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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화 : 맹주 (2) (125/210)


125화 : 맹주 (2)
2022.04.18.


“흠……?”

“…….”

맹주가 잠시 눈을 껌뻑이는 사이, 눈을 마주친 청년의 고개는 어느새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딱히 다른 이들도 이를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어차피 누가 눈치채도 상관없었다.

그만큼 갑자기 나타난 맹주란 대상은 젊은이들의 호기심을 이끌기 충분했다.

물론 첫 만남에서 뻔히 바라본 건 조금 무례하다고 할 수 있으나, 맹주는 이를 크게 질책할 사람도 아니었다.

“흠!”

허나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뭔가…… 뭔가 저 청년의 눈빛은 조금 달랐다.

‘감탄도, 선망도, 시기도, 질책도 아닌데…….’

지난 수십 년, 자신을 바라보던 시선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맹주는 조금 전 시선이 지금껏 겪은 그 모든 시선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면서도 처음은 또 아니었다.

‘언젠가 분명 전에 한번 비슷한 시선을 느꼈는데, 그게 어디였지…….’

아!

뒤늦게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렸다.

-예산 내놔!!

학수선의.

‘그 미친놈.’

정확히는 의(醫)에 미친 놈.

아마 맹의 긴 역사 중에 의원에게 멱살 잡힌 맹주는 자신이 처음일 터.

하지만 당시는 그만큼 맹에 의방 증대가 꼭 필요한 사항이었고, 맹주는 학수선의를 맹에 끌어들인 걸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비록 그간 그가 여러 사건 사고를 일으켰지만, 그럼에도 그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헌데 그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건지…….’

학수선의가 느닷없이 실종됐다는 보고는 이미 받았다.

맹주는 어떻게든 신의를 찾으라고 사방에 사람을 보냈지만, 아직 소식이 없었다.

“휴!”

맹주가 낮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학수선의 같은 눈으로 자신을 보는 걸 보면 확실히 특이한 젊은이지만, 굳이 남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장소에서 일부러 지적할 사항은 아니었다.

자신을 위해서도, 저 젊은이를 위해서도.

“이들이 이번 입맹 합격자들인가?”

“그렇습니다.”

총책사가 손에 든 문서를 맹주에게 넘겼다.

지원자들의 성적과 출신 등의 정보를 적은 문서였다.

지원자들은 그 내용이 궁금했지만 차마 내색하지 못했다.

맹주는 차분히 그 문서를 읽은 뒤 고개를 들었다.

“제갈세가의 제갈민.”

“넷!”

제갈민이 호명되자마자 앞으로 나아갔다.

그 모습을 종리우가 불편하게 지켜보았다.

이번에도 종리세가는 제갈세가의 아성을 넘지 못했다.

“종리세가의 종리우.”

“넷!”

비록 그 뒤를 바짝 쫓았지만, 어쨌든 뛰어넘지 못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맹주는 그 뒤에도 합격자의 이름을 하나하나 직접 호명했다.

모두가 처음에는 긴장된 목소리로 부름에 답했지만, 어째선지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편해졌다.

이는 맹주의 푸근한 목소리도 한몫했지만, 그보다 그가 주위 다른 수뇌부에 비해 드러낸 기세가 한없이 부족한 탓이 컸다.

총책사와 우책사는 책사임에도 무인에 지지 않는 기개를 보였다.

백검대주야 따로 말할 필요도 없었다.

맹 제일의 무인.

그는 굳이 일부러 기세를 드러내지 않아도 잘 벼린 검을 마주한 것처럼 날카로운 인상이 자연스럽게 흘러넘쳤다.

그에 반해 맹주는 특별히 어떤 기세도 드러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기세를 드러낼 수 없다는 게 맞았다.

‘그 말이 정말인가?’

‘맹주께서 무공을 모른다더니.’

‘뭐, 정말?!’

제 차례를 넘긴 지원자들이 아주 조심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그 내용이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무인들의 세상에서 가장 강한 집단인 맹의 주인이 무공을 모른다?

허나 그건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진천우가 직접 의안으로 이를 확인했다.

‘맹주께서는 단전이 없었지.’

애초에 맹주가 아닌 다른 이가 맹의 최고 무인이란 점부터 특이했다.

교와 련의 최고수는 누가 뭐래도 교주와 련주였다.

