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 진품명품 (2)
(115/210)
115화 : 진품명품 (2)
(115/210)
115화 : 진품명품 (2)
2022.03.26.
‘쇼! 진품명품?’
앞의 ‘쇼’는 타이쿤 해석을 보니 크게 중요한 의미가 들어 있지 않았다.
문제는 그 뒤.
‘나보고 감정하라는 건가?’
이 대장간에 있는 무구들을?
“하!”
너무 기가 찬 나머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럴 만도 했다.
진천우는 어릴 때 천형을 얻은 탓에 가문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당연히 대장간에 방문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
‘허나 이미 정해졌다면 해야겠지.’
그럼에도 그냥 하기로 했다.
어느새 타이쿤의 억지에 익숙해졌다.
아는 게 전혀 없지만, 일단 물건부터 보자.
“하!”
그런데 예상과 달리 눈이 즐거웠다.
무리도 아니었다.
여기 있는 것들은 전부 한 가문의 가보거나 그에 준하는 명품.
그 가문 하나하나가 진씨세가보다 훨씬 세가 컸으면 컸지, 절대 모자라지 않았다.
일단 가장 가까이에 있는 상아색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채가 보통이 아니었다.
“혹, 들어봐도?”
“마음대로 하게. 단 뭔가를 베는 건 허락할 수 없네.”
“알겠습니다.”
진천우가 감사를 표하고, 검을 들었다.
이때, 조금만 더 깊게 생각했어야 했다.
왜 드는 걸 허락하면서 베는 건 허락하지 않는지.
스릉!
‘역시!’
검을 뽑자, 청명한 소리가 귀를 즐겁게 했다.
휙! 휙!
그 자리에서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유려한 검날이 바람을 가르는 기세가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손에 딱 달라붙는 느낌이 좋았다.
‘이런 게 명검인가?’
다시 말하지만, 진천우는 감정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그러나 지금 손에 쥔 검은 그런 그조차 무언가를 느낄 만큼 특별했다.
“…….”
한편 진천우가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며, 대장장이는 가슴을 졸였다.
‘저러다 잘못해서 뭐라도 베면…….’
아니, 잘못 말했다.
잘못해서 무엇 하나 베지 못하면, 단번에 검날이 완전 무뎌진 걸 들킬 거다.
신기하게도 그가 잘못 강화한 무구는 겉모양만은 강화 전에 다를 게 없었다.
스릉!
지금도 저렇게 검날에 빛을 비추면, 유려한 빛이 사방에 퍼졌다.
허나 아쉽게도 저 검은 더 이상 검이라 부를 수 없었다.
차라리 몽둥이라 하는 게 더 어울릴 듯.
그만큼 모든 날이 상해서 이제는 무조차 베지 못하는 결함투성이 검이었다.
철컥!
다행히 진천우는 허공에 몇 번 더 검을 휘두르더니, 백검을 다시 검집에 넣었다.
“좋은 경험 감사합니다.”
그 뒤, 그는 검을 조심스럽게 탁자 위에 올려놓고 대장장이에게 허리를 숙였다.
“…….”
당연히 속이는 입장으로서 이런 반응은 썩 기쁘지 않았다.
“그럼 이번에는…….”
그 사이, 진천우는 백검 바로 옆의 검은 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도 미리 뽑아도 되는지 허락을 구했다.
스릉!
“와!”
도집에서 도를 뽑자 또 감탄이 나왔다.
조금 전에 휘두른 백도가 화려하고 유려했다면, 흑도는 단순하고 투박했다.
게다가 무거웠다.
그런데 전혀 무겁지 않았다.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싶겠지만, 정말 그랬다.
휙!
‘역시!’
진천우가 흑도를 크게 한 번 휘두르고 그 이유를 깨달았다.
흑도는 균형감이 보통이 아니었다.
도신부터 자루까지 철저한 계산 아래 만들어진 게 분명했다.
‘어디에도 무게가 치우치지 않고 균등하다. 그 덕분에 도를 휘두를 때, 몸이 어디로도 쏠리지 않고 안정감 있게 다룰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특별히 도법을 익히지 않은 자신이 방금처럼 깔끔하게 흑도를 휘두를 리 없었다.
‘다음!’
이번에는 창.
훅!
단순히 들고 앞으로 찔렀을 뿐인데, 공기를 뚫는 감각이 느껴졌다.
이 붉은 창도 명품임이 틀림없다.
백검, 흑도, 적창만이 아니었다.
진천우는 그 외에도 대장간에 있는 무구를 차례로 손에 쥐고 몇 번이나 허공에 휘둘렀다.
“와!”
“아!”
“하하!”
그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오고 때로는 헛웃음을 흘렸다.
“음?”
