 스승으로 받들었다.

제자 된 도리로 스승의 명을 따르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아무리 그게 타이쿤의 인도에 정반대되는 선택이라도,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아니네.”

그런데 산적 의원이 고개를 저었다.

슥!

그가 곧바로 소매에서 뭔가를 꺼내 진천우에게 내밀었다.

그건 낡고 얕은 한 권의 책자였다.

“내가 여기 온 이유는 이 책자를 의당에 몰래 숨겨놓기 위함이었지. 언젠가 자네가 이곳의 비밀을 눈치챌 때를 대비해서. 그런데 운 좋게 자네가 마침 의당에 있었군.”

“의당에 숨겨진 비밀이 있었다고요?”

“그렇다네.”

산적 의원이 천천히 안으로 들어왔다.

진천우가 조용히 옆으로 자리를 비켜주었다.

슥!

그가 계속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산적 의원이 향하는 장소가.

‘설마…….’

의당 이 층 한가운데 놓인 탁자 앞.

‘잠깐만…….’

“아마 자네는 이미 며칠이나 여기에 머물렀을 걸세. 그러나 부주의했군. 만약 조금만 주위에 신경 썼다면 이 탁자에 숨겨진 비밀을 풀었을 텐데…….”

“탁자 아래에 손을 밀어 넣으면 탁자 상판이 열리는 것 말입니까?”

“어?”

산적 의원이 순간 크게 당황했다.

하지만 그는 곧 빠르게 표정을 고치더니.

“제, 제, 제법 주위를 신경 쓴 모양이군. 허나 그것만으로는 아직 많이 멀었네. 이 탁자는 단순히 뚜껑만 열리는 것뿐 아니라…….”

“상판 뒤편에 목패를 박아 두었지요.”

“어찌 그것까지 아는 거야! 어라? 그러고 보니 여기 원래 박힌 목패를 부수고 새 목패를 박았잖아! 이거 자네가 했나!!”

산적 의원이 너무 놀라서 소리를 빽 지르더니, 급히 제 손으로 입을 막았다.

아직 밖에 감시하는 지부의 무인이 있는데, 어찌 이런 경망스러운 짓을.

그만큼 그도 이 상황이 기가 막혔다.

“허허, 어찌 이런!”

내가 이 탁자의 비밀을 알아채는 데 몇 달이 걸렸는데…….

‘그리고 탁자 상판에 목패가 박힌 걸 알아내는 데 몇 년이 걸렸는데…….’

그런데 이놈은 의당에 며칠이나 머물렀지?

사흘? 나흘?

설마하니 산적 의원은 진천우가 의당에 처음 발을 들인 그날 비밀을 풀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진천우도 이 이상 비밀을 더 밝히면 자칫 산적 의원에게 깊은 내상을 입혀 주화입마에 들게 할까 두려워 일부러 입을 다물었다.

“뭐, 아무튼 원래 이 탁자 상판 뒤에 여기 틈이 보이지? 여기에 원래는 내가 가져온 책자가 들어있었다네. 그걸 저번에 나올 때 점소이 놈이 복습하겠다며 꺼내왔지 뭔가.”

“아, 그랬군요.”

“아마 기껏 의당의 비밀을 풀었는데 안에 아무 의서도 없어서 난처했을 거라 생각하네.”

아니, 사실 함정해체랑 함정설치를 배워서, 그게 의당의 비밀인지 알았는데?

“응? 안 난처했나?”

“아니, 아닙니다. 아주 난처했습니다.”

아까 말했듯, 진천우는 산적 의원이 주화입마에 들까 봐 염려했기에 일부러 더 격하게 동의해 주었다.

“…….”

어쩐지 무척 찜찜한 느낌이 들지만, 더 파고들면 제 쪽에 피해가 올 걸 직감한 산적 의원이 애써 걸쩍지근한 느낌을 무시하고 남은 용건을 전했다.

“어쨌든, 이걸 자네에게 전하러 왔네.”

그가 다시 얕은 책자를 내밀었다.

“이게?”

진천우가 책자를 받아들었다.

딱히 겉에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슥!

안을 펼치자, 무척 어지러운 글자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한두 사람이 쓴 게 아닌, 십여 명이 앞사람이 쓴 걸 새로 고쳐 적거나 뒤에 내용을 추가하고 또는 일부로 먹칠을 해 내용을 지운 듯한 흔적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 내용은 모두 대단했다.

“비록 학수선의께서 적으신 건 아니지만. 지금껏 신의님을 거쳐 간 이들이 자신들이 아는 지식을 모조리 쏟아부은 책자지.”

“그런?”

사실이라면 정말 대단했다.

당장 눈앞의 산적 의원만 하더라도 학수선의 아래에 있어서 그렇지, 따로 떼어두면 충분히 명의 반열에 든다.

마부, 점소이, 거지 등 다른 의원들도 마찬가지.

그런 이들이 익힌 여러 의술이 모두 여기 적혀 있다고?

“그런 걸 제게 주셔도 됩니까?”

“당연히 되지. 너도 이제 학수선의님의 사람이 아니더냐.”

산적 의원이 그 말을 남기고 몸을 돌렸다.

잠깐, 이대로 떠나려고?

“암! 서둘러 신의님을 따라야 하니까.”

“그럼 저도 함께…….”

“넌 따로 할 일이 있을 텐데?”

“네? 그걸 어떻게?”