어쩌면 세간에서 교와 련에 비해 맹을 한 수 아래로 치는 것도, 맹주가 무인이 아니라는 사실이 크게 한몫했다.

‘괜찮은가?’

‘정말?’

지원자들이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

그 모습을 진천우가 가만히 지켜보았다.

‘멍청한!’

그야말로 멍청하다는 말 외에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이 없어도 어떻게 당사자 앞에서 저런 소리를 낼 수 있지?

이해되지 않는 건 수뇌부도 똑같았다.

‘왜 가만히 있지?’

확실히 수뇌부가 있는 연단 위와 지원자들이 대기하는 장소는 거리가 꽤 된다.

그러니 총책사나 좌책사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맹 제일 무인인 백검대주까지 저 소리를 듣지 못했을 리 없었다.

당연히 그가 주의를 주는 게 맞았다.

허나 백검대주는 그 자리에 꼿꼿이 서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맹주가 다소 모욕을 당하는 건 제 알 바가 아니라는 듯.

‘맹의 기강이 내 예상보다 훨씬 엉망인가?’

만약 그렇다면, 맹에 들어가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해야 했다.

기강이 무너진 조직은 결코 오래가지 않는다.

당장 바닥이 무너져 똑바로 서지 못하는 조직이 어찌 높이 올라갈 수 있을까?

이러는 와중에도 교와 련은 사상 최강의 주인과 함께 하늘 높이 비상 중이었다.

“진천우.”

“…….”

너무 크게 실망한 탓일까.

맹주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미처 듣지 못했다.

“진천우.”

“아, 넷!”

부끄럽게도 제 이름이 두 번이나 부르고 나서야 반응했다.

진천우가 황급히 연단에 오르려 하자, 되레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두르지 않아도 난 여기서 도망가지 않을 테니, 천천히 올라오게.”

맹주의 가벼운 농담에 다시 분위기가 풀어졌다.

진천우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연단 위에 올라왔다.

연단 위에서 맹주는 그의 어깨와 가슴, 손을 한 번씩 잡아주고 수고했다는 말을 건넸다.

이후, 입맹 시험에 맨 마지막으로 통과한 자신이 어디에 배치될 건지 말해주었다.

‘제삼 보급 관리라?’

보급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부분.

보급이 없으면 검사는 검 없이 싸워야 하며, 굶은 채 힘없이 싸워야 한다.

허나 아무리 보급의 중요성을 역설해도 각각 맹주, 총책사, 우책사 직속으로 들어간 제갈민과 현소 그리고 종리우에 비하면 여러 단계 아래에 위치할 수밖에 없었다.

“실망했는가?”

“아닙니다.”

갑작스러운 맹주의 질문에 진천우는 굳이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좌책사인 신안이 돌아오면 자신은 그 직속으로 들어갈 터였다.

그런데 방금 막 합격자 전원을 새로 배치한 맹주가 갑자기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윽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들 지금 자리에 만족하는가?”

“?”

지원자들은 맹주가 느닷없이 무슨 말을 하나 싶었다.

그 직후, 그들은 두 눈을 치켜떴다.

-만족하냐고 물었다!!!!

쩌렁쩌렁!

귀청이 찢어질 정도로 큰 목소리.

놀랍게도 거기에는 어떤 내력도 들어있지 않았다.

내공도 없이, 저 연세에 저런 우렁찬 목소리라니.

슥!

맹주가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까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맹주의 눈길이 닿는 즉시, 지원자들이 자세를 바로 세웠다.

‘이거구나.’

하필 진천우는 맹주의 외침을 바로 목전에서 들었기에 곧바로 조금 전 자신이 품고 있던 의문을 날려버릴 수 있었다.

어째서 백검대주와 그 외 다른 이들이 맹주를 향한 의심에 주의를 주지 않는지.

그들은 맹주 스스로 그 모든 의심을 말끔히 씻어낼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확실히 지금의 맹주는 무공이 없다.

진천우는 어째서 무공도 없는 자가 맹의 정점에 섰는지 의아해하기 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부터 생각해야 했다.

지금의 맹주는 무공만 없을 뿐, 교주나 련주와 똑같은 괴물이었다.

아니, 무공이 없는 상태로 맹의 정점에 섰다는 건 어쩌면 그 이상의…….

“다시 묻겠다. 그대들은 지금 위치에 만족하는가?”

맹주가 다시 물었다.