딱 하나, 푸른 검을 살폈을 때는 다른 무구들과 반응이 달랐다.
‘뭐지?’
뭔가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전과 다른 이질감이 느껴졌다.
‘모르겠군.’
하지만 그뿐.
진천우는 이질감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고, 바로 다음 무구로 손을 뻗었다.
아직도 확인해야 할 무구가 산더미였다.
이때, 그의 머릿속에 여기서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생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진천우는 제 양손으로 다 품지 못할 양의 장난감을 선물 받은 아이처럼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음……!’
그 미소를 본 대장장이의 속이 검게 타들어 갔다.
다시 말하지만, 그는 속이는 입장.
그런데 어째서 자신의 마음도 이렇게 들썩이는 걸까?
‘지금껏 많은 이들이 여기서 물건을 고르는 걸 봤지만, 저렇게 기뻐하는 이는 처음이군.’
왜 아닐까?
그간 대장간에 들른 이들은 모두 따로 언질을 듣고 찾아왔다.
즉, 여기 물건들에 크나큰 결점이 있음을 미리 알았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간사한 법.
그들은 이미 다 알면서도, 자신만은 그러지 않을 거라 믿고, 쓰레기 가운데서 보옥을 찾으려 눈을 시뻘겋게 붉히고 대장간을 뒤졌다.
쾅쾅쾅! 쿵쾅쾅! 쿵쾅쿵쾅!
애초에 결함품이라 여겼으니, 물건을 대한 예의가 있을 리 없었다.
그들은 탁자 위에 놓인 물건을 아무렇지 않게 뽑고 휘두르고, 때로는 자기들끼리 부딪치며 빠르게 예기와 강도를 확인했다.
그러다 마음에 안 들면 바로 바닥에 팽개쳤다.
그렇게 하루가 꼬박 지나서야 놈들은 지친 얼굴로 크게 실망한 듯, 그나마 겉만 멀쩡한 걸 집었다.
결코 자신이 쓰려는 게 아니라, 겉은 멀쩡하니 장식으로 쓰거나 팔아치우겠다는 망발까지 내뱉으며.
만일 선대께서 정한 규칙만 아니었다면, 아무리 여기 물건이 전부 결함품이라도 그딴 놈들에게 주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손이 미끄러져 강화에 실패했어도 모두 한 번 제 손을 거친 물건이기 때문이었다.
“휴……!”
대장장이는 그 생각만 하면,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지금 저 청년이 저리 기쁘게 물건을 고르는 건 전부 그 사실을 몰라서다.
만일 모든 사정을 알고도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그럴 리 없겠지.’
대장장이는 그거야말로 꿈같은 소리라 생각했다.
“저…….”
그때, 진천우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뭐냐? 벌써 골랐느냐?”
“아뇨, 그게 아니라…….”
진천우가 잠시 뜸을 들였다.
그걸 본 대장장이의 가슴이 갑자기 내려앉았다.
설마 벌써 여기 무구들이 결함품인 걸 들킨 걸까?
그래서 결국 이 청년도 본모습을 보이려는 걸까?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혹 제가 너무 시간을 끈 겁니까?”
“뭐?”
“아니, 아까 한숨을 내쉬시길래…….”
“난 또 뭐라고. 별일 아니니까 자네는 걱정 말고 찬찬히 시간을 들여 물건을 고르게.”
“정말이십니까?”
“그럼!”
대장장이의 확답이 떨어졌다.
진천우가 이에 기뻐하며, 바로 옆의 녹색 활을 집었는데, 갑자기 눈앞에 푸른 현판이 나타났다.
[사용자가 열 점의 ‘진품’을 확인했습니다. (10 / 10)]
[‘쇼! 진품명품’ 중 진품 열 점을 확인한 보상으로 스킬, ‘감별안(鑑別眼)’을 획득합니다.]
‘감별안?’
새로운 스킬을 얻자마자, 그의 시야에 특이한 변화가 생겼다.
이전에 얻은 의안처럼 느닷없이 사람의 몸에 격자무늬가 생기진 않았지만, 대신.
‘녹색?’
아니, 분명 내가 녹색 활을 들고 있긴 하지만.
‘아까보다 그 색이 더 진해진 듯한……. 다른 무구들은?’
진천우가 즉시 아까 살핀 백검과 흑도, 적창 등을 확인했다.
모두 이상하게 겉에 희미하게 녹색 막 같은 게 둘러져 있었다.
휙휙!
그것들은 아무리 세게 휘둘러도 떨어지지 않았다.
혹시 몰라, 대장장이의 시선을 피해 겉을 손톱으로 세게 긁어 보았다.
내공을 실어서.
끼긱!