“어찌 모를까. 내가 몇 년! 크흠! 아니, 이리 빠른 시간에 의당의 비밀을 알아낸 너를 천하가 가만히 내버려 둘 리 없으니까.”

스륵!

산적 의원이 처음 의당에 들어왔던 벽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문이 닫히기 전, 학수선의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전했다.

“신의께서 네게 남기길, ‘네 뜻대로 해라’라더군.”

짧은 말.

그러나 거기 담긴 깊은 뜻을 모를 수 없었다.

-네 마음대로 해라.

-난 신경 말고!

-너가 원하는 것, 너가 해야 하는 걸 해라!

그리고 그 뒤에는.

-만약 누가 그것을 막으면…….

‘네!’

진천우가 산적 의원이 떠난 벽을 가볍게 손으로 쓸었다.

그 손이 벽에서 떨어졌을 때, 그의 손은 어느새 주먹을 움켜쥐었다.

-다 박살 내라.

‘네!’

진천우는 여전히 학수선의의 사람이다.

그리고 신의는 자신이 스승으로 모시기에 너무나 어울리는 사람.

-아, 참고로 나도 그렇게 할 거다.

‘네!’

그렇게 서로 똑 닮은 사제가 마음속으로 의기투합했다.

* * *

-역시 맹으로 가주게

사흘 뒤, 신안은 말을 바꾸지 않았다.

그는 일부러 지부의 무인을 풀어 의당을 감시했지만, 특별한 점은 찾지 못했다.

하긴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신안의 생각은 정해져 있었다.

다만 예상과 달라진 점이 하나 있었다.

-원래라면 나와 함께 맹으로 가야 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여기서 많은 일이 생긴 탓에…….

련의 습격과 개방의 비리 유출, 거기다 하오문의 일까지.

한 개의 지부에서 다 감당하기 힘든 일이 연달아 터진 탓에 신안은 한동안 지부에서 제갈세형과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러니 백풍대주와 함께 먼저 본 맹으로 향하게. 내 자네에 대한 건 따로 전서구로 보내놓겠네.

이건 진천우에게도 나쁜 일이 아니었다.

만일 신안과 함께 본 맹으로 떠난다면, 그동안 계속 긴장을 풀지 못할 테니까.

“그럼 진 공자는 내가 책임지고 본 맹까지 호위하겠네.”

백풍대주가 믿음직한 얼굴로 장담했다.

확실히 그만한 안내인은 없었다.

본 맹 소속이라 거기로 가는 여러 경로를 머릿속에 꿰차고 있을 테고, 무력 또한 나무랄 데 없다.

“오늘은 저 언덕 너머에 보이는 객잔에서 머물도록 하지.”

“벌써 객잔에 들어갑니까? 아직 점심나절인데?”

“이 뒤부터는 사흘간 따로 쉴 수 있는 객잔이 없네. 그러니 저 객잔에서 사흘간 필요한 준비를 해두어야 한다네.”

과연 믿음직했다.

“게다가 그거 아는가?”

“무엇 말입니까?”

진천우가 백풍대주의 물음에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지난 반나절 동안 함께하면서, 백풍대주는 그의 흥미를 끄는 많은 이야기를 알려주었다.

특히나 백풍대주는 예상외로 상당한 식도락가인 듯, 듣기만 해도 입에서 침이 고이는 각 지방의 명물 요리를 아주 맛깔나고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아까 말한 여러 산채 나물과 양념, 검은 돼지를 껍질째 냄비에 들러붙을 정도로 강하게 볶은 명물 요리를 기억하는가?”

“당연히 기억하지요. 어찌 그걸 잊겠습니까.”

그가 특히나 인상 깊었던 요리를 다시 상기시켰다.

이제 곧 객잔에 들어가려는데 그 이야기를 꺼낸다는 건 곧!

“바로 저 객잔에서 만드는 요리라네!”

“정말입니까?!”

그 즉시, 둘은 객잔을 향해 걸음을 서둘렀다.

* * *

“여기군.”

커다란 덩치의 사내가 객잔을 찾았다.

그 뒤로 젊은 남성이 뒤따랐다.

남자는 붉은 천으로 쌓인 길쭉한 뭔가를 단단히 품고 있었다.

이건 그의 잊어버린 기억을 찾아줄 아주 중요한 단서였다.

“어서 옵셔!”

손님을 보고 젊은 점소이가 달려왔다.

“술 그리고 적당한 안주 몇 개.”

선두의 사내는 점소이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다만 손님이 해야 할 의무만은 확실히 치렀다.

팅!

점소이가 순간 공중에 솟구친 무언가를 양손으로 받았다.

꼴랑 하나?

술 한 잔 간신히 사 먹을 돈으로 안주까지 주문하는 배짱 보소?!

“손……!”

점소이가 용감하게도 손님께 뭐라 한마디 하려다, 뒤늦게 제 손에서 흘러나오는 황금빛 광채를 확인했다.

“헉!”

“뭐냐?”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곧바로 이 객잔에서 가장 맛있는 술과 안주를 가져오겠습니다.”

“그래.”

역시나 사내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그 객잔에서 가장 좋은 자리인 상층으로 올라갔다.

젊은 남자도 함께 계단을 올랐다.

“숙수님! 숙수님!”

두 손님이 상층으로 올라가는 걸 보고, 점소이가 서둘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창고 구석에 숨겨둔 백주랑 홍주 가져갑니다! 그리고 산채 나물이랑 껍질째 손질한 돼지고기도 당장 볶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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