이제 그의 물음을 우습게 보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 이들을 위해 맹주가 추가 설명을 해주었다.

“위험한 임무가 있다. 그걸 제대로 해낸다면 원하는 지위를 주지.”

맹주가 직접 보장하는 위험한 임무.

그러나 바꿔 말하면, 그것은 맹주가 보장할 정도로 큰 보상이 걸린 임무란 뜻이기도 했다.

이건 기회였다.

지원자 대부분 출신이 미천하거나, 따로 명성을 쌓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었다.

이들은 맹주의 말에 눈을 빛내며 경청했다.

안타깝지만 진천우는 그들만큼 절실하지 않았다.

다만, 확실히 호기심이 일었다.

‘도대체 어떤 임무길래 맹주가 저리 열변을 토하는 거지?’

그는 지극히 냉정히 일단 맹주의 말을 들어보자는 셈으로 그 자리에 섰다.

“뭐?”

허나 잠시 뒤, 진천우는 그만 냉정을 잃고 작게나마 소리를 지를 만큼 흥분하고 말았다.

“두 번째 천마…….”

맹주의 입에서 왜 그녀의 이야기가 나오는 거지?

* * *

“소주!”

백의를 입은 여인이 언제나 흑의를 즐겨 입는 제 주인을 애타게 불렀다.

“뭐냐?”

“어째서 장로들부터 포섭하는 겁니까?”

“기껏 포섭에 성공해 놓고 그런 질문이라니. 뭐가 불만이냐?”

“불만이 아닙니다. 다만…….”

백의 여인이 말끝을 흐렸다.

솔직히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

“저는 장로들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랬다.

교의 장로들은 너무 영악했다.

비록 당장은 소주에게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했다고 하나, 은거한 천마가 돌아온다면 어찌 될까?

곧바로 소주에게 바치겠다던 제 심장을 뜯어 천마에게 내줄 게 분명했다.

그런 면에서 장로들보다는 교의 삼대 봉공이나, 칠대 대주들이 더욱 믿을 만했다.

그들은 장로와 달리 정말 순수한 무인이었다.

“삼대 봉공과 칠대 대주? 확실히 그들은 현 천마에게 살해당한 아버지 때부터 우리 가문을 모신 이들이지. 또한 그들의 충심도 의심할 여지 없고.”

“그럼 왜…….”

“그래서다.”

“네?”

백의 여인이 고개를 젓자, 소천마가 바로 그 이유를 밝혔다.

“확실히 그들의 충심은 진짜다. 일고의 의심할 필요가 없지. 그래서 그들은 필요없다.”

“어째서?”

이해할 수 없다.

믿을 만한 패를 놔두고 일부러 믿기 힘든 패를 손에 쥐다니.

현 천마는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전대 천마이자, 소주의 아비는 결코 무능한 천마가 아니었지만, 현 천마에게 채 백 합을 넘기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백의 여인은 당시 그 자리에서 본 참사가 머릿속에 각인돼 지어지지 않았다.

만약에 지금 주인마저 그리된다면, 자신은 더는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쯧!”

소천마가 몸을 떠는 수하를 보고 혀를 찼다.

자신을 가장 오랜 시간 받든 그녀조차 이렇게 몸과 마음이 지배당할 정도다.

삼대 봉신?

칠대 대주?

‘그들이라고 무사할 리 없지.’

절대 과거처럼 맹목적으로 충성을 보일 리 없었다.

애초에 그런 건 바라지도 않는다.

사실 필요도 없었다.

상대는 천마.

하늘을 거꾸러트릴 마.

그런 천마를 거꾸러트릴 방법은 오직 하나였다.

“아까 왜 장로들부터 먼저 찾았냐고 물었더냐?”

“네?”

소천마의 물음에 백의 여인이 머뭇거리며 쉽게 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의 답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더불어 자신이 답할 필요도 없었다.

마침 질문의 답이 그녀들 눈앞에 나타났다.

“정말 살아있군.”

천마를 거꾸러트릴 방법.

그것은 언제나 하나뿐이다.

직접 힘으로 쓰러트리는 것.

소천마가 일부러 장로들부터 찾은 이유는 하나였다.

은거 중인 천마에게 자신의 소식을 알려줄 방법은 그들과 접촉하는 것뿐이다.

“왔군.”

씨익!

소천마가 천마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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