아주 살짝 검집에 손톱자국이 남았는데도 녹색 막은 여전했다.
‘이게 도대체…….’
도무지 이유를 몰라 황당해하는데, 진천우의 눈에 또 다른 무언가가 보였다.
이번에는 붉은 기운이다.
그런데 그것은 조금 전, 살짝 이질적인 느낌을 받은 푸른 검을 감싸고 있었다.
푸른 검만이 아니었다.
다 살피진 않았지만, 대장간에 쌓여있는 무수한 무구 중 드물게 붉은 기운이 섞인 게 몇 개씩 눈에 띄었다.
“이걸 잠시.”
진천우가 바로 붉은 기운을 두른 백색 창을 휘둘렀다.
뭔가 다르다.
뭐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확실히 달랐다.
다른 것도 똑같았다.
붉은 기운을 두른 무구들은 전부 녹색 기운의 무구와 다른 이질적인 느낌이 났다.
“제법이군.”
“네?”
“아까부터 여기서 몇 없는 가품만 골라 휘두르던데. 알고 한 게 아닌가?”
“아!”
엉뚱하게도 대장장이가 그냥 답을 알려주었다.
애초에 그는 여기 있는 물건 중 아무거나 하나만 내주면 되기에, 딱히 진품과 가품을 알려줘도 문제 될 게 없었다.
그 덕에 진천우는 아주 수월하게 감별안의 첫 번째 능력을 깨우쳤다.
‘감별안 스킬은 색깔로 진품과 가품을 구분해주는구나.’
[스킬, 감별안의 비밀을 알아냈습니다.]
[감별안의 두 번째 비밀을 풀려면, 총 백 점의 ‘진품’과 한 점의 ‘명품’을 확인해야 합니다. (12 / 100), (0 / 1)]
‘그쯤이야!’
진천우가 곧바로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휙! 휙휙휙!
검, 도, 창은 물론이고, 각종 암기류도 만져보았다.
대신 그는 절대 서두르지 않았다.
“이번에는 이걸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예의 또한 잊지 않았다.
딱히 ‘쇼! 진품명품’에는 시간제한이 없다.
‘그렇다면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지.’
게다가 진천우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물건을 확인하는 과정 자체가 너무나 즐거웠다.
굳이 타이쿤이 명시한 백 점을 다 채우더라도 더 시간을 들여 대장간의 모든 물건을 확인하려 했다.
[99 / 100] [0 / 1]
하지만 아쉽게도 여기 쌓인 진품은 아슬아슬하게 백 점이 넘지 않았다.
그것 중 일부가 가품인 탓이다.
“흠…….”
진천우가 손으로 턱을 괴며 생각에 잠겼다.
어쩐다?
좀 더 확인하고 싶은데.
그러나 당장 눈앞에 보이는 물건은 모두 확인 했다.
‘눈앞에 보이는 것만 확인?’
그럼 대장간을 뒤지면 몇 개가 더 나오지 않을까?
“잠시 좀 둘러봐도 되겠습니까?”
“그러거라.”
진천우가 허락을 받고 걸음을 옮겼다.
그가 대장간 안으로 사라질 때, 대장장이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 중이었다.
‘저렇게나 열심히 골라줄 줄 몰랐는데. 가능하면 진짜 좋은 물건을 내주고 싶군.’
허나 이 대장간에는 결함품밖에 없다.
여기서 멀쩡한 물건이라면…….
‘잠깐! 저놈이 방금 어디로 들어갔지?’
뒤늦게 대장장이가 정신을 차리고, 방금 진천우가 이동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긴 조금 전 자신이 나온 곳.
그러니까 백발노인에게 받은 백목함을 놔둔 곳!
‘설마하니 저 녀석이 그걸 고르진 않겠지?’
“이거닷!”
아니라 다를까 작업실에서 불길한 소리가 울렸다.
“안 된다!”
정말 안 된다.
아니, 물론 그건 결함품이 아니지.
그리고 아주 좋은 물건이지.
‘하지만 그건 내 게 아니란 말이다!!’
대장장이가 서둘러 작업실로 들어갔다.
그는 거기서 지평선 너머로 솟아오르는 태양처럼 해맑게 웃는 진천우를 보았다.
“이겁니다! 이게 제가 찾던 물건입니다!!”
“아니, 안 된다. 그건 안……!”
대장장이가 어떻게든 안 된다고 크게 소리치려는데, 진천우의 손에 들린 물건을 보고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어라?
저 녀석이 왜 저걸 들고 있지?
그리고 왜 저걸로 좋아하는 거지?
왜?
왜??
“……되는 건 아닌데, 정말 그걸로 하게?”
이제 그는 안 된다는 말 대신, 오히려 왜 하필 그거냐는 의문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