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 두 번째 시험
(123/210)
123화 : 두 번째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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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화 : 두 번째 시험
2022.04.13.
“인원 정리가 끝났으면 바로 시험장으로 이동하겠다.”
시험관의 호령과 함께 책사, 무인 응시자들이 몸을 돌렸다.
책사 한 명에 무인 열 명.
그 열한 명이 한 무리가 되어 이동했다.
“반갑소!”
“잘 부탁하오!”
“열심히 합시다.”
이동 중 간단한 통성명과 인사가 오고 갔다.
협업이라 했으니 협동심은 필수.
책사들도 평소 콧대 높은 자존심을 버리고 친목 활동에 끼어들었다.
당연히 그 자존심 강한 제갈세가, 종리세가도 그랬다.
“…….”
“휴!”
“제길!”
그러나 세상이 음과 양으로 나뉘듯, 열심히 친목을 다지는 부류가 있으면 당연히 그 반대 부류도 있었다.
다만 그 반대 부류 대다수는 하필 진천우와 편먹은 무인들이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망했군!”
누군가 대놓고 말했다.
맞다.
그들은 망했다.
그런데 그건 진천우와 편먹기 전부터 그랬다.
애초에 왼쪽 대자보 맨 아래부터 세야 했던 이들.
그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오른쪽 대자보 맨 아래인 진천우와 묶이는 건 당연했다.
다른 책사들은 그들을 뽑지 않았고, 다른 무인들도 그들과 엮이지 않았다.
이래서 사람은 줄을 잘 서야 했다.
처음부터 줄을 잘못 선 이들은 그저 이 상황을 한탄하며 연신 한숨만 쉬었다.
“저…….”
단 한 사람.
진천우가 강화한 검을 받은 청년만이 한탄 대신 옆으로 다가왔다.
“괜찮겠습니까?”
“무엇을?”
“시험 말입니다.”
“글쎄요.”
“……전 그래도 은공을 믿습니다.”
슥!
진천우가 조용히 고개를 돌려 청년과 눈을 맞췄다.
딱히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어, 이리도 자신을 믿는 걸까?
“은공의 말대로 만류검법에 최적인 검의 길이는 평소보다 한 치 더 짧았습니다.”
아, 그것 때문인가?
“일 차 시험을 치르면서 느꼈습니다. 아직 제 실력이 많이 부족하단 것을요. 아마 평소 제 실력이라면 절대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조금씩 새 검의 길이에 익숙해지면서 실력이 월등히 늘었습니다. 그 덕에 비록 말석이나마 시험에 통과할 수 있었으니, 이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굳은 각오로 반짝이는 눈.
이런 눈을 마주하며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할까?
“믿겠습니다.”
진천우는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상대의 각오를 받아주었다.
딱히 그가 각오를 다지지 않아도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와아!”
그때, 앞서 걷던 이들이 소리를 질렀다.
바로 고개를 돌리자, 그 이유가 이해되었다.
눈앞에 처음 모였던 작은 광장의 족히 수십 배는 될 법한 넓은 광장이 펼쳐졌다.
“여기는 본 맹의 중앙 연무장이라네.”
시험관이 이곳을 설명해주었다.
본 맹에는 이 같은 공간이 두 곳 더 있으며, 하나에만 만(萬)이 넘는 사람을 도열할 수 있다고 했다.
지원자 대부분이 그 규모에 한번 놀라고, 그 화려함에 또 한번 놀랐다.
“세상에 바닥이 전부 백석이야.”
“이야, 돈이 어마어마하게 들었겠는데?”
“이런 게 두 곳이나 더 있다고?”
“역시 본 맹은 다르구나!”
누구는 그들의 말을 듣고 천박하다고 여길지 몰랐다.
실제로 책사 지원자 중 몇몇은 그리 느꼈다.
그러나 제갈가와 종리가 그리고 문왕의 재기는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끝없는 규모와 자금이야말로 지금의 맹을 만든 힘이었다.
협의와 신의, 그 외 다른 중요한 가치들?
확실히 그것들도 중요하다.
하지만 책사라면 반드시 그 위에 돈을 올려두어야 했다.
굶주린 자는 맹을 따르지 않는다.
오직 음식을 주는 자만을 따른다.
돈은 맹을 따르는 이가 굶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러니 돈 계산이야말로 책사가 가장 중요히 여길 덕목 중 하나였다.
“그럼 두 번째 시험 내용을 발표하겠네.”
시험관이 모든 지원자를 연무장 중앙에 모이게 한 뒤 시험 내용을 발표했다.
“싸우게.”
너무 짧은 한마디.
“네?”
너무나 짧아서 책사 중 누군가가 저도 모르게 반문했을 정도.
“…….”
그러나 시험관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굳이 답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쳐라!”
그 직후, 방금 질문한 책사의 좌우로 여러 무리가 들이닥쳤다.
느닷없이 무인 열 명과 편먹으랬고, 이런 너른 장소로 이동했다.
거기서 이미 눈치를 챘어야지.
그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반문한다는 건 자신의 무능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과 다름없었다.
무능한 자는 도태된다.
그리고 누구보다 좋은 먹잇감이 된다.
굶주린 책사들이 자신보다 더 굶주린 무인들을 이끌고, 먹음직스런 먹잇감을 향해 달려들었다.
* * *
두 번째 시험에서 보는 건 군략(軍略)이었다.
군략은 진법 못지않은 상승 공부.
허나 겨우 열 명으로는 시연하기 어려운 공부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다.
애초에 수백, 수천을 지휘하는 일은 무림에서 잘 일어나지 않는다.
기껏해야 수백?
그러나 그 한 명 한 명이 일당백이다.
무림은 관부나 황군과 다른 군략이 필요했다.
고작 열 명으로도 펼칠 수 있는 군략.
두 번째 시험에서 보는 건 바로 그런 것이었다.
챙!
누군가의 검이 하늘로 비산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시험이니 목숨은 뺏지 않는다.
그게 아니어도 검사가 손에서 검을 놓았으니 죽었다고 볼 수 있었다.
이로써 시험 개시와 동시에 세 무리가 탈락했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
하지만 지금이기에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다르다.
어느 정도 상황에 익숙해진 지원자들이 다시 한데 뭉치기 시작했다.
이들은 손에 무구를 들고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언제든 무기를 뻗을 수 있도록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다.
방비가 철저하면 철저할수록 잘 깨지지 않는다.
그럼 어떡해야 할까?
‘아무리 방비해도 어쩔 수 없는 무리를 공격해야지.’
“앞으로!”
종리우가 소리를 질렀다.
동시의 그의 무리가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이 향하는 방향에 진천우의 조가 있었다.
경쟁에서 가장 먼저 도태되는 건 약자다.
진천우 무리는 여기 있는 모두가 인정하는 약자였다.
“우리도 간다!”
“이런 뒤처지지 마라!”
“우와아아!!”
잊어서는 안 되는 게 이건 시험이다.
보다 많은 경쟁자를 쓰러트리는 시험.
종리우의 무리가 앞장서자 다른 무리도 콩고물을 나눠 먹기 위해 앞다퉈 달려왔다.
“쯧!”
진천우가 즉시 혀를 찼다.
그는 겁에 질린 제 무리를 독려했다.
“무기를 드십시오. 눈 돌리지 마십시오. 처음 한 번만 막으면 됩니다. 어차피 그다음은 바로 혼전입니다. 이미 앞의 세 조가 어떻게 쓸렸는지 보지 않았습니까?”
조곤조곤,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지만, 주위의 무인들은 그 말을 곧장 알아들었다.
[스킬, 조련이 효과를 보입니다.]
그만큼 조련 스킬의 숙련도가 높았다.
“…….”
그걸 보며, 진천우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조련 스킬이 저만큼 오르는 데 가장 크게 일조를 한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의 지금 자신의 눈앞에 없다.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쾅!!
그 직후 터진 커다란 충격음에 정신을 차렸다.
다행히 첫 공세를 훌륭하게 막아냈다.
그러자 예상대로 혼전이 펼쳐졌다.
“이쪽이 아냐! 앞이라고! 앞!!”
혼전 뒤편에서 종리우의 급한 외침이 들렸다.
아쉽게도 그 외침은 진천우만큼 호소력을 갖지 못했다.
가장 먼저 최약체를 공격하려는 그 판단은 옳았지만, 여기 모인 자들은 종리세가의 가솔이 아니었다.
모두 초면인 상대.
그나마 종리세가의 위세에 한 번은 말귀를 알아들었지만, 두 번째부터는 먹통이 될 수밖에 없었다.
와아아!
그 순간, 생각지도 못한 무리가 혼전에 끼어들었다.
“돕겠습니다.”
문왕의 재기, 현소였다.
그가 마치 칭찬을 바라는 개처럼 진천우를 향해 꼬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진천우는 쉽게 칭찬하지 않았다.
“당연히 도와야지.”
그래, 이건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최약체인 진천우 무리가 당하면 그다음은 너희 차례다.
“큭!”
현소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기껏 호의를 베풀고도 이런 취급이라니.
허나 불평할 틈이 없었다.
과연 종리세가의 교육은 대단했다.
종리우는 비록 처음에는 조금 버벅댔지만, 곧 능숙하게 주위 사람을 끌어들였다.
젊은 나이에 사람을 부리는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은 덕분이었다.
그 탓에 진천우와 현소의 무리는 야금야금 전력이 깎일 수밖에 없었다.
허나 이 상황에 적응한 건 종리우만이 아니었다.
[스킬, 군략(軍略)을 습득했습니다.]
[스킬, 군략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진천우는 눈앞에서 펼쳐진 체계 잡힌 군략을 보고 새로운 스킬을 얻었다.
종리우가 열심히 할수록 그 또한 숙련도가 올라갔다.
그건 진천우만의 일이 아니었다.
“모두 옆으로! 그대로 저들의 옆구리를 치는 겁니다! 지금!”
문왕의 재능.
현소 역시 타이쿤을 위협할 수준으로 빠르게 상대 군략을 흡수했다.
그래서 아쉬웠다.
처음 말했다시피, 원래 군략은 열 명으로 펼치는 학문이 아니다.
게다가 지금은 그 수가 반절로 줄었다.
사실 군략의 진면모는 사람을 부리는 용인술이 아니었다.
보다 많은 사람을 모으고, 그들이 제대로 힘쓸 수 있게 하는 사전 준비야말로 진짜 군략이었다.
그런 점에서 진천우와 현소의 군략은 시작부터 실패했다.
“컥!”
“큭!”
또 제 무리의 사람들 일부가 손에서 검을 놓았다.
이제 반절조차 아니게 되었다.
이만한 상황을 반전시키려면, 군략이 아닌 기책이 필요했다.
“지금!”
그때 기회가 찾아왔다.
처음부터 맹공 일색인 종리우와 달리, 제갈민의 무리를 혼전에 끼어들지 않고 뒤로 물러나 있었다.
처음에는 제갈세가의 고매한 성격상, 이런 난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라 생각했다.
허나 어찌 군사가 전장을 고른단 말인가.
설령 진흙탕을 구르더라도 필요하면 기꺼이 나아가는 게 군사의 길이다.
“그대로 적의 허리를 끊어라!”
“와아아!”
제갈민이 이끄는 열 명의 무인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이들 모두 대자보 최상위 실력자들.
일당백까지는 아니어도, 최소 다른 지원자의 두 사람 몫을 너끈하게 해냈다.
그런 이들이 난전에 끼어들었으니, 혼전을 일삼던 무리의 허리는 곧바로 반 토막 났다.
“이런!”
이를 본 종리우가 소리 질렀다.
예상보다 질긴 반항에, 그만 가장 신경 써야 할 적을 놓쳤다.
“제갈민!!”
썩을 제갈가의 종자가 마지막에 대뜸 끼어들어 가장 탐스러운 과실을 탐하는구나!
전체 무리가 절반으로 나뉘면서 종리우의 무리도 반으로 갈렸다.
다른 책사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머리가 없으면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차라리 맨 처음처럼 머리의 명령을 듣지 않던 상태면 또 모르나, 상당한 시간을 들여 간신히 책사의 군략에 따르게 한 지금에 와서 이 피해는 상당했다.
한번 머리의 말을 착실히 따르면 그에 걸맞은 성과가 따라오는 걸 겪은 무인들은, 갑작스러운 머리의 부재에 큰 혼란을 느꼈다.
“컥!”
“젠장!”
머리 잃은 수족들이 하나둘 무기를 손에서 놓았다.
머리는 두 눈 빤히 뜨고 그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당장은 제 가까운 수족부터 챙기는 게 먼저였다.
그다음은 제 가까운 머리 없는 수족을 쳐내야 경쟁에 지지 않을 수 있고.
제게 먼 수족을 되찾는 건 처음부터 포기했다.
만일 제갈민이 여기까지 생각하고 일을 저지른 거라면?
오늘 종리가는 또다시 제갈가에 무릎 꿇게 되리라.
‘이걸로 종리우는 처리했고…….’
제갈민이 고개를 돌려 누군가를 찾았다.
찾았다.
‘총군사의 제자.’
종리우와 함께 이번 시험에서 가장 난적이 될 자다.
그 또한 얼마 없던 무리가 다시 반으로 갈렸다.
겨우 둘만으로 이 시험을 통과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겼구나.’
제갈민이 승리를 확신했다.
그의 기책이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성공한 기책은 하나가 아니었다.
“후후!”
진천우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제갈민은 물론이고 종리우까지 자신을 쳐다보지 않았다.
얼마나 무시당하는 걸까?
하지만 그래서 그의 기책은 성공했다.
제갈민의 무리까지 달려와 모든 지원자가 잠깐이지만 한 무리가 됐을 때, 진천우는 남몰래 제 소매를 털었다.
그 효과는 대단했다.
“컥!”
“억?!”
잘 싸우던 지원자들이 갑자기 기침을 쏟아냈다.
호흡계로 전파되는 독.
“이건 피?!”
다소 출혈을 일으키는 독.
“피, 피가 검다!”
착색을 일으키는 독.
하지만 그 모두가 생명에 큰 지장은 없다.
만일 시험 중 누군가 독으로 죽으면 뒷감당이 버거웠다.
게다가 자신이 푼 진짜 독은 따로 있었다.
독 때문에 지원자들 모두 큰 혼란을 느끼고, 싸움은 소강상태에 빠졌다.
“스읍!”
이때, 진천우가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 직후, 그는 잔뜩 들이켠 숨을 토해내며 소리 질렀다.
“맹이 독을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